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7 49. 1598년 =========================================================================
현대 한국에서 살 때 이민호는 국가안보를 위해 간첩은 무조건 사형시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체포된 북한 간첩들 중 일부는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심지어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는 경우도 있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우방국끼리도 간첩을 보낼 수 있으며, 서로 꾸준히 스파이 행위를 하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로버트 김 사건은 이민호가 간첩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미국의 기밀 정보를 주미 한국 대사관 무관에게 여러 차례 넘긴 로버트 김은 미국에서 수감생활을 한 다음 강제 추방당했으며, 당연하게도 한국 정부에서는 관계없다고 잡아뗐다.
강항의 경우 적대국이 아닌 우방국의 간첩이었다. 이민호가 미카와 왕명명을 통해 조선과 명나라에 심어놓은 첩자나, 가끔 정보를 받는 협조자들과 마찬가지 신분이라는 뜻이었다. 이민호도 조선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기에 강항이 체포된 일로 전혀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고산국은 우방국에 간첩을 보내 첩보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다른 우방국은 고산국에서 첩보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우길 수는 없었다.
조금 민망한 문제이긴 했으나 중요한 국가기밀을 누출시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방국이 시도하는 간첩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방법도 딱히 없었다.
문제는 간첩 행위를 시킨 조선 조정 또는 국왕이지 도구에 불과한 강항이 아니었다. 조선 조정은 강항에게 간첩 행위를 시키지 않았다고 당연히 잡아 뗄 것이므로 강항이 조선에 돌아간다면 절대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잡아떼든 말든 조선에게는 따로 빚을 받기로 했고, 꽤 비싸게 대가를 치르게 만들 예정이었다. 물론 고산국에서 우방국들에 심어놓은 간첩이 발각되면 마땅히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방국 간의 첩보전은 보통 이런 상황이기에 조선 조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간첩죄를 저지른 강항을 즉시 석방해도 상관없었다. 한국과 우방국 사이에 비슷한 스파이 사건이 발각될 경우 보통 국외 추방 정도에 그치고 서로 쉬쉬 하는 것이 관례인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다.
강항의 여종이었다가 궁녀로 들어온 여자도 선택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괜히 말단 하수인에 불과한 궁녀를 엄하게 처벌했다간 한을 품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호주에서 일을 시키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호주도 좋지만 아직 사람도 적고 단순한 일이 많으니, 북미 새순천으로 보냅시다. 예조 정랑이 벌써 몇 달째 일하고 있는데 교대해줄 사람이 없었소.”
“간첩을 도시 건설 책임자로 보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긴, 북미 개척도시의 시장 일은 중노동에 해당하니까요.”
판사들도 인정하는 중노동을 북미에 파견된 관리들이 해내고 있었다. 결국 강항에 대한 판결은 북미 남부 새순천에서 교대 없이 5년 동안 시장으로 일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아니면 5년 동안 원숭이 탄광에서 악질적인 죄수들과 함께 노동을 하는 것이라서 강항은 북미로 가는 쪽을 선택했다.
일반 관리였다면 개척지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겠지만, 간첩죄를 지은 죄수에게 내리는 형벌로서는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민호가 강항에게 권했다.
“고산국에서는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을 왕도에 남겨도 좋고, 조선으로 돌려보내도 상관없다. 그러나 다른 총독이나 시장들이 다 그러니 강 선생도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황무지에서 자그마치 5년 동안이나 일해서 죄과를 갚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고산국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조선에 보내는 것도 두렵습니다. 부디 저의 가족에게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주거지와 교육 시설은 이미 완비됐으니 이제 황무지는 아니야. 교사들도 이미 파견됐다. 몇몇 유학자들이 이주하기로 해서 서당과 서원도 세워놓았어.”
이 시대 조선의 전반적인 교육열은 그리 높지 않았다. 교육에 많은 자원이 소요되고 출신 신분에 따라 출세의 한계가 정해지므로 극히 일부 양반들만 자녀 교육을 감당할 수 있었다. 물론 조선 후기에는 딱히 과거에 응시하지 않더라도 교육받는 인원이 대폭 증가한다.
고산국에는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었으나 공무원이 딱히 좋은 직업이라 할 수 없어서 부모들의 교육열은 금방 시들해졌다. 그러나 강항은 조선을 조국으로 여기는 양반이라서 자녀 교육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렇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제가 할 일을 가르쳐주십시오.”
“남쪽에 강대국 에스파냐의 멕시코가 있고 프랑스와 영국 해적이 수시로 쳐들어오는 위험한 곳이다. 해안 방어에 중점을 두되 내륙으로 확장해야 할 것이다. 석유가 발견될 경우 저유고를 설치해 함선에 보급해주거나 주변 도시에 운송하는 임무도 있다. 새순천은 새진주와 함께 북미의 수도가 될지도 모를 곳이니 잘 키워야 한다.”
새순천은 방어에 중점을 둔 곳이라 문관 출신인 강항을 보내기로 했다. 새 도시를 건설하면서 5년 동안 발생하는 온갖 일을 해결해야 하는 시장 일은 확실히 중노동에 속했다. 강항이 고생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민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새순천은 멕시코에서 말하는 테하스, 이민호가 텍사스라고 기록한 지역의 첫 번째 도시라서 어려움이 많을 테지만, 강항 정도 인물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것으로 믿었다. 보병 1개 중대를 승마보병으로 전환한 다음 강항에게 딸려 보냈다. 이미 기병 1개 중대가 주둔 중인 새순천 주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외지인에게 워낙 호의적이라서, 해적이 침공해오지 않는다면 병력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미시시피 강 하구에 건설 중인 새진주는 주변에 체로키 족 등 호전적인 원주민 부족들이 많아서 아직도 군에 남아있는 오응태에게 시장을 맡겼다. 오응태는 기병 1개 중대, 여진기병 1천여 명과 함께 주변 지역을 떼 지어 돌아다니며 촉토 족과 동맹을 맺고 체로키 족을 압박했다.
아직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만간 체로키 족이 들고 일어날 것 같았다. 체로키 족은 스스로를 미시시피 강 주변 지역의 지배자로 여기면서 자존심이 강해, 쉽게 숙이고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이민호는 오응태에게 웬만하면 원주민들에게 잘 대해주라고 말했지만, 유능한 기병 지휘관인 오응태를 파견한 것만으로도 이미 체로키 부족들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뜻이었다.
“전하. 그래도 간첩죄는 중죄인데 저 같은 죄수에게 시장을 맡기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지요.”
“이봐! 그렇다면 탄광에 갈 거야? 사형당할 죄라고 보기에는 부족해. 이 기회에 조선에서 멀리 떨어진 북미에 정착해. 앞으로 당신 후손들에게도 좋은 일이야.”
재판이 끝난 후 고산국 예조에서 조선 예조로 강항이란 유생이 죄를 지어 멀리 유배를 보냈다고 간략히 통보했다. 이유는 없어도 조선 조정에서 알아들을 것으로 믿었다. 만약 조선에서 모른 척한다면 좀 더 수위 높은 경고를 보내기로 했다.
보름 후, 조선 국왕이 생뚱맞게 시 한 수를 써주면서 고산국에 3년 기한으로 홍삼 할당량을 1할 늘려주겠다고 제안했다. 황금 수 만 냥이 넘는 금액이라 이민호는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조선에서 놀랐는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해주었는데 도색잡지 출연료로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고산국에 간첩을 파견한 조선국의 책임은 그것으로 퉁 친 셈이었다. 국가 간 첩보활동에서 흔히 그렇듯이 간첩 활동을 하다 붙잡힌 강항만 억울하게 됐다. 궁녀도 강항을 따라서 북미로 향했다.
“미카가 고생이 많다.”
“시키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주인님.”
미카는 어느덧 기품 넘치는 부인으로 성장했다. 예전에 이민호에게 정보국을 맡으라는 지시를 처음 받았을 때는 정말 막막했었다. 그러나 노력과 연구를 거듭한 결과 이민호가 흡족한 수준으로 정보조직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아직 개국 초라서 백성들이 얼마 전까지 죄다 외국인이었어. 서너 세대가 지나기 전까지는 출신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을 거야. 일하기 난감할 텐데 앞으로 고생 좀 더 해라.”
“특히 일본 출신자들을 주시하고 있어요.”
“이미 망한 나라는 오히려 안심해도 돼. 후궁들도 어느 정도는 출신국을 위해서 일해도 좋다고 내가 허용했잖아? 용납될 수준이면 눈 감아줘.”
이민호는 오히려 출신국의 이익을 챙겨주라고 후궁들을 독려했다. 아라 공주는 해상운송 물량을 배분할 때 다른 나라보다 유구국 상선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으며, 브루나이 공주들은 가난한 조국을 위해 눈물겹도록 열심히 일했다. 다른 나라 출신 후궁들도 비슷했으나, 혜영과 혜진만은 아직도 조선을 냉랭하게 대했다.
“네.”
“답답하겠다만, 주변국과 협력을 유지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우아한 부인이 된 미카의 옆모습을 감상하고 있자면, 이민호에게 과분한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카가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아 들어보기로 했다.
“일본 혼슈 상황은 작년과 비슷해요. 이제는 서로 싸울 여력도 없을 정도로 인구가 줄어들어서 영주가 직접 밭을 일궈야 할 정도여요. 그런데 시코쿠에서는 잇키가 일어날 조짐이 있어요.”
“잇키라면 농민 반란인가?”
농민반란보다는 혼슈의 인구가 그 정도로 줄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인 정보였으나, 몇 년째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기에 이제는 이민호도 둔감해졌다. 전염병이 혼슈 밖으로 퍼지지만 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인구가 워낙 줄어들어서 이제는 전염병도 한 풀 꺾인 모양이었다.
“예. 전국시대와 달리 평화 시기에는 영지 인구를 늘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에요. 백성들이 정치에 불만을 가질 여유가 없도록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 일본 특유의 정치 이념이에요. 하지만 아슬아슬한 적정선을 유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작황에 따라 농민들이 여차 하면 굶어죽을 위기를 겪겠구나. 그럴 때마다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테고.”
“예. 농민들이 반란을 성공시키지 못하더라도 인구를 줄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요. 사실 농민들은 반란을 성공시킬 생각도 없어요.”
“쯧쯧! 그렇게 살아야 하나?”
“농민들을 가난하게 만들면서 영주들도 가난해졌기에 이제는 기근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내버려둘지, 아니면 식량지원을 할지 주인님이 결정을 내려주세요.”
토도 다카토라 등 말 잘 듣는 몇몇 영주들에게 시코쿠를 나눠줬더니 그런 식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몇 년 지나면서 보니까 시코쿠의 인구가 전쟁 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고산국에서 직접 다스리는 큐슈의 인구가 혼슈와 시코쿠를 합한 것보다 많아질 날이 멀지 않았다.
“식량을 지원해줘. 농민에게 직접 나눠주는 것보다는 영주에게 주는 게 낫겠지?”
“영주에게 주면 식량을 다 풀지 않고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겠지요. 그래야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무상 지원하는 편이 낫겠어요.”
“유상으로 지원하면 영주가 채무를 갚느라고 백성들을 조일 테고, 그럼 반드시 반란이 일어나겠지.”
그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정치를 하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일 것 같았다. 그러나 시코쿠의 영주들은 이것만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에 충고를 해줘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가 9월 13일에 서거했다는 소식이 10월 하순에 고산국에도 전해졌다. 유럽 최강국 에스파냐의 군주이며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여러 영지의 주인인 펠레페 2세는 재위 중에 평생 과로에 시달리며 말년에 시름시름 앓더니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필리핀의 구스만 총독은 국상 기간 중에도 마땅히 임지를 지켜야 하나, 본국에 들르고 싶어서 그런지 이민호에게 자꾸 와서 바람을 넣었다. 잘 나가는 우방국의 국왕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임지인 마닐라를 비우려는 그의 의도가 훤히 드러날 정도였다.
총독을 비롯해 마닐라에 거주하는 에스파냐 사람들은 국왕의 서거를 별로 슬퍼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서양에도 나름대로 장례문화가 있으니 이민호가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국상 기간에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조문단을 보냅니다. 문상을 핑계로 대규모 외교의 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렇게 큰일도 없으니 늦기 전에 국왕폐하께서 유럽을 방문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단 너무 멀고, 내가 꼭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오. 예조 판서를 대표로 하는 조문단은 늦기 전에 보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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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첫 방문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