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48화 (397/1,000)

00448  48. 북미 개척  =========================================================================

기술자들과 특전 소대 정찰대가 출발한 사이 이민호가 새인천 곳곳을 돌아봤다. 개척민들은 배정된 임시 거주지에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갔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일자리로 돌아갔다.

새인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선교사들은 겨우 몇 달 전에 고산국 군대와 명나라 노무자들과 함께 새인천에 도착했다. 선교사들은 새인천 주변에 거주하면서 도시 건설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통바 족과 추마시 족을 순식간에 개종시켜 오히려 도시 건설에 노동력을 제공하게 만들었다. 높다란 첨탑이 선 교회도 원주민들이 짓고 있었다.

“단 두 달 만에 원주민들을 개종시켰다고요? 어이가 없소. 원주민들이 야만스러워서 문명의 이기에 홀랑 넘어간 거요?”

“전하! 이들은 절대 야만인이 아닙니다. 추마시 족 원주민이 그린 이 화사한 그림을 보십시오.”

붉은 색 위주의 그림은 새인천을 건설하는 명나라 노무자들과 주변을 정찰하는 고산국 기병을 담고 있었다. 색감은 지나치게 원색적이었지만 역동적이고 세밀한 묘사만은 제법이었다.

“약간 거슬리긴 하지만 색감이 대단하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이들은 야만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 수준이 다른 원주민 부족에 비해 높기 때문에 쉽게 개종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더 높은 수준을 보여주자 자연스럽게 감화한 것입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종교인이기 전에 학자이며 예술가이기도 했다. 통바와 추마시 족에게 고산국에서 제작한 도자기와 유리구슬을 보여주고, 몇 가지 악기를 연주해 원주민들의 혼을 쏙 빼버렸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식민지 침략의 선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민호도 진심으로 인정했다. 두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들에게 철제 농기구를 제공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원주민들이 일하는 시간을 줄여 신앙생활을 합니다.”

“결과가 좋군요. 원주민들이 충분히 먹고 살도록 잘 지도해주시오.”

“물론입니다. 원주민들을 우리와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면 마음이 전달됩니다. 이들은 충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중남미에서는 에스파냐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을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채찍질해서 원주민들을 강제 노동에 내몰아 세금 명목으로 경제적 이득을 착취했을 뿐이었다. 물론 중남미 원주민들을 보호해주려는 선교사들도 일부 있었지만 태반이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학대했다.

이에 반해 고산국에서 따라온 예수회 선교사들은 동양에 오래 있다 보니 현지인들을 무시하지 않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고산국 사람들이 황인종이니 비슷하게 생긴 북미 원주민들을 예수회 선교사들이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전하! 산맥 바깥에 거주하는 여러 원주민 부족들의 친선사절이 방문했습니다. 아파치 족과 디네 족 추장이 스페인어를 약간 구사합니다.”

“아파치 족?”

특전대대 중대장이 여러 가지 복장을 입은 원주민들을 데려왔다. 이들은 각 지역의 대표라고 했다. 아파치는 익히 들었던 이름이었고 디네는 처음 들어봤다.

이민호는 이들이 왜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산맥으로 빙 둘러싸인 새인천 지역에는 원주민이라곤 통바 족과 추마시 족밖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정찰대와 여진 기병들이 수시로 산맥 바깥을 정찰하기에 이들과 접촉하면서 주의를 끌게 된 것 같았다.

“바로 당신이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배 타고 말 타는 사람들의 추장이로군. 당신들이 북미라고 부르는 대륙의 남서부는 우리 땅이다. 에스파냐 백인들보다 우리를 더 닮았더라도 외지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당장 떠나라.”

아파치 족은 캘리포니아 남부, 뉴멕시코와 텍사스 서부 등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부족 연합이었다. 아파치 족이 주장하는 영토를 모두 인정해줄 경우 서부의 절반이 날아간다.

그러나 북미 남서부에는 아파치 족만 사는 것은 아니었다. 원주민들은 부족 또는 마을 별로 널리 흩어져서 살았기에 다른 부족들과 섞여 사는 경우가 오히려 더 일반적이었다. 같은 지역에 여러 부족들이 이중삼중으로 영토를 설정한 셈이었다.

“나는 에스파냐로부터 북미 전체를 매입했다. 너희들이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 경우 나의 백성이 될 것이고, 싸움을 일으키면 하늘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이다. 자부심 강한 전사인 우리가 다른 인종에게 머리를 숙일 이유가 없다.”

“내게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다. 내 명령을 듣고, 내가 내리는 은전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여유가 되면 세금을 내면 된다.”

“세금은 우리가 당신들에게 받으러 왔다!”

이민호가 피식 웃었다. 새 나하처럼 새 인천에도 여진 기병 2천여 명을 배정해 주둔시켰다. 여진족 인구가 1만이 넘고, 지금까지 몇 번 충돌하면서 총이라는 무기의 위력을 충분히 확인했기에 원주민들은 감히 전쟁을 하자는 소리를 꺼내지 못했다.

북미에 야생마가 퍼지긴 했으나 아직은 말을 타고 다니는 원주민 부족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여진 기병 2천여 기가 평원을 달리면 원주민들은 즉시 티피를 걷고 도망가기 바빴다. 가끔 하늘에 총을 쏘면서 말을 타고 달리면 다들 기겁해서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디네 부족의 추장은 말 탄 사람을 무서워한다. 디네 부족을 말 탄 사람이 존중해야 한다. 디네 부족의 땅을 말 탄 사람이 지나가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 다만 적절한 보상을 한 경우에 한한다.”

아파치 족과 디네 족은 거의 같은 인종으로 판단됐다. 심지어 언어도 비슷하고 기원도 비슷해서 북미 북서쪽 원주민들과 언어적 연관성이 있다고 임현석 중령이 보고했다. 아파치 족은 여전히 수렵을 하는 자들이었고, 아파치와 비슷한 디네는 푸에블로 족에게서 농경을 배운 자들이었다.

빨간 치마를 입고 등에 칠면조 깃털로 장식해 가장 화려한 복장을 한 푸에블로 족 전사가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전사는 인상만 쓰고 있고 상체를 마치 고대 로마인처럼 천으로 반쯤 가린 중늙은이가 나서며 말을 걸었다.

“저들은 자기들을 디네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들이 들판에 산다는 이유로 나바호 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모거연, 아나사지, 호허컴 등 부족들의 연합인데 에스파냐 사람들이 우릴 푸에블로라고 부릅니다. 아파치와 나바호는 도적들입니다.”

“푸에블로라면 마을을 이루고 사는 모양이군. 농사를 짓나?”

“그렇습니다. 옥수수와 콩, 호박을 재배하는데 배 타고 말 타는 사람들이 땅콩과 감자를 전해주었습니다. 땅콩과 감자는 멀어서 갈 수 없는 남쪽 땅에 있다고 들었는데 종자를 전해줘서 재배하고 있습니다.”

푸에블로 추장과는 의외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푸에블로 원주민이 농사를 짓고 있는 농토만 보장해준다면, 그리고 아파치와 나바호 족의 약탈을 막아준다면 동맹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이민호가 동맹을 시도해보니 역시나 푸에블로 원주민 추장이 미끼를 덥석 물었다. 추장은 제발 아파치와 나바호 부족을 쫓아내달라고 이민호에게 부탁했다.

“아파치와 나바호 추장들은 들어라. 나는 대양의 서쪽에서 큰 배를 타고 온 자들의 대추장이며 대전사다. 나는 푸에블로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기로 했다. 너희들이 우리, 또는 푸에블로 사람들을 공격하면 우리가 너희들을 공격할 것이다.”

“땅 파먹고 사는 천한 자들은 평원의 사냥꾼인 우리들에게 곡식을 바쳐야 한다. 이것은 푸에블로라 불리는 남쪽 부족들과 우리 강한 부족의 운명이고, 대정령이 인정한 땅의 법칙이다.”

“나는 너희들보다 훨씬 강하다. 천둥새보다 강하다. 네가 한 말대로라면 너희들은 당연히 내게 복속해야 한다.”

이민호가 옆에 서 있는 계복에게 신호를 보냈다. 계복이 보병총을 하늘로 겨누더니 연속해서 총을 발사했다. 탄창에 든 총알 열 발이 모두 발사되는 동안 아무 죄도 없는 기러기 열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예전에 고산족 원주민들에게 보여줬던 이벤트의 업그레이드판이었다.

“배 타고 말 타는 자들은 천둥새보다 강하다.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예가 될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푸에블로 사람들처럼 너희도 나하고 동맹을 맺으면 된다.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마침 점심때가 돼서 기다란 식탁으로 원주민 추장들을 불러서 같이 식사했다. 추장들을 따라온 원주민 전사들도 다른 식탁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이건 들소 고기 맛이 난다.”

“이 고기는 푸에블로가 기르는 양고기와 약간 다르다.”

나바호 원주민은 조선말로 양이라고 했다. 새인천에 처음 도착한 고산국 군대가 푸에블로 원주민들에게 목축을 하라고 넘긴 양을 나바호 원주민이 강압적으로 빼앗거나 훔쳐 먹은 모양이었다. 세력에 따라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순박한 원주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뇌조나 칠면조와 비슷한 맛이다. 매콤한 맛이 추가돼 더욱 좋은 맛이다.”

“이 기름진 고기는 잘 모르겠지만 단맛이 납니다.”

원주민들은 소고기와 양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맛을 그렇게 평가했다. 역시나 지나치게 단맛은 싫어했고, 채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푸에블로 족은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면서 육식과 채식이 균형 잡힌 식단인데 반해 아파치와 나바호의 전사들은 육식 위주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의 수렵, 채집 민족처럼 여자들이 채집한 식물성 음식을 기본으로 나눠 먹고, 사냥한 고기를 남자들만 따로 더 먹는다고 봐야 했다.

“고기만 먹지 말고 다른 것도 맛을 봐.”

“대추장님! 쌀이라는 곡물과 밀이라는 곡물의 맛이 확연히 다릅니다. 둘 다 재배할 가치가 있는 곡물입니다.”

“푸에블로 추장의 말이 옳다. 곡물 가루를 반죽해 납작하게 만든 다음 안에 고기 종류를 넣어서 함께 먹어도 괜찮을 거야.”

“멕시코 사람들이 그렇게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푸에블로 추장은 아파치와 나바호 부족들에게 시달려서 그런지 꾸준히 이민호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했다. 숫자도 푸에블로 원주민이 더 많고 분포지역도 넓어서 이민호는 일단 푸에블로 원주민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아파치와 나바호 너희들은 평원에서 소와 양을 길러서 먹고, 남는 고기를 우리에게 넘겨주면 된다. 그리고 거주하는 지역에 쇠로 된 길을 만들 테니 그 길을 파괴자들로부터 지켜주면 필요한 만큼 곡식을 주겠다.”

“가축은 우리가 키우면서 남는 것을 주고, 쇠 길을 지켜주면 곡식을 주겠다고?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아파치 마을들은 서로 너무 멀리 퍼져 있어서 말을 주고받기 어렵다.”

“사람이 타는 말을 주겠다. 말을 타고 다니면서 일을 해라. 푸에블로 사람들을 약탈하면 안 된다.”

원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이민호가 선뜻 말을 내주겠다고 하자 쉽게 믿지 못했다. 북미 개발 계획의 일환이었으나 사실 고산국에서도 이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결국 원주민들은 말을 손에 넣게 된다. 미리 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말을 주겠다고? 배 타고 온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너희들이 무슨 수를 써도 우리한테는 안 될 것이다. 몰살당하고 싶지 않으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야. 저들을 알지?”

이민호가 여진 기병들을 가리켰다. 원주민들이 아주 질리다 못해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말 타고 총이나 활을 쏘는 것만 해도 무서운데, 여진족은 심지어 땅에 내려서도 강했다.

“나는 저들의 추장이다. 저런 기병이 내 밑에 수만 명이다. 자유로운 전사로서 강한 자에 맞서 싸우는 것은 영광이겠지만, 너희들 자손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강한 자 밑에 있으면 자손이 번영한다.”

강한 자의 그늘에 들어가는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과 비슷한 습성이 있었다. 북미 원주민들은 전쟁을 하다가 다른 부족들과 쉽게 연합하며, 세력이 약해지면 다른 부족에 쉽게 흡수됐다.

아파치와 나바호는 부족 회의를 개최한다면서 돌아갔다. 서부의 추장들은 동부와 달리 부족의 지배자가 아닌 대표자일 뿐이었다.

“숲에서 쫓고 쫓기는 전쟁 말고, 들판에서 크게 한 판 붙었으면 좋겠어.”

“원주민들은 그런 전쟁에는 절대 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전쟁을 하면 북미 원주민들만 일방적으로 깨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북미 원주민들고 알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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