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6 51. 프랑스 =========================================================================
함대가 며칠 동안 센 강 하구를 틀어막고 있는데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먼저 전령이 왔다. 해질녘에 함대로 접근한 작은 범선에서 노를 젓는 단정을 내리더니 영국 해군 장교가 국왕좌승함을 찾았다. 누더기를 걸친 다른 수병들에 비해 화려한 복장으로 인해 장교라는 사실을 알았지, 이때까지 영국 해군 장교 복장은 통일되지 않았다.
장교는 편지를 바치고 단정으로 돌아가서 답장을 기다렸다. 민영이 편지를 받아 가장 먼저 바늘로 봉투에 구멍을 여러 개 뚫고 흔들었다. 몇 가지 시험을 한 민영은 봉인된 편지봉투를 뜯어서 편지지를 꺼낸 다음 칼날로 살살 긁었다. 조수 역할을 맡은 다른 호위가 몇 가지 약품에 그 부스러기를 넣은 다음 기다렸다.
“내용을 옮기겠습니다.”
이민호는 국왕이 되기 전부터 항상 암살에 대비했다. 이민호가 직접 편지지를 만지지 않기에 처음부터 글을 베껴 써도 되지만 지금까지 한 것은 호위들의 안전을 위한 절차였다. 암살시도에서 이민호만 안전하겠다고 호위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었다.
호위들은 알파벳을 기본적으로 배웠어도 그 중에서 민주가 영어와 불어의 필기체를 가장 잘 구별할 수 있었다. 민주가 금방 편지를 또박또박 정서해서 이민호에게 바쳤다. 당연히 뜻은 몰랐다.
“영어와 불어로 돼 있군.”
문제는 이민호가 불어를 모르고 현대 한국에서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어도 이 시대 영어를 해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불어 통역관 김 대위에게 편지 번역을 맡겼다.
읽어보니 에섹스 백작이라는 잉글랜드의 고관이 고산국에 잉글랜드 침공을 제안하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고산국 해군이 템스 강을 봉쇄하고 지상군을 약간 상륙시키면 혼란한 틈을 이용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체포하는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했다.
에섹스 백작은 잉글랜드를 통치하고, 아일랜드와 웨일즈, 콘월, 스코틀랜드까지 넷 중에서 둘을 이민호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스코틀랜드는 독립왕국으로서 제임스 6세가 다스렸으나, 스코틀랜드의 국왕인 동시에 잉글랜드의 왕세자 신분으로서 1603년에 엘리자베스 1세 서거 후 제임스 1세로 즉위한다.
“잉글랜드를 내부에서 무너뜨린다? 괜찮은 제안 같은데. 통역관은 잉글랜드 사정을 좀 알지? 어떻게 생각해?”
“에섹스 백작이라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신이며 1596년부터 영국군 총사령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러나 결코 충신은 아니고 총신에 머무른 자입니다. 야망이 큰 인물이며 군사적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함정이 숨어있을지 모르니 적 대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절대 안 됩니다.”
통역장교가 이민호에게 에섹스 백작의 제안을 거절할 것을 권했다. 정치적 식견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략적으로는 통역장교의 말이 옳았다. 실제 역사에서 조선 임금과 대신들은 임진왜란 때 왜장이 한 말을 믿고 이순신을 파직시키는 미친 짓을 했었다.
“총사령관이라면 반란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에섹스 백작에 대해 더 설명해봐.”
“현재 잉글랜드의 외교는 세실 가문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는 외교권에 욕심을 냈다가 세실 가와 심하게 대립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반란이 확산되고 있는 아일랜드 총독으로 조만간 백작이 파견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총독은 한직으로 인식되므로 일종의 실각입니다.”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34살 연하 애인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여왕이 사랑했던 로버트 더들리, 레스터 백작의 의붓아들이 로버트 데버루였을 뿐이었다.
에섹스 백작이 여왕을 무례하게 대해 따귀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통역관이 해주었다. 주로 프랑스 쪽에서 나온 소문이었지만 믿을 만했다. 그렇다면 여왕의 총애를 상실한 권신이 막바지에 몰려 반기를 든다는 흔한 스토리였다.
“아일랜드와 콘월, 스코틀랜드는 욕심이 나는데?”
“꽤 많은 병력을 파견해야 할 텐데, 앞으로 계속 지킬 수 있겠습니까? 콘월은 영불 해협 초입이라 전략적 가치가 있겠지만 나머지는 척박한 땅에 불과합니다.”
바다를 생각하지 않고 땅만 놓고 판단한다면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항상 바다를 중심에 놓고 판단했다. 그래서 콘월과 아일랜드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했다.
“지역 출신으로 군대를 만들어야지.”
“그 네 지역의 현재 상황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세력 차이가 워낙 커서 언젠가는 결국 잉글랜드에 합병될 지역들입니다. 당장 병력이 필요하다면 스코틀랜드와 전통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프랑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프랑스를 압박하고 있네.”
에섹스 백작의 반란이 성공한 다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을 설득하거나 군사적으로 제압해 두 지역을 고산국의 속국으로 편입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두 지역은 잉글랜드와의 오랜 관계 때문에 잉글랜드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하려는 열망은 있되, 경제적으로는 앞으로도 계속 잉글랜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석유가 넘쳐날 테니 굳이 북해 유전을 노려 스코틀랜드를 욕심 낼 필요도 없었다.
“외국 입장에서 관망하자니 잉글랜드의 반란군 수장이 예뻐 보이면서도 계륵 같군 그래.”
머리를 싸매던 이민호가 전단장과 전단 참모들을 불렀다. 군인으로서 당연히 정복전쟁의 선봉에 나서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전단장은 물론 참모들도 반란 참가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전하께서 알아서 판단하시겠지만, 순양함이 겨우 12척에 불과하고 병력도 적습니다. 이런 조문단 함대로는 템스 강 하구 봉쇄는 가능하되 상륙작전은 어렵다고 봅니다. 런던은 기병이나 장갑차가 활약할 만한 넓은 지형이 아닙니다. 해병 1개 대대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보병이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물론 전하께서 어명을 내려주시면 해군도 보병으로 참전하겠습니다.”
“본토에 연락선을 보내 급히 1개 연대를 보내라고 하면 어떻겠소?”
문제는 에섹스 백작이 잉글랜드 총사령관에서 해임돼 아일랜드 총독으로 가기 전에 반란이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총사령관의 직위를 반란에 이용할 시간이 부족했다.
“런던 지역만 점령한다면 1개 연대로도 가능하겠습니다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잉글랜드의 모든 지역에서 귀족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알겠소. 임무로 복귀하시오.”
결국 에섹스 백작의 반란에 참가하는 것은 포기했다. 내부 반란을 이용한 잉글랜드 정복은 군사적으로 어렵더라도 일단 가능은 하되, 큰 실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걸핏하면 반란을 일으킬 적대적인 백성들만 대규모로 늘어나는 것처럼 골치 아픈 일은 없었다.
“예비 반역자에게 답장을 써야겠군. 반란에 고산국이 가담하지 않겠지만 비밀을 지켜줄 테니 알아서 잘해보라고 해야겠어.”
“답장이 잉글랜드 왕실 쪽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혹시 모를 나중을 대비해 적당히 인사말만 적는 게 좋겠습니다.”
“흠. 외교적 수사라. 그게 좋겠군. 그렇다면 통역이 적당히 알아서 써주게. 잉글랜드용 국새는 여기 있네.”
외교 문서에 찍을 국새를 나라별로 따로 만들었다. 유효기간도 10년으로 정해 교체하기로 했다.
“국새에는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제가 답장을 다 쓴 다음에 전하께서 직접 찍어주십시오.”
“훌륭한 태도야.”
이민호가 다시 서랍을 열어 국새를 안에 던져 넣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국새끼리 부딪치는 금속음이 났다.
통역을 다시 보게 됐다. 단순히 외국어를 옮기는 통역이나 번역 기술자가 아니라, 유럽 지역 전문가였다.
“김 대위! 자네 외교 좀 아나?”
“사실 프랑스어는 부전공이고 사관학교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습니다, 전하. 그러나 책만 읽었지 예조의 일을 도울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에스파냐 외의 유럽 문제라면 예조 관리들보다 훨씬 나은데? 아직 젊으니까 경력은 차차 쌓아나가면 돼. 파리에서 사람이 와서 이번 문제가 적당히 해결되면 초대 주 프랑스 대사로 일하게. 계급은 대사 임기 동안 임시 대령을 달아주겠네.”
임시 계급을 달 경우 공식적으로는 승진하더라도 대사 임기가 끝나면 원래 계급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외교관 신분 중에도 군인 경력이 계속 유지되고 임기가 끝나면 특별히 승진도 가능했다. 김 대위가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라면 인생에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저에게는 과분한 일입니다, 전하!”
“외교 업무보다는 유럽 정보를 모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야. 우린 유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잖아. 예조에서 유럽 상인이나 선원들에게서 소문을 수집하는 수준이라 부정확한 것을 떠나서 너무 느려.”
이런 일은 정보국이 하는 일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예조의 업무로 외부에 알려져 있었다.
“요즘은 교수나 학자들에게서 고급 정보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그래도 직접 유럽에 주재하면서 얻는 정보가 빠르고 정확하겠지.”
통역관 김 대위를 중심으로 예조 하급관리 몇 명을 붙여 기본적인 조직을 갖추게 해주었다. 예조 판서가 김 대위를 특별 교육시켰다. 김 대위는 지식은 풍부했지만 유럽 귀족 예절에 약했다.
조선 중후기의 역관들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폐쇄된 직업군을 형성한 것처럼, 대한민국 외교관들도 학연과 혈연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정부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예조 관리들은 타향 만리에서 도시 건설이라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직원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남는 시간에 이민호는 북유럽 신교도 몇 명을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북해와 발트 해 사이를 왕복하며 무역에 종사하던 스웨덴과 한자동맹 소속 자유시 뤼베크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북해에서 사라센 해적에게 납치돼 북아프리카까지 노예로 끌려갔다가 이민호에 의해 해방되어 수송선에 타고 있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기도 아닐 텐데 이때 북유럽에는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확장이 가장 특이했으며, 특히 발트 해 연안을 향한 루스 차르 국의 침공은 1593년까지 이어졌다.
“북유럽에서 고산국에 대한 평판은 어때? 이제 좀 알려졌나?”
마치 한국에 온 유럽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에게 기자들이 ‘두 유 노우 김치[연아 킴, 지성 팍, 갱남스타일]?’이라고 물어보는 것 같아 많이 민망했다. 그러나 조만간 북해와 발트 해 경제권과도 접촉해야 하므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통해 고산국 상품이 간접적으로 전해졌지만, 극히 소량에 불과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고산국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입니다만, 상인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졌습니다. 보석이든 천이든 최고급품이 생산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배에 탄 저희들에게 지급된 보급품을 봐도 그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옥 도자기 찻잔을 노예에서 해방된 제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식한 노르웨이인이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는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습니다.”
수송선 조리사들이 식기 종류가 자꾸 사라진다고 툴툴거리던데, 그 원인이 파악된 순간이었다. 북유럽에서는 왕족이나 고위 귀족만이 쓸 수 있다는 옥 도자기 찻잔이 수송선의 대규모 식당에 얌전히 남아있다면 그것이 더 이상했다. 앞으로 수송선에서 옥 도자기 찻잔은 보관하고 제작비가 더 비싼 놋쇠 찻잔을 내놓기로 했다.
대화 주제는 나중에 러시아가 되는 루스 차르 국으로 옮아갔다. 발트 해 주변국들의 정세 변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표도르 1세가 죽었어?”
“그렇습니다. 미치광이 차르 이반 4세의 아들 표도르 1세는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차르의 손위처남 보리스 고두노프가 차르를 이었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심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폴란드 귀족들이 루스 차르 국을 집어삼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노르만계였던 류리크 왕조는 이로써 멸망했다. 이후 러시아는 대 동란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이반 4세의 막내아들로서 어릴 때 살해당했던 드미트리를 참칭하는 자들이 연달아 나타나 실제 차르로 등극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몇 년 후의 일이었다. 폴란드와 스웨덴이 개입해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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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상인들과의 대화가 좀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