00498 51. 프랑스 =========================================================================
“안녕하십니까, 고산국 국왕폐하! 프랑스와 나바르의 국왕 앙리 4세 폐하의 전권대사로 파견된 막시밀리앙 드 베튄, 로스니 후작이 인사 올립니다.”
드디어 왔다. 국왕좌승함으로 찾아온 프랑스 외교관은 30대 후반 남자였다. 그 나이에 벌써 앞머리가 훌렁 까진 반면, 대머리가 되는 면적만큼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로스니 후작(Marquis de Rosny)은 어릴 때부터 나바라 궁정에서부터 앙리를 모셨으며, 앙리 4세가 프랑스 국왕이 되도록 도왔던 자였다. 쉴리 공작이 되는 것은 1606년의 일이었다.
“잘 왔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당장 돈 내놓으시오.”
“어허! 무작정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씩 따져보셔야죠.”
이민호는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먼저 상대방의 약점부터 건드렸다.
“후작은 아직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았다지요? 주군에게만 개종을 권하고 쏙 빠지면 되겠소?”
“저는 국왕이 아니라서 정치적인 판단으로 신앙을 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위그노입니다.”
나바라의 왕 엔리케가 1589년 앙리 4세로서 프랑스 국왕에 즉위한 후에도 내란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프랑스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국왕에게 개종하도록 권한 것만으로도 프랑스를 위해 큰 업적을 세운 셈이 된다.
그러나 로스니 후작이 아니더라도 앙리 4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권한 사람들은 많았다. 앙리 3세가 왕위를 물려줄 때도, 정부로서 자식 셋을 낳아준 가브리엘 데스트레도 앙리 4세에게 개종할 것을 권했다.
당시 프랑스의 정치 상황을 아는 자라면 누구든지 국왕이 가톨릭이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장기간의 파리 포위 작전이 시민들의 저항으로 결국 실패하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그 누구보다도 앙리 4세가 개종할 필요를 절감했다.
“먼저, 보르도에서 프랑스 신교도들의 상륙을 막아 귀향을 못하게 한 죄요. 함포를 발사해 아키텐의 군대를 쓸어버릴까 하다가 꾹 참았소. 프랑스 왕국에 우리 함대와 아키텐의 교전권을 정식으로 요청하겠소. 싫으면 손해배상금을 내시오.”
“교전권이라면, 프랑스 국왕의 군대를 중립으로 놓고 고산국이 아키텐하고만 싸우시겠다는 뜻입니까? 죄송하오나 외국 함대가 접근하면 무조건 쫓아내라는 프랑스 국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아키텐에 죄가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 빠져 나가면 책임질 사람이 없게 된다. 이민호가 눈을 부릅뜨고 로스니 후작을 위협했다.
“그럼 프랑스하고 한 판 붙어볼까요?”
“에이! 싸우자고 교섭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불쾌하셨겠지만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금을 지불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국왕폐하께서 품으신 불만을 저희가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손실 보상이 아니라 손해 배상이오.”
“네, 네. 배상 맞습니다.”
이민호가 알기로 로스니 후작은 수학과 역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1596년 9인으로 구성된 재정위원회의 일원이었다가 현재는 단독으로 프랑스의 재정을 관할하는 재무장관이 되었다. 외국과의 조약을 주선하고 특명대사로 파견되는 등 외교관으로서도 실력을 뽐냈다. 프랑스 궁정에서 가장 까다로울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대화를 해보니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라서 이민호는 조금 긴장했다.
로스니 후작은 오랜 전쟁으로 국가파산 직전인 프랑스의 재정을 단기간에 흑자로 돌려놓았다는 인물이었다. 농업 증진, 지방관의 자의적 증세 금지, 도로와 요새 건설, 포병의 근대화 등 부르봉 왕조의 기반을 닦는데 헌신한 인물이었다. 이 시대 특유의 제도겠지만 공직자들의 매관매직을 공식화하고 매년 일정액을 세금으로 받아 국가 재정을 충실히 한 업적도 있었다.
“이슬람 해적에게 붙잡힌 노예를 구입한 것은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인류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서 그 비용은 잊어버리겠소. 하지만 그 동안 신교도들을 먹이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소. 보르도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더 들게 됐다는 것이 문제요.”
“당연히 신교도들이 소모한 식비를 저희가 지급하겠습니다. 설마 프랑스 사람의 식비보다 많이 들지는 않았겠지요.”
로스니 후작의 대꾸를 곱씹던 이민호의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아직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시기는 아니었지만, 음식물이 풍족한 나라라서 잘 먹는 것은 당연했다.
“노예에서 풀린 사람들에게 우리 해군이나 해병과 똑같은 식단을 제공했소. 고산국 함대가 승조원들에게 잘 먹인다지만, 프랑스하고 직접 비교하자니 어렵구려.”
“재료가 문제가 아니라 요리 방법의 차이 때문에 입맛에 안 맞았을 것입니다. 프랑스인은 북유럽의 야만인들과 다릅니다. 고기를 굽기 전에 와인에 최소 하루 넘게 재우고 소스도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요리 절차를 다 지켜주셨는지요?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맛있게 먹어야 하는 게 핵심입니다. 제대로 음식 맛을 내지 못하면 프랑스 사람은 학대당한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요리 절차? 그, 그건 모르겠소. 하지만 냉장고라고 하는 얼음 창고에서 고기를 숙성시켜서 요리했으니 고기 맛에 불만을 품지 않았을 것이오. 향신료도 듬뿍 치게 했소.”
“음식에 만족했는지 몇 명 불러서 물어볼까요?”
“고산국이 동양 나라들 중에서도 음식문화 수준이 높은 편이오. 하지만 나라마다 식생활 습관이 다를 수도 있으니 음식에 거부감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오.”
“좋습니다. 그럼 영주나 기사보다 낮고 자유민보다 높은 향사의 하루 식비로 계산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겠소.”
로스니 후작과 대화를 하다 보니 이민호는 자신이 없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추레한 중세 유럽인들에게 잘 먹였다 생각했지만, 하필 상대가 프랑스인들이었다. 계속 밀린다고 생각한 이민호는 얼른 주제를 바꿨다.
“생-말로에서 기어 나온 해적 놈들에게 쏜 포탄 값도 물어내시오.”
“그들은 해적이 아닙니다. 생-말로는 프랑스의 해군 군항이며 선원들은 정식 해군입니다. 폐하께서는 30척이나 되는 프랑스 해군 함선들을 격침시킨 셈입니다. 오히려 프랑스가 손해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해적이나 다름없는 사략선 아니오? 우리 함대를 추격하더니 다짜고짜 대포를 쐈단 말이오! 어쩔 수 없이 반격하느라 비싼 포탄을 무수히 소모했소. 물어내시오!”
“사략선이 해군이지요. 그리고 고산국 함대는 프랑스의 영해를 침범했지 않습니까? 해군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해를 침범한 외국 함대를 임검하고, 거부하면 추격해 나포하거나 공격할 권리가 있습니다.”
“12해리 영해를 선포한 나라는 고산국과 브루나이 등 아시아 국가들뿐이오.”
“고산국을 따라 프랑스도 올해부터 영해를 설정했습니다. 다만 외국에 선포를 하지 않았지만, 외국 상인들은 다들 알고 있으며 영해를 피해서 지나다녔습니다.”
“국제적으로 선포하지 않은 영해선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없소.”
“세계 모든 국가에 일일이 통보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고산국 함대는 저지 섬과 건지 섬 사이를 지나고 셸부르 가까이 항해했습니다. 프랑스 영해를 지난 것은 물론 프랑스 영토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한 것이 생-말로 사략선들이 출동한 이유였습니다.”
“저지 섬과 건지 섬은 잉글랜드가 영유하고 있지 않소?”
정확히 말하자면 잉글랜드 영토가 아니라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였다. 노르망디 공작이 잉글랜드를 점령하기 전부터 소유했으니 잉글랜드와 전혀 상관없었다.
“원래 노르망디 공작의 영지였다가 분리됐지요. 프랑스에서 노르망디 공작의 영지를 회수한 만큼, 해협 제도라 불리는 그 섬들도 프랑스 영토입니다. 물론 잉글랜드가 영토 주장을 하고 있으니 분명 영유권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가 영유권 주장을 하는 곳은 해협 제도 섬들에 가까운 에크레후스 암초군과 레밍키에르 제도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려줄 만한 사람이 함대에 없어서 이민호는 깜빡 속아 넘어갔다.
“어찌 됐건 군함을 포함한 선박은 타국의 영해라도 무해 통항할 자유가 있소.”
“무해 통항이라. 신선한 개념이군요. 아직 해양주권에 관한 국제법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참고하겠습니다.”
“어쨌건 프랑스 사략선들이 선제공격을 했으니 우리 함대에게 반격할 권리가 있소. 물어내시오.”
“좋습니다. 오해로 시작했다지만 정상적인 교전으로 인정하겠습니다. 한 척을 격침시키는데 평균적으로 포탄이 120발 이상 소모되는 것으로 압니다. 고산국 함대가 한두 발 쏴서 침몰시켰다는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니 이 가격에 준해서 지불하겠습니다.”
“한두 발에 격침시킨 것은 맞는데, 포탄 값이 비싸니 그렇게 계산해주시오.”
그때 이사벨 공주가 탄 범선이 국왕좌승함으로 접근했다. 프랑스 배도 한 척이 따라왔다. 함장이 보고하자 이민호가 로스니 후작과 함께 함교로 나가서 구경했다.
그런데 이사벨 공주와 함께 40대 중반의 남자가 배에 올랐다. 눈 꼬리가 축 쳐진 게 음탕하게 생겼다. 로스니 후작이 허둥지둥 갑판으로 나가는 꼴이 좀 이상했다.
“나는 루브르 궁전에서 편히 쉬고 있을 팔자가 아닌가봐.”
“언제는 궁전에 가만히 붙어 계셨습니까? 항상 폐하께서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폐하께서 뭐하러 직접 오셨습니까?”
“고산국 국왕폐하는 요즘 소문이 분분한 유명인인데 이럴 때 구경이라도 해야지.”
웅성거리더니 프랑스 국왕 앙리 4세가 직접 집무실로 찾아왔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살펴보니 의외로 앙리 4세는 소탈한 사람이었다.
“이야기는 잘 나눴소? 어찌 됐건 오해가 있어서 우리가 선제공격했으니 배상을 하겠소. 50만 리브르를 내겠소.”
“폐하!”
로스니 후작이 화들짝 놀라며 앙리 4세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대범한 프랑스 국왕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직 협상이 안 끝난 건가? 뭐 어때. 외교 협상에서 힘이 중요하지 논리는 의미가 없어. 50만 리브르 정도는 지불해야 고산국 함대가 센 강 하구에서 물러날 것 같아.”
프랑스는 가장 큰 화폐 단위로 리브르를 사용했고, 원래 영국의 파운드와 같은 단위였다. 화폐 단위로도, 무게 단위로도 활용됐다. 그러나 앙리 4세가 언급한 50만 리브르는 50만 파운드 무게의 황금이 아니라 화폐 단위인 프랑을 뜻했기에 아주 많은 금액은 아니었다.
이전 시기에 리브르는 계산상의 필요에 의한 가상의 통화였고, 15세기에는 영국 파운드의 6분의 1 정도 가치를 지녔다. 실제 금화는 14세기 장 2세, 그리고 샤를 5세 때 에퀴가 주조되어 통용됐는데 순금 4.08그램을 함유한 1에퀴는 1과 8분의 1리브르에 해당했다. 이렇게 몇 가지 금화가 주조될 때 프랑스 왕의 모습이 양각되고 라틴어가 새겨지면서 금화에 프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유럽의 기준 화폐인 베네치아 두캇이 금 순도 0.986, 무게 3.49그램이었고, 이 시대 프랑은 두캇이나 플로린과 길더 등 유럽의 주요 금화와 비슷한 가치를 형성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무게 개념이 사라지면서 프랑의 가치가 점차 하락했다.
로스니 후작이 재무장관으로서 재정을 운영할 때 프랑스의 국고는 매년 100만 리브르의 흑자를 유지했다. 프랑스는 남미 은광을 소유하지 못했지만 매년 그 정도 적자를 내는 에스파냐와 정반대로 오히려 흑자 예산을 꾸려 나갔다.
“겨우 50만 프랑이오? 센 강 하구에 며칠 주둔한 비용만 해도 그것보다는 많을 것이오.”
“올해 5월에 겨우 전쟁이 끝났소. 아무리 찾아봐도 프랑스에서 돈 나올 구석이 없소. 나도 빚내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이오.”
“쳇!”
“조금 나중에 오지 그랬소? 카카!”
앙리 4세가 괜히 고소해했다. 로스니 후작과 협의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국왕이 너무 일찍 온 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왕 왔으니 이민호는 프랑스 국왕과 직접 협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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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르가 결국 프랑이 됐습니다.
협상이 조금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