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65화 (414/1,000)

00465  48. 북미 개척  =========================================================================

모피 거래를 마치고 파나마 운하를 넘은 함대는 새목포에 도착했다. 마침 새로 수송선단이 도착해서 건축자재를 하역하고 있었다. 주로 철근과 시멘트였는데 둘 다 북미에서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데도 아직 생산하지 못하는 품목이었다.

현재 광부들이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주변 산을 뒤지는 중이었다. 석회석은 금방 구할 수 있겠지만 석탄과 철광산이 동시에 나오는 곳은 찾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국왕전하.”

“별궁까지 잘 부탁하네.”

“귀한 분이시니 조심스레 모시겠습니다. 마차가 느리게 움직이더라도 양해해주십시오.”

이민호는 마부석에 앉은 원주민과 인사를 하며 마차에 올라탔다. 북미 원주민들이 시청에 고용돼 일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됐지만 원주민들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터득한 새목포 관리들을 칭찬해주었다.

“겨우 몇 달 만에 조선말이 저렇게 는 것은 아니겠지요?”

“윤당합니다, 전하. 원주민 마부가 필요한 문장을 외운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원주민들이 조선말을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하고, 시청에서 매일 두 시간씩 조선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근무시간 중에 가르칩니다.”

교육은 근무의 연장이었다. 근무를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인데, 근무 시간이 끝나고 무보수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관리들을 이해시키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근무시간 끝나고 관리들에게 원주민 언어를 두 시간씩 무보수로 교육시킨 다음에야 절절하게 이해를 하게 되었다.

다음 날 새인천에 도착했다. 새인천 북쪽 황무지에서 원유가 쏟아진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직 정제하지 않은 원유를 항구의 저유고에 가득 채워 놓았다. 브루나이에서 새인천이나 새목포를 왕복하는 유조선들을 앞으로 곡물과 건축자재 운반에 투입할 수 있게 돼서 운송 분야에서 숨통이 확 트일 전망이었다.

이민호는 새인천의 건설 현황을 점검했다. 도로가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게 확장되고 구획마다 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원주민들 학교에서는 원주민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놀았다.

아이들이 노느라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해서 아이들을 인질로 붙잡으려는 음모의 일환으로 학교 교육을 원주민들이 의심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러나 원주민들에게 농경지를 배분하지 않은 현재, 원주민에게 교육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었다. 부모들이 일해야 하는 낮 시간에 아이들을 맡아줄 곳이 학교라서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모피거래 대금으로 받아 금으로 교환하고 남은 은 대부분을 새인천 확장 자금으로 쓰라고 국립은행 새인천 지점에 입고했다. 주변 원주민들을 포섭하는 데는 철제 농기구와 무기, 곡식이 큰 힘을 발휘하므로 좀 더 활발하게 확장을 하도록 했다.

은행 직원들이 은이 가득 든 상자를 손수레로 옮기는 가운데 무장경비원들이 총을 들고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그런데 국립은행 무장경비원은 현역 군인들이었다. 당연히 은행 경비 업무를 민간에 넘겨야 하나, 나중에 시간이 흘러 퇴역 군인들이 청원경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민호가 시간을 끌고 있었다. 청원경찰을 일반 수위나 경비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사법경찰권 일부를 위임받은 직종이었다.

- 우르릉~

“이게 뭐야?”

진동과 굉음에 놀란 이민호가 하마터면 은행 복도 바닥에 엎드릴 뻔했다. 하필 은 상자를 은행 지하 금고에 옮기는 중에 지진이 났다.

그러나 은행 직원들은 흔히 겪은 일인 듯 놀라지도 않았다. 새인천에서는 거의 일본 수준으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았다.

“전하께서 명하신 대로 새인천 앞바다 섬들을 탐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네. 어서 보고하게.”

북미 동해안이나 서해안이나 섬이 거의 없는데 유독 새인천 앞바다에 크고 작은 섬이 여덟 개나 있었다. 이민호가 에스파냐 탐험대가 북상하기 전에 서둘러 북미 대륙을 매입하게 만든 동물이 그 섬에 살고 있었다. 바쁜 태평양 탐사대 일부를 섬 탐사에 일부러 동원한 이유였다.

“무인도가 셋, 유인도가 다섯입니다. 몇몇 섬에 가마우지 깃털 옷을 입은 원주민이 살고 섬 주위에 해달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옛날부터 통바 족과 교통을 하고 있었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릴 알아보고 우호적으로 접근해왔습니다.”

“시킨 대로 했겠지?”

“물론입니다. 통바 족 원주민들을 데려가서 섬 주민들에게 고구마 농사를 가르쳤습니다. 칼과 도끼, 곡식과 고기를 나눠주면서 인구를 세었습니다. 가장 먼 섬에 310명, 다른 섬에도 몇 백 명씩 살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알래스카와 알류산 열도의 해달을 몰살시킨 러시아 모피 회사 직원들이 배를 타고 와서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곳이 성 니콜라스 섬이었다. 섬 원주민 최후의 생존자이며 ‘성 니콜라스 섬의 외톨이 여자’로 알려진 후아나 마리아가 살던 곳이기도 했다. 그 여자는 산타 바브라에 옮겨진지 7주 만에 죽었다.

“해달은 많아?”

“아이누 섬의 해달과 조금 다른 모양이지만 거의 같은 해달입니다. 섬마다 몇 백 마리씩 살고 있습니다.”

탐사대장이 갈색이 많이 들어간 해달 모피를 이민호에게 바쳤다. 원주민이 잡은 것이라 발가락까지 다 달렸다.

캘리포니아 해달이 더운 곳에 산다 해도 아직 종이 구분될 정도는 아니고 아종 정도 차이였다. 크기가 약간 작고 머리가 좁고 주둥이가 조금 더 길게 나온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모피 품질은 따뜻한 물에 사는 동물치고는 의외로 썩 괜찮았다.

그러나 이민호는 캘리포니아 해달을 잡아서 팔 생각은 없었다. 해달 모피를 매년 천 마리에서 2천 마리 정도만 유럽에 공급해야 높은 가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북경에서도 해달 모피 가격이 하늘을 모르고 치솟았다.

“배가 접안할 만한 곳에 영토표지판과 상륙금지 경고판을 세웠습니다. 고산국 해군의 강대함을 안다면 외국 배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섬에 등대를 세우는 편이 좋겠습니다.”

“등대? 등대가 있으면 좋지만 등대지기 입장에서는 완전히 격오지 근무겠어. 그래도 영토를 지키는 중요한 일이니 등대지기를 안 보낼 수는 없지. 정기적으로 섬에 순찰도 해야겠고. 원주민들이 해달을 잡지 않는 조건으로 다른 가죽을 제공하는 편이 좋겠어.”

원주민이나 해달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새인천을 지키는 일이었다. 만 안쪽으로 들어간 새 나하와 달리 새인천은 개방된 해안이라 방어에 불리한 면이 있는데, 설상가상 적이 섬을 점령할 경우 새인천 전체가 봉쇄될 우려가 있었다.

“전하! 원주민에게 등대지기를 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월봉 외에 매달 섬에 곡식과 고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젊은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원주민들은 앞으로도 고향 섬에서 계속 살고 싶을 겁니다. 원주민들에게 등대지기라는 안정된 직장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것도 좋지. 우리는 곡식과 고기 약간으로 새인천 외곽에 섬 방어선을 건설하는 거나 다름없어. 유지비가 아주 싸게 먹히는 요새가 되겠군. 거의 비무장이지만 말이야.”

탐사대장과 협의한 내용이 어명이 되어 새인천 시청에 전달됐다. 시청 관리들은 도시를 건설하느라 바빴지만 중요한 도시 방어 겸 해상교통 안전 문제이므로 빠른 시일 내에 섬들에 등대를 세우기로 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섬도 해안선에서 거리가 50km나 떨어져서 섬의 등대 불빛이 해안선에서 안 보인다는 문제가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봉화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결국 새인천에 해안경비대가 창설된 이후 매주 섬을 순찰하기로 했다.

“폐하! 통바 족과 추마시 족, 아파치 족과 나바호 족 등 원주민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건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시오.”

선교사들 중에 꽤나 고지식한 수도사가 알현을 신청했다. 이민호는 걱정하면서 수도사가 할 말을 기다렸다.

“학교에서 원주민들의 언어 교육을 원주민 교사가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원시적인 언어는 그들이 하는 야만적인 우상숭배처럼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고산국 어를 더 배우게 하거나, 하다못해 라틴어라도 배우게 하는 편이 훨씬 유용합니다.”

“교육이 아직 초급 수준인데 무슨 라틴어를 가르치겠다는 것이오? 공용어로 고산국 말, 자국어로 각기 부족 언어를 배우면 족하오.”

이민호는 원주민들의 부족 언어를 사멸시킬 생각이 절대 없었다. 괜히 국민통합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고유어를 말살시키면 나중에 야만적인 정책이라면서 온갖 욕을 들어먹기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 생태학적 다양성처럼 언어적 다양성도 인류의 삶을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그렇다면 중학교 고학년 수준에서 원주민들이 라틴어를 배우게 해주십시오.”

“차라리 아이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게 낫지 않겠소? 수도사들이 가르치면 선교에도 도움이 될 것이오.”

“그것도 좋습니다만, 라틴어를 배워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어휴! 선교사는 차라리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히브리어와 아람어, 라틴어와 그리스어까지 다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시오. 선교사처럼 높은 학식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배우면 될 것이오. 아이들을 일단 놀게 하시오. 학교에서는 공부가 아니라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오.”

이민호는 또래집단에서 함께 놀면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사회화하고, 미래에 개인 생활을 국가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와 같은 선상에 놓게 만들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삶이 즐거워야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생긴다. 강요하고 윽박지르면서 쥐어짠다고 해서 백성들이 애국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원주민은 원래 고산국 백성도 아니었다. 고산국 아이들도 노는 것이 우선인데, 지금까지 훨씬 더 자유로웠을 원주민 아이들을 공부에 찌들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었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고산국 학생들의 수업성취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편입니다. 공부 안 하는 애들은 정말 안 합니다. 어린 애들은 회초리로 때려야 어른의 말을 듣는 법입니다. 아니면 애들을 망칩니다.”

“망쳐도 상관없소.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하게 하시오. 학생들이 대학에서 실컷 공부할 수 있도록 도서관과 장학금 등 여건은 마련해주었소.”

현재 새인천과 새강릉 등 북미에서 도시가 세워지는 곳마다 학교를 동시에 건설 중이었다. 대학과 기숙사, 도서관도 함께 세웠다. 교수와 강의실은 그 다음 순위였다.

멕시코 부왕령에서 머나먼 고산국 본토나 마카오보다는 새인천으로 오겠다는 에스파냐 학생들이 꽤 있었다. 유학생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우수한 학생을 대학에 보내야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이 높아집니다. 대학을 운영하는데 엄청난 재정이 소모되지 않습니까? 멍청이들을 일찍 걸러내서 천한 일을 시키고 천재만 공부시키는 것이 전통적이며 합리적인 교육제도입니다.”

“천재든 멍청이든 공부하고 싶은 놈들만 공부하게 하시오. 공부 안 하는 아이들도 나중에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이오. 고산국에서 돈 벌려면 학자보다 차라리 농민이 훨씬 나을 것이오.”

“으으! 에스파냐에 대한 모욕입니다!”

이민호가 에스파냐 사람들 전체를 가난뱅이라고 모욕한 것으로 착각한 선교사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민호가 고산국 국왕이 아니었다면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몰아 화형이라도 시킬 기세였다.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이 시대에 유럽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는 십일조를 원주민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산품을 교회에 자의로 헌납하는 것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을 직조 등의 강제 노역에 동원하기도 했다. 종교 차원을 떠나 사실상의 영지 요역이었다. 멕시코 원주민이 로마 교황청에 그림 수십 장을 그려 제출한 고발장에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을 학대하고 착취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통바 족이 항상 유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에스파냐가 북미 남서부에 진출했을 때 종교적 포교단인 미션을 설립해 이 미션을 이어나가는 식으로 차츰 확장했다. 초기에는 미션에 순응했던 통바 족이 여추장 토이푸리나가 일으킨 반란에 대거 가담한 것은 수도사가 원주민들에게 전통 춤을 추지 못하도록 해서 불만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지역 고유의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없으면 문제를 일으키기 쉬웠다.

이민호는 아무래도 새인천에 이슬람 모스크를 지어서라도 기독교를 견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럽에서 신교도들이 이민 올 날이 기다려졌다. 개신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서로 견제시키기 위해서였다. 특정 종교가 독점하는 사회는 폐단이 일어나기도 쉬웠다.

현재 개혁적인 교황 클레멘스 8세가 타 종교를 포용하고 프랑스에서 신교도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위그노 전쟁을 끝내는 분위기에 일조할 정도로 외교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예수회는 여러 문화권의 관습을 존중해주는 편이어서 심지어 동양권의 제사도 전통문화로 인정할 정도였다. 중국어에 능통한 마테오리치는 현재 남경에서 선교 중이며, 고관대작이나 사대부들에게 천문학과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민호도 선교사들이 하는 일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준 적도 많았다. 그러나 신대륙에서 활동하는 선교단이 전통 문화에 관대한 예수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 성직자 일부는 귀족의 차남 이하 출신인 경우도 흔해서 마치 중세 유럽의 보수적인 교단을 보는 듯했다.

“북미 대륙 전체가 고산국 영토잖아요. 북미를 고산국 본토처럼 아시아 대교구에 포함시켜달라고 교황 성하께 청원하면 어때요?”

“응? 그거 참 묘안이네.”

민영이 낸 제안이 무척 마음에 들어 그 문제를 청원하기 위해 교황청에 대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더불어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을 보낼 때 이탈리아 여러 도시국가들과 지중해 상황도 파악하기로 했다.

“왜요? 주인님이 직접 가고 싶어요?”

“그럴 수야 있나.”

“가고 싶으시구나. 훗!”

이민호가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혜영에게 머리칼을 쥐어뜯기고 싶지는 않았다. 한때는 내정과 외정을 나눠 맡아서 이민호가 밖으로 싸돌아다녀도 괜찮았다. 그때는 이민호도 자유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가 커지면서 혜영 혼자서 내정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늦기 전에 왕도로 돌아가야 했다.

============================ 작품 후기 ============================

다음 회에 출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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