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7 50. 에스파냐 =========================================================================
초저녁에 발렌시아 부왕이 고산국 조문단 환영 겸 승전축하 연회를 열어주었다. 승전은 해적선 네 척을 나포하고 해적 수백 명을 체포한 것을 뜻했다. 10년 전 무적함대의 일원으로 깔레 해전에 참전했다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던 부왕은 다른 나라보다 잉글랜드 해적을 잡아온 것을 더 기뻐했다. 고용인들이 화려하게 장식된 온갖 음식을 연이어 식탁으로 날랐다.
고산국 국왕 일행과 필리핀 총독부 관리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연회에 참가했다. 발렌시아 왕국의 귀족들은 고산국 국왕과 필리핀 총독 일행이 착용한 세련된 복장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의상 디자인이 에스파냐보다 서너 세대 앞서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 잘하면 유럽에서 유행할 만했다.
베네치아 귀족 영애들도 이때는 손님으로 참가해 화사한 미모를 뽐냈다. 시녀들이 여왕이나 고위 귀족 여성의 말동무나 궁내부 관리 대우를 받던 시대였다. 윈스턴 처칠 수상의 조상이며 제1대 말보로 공작인 존 처칠의 부인 사라는 앤 공주가 여왕이 되기 전부터 시녀였다.
“발렌시아 음식이 제일 입에 맞는 것 같소. 여러 가지 달짝지근한 후식도 아주 좋았소.”
“제 고향 갈리시아 지방에 가시면 더욱 입맛에 맞으실 거여요.”
연회에서 이민호는 유럽 땅에 와서 처음으로 만족할 만한 식사를 했다. 발렌시아는 쌀이 주식이고 해산물이 많아서 그런지 몇 가지 음식은 고산국에서도 충분히 인기를 끌 만했다.
비올레타의 고향 갈리시아는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포르투갈 북쪽에 위치했다. 아나톨리아 중북부의 갈라티아와 이베리아 반도의 갈리시아는 이름처럼 갈리아, 즉 켈트 족의 땅이란 뜻이어서, 갈리아 족의 후손들이 주요한 주민을 구성했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프랑스에서 넘어온 귀족 가문이라 켈트 족 직계 조상을 둔 것은 아니었다.
“북 아메리카 공작부인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과한 칭찬이십니다, 부왕 전하.”
“아닙니다. 제가 10년만 젊었다면 열심히 구애하러 쫓아다녔을 겁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남성들도 느끼한 소리를 전혀 거리낌 없이 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부왕의 나이가 70은 넘은 것 같았다.
“저는 결혼한 몸이랍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십니다, 공작부인.”
에스파냐 남자들이 왜 자주 결투를 하는지 그 이유를 바로 여기서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해야 할 때였다. 여기서 화내면 남자가 쪼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은근히 화가 돋은 이민호는 발렌시아 미녀를 꼬셔볼까 했다가 금방 포기했다. 베네치아 시녀들이 이민호를 중심으로 철통같은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리스코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예. 여기 연회장에서 음식을 하거나 나르는 자들입니다. 예전 무어인의 후손으로서 에스파냐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겉으로만 기독교로 개종한 이슬람교도입니다. 농민이 가장 많고 마부나 부두 짐꾼 등 여러 가지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어인이라고 다들 피부가 까만 것은 아니었다. 술루제도의 모로족처럼 무어는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을 포함해 이슬람교도를 뜻하므로 인종적인 구별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떤 자들은 백인과 거의 다름없었다.
“새 국왕폐하께서 모리스코인들을 추방할 예정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이곳 발렌시아 왕국에만도 모리스코인들이 12만이나 살고 있습니다. 발렌시아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주민들을 모두 추방하겠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1566년에 그라나다에서 반란을 일으킨 모리스코인들을 북부로 옮겼을 때처럼 발렌시아에서도 심각한 노동력 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너무 많군요. 발렌시아에서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프랑스에서 계절적 노동자들의 이동이 잦아지겠지요. 불편하겠지만 산업 생산이 멈추거나 도시가 마비될 정도는 아닐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건비가 비싼 에스파냐인데, 도시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리스코인들을 추방한다면 발렌시아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전체가 노동력 부족 사태를 맞을 수도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로서 대거 에스파냐로 넘어올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오랜 세월 에스파냐에서 살던 자들입니다. 농경지와 일거리가 부족한 북아프리카로 추방한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모리스코들 중에서 희망자를 모아 북미에 정착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종교 때문에 핍박받으며 살거나, 북아프리카에서 굶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북미에 농지로 개간할 비옥한 땅이 많다고 들었으니 모리스코인 농민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파냐 궁정에서는 최고 우방인 고산국 영토에 무슬림들이 거주하는 것을 싫어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회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민호와 부왕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만큼 발렌시아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심지어 음식을 나르던 모리스코인들도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쏟았다.
“고향에서 쫓겨났다는 이유로 에스파냐에 원한을 품을 수 있다고 걱정하겠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스파냐 상선이 고산국 항구에 입항했을 때 모리스코인들이 안 보이게 해줄 수 있다면 에스파냐 궁정 대신들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충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에스파냐 국왕폐하께는 제가 따로 제안을 하겠습니다.”
종교 때문에 좋은 직업은 꿈도 못 꾸고 임금이 낮은 허드렛일만 하거나, 부두나 광산에서 힘겹게 일하는 자들도 대부분 모리스코인이라고 했다. 고산국에서 가장 부족한 육체노동을 복건 노무자들과 함께 맡기면 좋을 것 같았다.
에스파냐 상인들이 못 보게 하려면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오대호 주변 노천탄광과 노천철광에서 일하게 하거나, 철도와 도로를 놓는 일을 시키면 딱 적당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영양실조에 걸린 경우가 많아 힘든 일을 시키면 대량으로 죽어나갈 것이 분명하니 당분간 농업 노동자로서 비교적 덜 힘든 일에 종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필리핀 총독부의 교역상 특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발렌시아에서는 교역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발렌시아 왕국의 부왕과 연회에 참가한 귀족들에게 여러 가지 물건을 선물했다.
옥 도자기 찻잔 세트와 황금 단검은 귀족 남자들이 받았고 보석으로 장식한 티아라와 진주목걸이는 귀족부인이나 영애들의 차지였다. 그리고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색깔이 다른 비단 다섯 필씩 돌렸다. 몇몇 하급 귀족들은 전 재산보다 훨씬 비싼 선물을 받게 돼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민호와 비올레타는 발렌시아 부왕의 호의로 옛날 아라곤 왕국 또는 카탈루냐 왕국 시절의 옛 궁전에서 하루 묵었다. 어느덧 늦가을이었지만 발렌시아는 지중해 지역이라 춥지 않았다.
운동장만한 큰 침실에 이민호와 비올레타가 들었는데, 엉뚱하게 베네치아 귀족 영애들이 두 사람 앞에서 패션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작은 머리장식용 관을 쓰니 다들 청순한 공주들 같았다.
“저 예뻐요, 폐하?”
“응. 예뻐.”
“이 보석 너무 커서 무거워요. 신분에 맞지 않게 티아라에 너무 비싼 보석을 장식했다고 사람들이 흉볼 것 같아요.”
“그럼 작은 것으로 바꿔줄까?”
“아니요! 좋다는 소리여요.”
이민호는 대답해주다가, 비올레타는 베네치아 시녀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을 통역해주다가 정신적으로 지쳤다. 비올레타가 박수를 쳐서 재잘거리는 시녀들을 주목시켰다.
“자! 들어보세요. 우리는 마드리드의 연회장에 가는 게 아니에요. 공식 조문 사절로 왔으니 본분을 잊지 말도록 해요. 내일 출발할 때부터 검은 옷을 입을 거여요. 마드리드의 엘에스코리알 궁전을 떠날 때까지 화려한 장식도 가급적 하지 마세요.”
“네, 부인!”
침대 앞에 베네치아 시녀 일곱 명이 서고, 문과 벽 주변에 우크라이나 하녀 열두 명과 갈라티아 궁녀 세 명이 서 있으니 이민호가 마치 유럽의 왕이 된 것 같았다. 침대에 오른 비올레타도 에스파냐 사람이라 유모와 아기 빼고는 모조리 서양인 여자들이었다. 비올레타가 유모를 부속실로 보내 아기를 재우게 했다.
“전하. 베네치아 시녀들도 어서 취하지 그러세요? 이제나 저제나 전하의 간택만 기다리잖아요.”
“말이 안 통해서 별로 그럴 기분이 나지 않소.”
시녀와 하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침대 시중 들 두 명만 남겨 놓았다. 그런데 하필 베네치아 시녀들만 남았다.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안는 동안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지켜봐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에밀리아, 데스데모나. 너희들도 침대에 올라오너라.”
비올레타가 손짓하자 베네치아 시녀 둘이 잽싸게 겉옷을 벗고 침대로 뛰어 들어왔다. 속옷 차림의 시녀들은 비올레타 양쪽에 누워 지켜보거나, 비올레타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초보들이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민호가 비올레타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시녀들의 몸에 손을 댔다. 가만히 내버려두기에는 시녀들 몸이 너무 예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이민호가 시녀들의 속옷을 내리는 사이 시녀들이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홍당무가 됐다. 말이 안 통하더라도 조만간 안게 될 것 같았다.
비올레타의 몸 위에서 움직이면서 시녀 둘을 잡아당겨 차례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 예쁜 모양을 한 가슴을 만지다가 입에 살짝 물었다. 처녀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자극이겠지만 둘은 귀족 여식답게 이 상황에서도 억지로 화사하게, 또는 요염하게 미소 지을 줄 알았다. 다시 둘을 비올레타의 몸을 감싸게 하니 알몸의 미녀 세 명을 동시에 안는 기분이 들었다.
끝나고 살을 맞대고 있는데 베네치아 시녀가 숨을 헐떡이면서 물었다. 옆에만 있었던 주제에 마치 이민호와 동침한 듯 지친 모습이었다.
“이제 저도 임신하게 되나요? 예쁜 아기를 낳고 싶어요.”
“응? 전하께서 안지 않았잖아. 죄송해요, 전하. 애들이 수녀원에서 오래 지내서 그쪽은 전혀 모르나 봐요.”
“이해하겠소. 비올레타가 잘 가르치시오.”
설마 이 시대 연애소설을 원본으로 읽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는 비올레타와 민영이 가르치는 것이 훨씬 실전에 적합했다. 비올레타는 품위 있게 가르쳤으나 민영이 가르친 것은 이민호가 더 좋아하더라도 귀족 영애들이 배우기에는 좀 지나쳤다.
비올레타가 잠시 목욕하러 간 사이에 이민호가 베네치아 시녀 둘을 끌어안고 본격적으로 만졌다. 침대에서는 이글거리는 눈빛만으로 충분해서 말로 하는 대화가 전혀 필요 없었다. 비올레타가 자리를 비우면서 시녀들도 조금 적극적으로 변했다.
온몸을 밀착한 채 민감한 곳을 계속 자극했더니 견디지 못한 시녀들이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뒤에서 안고 허벅지 안쪽을 앞뒤에서 공략하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비올레타가 조금만 더 늦게 돌아왔다면 최소한 한 명은 내명부 품계가 오를 뻔했다.
“저 나갔다가 다시 올까요?”
“아니오, 비올레타. 어서 오시오. 나는 이미 준비됐소.”
“어머나! 씩씩하기도 하셔라. 하룻밤에 두 번은 오랜만이네요.”
이민호는 아직 젊어서 상대가 바뀌면 하룻밤에 서너 명도 충분히 가능했다. 여러 명을 안는 게 피곤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삼, 녹용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내명부 여자들은 잘 몰랐다. 새로운 여자라면 효과가 더 컸다.
비올레타를 안다가 엎드려서 엉덩이를 높이 들게 만들었다. 시녀 둘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결국은 옆에서 똑같이 따라했다. 이민호는 다시 비올레타와 결합한 채 양 옆에 붙은 하얀 엉덩이를 만졌다. 시녀들이 부끄러운 자세로 눈을 질끈 감은 채 부들부들 떠는 게 너무 귀여웠다.
비올레타가 너무 좋아해서 베네치아 시녀들이 성을 두렵지 않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시녀들이 비올레타를 부러워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성교육이었다. 이렇게 차례로 베네치아 시녀들을 밤생활에 적응시킬 계획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발렌시아 부왕과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조문단이 출발했다. 함대도 출항시켜 갈리시아로 먼저 보냈다.
이민호는 국왕좌승함 함장과 전단장에게 지브롤터를 잘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에스파냐의 해군 함대가 기항지로 삼는 곳이었다. 해협 건너편 에스파냐 영토인 세우타도 살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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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는 마드리드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