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6 48. 북미 개척 =========================================================================
새인천에서 아침 일찍 함대가 출항했다. 출발 전에 새인천 앞바다 혹은 항구 주변 땅에 우물을 깊이 파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 관리들은 이민호의 본의와 다르게 공중보건을 위한 명령으로 알아먹었다.
현대 LA의 남쪽 해안 롱비치 지하에는 원유 30억 배럴이 매장돼 있었다. 그 남동쪽 헌팅턴 비치에는 1921년 생산을 시작해 80년 동안 캐고도 370억 달러 어치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남아 있었다.
이민호는 LA 주위에 유전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유전의 정확한 위치와 매장량을 몰랐다. 나중에 북미 개척이 일단락되고 여유가 생기면 새인천 일대에서 유전 탐사를 하기로 했다. 민영에게 말했더니 믿지 않았다.
“도시 밑에 원유가 매장돼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북미에서는 아무데서나 원유가 나오는 모양이군요.”
“뭐, 그럼 좀 어때. 사막 밑에서도 나오고 바다 밑에서도 나오는데.”
“정말이에요? 그럼 위험한 곳에 새인천을 건설한 셈이잖아요.”
“땅 속 깊이 묻혀 있으면 상관없을 거야.”
배사구조에서 단단한 덮개암 아래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으니 그 위에 도시가 건설되더라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현대 LA에 지진이 그렇게 자주 났어도 지하에 매장된 천연가스가 폭발해 도시가 화재에 휩싸인 일도 없었다.
그러나 새인천 남쪽 해변을 관광지로 만드는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모래사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일광욕하는데 거대한 채굴기가 시야에 들어오면 시커먼 기름이 바다에 둥둥 떠서 흐를 것 같아 기분 잡치기 쉬웠다. 사실 이민호가 새인천이 아니라 새목포에 주로 머무르려고 계획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 출발 전에 혜영님이 저한테 말씀하셨는데요.”
“뭘?”
이민호는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민호가 예상한 최악의 발언이 민영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
“북미에서 유전을 발견하면 왕립이나 주인님 개인 재산으로 하지 말고 처음부터 국영자산에 포함시키래요.”
“북미 전체가 내 개인 소유 땅인데 왜?”
“백성들이 살 영토잖아요. 그럼 국영으로 하는 게 맞대요. 개발비는 보전해주겠대요.”
이민호가 낙담해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혜영은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알았다.
“대신 아부다비 유전과 앞으로 고산국 영토 외에서 발견될 자원은 주인님 개인 소유로 해주겠대요. 고산국 영토 안에서 난 지하자원만 국영기업으로 넘기래요.”
“아부다비만 내 것이라고? 휴우! 북미를 갖고 독립해버릴까 보다.”
그 동안 아부다비 섬 곳곳에 꾸준히 시추공을 꽂은 결과 민물이 가득한 지하 샘과 유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석유 정제소를 건설하는 동시에 관개시설을 만들어 작은 농경지를 조성했다.
주변이 온통 사막이고 푸른색이라곤 맹그로브 숲밖에 없던 곳에 갑자기 자그마한 오아시스와 아담한 밭이 생겼다. 이 정도면 주변 부족이나 오만에서 크게 욕심내지 않을 크기였다. 그리고 고산국이 인도양에 함대를 보내고 있기에 감히 욕심을 낼만한 용기를 가진 세력도 없었다.
“아부다비 유전이 작아서 실망하셨어요?”
“아니야. 두고 봐. 인도양에 들어온 고산국 배들에게 비싸게 팔 거야. 흥!”
이민호가 삐진 척하고 민영이 달랬다. 그러나 아부다비에 매장된 석유만으로도 엄청났다. 그리고 지금은 아부다비에 그치고 있으나 바다 건너 카타르에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므로 그곳도 차지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이상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이민호가 함교로 향했다. 전단장과 함장, 항법사들이 해도대 주위에서 귀환로를 협의하고 있었다. 늘 하던 대로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북적도 해류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항로를 잡으려 했다.
“전단장! 돌아가는 길에 탐사대를 도와주는 게 어떻겠소? 해도를 보니 아직 탐사대가 확인하지 못한 해역이 꽤 되는 것 같소. 우리가 적당히 남서쪽으로 항해해서 북태평양 해로 중간에 섬이 있는지 확인합시다.”
“전하! 아니 되올 말씀입니다. 이 배는 행궁이나 다름없는 국왕좌승함입니다. 전하께 자그마한 위험이라도 생기면 안 됩니다.”
전단장의 말이 옳긴 한데. 이민호는 이 기회에 하와이나 미드웨이 섬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불가하다는 전단장과 전단 참모들을 간신히 설득해 항로를 남서쪽으로 틀었다.
순양함 여섯 척이 각각 20km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밤에는 멀리 수평선 위에 불빛이 깜빡깜빡했다.
새인천에서 출항한 다음 사흘 후 밤에 커다란 섬을 발견했다. 수평선 위에 시커먼 그늘이 있고 그 중간에 시뻘건 불빛이 주변을 밝혀서 멀리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섬을 발견한 다음 분산됐던 함대를 국왕좌승함으로 불러 모았다.
해가 뜬 이후에 섬 주위를 돌면서 확인해보니 동서, 남북으로 각각 100km나 되는 큰 섬이었다.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큰 섬, 하와이 섬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원주민들이 마우나케아라고 부르는 거대한 산이 인상적이었다.
“높은 산에 흰 것은 구름인가요? 이 더운 곳에 설마 눈이 쌓인 것은 아니겠죠?”
“아니. 눈이야. 남쪽에는 활화산이 있어.”
이민호가 가리킨 곳은 킬라우에아 화산 정상의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였지만 지금은 이름도 몰랐다. 활화산이라 해도 화산이 폭발하거나 용암이 대량으로 분출하는 정도는 아니었고, 평소에는 분화구에서 연기가 뭉클뭉클 하늘로 치솟는 정도였다.
근처에서 시뻘건 용암이 가늘게 바다를 향해 흘러내렸다. 바다에 도착한 용암이 덩어리가 되어 바다에 떨어질 때마다 하얀 수증기가 피어났다.
원주민이 거주하는지 살피면서 이동하다가 섬 동쪽 야자나무 숲 사이에서 커다란 마을을 발견했다. 단정을 내려 수심을 재면서 함대 전체가 조심스럽게 해안에 접근했다.
“원주민들이 배를 타고 몰려나옵니다.”
“교역하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확인하시오.”
이민호도 망원경으로 원주민들이 타고 오는 배를 살폈다. 남자들은 마치 마오리 족 전사들처럼 체구가 크고 굵은 팔다리에 근육이 드러나지 않는 몸매였다. 얼굴에 문신을 잔뜩 새겨서 조금 살벌해 보였다.
“남자들이 모두 무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전하. 하오나 돌창, 돌도끼 수준입니다.”
“단정을 모두 회수하시오.”
출동하기 전에 미리 단정 12척을 회수하고 병사들을 순양함에 태웠다. 단정 12척만으로도 원주민의 배 30척 정도는 충분히 몰살시키고도 남겠지만 싸우자고 이 섬에 온 것은 아니었다.
“적이 공격합니다! 반격해야 합니까?”
“반격했다가 희생자가 생기면 앞으로 어떻게 저들을 달래야 하겠소? 퇴각하시오.”
“그렇군요. 원주민들이 숲에서 저항한다면 생각만 해도 피곤합니다.”
함대가 물러서자 꽁무니 뺀다고 확신한 원주민들이 신이 나서 환성을 질렀다. 이민호는 다음에 시간이 나면 천천히 원주민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고산국 함대가 원주민들에게 약한 상대로 인식된 채로 놔두는 것도 곤란했다.
“짜증나니까 바닷가 바위에 5인치 함포 한 발 발사하시오.”
“단발에 그치면 원주민들이 벼락같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전체 함대에 순차적인 포격 지령을 내리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소.”
잠시 후 순양함 여섯 척에서 5인치 함포가 발사됐다. 포탄 12발이 차례로 날아가 커다란 바위 하나를 통째로 부쉈고, 나중에는 아주 가루로 만들었다.
굉음과 포연에 놀라고 바위가 부서지는 것을 확인한 원주민들이 난리를 치면서 해변으로 도망갔다. 원주민들이 함대를 향해 뭐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우리를 펠레 뭐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전하.”
“펠레가 무슨 뜻이요?”
“원주민 말이라 모르겠습니다.”
이민호에게 언뜻 든 생각은 브라질 축구선수 펠레였지만 이 시대에 하와이 원주민들이 축구선수 펠레를 알 이유가 없었다. 펠레는 하와이 섬 원주민 신화에서 킬라우에아 산의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 산다는 불의 여신 이름이었다. 펠레의 법칙을 연상한 이민호는 괜히 기분이 나빴지만 원주민들은 불의 여신들의 자식들이 왔다고 놀라 달아난 것뿐이었다.
18세기 말에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침 원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어서 원주민들은 쿡 선장을 신으로 여겼다. 에스파냐에 의해 아스텍이 멸망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쿡 선장이 다시 하와이 섬 서해안에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쿡 선장 일행이 신이 아닌 것을 알아챈 원주민들이 공격해 쿡 선장과 선원들을 죽였다.
함대는 섬들을 따라 이동했다. 섬 사이의 간격이 수십 km씩 돼서 수평선을 넘어야 새로운 섬이 보이곤 했다.
그러나 섬에 접근할 때마다 섬에 사는 원주민들이 별로 환영하는 것 같지 않아 계속 북서쪽으로 항해했다. 아직 하와이 제도가 하와이 왕국으로 통일되지 않을 때라서 배를 타고 온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이 더 심한 것 같았다.
“백사장이 섬 곳곳에 있는데 특히 남쪽 해변이 아주 좋습니다.”
꽤 큰 섬에 도착하고 나서 단정을 타고 섬을 조금 둘러본 해병 대위가 감상을 말했다. 이곳이 오아후 섬이 맞는다면 섬 남쪽 해변은 와이키키였다.
바닷가에 아주 작은 마을이 있는데 원주민들은 처음 보는 거대한 배 여러 척이 몰려오자 저항을 포기한 듯했다. 마을 입구에는 장승처럼 기다란 나무를 세우고 사람 모습을 조각해놓았다.
함대에서 다시 단정을 내보내 수심을 재며 해변 가까이에 정박했다. 원주민 마을 앞에 작은 배 몇 척이 백사장에 놓여 있었으나 사람은 없었다. 통나무 안쪽을 파낸 카약 비슷하면서도 옆에 통나무를 나무로 이은 아웃리거가 달려 균형을 잡아주는 배였다.
그 사이 원주민들이 호기심을 품으며 다가왔다. 이민호도 단정에 타고 조심스럽게 원주민들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두려워해서 이민호가 다가갈 때마다 몇 걸음씩 물러섰다. 하와이에 가면 반라의 원주민 미녀가 목에 걸어준다는 화환을 못 받은 이민호는 몹시 섭섭했다. 머리에 화관을 쓴 건강 미녀가 엉덩이를 과장되게 흔드는 훌라춤을 구경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아로하!”
통역장교가 새섬의 마오리 족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에게 마오리 어로 인사를 보냈다. 겁에 질려있던 원주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아서 이민호가 발음을 고쳐주었다.
“알로하!”
“하올리, 알로하!”
말이 통해서 원주민들이 몹시 기뻐하는 것 같았지만 이민호가 아는 유일한 하와이 어가 알로하였다. 하올리는 이방인이라는 뜻이지만 당연히 못 알아들었다.
“뭔가 교역을 하고 싶은데 아열대 지방이라 먹을 것을 줄 필요는 없겠지.”
아직 상대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대뜸 철제 무기부터 주기는 어려웠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창과 활로 무장하지 않고 맨손이나 몽둥이로만 싸울 수도 있기 때문에 쇠창날이나 칼을 주기 꺼려졌다.
그래서 건넨 것이 괭이였다. 모래땅을 괭이로 파는 시범을 보인 다음 주니까 원주민 전사들이 아주 좋아했다.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돌창이나 돌도끼와 살상력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여자들에게는 바늘과 실을 주었다. 뼈바늘과 식물 섬유로 꼰 실을 사용하던 여자들은 쇠바늘과 실의 용도를 금방 이해했다.
“새섬 원주민들처럼 체구가 큽니다.”
“여자도 큼직큼직해서 좋군. 노란색을 너무 좋아하네.”
대화를 하려 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고, 원주민들이 괭이와 바늘의 대가인지 해산물을 좀 주었다. 그 사이 해병들이 주변을 수색했다.
“물이 솟아나옵니다. 민물입니다!”
“오오!”
이민호와 병사들이 바다에서 솟는 물을 떠서 물맛을 봤다. 바닷물과 뒤섞이기 전의 민물이라 아주 시원하고 달았다.
와이키키는 용솟음치는 물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바닷가에서 솟는 깨끗한 용천수를 퍼서 수질을 검사해본 다음 수조에 보관된 물을 모두 바꿔 실었다.
이곳은 민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니 태평양 항로의 중간기착지로 사용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함교에 돌아가서 전단장과 대화를 나눠보니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곳은 대체로 북동풍이 계속해서 붑니다. 이 섬이 무역풍 지역에 포함된다면 굳이 적도까지 내려갈 필요 없이 이곳을 중간 기착지로 쓸 만하겠습니다.”
“모래사장에 항구를 건설할 수는 없소. 적당한 만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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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