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53화 (402/1,000)

00453  48. 북미 개척  =========================================================================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수로와 그 수로 중간의 갑문, 산 정상의 호수, 그리고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어하기 쉽지 않은 광대한 면적을 포함해서, 제대로 지키려면 못해도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 방면으로 2개 중대는 상시 주둔해야 했다. 당연히 고산국에는 그럴 병력이 없었다.

또한 파나마 시는 페루에서 채굴한 은이 집결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서 해적들이 항상 노리는 곳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1671년 헨리 모건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과 버커니어 해적 연합군이 대서양 방향에 상륙해서 지협을 넘어 파나마 시를 약탈한 적이 있었다.

파나마는 1573년 1월에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파나마에서 출발한 노새 행렬을 약탈한 적이 있을 정도로 예전부터 유럽에 잘 알려진 곳이었다. 이민호가 파나마 운하의 독점 시도를 포기하고 에스파냐에게 방어와 운영을 떠맡긴 이유였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 중이던 기간은 물론 완공 이후 지난 몇 달 동안 배들은 수로와 갑문이 아니라 철도를 통해 지협 너머로 넘어갔다. 산정 호수에 물이 충분하지 않아 수로에 물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대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호우가 내려 수량이 풍부해지면서 드디어 배가 갑문과 수로를 통해 운하를 지날 수 있게 됐다. 시험 운영을 제외하면 파나마 운하 최초의 상업적 통행 1호가 고산국 국왕좌승함이 됐다. 고산국 순양함이 워낙 커서 운하 이용 요금이 최고 금액인 한 척 당 은 200냥으로 책정됐으나, 일부가 연말에 회수될 예정이므로 아깝지 않았다.

“와! 배가 철도로 운반돼요. 신기해요.”

민영은 장강과 황하를 잇는 대운하를 지난 적이 있기에 배가 운하를 통과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겼다. 갑문을 이용해 산을 넘어간다는 사실은 민영이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인 방법이라 신기할 것도 없었다. 민영은 그저 수로 옆 철도에서 소형 갈레온 한 척이 기관차 2량이 끄는 화차에 실려 가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나 국왕좌승함이 갑문을 통과한 다음 호수와 연결된 수로에 들어서자 운하 건설에 참가한 노무자들과 원주민들이 열광적으로 함성을 질렀다. 멕시코 부왕령에서도 관리들이 몰려와 갑문을 이용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구경했다.

“이 배에 사공이 몇 명이기에 배가 산으로 가나?”

“직책상 사공은 없습니다. 열대 지방인데도 호수 주변이라 그런지 춥습니다.”

“미안해, 함장.”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면서 고산국에서 돈만 지출한 것이 아니었다. 갑문 운영 기술과 운하 굴착 기술을 에스파냐에서 배웠고, 기관차 3량과 화차 여러 칸이 파나마에 고정적으로 배치됐다. 수력발전소가 세워져 갑문과 수로 주변에 가로등이 들어와 어둠을 밝혔고, 갑문통제실 건물에도 전등이 들어왔다. 고산국에서만 활용하던 여러 가지 기술이 공개되고 에스파냐에서 복제가 가능할 위험에 노출됐다.

이민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양쪽 수로의 갑문에 배치된 소형 예인선이었다. 이 시대 장거리를 항해하는 선박은 대부분 범선이라 운하 수로 내에서는 자체 동력이 없어 예인선을 배치했다. 기관을 2기 장착해서 작지만 강한 예인선인데 배보다 기관이 유출될까 더 걱정이었다. 이 시대 유럽 기술로 복제하기는 어렵겠지만 기관 자체를 떼어서 다른 배에 장착할까 겁이 난 것이다.

“함장! 잠깐 배를 멈추게.”

산정 호수 중간 작은 섬에 커다란 석비가 세워져 있었다. 한글과 스페인어로 파나마 운하 건설기념비라고 적혀 있어서 이민호가 섬에 상륙해서 자세히 읽어봤다.

“내용이 뭐 이래? 낯 뜨겁군.”

“전하는 역시 성군이십니다. 하하하!”

함장이 같이 내려서 읽다가 배를 잡고 웃었다. 공국 참의가 작성했는지 파나마 운하 건설을 명령한 이민호에 대한 찬사가 기념비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건설책임자로 공국 참의의 이름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고, 나머지 책임자들 이름도 기록됐다. 명나라 및 원주민 노무자들의 노고에 대한 치하도 빠뜨리지 않았다.

뒷면에는 건설 중에 사망한 인부들의 명단이 길게 기록됐다. 참 많이도 죽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3만 가까이 죽은 것에 비하면 난공사도 아니었다. 사실 3만 명 대부분이 사고가 아니라 말라리아와 황열로 죽었다.

좁은 수로와 호수에서도 수심이 깊은 곳만 조심스럽게 지나느라 파나마 운하를 완전히 통과하는 데만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함대 소속의 다른 배들도 차례로 갑문을 통과해 수로를 지난 다음 호수에 들어섰다.

국왕좌승함이 마지막 갑문을 통과해 대서양 방면으로 내려왔다. 이민호는 에메랄드빛 카리브 해를 보면서 감개무량했다. 기차를 타고 넘어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공국 참의가 이민호에게 인사를 올렸다.

“전하.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는 임무를 마쳤습니다. 사상자는 사고사 153명, 부상자 410명,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230명, 합 793명입니다. 부상자 구호와 유가족에 대한 보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수고했소. 참의는 오늘부터 참판이오.”

난데없는 승진에 참의가 기뻐하면서도 몹시 당황했다.

“특진시켜 주신다면 감사합니다만 현 참판께서 유능하고 제가 배울 점이 많으니 제 특진은 거둬주시옵소서.”

“공국 참판은 공조 판서로 승진시키겠소.”

“아아! 황공하여이다!”

단순한 승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행정부서를 6국에서 6조로 격상한 것은 조선과 대등한 국격이라는 의미였다. 형식상으로도 더 이상 조선의 속국이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지만 귀찮아서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공국 참의를 승진시키느라 어쩔 수 없이 행정부를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이어서 공조 참판이 알현을 기다리고 있는 에스파냐의 귀족들을 소개했다. 남미와 북중미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에스파냐 귀족들이 파나마에 꽤 많이 모였다.

이 당시 에스파냐 귀족들의 복장은 현대인 출신인 이민호에게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잔뜩 부풀린 트렁크 바지와 목도리 도마뱀 같은 목 부위 장식인 러프 칼라, 기존의 스푼을 길게 만들어버린 손목의 하얀 레이스 주름 장식이 가장 특이했다.

이 시대 다른 유럽 귀족들도 다 신는 스타킹은 이해하더라도 남자가 거의 하이힐에 필적하는 키높이 신발을 신은 것은 정말 너무했다. 남자 거시기 부분을 도톰하게 만들어 강조하거나, 특별한 패션 아이템으로 장식해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누에바 에스파냐의 부왕이신 가스파 유니가 아체베도, 몬테레이 제5대 백작이십니다.”

“고산국 국왕폐하를 알현하게 돼서 정말 기쁘며 개인적으로도 영광입니다.”

“서신으로만 부왕께 인사했던 고민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에스파냐와 고산국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호를 다지기를 기원합니다.”

부왕 가스파 유니가는 턱수염과 콧수염을 염소처럼 기르고 표정도 어두워서 참 음험하게 생겼다. 그러나 부왕이 꽤나 유능한 행정가임을 이민호도 잘 알고 있었다. 부왕은 이민호를 초조하고 곤란하게 만든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1595년 5월에 멕시코 부왕이 된 그는 기존에 요새를 세운 플로리다 외에 본격적으로 북미 대륙 탐사와 개척, 식민화에 나섰다. 북미 서해안에 집중적으로 탐사선을 보내고 육지 쪽으로도 신경을 써서 리오그란데 강 건너로 적극적으로 탐험대를 보냈다.

이민호가 조금 무리해서 북미 대륙을 매입하고 개척을 시작한 것은 가스파 유니가 부왕이 하는 짓을 내버려뒀다간 텍사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가 몽땅 에스파냐에 의해 개척될 것 같다는 초조감 때문이었다. 만약 북미 매입이 몇 년 늦었다면 뉴멕시코 북부 산타페에 이르는 선까지 에스파냐로 다 넘어갈 뻔했다. 현대 미국의 남쪽 절반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가 간발의 차로 이민호 손에 들어왔다.

전임 멕시코 부왕이었다가 페루 부왕으로 전임한 루이스 벨라스코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민호는 벨라스코 부왕에게 페루 해안에 잔뜩 쌓여있는 구아노, 즉 인광석을 수입하는 문제를 나중에 협의하기로 운을 떼어 놓았다. 남미 원주민들이 비료로 사용하고 있어서 벨라스코 부왕도 구아노를 잘 알고 있었지만 돌과 다름없는 것을 수입한다니 놀라워했다.

파나마 운하의 대서양 출구는 콜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산국에서 지어준 깔끔한 시청 건물에서 연회를 열어 이민호도 공조 참판 및 호위들과 함께 참가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꾸준히 쿠바를 공격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쿠바 아바나에 접근하던 프랑스 해적선 세 척을 고산국 전선이 무찔러 준 사례를 하고 싶습니다.”

“아! 그것은 부왕께서 전선의 함장들에게 직접 사례를 하시면 함장과 수병들이 더욱 기뻐할 겁니다.”

하필이면 해적선의 국적이 프랑스라는 말에 이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고산국 입장에서는 에스파냐만큼은 아니더라도 프랑스와도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괜히 의사들을 파리로 유학 보낸 것이 아니었다.

이 시대 해적은 유럽이든 오스만이든 사략선 면허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국가가 배후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보통은 국가의 묵인 하에, 심한 경우 국가의 명령을 받아 활동하는 자국 해적선을 때려잡는 고산국에 고마워할 국가는 없었다.

“물론 그래야지요. 하지만 폐하께 직접 말씀드려 고산국 해군의 우수성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실은 부왕이 카리브 해에서 유럽 해적들을 몰아내는 일에 고산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해달라는 요구였다. 서인도제도라 이름 붙은 카리브 해의 섬들 중에서 특히 에스파냐 보물선단의 출발지인 쿠바와, 그 남쪽 자메이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공격이 거셌다. 에스파냐가 병력과 함대를 집중시킨 쿠바는 어떻게든 지키겠는데 다른 섬에 대해서는 방어를 어느 정도 포기한 듯했다.

“전선 세 척은 플로리다 요새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전력입니다. 서인도제도의 섬들을 일일이 수색해서 해적들을 격멸하긴 어려울 겁니다.”

“그럼 수색은 저희들이 하고 위치 정보를 넘겨드리면 고산국 해군이 토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와드리긴 해야 하는데......”

이민호가 약간 주저하는 척했다. 에스파냐에서 조급해져서 뭔가 제시하길 기다린다는 표시였다. 유럽 최강대국이라는 에스파냐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벌떼처럼 달려들자 카리브 해를 지키는 것도 버거워했다. 아쉬운 쪽은 에스파냐였다.

“일단 고산국 해군이 격파한 해적선과 사살 또는 생포한 해적마다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리품은 모두 고산국에서 차지하셔도 됩니다. 이것은 해적을 퇴치한 주체로서 누릴 당연한 권리에 불과합니다. 제가 좀 더 좋은 제안을 해드려야겠군요.”

에스파냐 보물선을 약탈한 해적선을 나포할 경우 원래 에스파냐 소유였던 보물을 다 가져도 된다는 뜻이었다. 부왕에게 무슨 좋은 제안이 있나 싶어서 이민호가 귀를 쫑긋 세우는데, 하필 이때 연회장 문이 벌컥 열렸다.

“캄페체에 프랑스 해적선 여덟 척이 나타나 공격 중입니다!”

연회장에 선원 복장을 한 전령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해적선들이 펼친 봉쇄망을 뚫고 왔는지 선원이 입은 옷에는 칼자국이 가득했다. 가스파 유니가 부왕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베라크루스도 아니고 캄페체에 왜?”

페루에서 채굴한 은을 배로 싣고 와서 파나마에 내리면 노새 행렬에 싣고 베라크루스로 보내고, 여기서 다시 배에 싣고 일단 쿠바로 향하는 것이 신대륙 은의 이동로였다. 캄페체는 멕시코 동남부, 유카탄 반도 서쪽의 항구였다. 대규모 무역항인 베라크루스에서 바다 건너 동쪽에 위치했다.

현대 들어서서는 멕시코 만 유정이 근처 여러 곳에서 발견됐지만 이 시대에 캄페체는 염료용 목재를 벌목하거나 사탕수수와 면화를 키우는 시골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카탄 반도 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무역항이었고, 유카탄 지역의 부가 차곡차곡 쌓이는 곳이었다.

베라크루스에 대한 에스파냐의 방어가 강력한 편이라 해적들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곳을 약탈하려는 해적들에게 베라크루스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캄페체였다.

그랑몽이라는 프랑스 해적 두목 등이 1685년에 약탈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기 전까지 캄페체는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에스파냐에서 요새를 지어 제대로 방어했다.

“부왕! 지금 바로 도와주러 가지 않을 건가요?”

“캄페체는 여기서부터 직선거리만도 400레구아가 넘습니다. 도착하면 이미 점령됐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에스파냐 해군은 더 가까운 쿠바 아바나에 있습니다. 전령이 그곳으로도 갔을 테니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말은 침착하게 했으나 가스파 유니가 부왕은 이를 갈면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안 좋은 소식에 연회도 대충 파장 분위기로 돌아갔다.

캄페체가 이미 점령됐을 거라는 부왕의 예상은 맞아 들어갔다. 가스파 유니가는 캄페체가 약탈당한 직후 베라크루스의 시가지를 약간 안쪽으로 옮겨 방어를 단단히 했다. 부왕은 해적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과 보복보다는, 장기적으로 도시의 안전을 꾀했다.

============================ 작품 후기 ============================

인터넷을 활용해서 쓰면 작성시간이 많이 걸리는군요. 제가 자꾸 딴 것을 검색해서 구경하느라 그런 것 같습니다.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