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49화 (398/1,000)

00449  48. 북미 개척  =========================================================================

새인천은 고산국 개척민이 처음 거주할 지역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국왕 일행이 조금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이민호는 새인천을 서부 제일의 도시이며 태평양의 관문이며 남쪽 멕시코와 교류할 무역항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새인천은 특이하게 항구 주변에 작은 요새를 만들고, 그 바깥에 시가지를 건설하는 방식이었다. 성곽 안쪽에 거주지를 빽빽하게 건설하는 이 시대 성곽 건설 방식과 정반대였다. 앞으로 새인천 시가지가 계속 확장될 것이며, 방어시설은 산맥에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므로 이런 식으로 도시 건설이 결정됐다.

넓은 새인천 시가지에는 상하수도가 먼저 깔리고 도로가 바둑판처럼 닦인 다음 건물이 지어졌다. 지진을 감안해 고산국에서 주택을 짓는 수준으로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시멘트를 쏟아 부어 단단히 기초공사를 마친 다음 건물을 올렸다.

이민호는 전깃줄을 지중 매설하려 했으나 기술자들로부터 잦은 지진으로 정전이 일어날 경우 빠르게 복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건의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지상에 전봇대를 세우고 전깃줄이 치렁치렁 늘어지는 꼴을 여기서도 봐야 했다.

새인천의 크기는 고산국 왕도 고북과 거의 비슷한 규모로 결정했다. 도시가 그렇게 크게 발전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꿈은 클수록 좋았다.

주거지에서 농지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고 개척 농민들이 투덜거렸지만 우마차나 마차를 타고 왕복하면 되므로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시가지 예정지인 공터에는 나무를 베고 꽃나무와 유실수를 심어 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현재는 시가지보다 공원이 열 배는 넓었다.

“전하께서 지시하신 이런 농경 방식은 고산국에도 없었습니다. 주변에 수량이 풍부한 강이나 호수가 있다면 심한 가뭄이 들어도 끄떡없을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선진적인 방식을 도입하신 것 같아 신하로서 몹시 감읍하고 있습니다.”

“북미는 땅이 워낙 넓으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적은 숫자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네. 본토에서도 농민이 줄어든다면 이 방식을 도입해야겠지.”

밭을 동그랗게 만들어 작물을 심고, 그 중심에서 바깥으로 수도관을 사람 키 높이로 길게 설치했다. 중간에 수도관을 떠받칠 기둥 밑에는 바퀴를 달았다. 그리고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해 뱅뱅 돌리면서 물을 줄줄 흘렸다. 현대처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기에는 동력 공급과 수압 유지 등에서 여러 모로 곤란한 점이 있기에 일단 이렇게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라면 농가 열 가구가 짓던 농지를 한 가구가 지을 수 있겠습니다.”

“고산국과 달리 농가가 할 일이 다양할 거야.”

“예. 과수원과 축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축사에서 배출되는 오염수는 정화조를 다섯 단계나 거쳐서 강으로 연결됩니다. 물론 식수원에 오염수를 배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산국에서 사과나무와 오렌지 묘목을 가져왔는데 아직 과실 크기가 작아 꾸준히 품종을 개량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솎아주기를 제대로 하려면 인력이 많이 들어서 곤란할 것 같았다. 고산국 자체가 새로 세운 나라라서 항상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했는데 광대한 영토를 개척하려니 더 힘들었다.

“정랑은 저 인디언, 아니 원주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대충 함께 살아야 할 것 같은데.”

“통바와 추마시 부족은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북쪽 흰머리 산에서 휴양을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농사를 짓습니다. 마치 낙향한 양반들이 소일거리로 농사짓고 음풍농월하는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이 흰머리 산이라고 부른다면 겨울에 눈이 내린 다음 어느 정도 쌓이는 산이라는 의미였다. 해발고도가 높아 눈이 쌓이면 건조해지는 여름에도 강의 수량이 풍부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너무 건조해서 농업에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착하긴 한데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다는 뜻인가?”

“대충 그렇습니다. 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도 일이 고된 쌀농사에는 적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밀이나 보리 경작, 아니면 과수 재배가 적격입니다.”

“벼농사를 못 지을 정도면 군인으로 동원하기에도 무리야.”

아파치와 나바호 족이 방문했을 때 덜덜 떨던 통바와 추마시 원주민들이 생각나서 이민호가 피식 웃었다. 푸에블로 원주민들은 숫자가 훨씬 많은데도 항상 그들에게 당하고 살았다. 심지어 푸에블로 족이 나바호 족에게 농사를 가르쳐주고 종자와 식량을 나눠줬어도 배은망덕한 나바호 족 때문에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파치와 나바호는 이 근처 북미 남서부에서 사납고 강한 부족으로 인식된 것 같았다. 어느 지역이든 추운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강자로 떠오르기 쉬웠다. 그리고 같은 부족끼리는 체면을 차리더라도 다른 부족 상대로는 거리낌 없이 약탈을 자행하면서 생활했다. 이런 사나운 자들이 과연 고산국 밑에서 조용히 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전하! 혹시 원주민에게도 세금을 받아야 합니까?”

“원주민이든 백성이든 중요한 게 아냐. 정랑은 고산국에서 농민에게 왜 세금을 받는다고 생각해?”

“국가 전체 재정규모로 보면 농민에게서 받는 세금은 그리 큰 비율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주요 식량의 자급, 주곡 가격 안정 등의 효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초기에 조선에서 고산국으로 이민을 오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수확량 절반을 바치는 문제, 즉 세금 5할이었지. 하지만 이민 온 농민들은 전혀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어. 정랑! 농지는 누구 거야?”

“당연히 국가의 모든 토지는 전하의 것입니다.”

전통적인 동양의 왕토사상에 의해 모든 땅은 국왕의 소유였고, 백성들에게는 토지 이용권만 양도하되 언제든 회수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본 소득을 못 받고 세금도 수확량의 절반이나 내야 하는 농민들도 일하는 만큼 수익이 커지니 이제는 큰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와 달리 개국 전부터 살고 있던 고산족 원주민들의 땅은 주택 대지와 농토에 한해 영구 이용권을 인정해주었다. 농경 부족은 땔감을 얻을 산을 지정해주고, 사냥하는 부족에게는 마을 단위로 사냥터 이용권도 인정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달라진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은 두 냥이 매달 생겨서 쓸 곳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농민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농지를 나눠준 거야. 그냥 토지를 나눠준 게 아니란 말이야.”

“아! 황무지가 아니라 수리시설이 완비되고 개간이 완벽하게 끝난 경작지를 분배해주셨군요. 그래서 농민들이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럼 원주민들이 경작하는 땅에서는 세금을 받지 않고, 개간이 된 농지를 분배해줄 경우서만 받습니까?”

“그렇게 해. 개척민들 중에서 농민이 아니더라도 여기서도 당연히 땅을 나눠받게 될 거야. 물론 이제부터는 가상의 농지겠지만 통장에 매달 늘어나는 은을 보면 여전히 농지가 있고 소작농이 수확한 작물을 팔아서 입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겠지.”

“북미에서도 백성들에게 매월 은 두 냥을 나눠주시겠다니 대단하십니다.”

“백성들과 한 약속이니까. 주다 말면 손해 본 것 같잖아?”

이민호는 개간된 넓은 농토와 기본 소득으로 유럽 이주민들을 유인할 계획이었다. 물론 고산국 개척 농민에게 분배하는 농토를 유럽 이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농민이 아닌 자에게 기본 소득을 매달 두 냥씩 줄 수는 없었다. 유럽 농민들에게 그 토지는 농사짓기에 너무 넓었고, 비농민의 경우 이 시대 유럽인들의 소득에 비해 한 달에 은 두 냥은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산국 백성에 비해 절반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동일하게 줄까 고민 중이었다. 개척민들이 고산국 백성이든 유럽 이주민이든 비슷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소득과 재산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기본 원칙이었다.

“리오그란데 강 남쪽에 거주하는 멕시코 농민들이 대거 북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파냐에 반란을 일으킨 부족이나 농토가 부족한 지역이 국경 협정 이후 꽤나 술렁거린다고 합니다. 그들이 국경을 넘어오면 막아야 합니까?”

“혹시 에스파냐에서 일부러 멕시코 농민들을 국경 너머로 내모는 게 아니라면 막아야겠지. 영토협정은 가급적 지키는 게 좋겠어.”

그러나 이민호는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멕시코 농민들의 월경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현대 미국도 못 막는 멕시코 국적의 불법체류자를 인구와 병력이 적은 고산국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민호는 불법체류자들을 적당히 텍사스에 분산, 배치시켜 농토를 분배해서 정착시킬 계획이었다. 이들이 혼혈이든 인디오든 앞으로 히스패닉이라 불릴 일은 없었다.

“유럽과는 전쟁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난한 유럽 국가들은 운이 좋은 에스파냐의 것을 빼앗아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에스파냐 소유였던 북미 영토를 힘으로 빼앗지 않고 돈 주고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우리 고산국을 더 우습게 볼 겁니다.”

“싸워야지. 각오하고 있었어. 그래도 자기 나라 빈민이나 빈농이 북미로 이민 가는 것은 막지 않겠지.”

이민호가 씩 웃는 것을 보고 공국 정랑이 몸을 떨었다. 전쟁을 통해 이익을 보고 남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민호의 전문 영역이었다. 어떤 나라가 북미를 두고 고산국에 싸움을 걸지 다들 궁금했다. 아마도 영국이나 네덜란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새인천 항구 요새에서 가까운 별궁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민호가 봐도 정성스럽게 잘 지었다. 10월에 완공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외관 공사와 내장 공사가 다 끝나고 연못까지 파서 연을 심어놓았다.

물길이 바깥에서 들어왔다가 연못을 지나가는 식이라 철망으로 막아놓긴 했어도 혹시나 악어가 연못에 들어와 살지 않을까 불안했다. 공국 정랑이 한 말에 따르면 파나마에서 수로가 완성되고 갑문을 다는 핵심 공사가 끝난 다음 주변 정리를 할 때부터 공국 참의가 노무자들 일부를 이곳에 보내 건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별궁 창가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동쪽으로 모래사장이 40km쯤 길게 이어져 있으니 이곳이 현대 지명으로 롱비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새인천을 건설 중인 사람들 중에서 대표들을 뽑아 별궁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했다. 새인천 건설 책임자인 공국 정랑은 당연히 참가했고 여진족 대표, 복건 노무자 대표, 개척민 대표, 원주민 대표 2명이 참석했다. 감불은 항구요새 바깥 주둔지에 연대병력을 휴식시키고 참가했다.

선교사 대표가 식전 기도를 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앞에 두고 한참 동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조선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같았지만 선교사 앞이라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자 모든 참석자들이 아멘을 합창했다.

“전하께서는 다른 종교를 믿으시는데도 가톨릭을 잘 이해해주시는군요.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물론 FSM이 가톨릭과 형제 종교라는 것은 알지만 가능하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길 권합니다.”

“무슨 말씀이오. 유대교나 이슬람과 달리 FSM교는 구약은 물론 신약도 경전으로 지정했소. 오병이어도 알고 사람을 낚는 어부 이야기도 알고 있소.”

“오오! 신약성서를 읽으셨군요.”

이민호가 이 시대로 오기 전에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충 넘겨가면서 읽은 것 같았다. 그래서 신약 이야기가 더 나오기 전에 얼른 얼버무렸다.

“자!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건배부터 합시다. 새인천의 영원한 발전과 평화를 위하여!”

“위하여!”

만찬 참가자들이 막걸리나 소주, 와인, 사과음료 등 각자가 선호하는 음료를 들고 건배했다. 북미에서 생산한 작물은 몇몇 채소 외에는 아직 거의 없고 대부분 고산국에서 가져왔지만 내년부터 북미에서 생산한 산물로 식탁이 풍성하게 채워지길 기대했다.

“통바 추장은 왜 불안해하는 것이오? 추마시 추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소.”

“왕이시여! 천장에 저 불은 묘지에서 가져온 것입니까? 시내에 들어올 때마다 놀라서 밤에는 일부러 오지 않습니다.”

“추장들은 놀랄 것 없소. 전등이라고 해서 다른 곳에서 킨 불을 구리선을 통해 옮겨온 것이오.”

이민호가 원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했다. 새 나하와 새인천의 차이점은 전기였다. 새인천의 북쪽 계곡에 작은 댐을 여럿 쌓아 수력발전소를 몇 개 세우고 요새와 항구, 별궁과 시가지를 환히 밝혔다.

새인천의 건물과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덕택이었다. 수력발전소가 들어선 댐 상류의 계곡 곳곳에 원주민들이 밭을 일구고 있어서 댐 만수위에 수몰될 그 밭 면적만큼 새인천의 개간지로 보상해줘야 했다. 새 나하에서 이 정도로 주변 원주민들과 협조관계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 작품 후기 ============================

인터넷 연결이 안 돼서 usb로 옮겨 PC방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리플에 답변을 제대로 못 달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확인하겠습니다.

어느 부족하고 협력하면 어느 부족하고는 싸우게 되기 쉽겠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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