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4 48. 북미 개척 =========================================================================
순양함 한 척을 쿠바 아바나에 보내 거기서 대기하고 있는 수송선 한 척을 불러오게 했다. 이민호가 북미 동부에 가 있는 동안 북미 서해안과 고산국에서 보낸 갖가지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카랑카와 족과 다시 접촉했을 때 비록 손짓 발짓이었지만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 물론 원주민들은 이민호와 고산국 군인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주려고 안달했다. 배를 타고 왔다고 해서 무조건 굶주린 것은 아닌데, 부족의 오랜 전승으로 인해 고정된 편견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민호도 충분히 준비해서 갔다. 쌀과 밀가루 몇 가마, 말린 대구와 염장한 청어 몇 두릅, 곶감 두 접 200개를 선물로 넘겼다. 이민호가 턱을 치켜들고 자랑스레 서 있자 원주민들이 이민호를 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이 인간들이 왜 또 울고 지랄이야?”
“거지가 출세해서 은혜를 갚은 게 안쓰러운가 봐요.”
민영이 예상한 것이 맞았는지 원주민들은 선물 중에서 하나씩만 갖고 나머지는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식량을 이쪽으로 넘겼다.
“이 부족하고는 교역하기가 참 힘들겠다.”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불을 피웠다. 그리고 물고기를 구워서 원주민들하고 같이 나눠 먹었다. 이민호가 직접 대구나 청어를 구워서 건네자 원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서 먹었다. 그러나 이민호와 고산국 군인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은 여전했다.
이민호는 이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카랑카와 족은 숲과 바닷가를 오가는 수렵채집민이라 농토가 필요하지 않을 테니 휴스턴에 마음껏 도시를 만들고 농토를 넓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의 영역을 인정해줘야 분란이 생기지 않는다. 농지가 개간되면 생산한 식량 일부를 카랑카와 족에게도 나눠주기로 했다.
장기적 목표는 수렵채집민인 카랑카와 부족을 농민이나 어민으로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이 옆에서 계속 도시의 성장을 지켜볼 테니 어느 쪽이 부족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잘 판단할 것으로 믿었다.
- 탕! 타탕!
그 사이 늪으로 간 해병들이 총질을 여러 번 한 다음 4미터쯤 되는 큰 악어를 잡아왔다. 악어가죽이 두꺼워서 몸에 맞아서는 잘 안 뚫리거나, 금방 안 죽는 경우가 생겼다. 머리뼈도 꽤나 단단해서 기병총으로는 관통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악어, 선물이다.”
카랑카와 족 남자들이 악어를 보고 몹시 좋아했다. 몸에 바르는 기름을 악어에서 구하는데 돌화살촉 활과 돌창으로는 이렇게 큰 악어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해병이 악어 배를 가르고 가죽을 분리시켰다. 호주 장영실 항 거주지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다악어를 잡아본 해병이라 칼질이 날렵했다. 배 중심의 선을 따라 쭉 긋자 가죽이 쉽게 분리됐다.
카랑카와 족의 시선은 악어가 아니라 해병이 가진 칼에 온통 쏠렸다. 원주민들 앞에서 악어를 해체한 보람이 있었다.
“칼 나눠줄까?”
이민호가 칼을 내밀자 카랑카와 전사들이 일제히 손을 뻗었다. 이민호는 칼집에서 칼을 빼서 악어 고기를 자르다가, 천으로 칼날을 닦은 다음 다시 칼집에 넣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숫돌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전해주기로 했다.
“받아. 너도!”
이민호가 일일이 원주민들마다 칼을 나눠주었다. 원주민들이 칼날에 얼굴을 비쳐보며 신기해했다. 이들도 이제 철기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악어 고기를 굽는 중에 이민호가 슬쩍 일어났다. 닭고기 맛이 난다고 알고 있었지만, 진짜로 악어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민호는 흡족한 표정으로 국왕좌승함에 돌아왔다. 휴스턴을 남부 텍사스의 중심지로 결정했다. 그러나 내륙 깊숙한 지역들과 교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시시피 강 하구에 항구 도시를 하나 더 만들어야 했다. 두 도시가 서로 협력하면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농업 생산량이나 교통은 미시시피 강 하구가 더 낫겠지만 살기에는 이곳이 좀 더 쾌적했다. 거주하는 원주민들도 체로키나 촉토 족보다는 카랑카와 족이 훨씬 인간적이었다.
“이름을 뭘로 정하지? 에이, 몰라. 여긴 새순천, 미시시피 강 하구에 세울 도시는 새진주다.”
“휴우~”
함교에서 일하던 모든 승조원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이민호도 승조원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순천은 당시 도호부로서, 전라좌수영이 소재한 항구 도시인 여수는 순천부에 속한 면에 불과했고 이미 호주에 새여수 이름을 써먹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진주는 목으로서 경상우도의 지방거점 도시였으니 미시시피 강 하구 도시 이름에 잘 어울렸다. 앞으로 미시시피 강을 따라 세워질 모든 도시와 마을들이 새진주와 연결될 것이다.
“촌스러운 것은 나도 알아. 한숨짓지 마.”
뉴, 네오, 니우나 누벨이 붙은 지명은 괜찮고 ‘새’가 붙은 지명은 촌스럽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미국도 개척 초기 지명에 대부분 뉴가 붙었다. 뉴는 안 붙었지만 런던, 베를린, 파리 등등도 다 미국에 있는 작은 도시 이름이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지명이 조선 지명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있으니 새 지명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으면 장땡이었다.
이민호가 함교 요원들을 살펴보니 장교가 아닌 수병들은 대부분 반바지를 입었다. 12월 겨울인데도 이곳이 아열대 지방이라 남자들의 털 난 종아리와 허벅지를 봐야 해서 눈이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자들로 이뤄진 호위들은 긴 바지를 입었다. 신분이 높아서 맨살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여자들은 비키니를 입고 남자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순양함에서 근무하면 좋겠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음 날 카랑카와 부족민들에게 땅콩과 수수, 고구마 재배법을 가르쳤다. 그물을 주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도 가르쳤다. 농작물은 몇 달 뒤에 수확해봐야 알겠지만 물고기는 눈앞에 보이는 식량이라 부족민들이 몹시 기뻐했다.
“이렇게 물고기의 배를 갈라서 창자를 버려. 개한테 줘도 되겠지. 그리고 두 개로 나눠서 펼친 다음 햇볕에 말리는 거야. 그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
원주민들이 제대로 이해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민호를 따라서 칼로 생선 배를 따서 햇볕에 말렸다. 항상 이동해야 하는 수렵채취 부족이라 제대로 생선을 말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수렵채집 부족에게 소금은 별로 필요하지 않아 주지 않았다. 필요하면 알아서 구할 것으로 믿었다.
바닷가는 평화로웠다. 부족민들이 여름에는 시원한 숲에 들어가서 살고, 겨울에는 바닷가에 나와서 산다고 했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아열대 기후라서 이민호는 구별하지 못했다.
카랑카와 부족들이 이민호를 부족 사람으로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여자와 아이들이 이민호나 해병들 주변에 가까이 접근해도 전사들이 뭐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이들의 생활을 조금 더 밀착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카랑카와 부족 남자들 일부가 여자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도 남자 옷과 여자 옷의 중간 정도로 입고, 가정생활이나 종교의식뿐만 아니라 성생활에서도 여자 역할을 맡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인천의 추마시와 통바 부족은 물론, 다른 대부분의 북미 원주민 부족에도 이런 ‘두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부족에 따라 다르지만 각자 부족에서 특별한 역할, 즉 치료사나 약초사, 구전으로 전달되는 전통과 노래의 전승자, 예언자, 작명가,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제구의 제작을 맡았다. 유럽 켈트 족의 드루이드와 약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카랑카와 원주민들과 놀고 있는데 아바나에서 출발한 수송선과 순양함이 도착했다. 카랑카와 원주민들이 또 울면서 식량을 가져와서 수송선 선원들에게 나눠줬다. 선원들이 어리둥절 하는 꼴을 보면서 이민호가 웃었다.
이제 떠날 때가 돼서 원주민들과 작별을 나눴다. 고산국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카랑카와 원주민들이 가는 길에 먹으라고 식량을 잔뜩 싸줬다. 원주민들이 굶어 죽지야 않겠지만 혹시나 걱정돼서 모든 배에서 쌀과 고기를 내서 원주민들에게 주고 출항했다.
단정을 타고 국왕좌승함에 오른 사람은 새인천에서 유전 시추를 한 기술자였다. 기술자는 이민호에게 유전에서 성공적으로 채굴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새인천 북쪽에서 얼마나 채굴할 수 있소?”
“하루에 10만 리터까지 뽑아봤습니다만, 원유가 그 이상 산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 많이 뽑을 필요가 없어 현재는 매일 5천 리터만 뽑고 있습니다. 분별 증류할 정제소는 아직 제작 중입니다.”
최소한 태평양 방면에서는 석유를 얼마든지 쓸 수 있게 됐다. 억지로 수력발전소를 세울 계곡을 찾지 않더라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잘 됐다.
“아주 잘 됐소. 시추 장비는 가지고 왔소?”
“예, 전하. 하오나 현재 장비로는 지하 500미터까지밖에 못 뚫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오. 암반이 나온다고 포기하지 말고, 바로 그 암반 아래까지 뚫으시오.”
이민호는 유전 탐사단과 함께 함대를 끌고 동쪽으로 향했다. 새순천에 도착하기 직전에 살짝 들여다봤던 곳이었다. 좁은 강을 지나자 길이 15km, 폭이 5km가 넘는 커다란 호수가 나왔다.
이민호는 유전 탐사단에게 이 근처 강변 땅에서 원유 시추를 하도록 했다. 카랑카와 원주민들은 믿을 만하지만 지상에 숙박시설이 없어서 유전 탐사단이 수송선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원래 역사에서는 휴스턴 동쪽 보몬트에서 1901년에 세계적인 유전을 발견했다. 지표면에서 겨우 130미터를 뚫고 들어가 발견한 유전이 한때 전 세계 원유 산출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전에 북미 북동부, 특히 펜실바니아 타이터스빌에서 거의 독점하던 석유 시장이 텍사스로 옮아온 이유가 됐다.
그러나 고산국 유전 탐사단이 보몬트의 스핀들탑 유전처럼 쉽게 발견해낼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이 가면 결국 발견해낼 것으로 믿었다. 유전 탐사단이 장비를 조립한 다음 본격적으로 시추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함대가 출항했다.
“이렇게 떠나서 좀 그렇다.”
“잘 해낼 거여요. 걱정 마세요.”
걱정하는 이민호를 민영이 달래주었다. 영토 순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두 사람이 항상 나눠서 하던 역할이었다.
함대는 파나마 운하로 가기 전에 쿠바로 향했다. 미국 동부, 대서양에 순양함 여섯 척과 전선 3척을 남겨두었으니 해군력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프랑스나 영국 해적이 해군과 합세해 만 명 단위로 몰려올 수도 있었지만 최소한 바다에서는 고산국이 막강한 위용을 자랑할 것이다. 상대가 없었다.
쿠바 아바나 항에 입항하면서 에스파냐 관리들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최근 해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이민호는 아바나 항에 도착하자마자 모피를 쏟아냈다. 대부분이 캐나다산 모피이며 특히 비버 가죽은 품질이 좋은 편이었다. 상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고산국에서 판매할 때와 달리 쿠바에는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민간 상인이 많고 유럽과 거리도 가까워 훨씬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모피 값으로 받은 은 무게가 모피 무게와 별로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모피 품질은 좋은데 무두질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폐하.”
“피렌체의 상인이여, 당연한 일이다. 원주민들이 넘긴 것을 그대로 가져왔으니까. 그렇다면 다시 제대로 무두질해서 가져올까? 물론 가격은 더 올라갈 거야. 아주 많이 올라가겠지.”
“아, 아닙니다. 제시하신 가격에 사겠습니다.”
모피 상인들은 무두질이 제대로 되지 않은 대신 훨씬 싼값에 산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히려 열대 지방에서 한대 지방 모피를 사게 된 행운에 감사해야 했다.
순양함에 적재한 은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핑계로 아바나의 관리들에게 수수료를 주고 은 절반을 금으로 교환했다. 고산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명나라의 금과 은 교환비율이 국제시세를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재정거래가 역으로 이루어지는 시기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세계 은의 블랙홀 소리를 듣는 것이 명나라와 청나라였지만 중국 은값이 항상 국제시세보다 높은 것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또 늦어서 죄송...
북미 개척 편도 거의 끝나가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