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9 50. 에스파냐 =========================================================================
“어? 대신들이 그렇게 말하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외웠나?”
펠리페 3세가 배석한 대신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머리가 나쁜데 눈치까지 없는 국왕 때문에 대신들이 아주 미치려고 했다.
“잠깐 쪽지 좀 보고. 아! 맞다. 대신들은 내 부하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선의로 주는 것은 그냥 편하게 받아들여. 내 말을 믿어. 데니아 후작! 이렇게 말하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폐하. 그냥 쪽지를 보고 읽으세요.”
데니아 후작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선왕 펠리페 2세가 살아있을 때 왕자에게 국무회의를 주재하라 했더니 보고서를 이해 못하고 대신들과 대화 자체가 안 통해서 펠리페 2세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에스파냐 국왕으로 즉위한 지금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거봐. 맞대. 물론 해적들한테서 섬과 항로를 지키기 어렵다고 대신들이 불평해서 바하마 제도를 주는 것은 아니야. 순수한 선의야.”
펠리페 3세가 쪽지를 국어책 읽듯이 하면서 에스파냐의 사정과 의도를 술술 잘도 불었다. 바하마 제도는 쿠바 아바나에서 출발한 선단이 플로리다 반도 앞을 지나는 위치에 있었고, 해적이 자주 이용하는 매복 지역이었다. 고산국에 바하마를 넘기려는 것은 해적을 토벌하고 보물선단의 항로 안전을 위한 목적이었다.
중남미에서 채굴한 금과 은을 실은 선단을 최대한 고산국 영역에 바짝 붙여서 운행시키겠다는 에스파냐의 의도가 이렇게 명백히 드러났다. 아무리 프랑스와 영국 해적들이 간이 크다 해도 고산국 영역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으니 이런 상황을 철저히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남미대륙 북동쪽 땅과 섬 일부 지역을 네덜란드나 영국에 내준 채 아직 탈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1581년 네덜란드가 수리남에 상륙했고, 가이아나도 조만간 네덜란드에 넘어가게 된다.
에스파냐에게는 지킬 곳이 너무 많았고, 아직 탐험을 하지 못한 지역과 섬도 많이 남아 있었다. 에스파냐 입장에서 해적 소굴인 바하마 제도는 고산국에 떠넘기는 편이 나았다.
“대충 이해하겠다. 그렇다면 바하마 제도를 받겠어. 고마워. 사실 모리스코인들을 북미에 이주시켜달라고 청할 예정이었어.”
“그 가짜 기독교도 무어인 놈들? 잠깐만. 6페이지에 있구나. 아! 잘 됐다. 그럼 이 기회에 다 데려가.”
“아니, 천천히 몇 년에 걸쳐서 데려가려고.”
“빨리 데려갈수록 좋아. 와! 너 정말 좋은 친구구나. 골칫거리가 단번에 두 개나 사라졌네? 나는야 외교의 천재로 역사에 길이 남을 거야. 그렇지?”
“그, 그럴 것 같아.”
이민호는 비올레타를 밖에 두고 통역관을 데려온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새 국왕이 이 모양인 것을 알게 된다면 절망감에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 네 왕비, 아니 공작부인이 아름답긴 한데, 원래 갈리시아의 하급 귀족 출신이라며? 천한 여자인데 괜찮아? 내가 유럽 왕가의 처녀를 소개시켜줄 수 있는데.”
“괜찮아. 그런데 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친척과 결혼할 거야?”
펠리페 3세는 선왕 펠리페 2세와 그의 조카딸이며 장남의 약혼자였던 ‘오스트리아의 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여자 형제인 이모들을 사촌 누나로 부를 수도 있는 개족보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빛나는 전통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 다섯이 태어났으나 어릴 때 다 죽고 펠리페 3세만 살아남았다.
펠리페 3세 전에 에스파냐 국왕의 정식 후계자인 아스투리아스 공 작위를 받은 펠리페 2세의 장남이 따로 있었다. 포르투갈의 마리아 마누엘라가 낳은 돈 카를로스가 그 주인공인데 임해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여러 가지 미친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유폐당한 이후 죽었다. 이 이야기는 ‘돈 카를로’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선대로부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내의 거듭된 근친상간으로 인해 이 시대 에스파냐의 국왕 후계자들은 어린 나이에 유전병으로 일찍 죽거나 정신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펠리페 2세는 몇 가지 정신병이 의심됐지만 그나마 나은 경우였고, 세대가 거듭될수록 문제가 심각해져 나중에는 후손을 볼 수 없을 지경에 몰린다. 주걱턱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유럽 왕가들끼리 이리 저리 혈연으로 맺어져 있어서 만약 국왕이 후손을 낳지 못하면 후계 계승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하기 마련이었다. 1700년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2세가 죽으면서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해 유럽 대부분 국가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대서양과 남북미 전역에서도 무수한 전투가 발생했다.
“나한테 맞는 높은 신분의 왕족 처녀가 드물어서 그래. 마르그레타는 내 사촌이라서 신분이 높은 여자라니까 좋은 왕비가 될 거야. 여대공이라는 작위를 받았으니 에스파냐 왕비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지.”
“대를 이어 계속 친척과 결혼하는 것은 안 좋을 텐데.”
“합스부르크 가문이 혼인정책을 통해 가문을 키웠다는 악평을 받았잖아? 그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가까운 친척끼리 결혼하는 것은 고귀한 혈통을 순수하게 보존한다는 의미도 돼.”
고대에 흔한 결혼 방식이었고 신라나 고려 왕가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정도가 심했다. 계속해서 이어진 근친상간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와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족들은 숫자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멸족을 당했다.
새로운 품종의 강아지를 만들 때도 그런 식으로 교배시킨다는 말이 이민호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조선말을 알아들을 에스파냐 고관이 없겠지만, 자칫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될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을 필요는 없었다.
“내년 5월에 결혼식이 예정돼 있는데 그때 고미노도 와줄 거지?”
“안타깝게도 아마 못 오게 될 거야. 아쉽지만 결혼식 전에 축하사절단 편으로 선물을 보내줄게.”
“헤헤! 최고 부자 나라라는 고산국 국왕의 선물이라, 기대되는데? 즉위 축하 선물만큼 보내줄 거지?”
“그래. 충분히 만족할 거야.”
“그때 원하는 걸 말해봐. 얼마든지 들어주지. 나폴리 왕국을 줄까?”
“폐하!”
처음으로 데니아 후작이 펠리페 3세의 발언을 제지했다. 그러나 펠리페 3세는 후작의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아첨꾼이 어쩌다 하는 충언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뭐! 내가 국왕인데 그 정도 결정도 못해? 친구에게 땅 좀 떼어줄 수도 있지.”
“이봐! 충신의 말은 듣는 게 좋아. 국왕이라면 영토를 지켜야지.”
“그래? 그럼 다른 걸 줄게. 나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고위 귀족의 딸을 노예로 준다거나, 하여튼 줄 것이 있을 거야.”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강대국의 국왕이 자질이 없고 능력이 비루하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북미대륙을 경영하면서 에스파냐와 협조해야 할 일도 많았기에 조금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어차피 펠리페 3세는 국정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대신들과 협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라센 해적은 내가 토벌할 거야. 6개월 후에 함대를 보낼게.”
“정말? 해안지방을 노략질하고 영지민들을 납치해간다고 귀족들이 아우성이더라. 그까짓 가난한 영지에는 별로 관심도 없지만.”
이민호가 대신들을 힐끗거리면서 펠리페 3세에게 물었다. 저능아 국왕의 발언은 믿을 수가 없으니 대신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앞으로 네덜란드는 어쩔 거야?”
“에스파냐에는 전쟁을 계속할 돈이 없어. 원래 네덜란드에서 세금을 많이 걷어서 다른 곳에 써야 했는데, 이제는 돈 나올 구석이 남 아메리카밖에 없거든.”
“선물을 팔면 꽤나 큰돈이 될 텐데?”
“무슨 소리! 즉위 축하 선물은 내 개인 재산이니까 국가를 위해 쓸 이유가 없지. 반대라면 몰라도 말이야. 맞지?”
“씨발! 맞아. 통역관은 알아서 잘 통역하게.”
한때는 네덜란드에서 걷은 세금이 프랑스 국가예산의 세 배나 된다는 말이 있었다. 종교문제 때문이 아니라도 펠리페 2세 치하의 에스파냐가 네덜란드에 집착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에스파냐도 네덜란드를 거의 포기하는 단계였다. 1596년에 발생한 국가파산 사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잉글랜드하고는 계속 전쟁을 할 거야?”
“몰라. 신하들이 국가예산이 없다는 소리밖에 안 해. 그리고 국왕이 왜 정치에 신경을 써야 해? 사소한 일들은 신하들한테 맡기고 나는 그냥 즐기면서 살면 되는 거야. 인생은 짧아.”
펠리페 3세는 국정을 데니아 후작, 다음 해에 레르마 공작이 되는 총신에게 맡겼고, 사치스러운 궁정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레르마 공작 역시 게으른 것은 마찬가지라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중요한 직책을 떠넘긴 다음 실컷 놀아났다. 에스파냐 궁정에 뇌물과 인맥이 판 치고 음모와 계략이 난무할 천혜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어, 그래. 너는 참 지혜롭구나.”
“우헤헤! 고산국왕에게서 칭찬받았다. 역시 너는 좋은 친구다.”
“그래. 좋은 친구다.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이민호는 펠리페 3세로부터 좋은 충고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스파냐에 정말 잘 왔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에스파냐 국왕을 직접 만나보지 않았더라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비효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몰랐다. 훌륭한 에스파냐 국왕 덕택에 고산국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총신들에게 뇌물을 써야겠으나, 얻을 것에 비하면 뇌물이 훨씬 싸게 먹혔다.
저녁에 펠리페 3세가 환영 만찬을 개최했다. 발렌시아에서 연회에 참가한 귀족들에게 비싼 선물을 줬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만찬장에 온갖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예조의 하급 관리들이 만찬에 참가한 하급 귀족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자리가 백화점 세일하는 곳처럼 북새통으로 변했다. 인원에 맞춰 선물을 비단 한 필로 줄였는데도 받겠다는 사람들이 선 줄이 끝이 없었다.
이익 앞에서 당연히 질서는 안 지켜졌다. 귀족부인들이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것이 12건, 하급 귀족 남자들끼리 결투를 한 것이 3건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펠리페 3세가 몹시 기뻐했다.
6인석인 주빈석에 앉은 이민호는 펠리페 3세가 하는 말을 듣다가 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못 먹고 오렌지를 갈아서 만든 음료수만 홀짝거렸다. 다행히도 외국 대사들이 이민호를 알현하겠다고 신청하는 바람에 간신히 자리를 비울 수 있었다.
이민호가 대사들과 대화하는 중에 주빈석에 앉은 비올레타가 펠리페 3세와 대화를 나누다가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비올레타를 안 데려오려 했으나 꼭 참가하고 싶다고 고집을 피워 어쩔 수가 없었다.
마드리드에 주재하는 대사들과 조문사절단으로 파견된 외국 외교관들이 만찬장에 총 집결했다. 이민호는 여러 나라의 대사들은 물론 몇몇 왕국의 후계자들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아쉽게도 러시아 대사는 마드리드에 없었다.
프랑스 대사가 앙리 4세를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왔으나, 위그노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에스파냐의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대신 북미 새강릉에 프랑스 대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만찬이 끝나고 이민호는 파김치가 돼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쉴 수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알현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주로 사업상의 문제였지만, 다른 목적을 가진 귀족 처녀들도 있었다.
“여기 혹시 고산국 국왕폐하가 계신가요?”
“왜?”
열두 살 정도 된 꼬마 귀족 아가씨가 이민호를 올려다보면서 살짝 윙크했다.
“저 어때요? 예쁘죠?”
“예뻐. 그런데 나중에 다 크고 나서 물어봐라.”
꼬마 아가씨가 울 것 같아서 얼른 막대사탕을 입에 물려주었다. 꼬마 아가씨가 사탕을 핥으면서 내가 꼬마인 줄 아느냐며 화를 내면서 돌아갔다.
뜻밖에 북미로 이주하길 원하는 에스파냐 하급 귀족들도 있었다. 고산국은 신분제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귀족이나 양반이 대우받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일부 귀족들은 알면서도 이주를 원했다.
“하급 귀족은 귀족 신분으로 인한 특권이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어차피 귀족들도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다만 저처럼 학자가 되려는 자식들이 있는데 교육비가 무료라고 해서 이주를 신청합니다. 에스파냐에서는 고위 귀족이나 상인 가문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학문연구를 하지 못하거든요.”
“학자 가문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오. 북미로 갈 예정이니 함께 갑시다.”
마드리드가 수도라서 학자나 예술가들이 많았다. 사흘 동안 머물면서 북미나 고산국 본토로 이주할 사람들을 구했다. 에스파냐의 고관대작이나 고위 귀족들도 알현을 신청하는 대로 만나서 미리 기름칠을 해두었다. 해남도에서 생산한 진주목걸이가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아 유럽 귀족부인들의 필수품이 되는데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책과 예술품도 사 모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훌륭한 작가의 그림과 조각이 마드리드에도 몇 점 들어와 있어서 되는 대로 사들였다. 현대의 소더비경매장에 출품한다면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낙찰될 만한 예술품들이었다. 벽화를 뜯어가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나중에 상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서는 아예 싹싹 긁어올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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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3세 밑에서 일하면 암 걸릴 듯...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