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37화 (386/1,000)

00437  47. 1597년  =========================================================================

호주 남동쪽 새부산에서 출항한 함대는 남쪽 500리를 항해해 현대에 태즈메이니아 섬이라 불리는 커다란 섬에 도착했다. 1642년 이 섬을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 항해가 타스만에서 이름을 따온 섬이라 원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부르는 이름 말고는 아직 정식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탐사대 김몽돌 소령은 섬이 생긴 모습에서 세모 섬이라고 임시로 이름 붙였다.

함대가 섬 북쪽에 도착한 다음 탐사선이 국왕좌승함으로 접근했다. 단정에 내린 탐사대장 김몽돌 소령이 이민호에게 설명했다.

“이곳 원주민은 호주 원주민이나 말래카 서쪽 열도에 사는 원주민들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피부가 까맣고 키는 작은 편입니다. 아프리카 흑인과 확실히 다릅니다.”

고산국 군인들은 흑인 병사들과 자주 접했기에 흑인과 동남아시아의 소수 원주민인 네그리토의 차이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 말레이 반도 서쪽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 사는 자라와 족 등 12개 부족 원주민들과 뉴기니, 호주에 사는 자들, 필리핀의 아에타와 아티 족, 그리고 이곳 세모 섬에 사는 자들이 네그리토였다. 말레이계보다 선주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비슷했으나 생활방식은 사는 곳마다 많이 달랐다. 주변에 거주하는 다른 인종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아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멀리 이주할수록 기존에 보유했던 문화가 퇴보한 듯했다.

이민호는 유라시아 거주민들과 처음 접촉하는 원주민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고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조만간 유럽 항해자들이 들락거리면서 이 섬에도 홍역과 볼거리 등 유라시아 풍토병이 퍼져 남미 원주민들처럼 떼죽음 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새로운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가 대폭 줄더라도 인구가 적은 곳만 아니라면 원주민들이 멸절하지는 않았다. 이민호는 곡식 종자 지원 등 다른 방법으로 이들을 최대한 구하기로 했다. 잠시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몇 십 년 내에 금방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다.

“전에 접촉은 해봤지?”

“예.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전하께서 신체적 접촉을 금했기에 10보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대화를 해봤습니다. 호주 원주민이 통역해줘서 말이 어느 정도 통하는 편입니다.”

함대가 세모 섬의 북쪽 강 하구에 도착했다. 함대가 접근하는 것을 멀리서부터 발견한 원주민들이 창을 들고 몰려왔다.

“김 소령이 저번에 접촉한 지역 맞나?”

“맞습니다. 그때도 처음에는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자기 땅을 지키려는 원주민들의 당연한 대응이라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김몽돌 소령이 병사 몇 명, 그리고 통역을 맡은 호주 원주민과 함께 단정을 타고 땅에 내렸다. 멀찍이 거리를 띄운 채 김몽돌과 원주민들의 인사가 한참 이어졌다.

그 사이 이민호는 강변과 해안에 넓게 펼쳐진 밭을 살폈다. 풀밭을 태운 화전 수준이었지만 재배하는 작물은 지난해에 고산국 탐사대가 건네준 콩과 땅콩, 그리고 옥수수였다. 비옥한 땅에 저런 작물을 심어서 심하게 아까웠지만 김몽돌이 몇 가지 종자를 건네주기 전까지 원주민들은 기장 밭을 일구고 살았다고 했다.

“지난 일 년 사이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마을마다 대략 절반 정도가 죽었고 아직도 전염병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고 합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전염병 덩어리겠지. 그래도 절반이면 예상보다 훨씬 괜찮은 수준이야.”

김몽돌이 중간에 돌아와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저번에 접촉할 때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대화를 나눴지만 아마도 탐사대가 원주민에게 넘긴 종자나 몇 가지 물건을 통해 병균이 전해졌을 것으로 판단했다.

호주 원주민들은 고산국 사람들과 접촉해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꾸준히 교역을 해서 전염병에 대한 내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병이 퍼지며 떼죽음 당했던 시기가 이미 지났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세모 섬 원주민들은 전염병에 취약한 편이었다.

“우리를 만난 다음부터 원주민들 사이에 전염병이 퍼져서 신이 노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전염병 경로를 우리 탐사대로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곡식 종자를 얻어 불만을 누그러뜨린 듯합니다.”

“김 소령! 자책하지 마. 어차피 우리가 아니더라도 유럽 항해자들이 들어오는 순간 전염병이 퍼지게 돼 있어. 새 곡식에 대한 평가가 좋아?”

“물론입니다. 새 곡식이 생산성은 물론 맛도 훨씬 좋으니까요. 조리법을 미리 가르쳐두고 돌솥을 만드는 방법도 아니까 앞으로 식생활이 훨씬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

열대 지방에 사는 일부 네그리토는 불을 사용하는 법을 잊었다. 그러나 이곳은 남쪽으로 가면 추워서 그런지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김몽돌이 단정에 양을 태우는 것을 보고 이민호가 물었다.

“과연 양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고원지대에서 키우라고 했지만 여기에도 늑대가 있습니다. 산 것은 아니고 원주민들이 사냥한 사체만 봤는데, 줄무늬가 달려 있어 호랑이 새끼인 줄 알았는데 틀림없는 늑대입니다.”

“늑대는 아니지만 거의 늑대나 다름없겠지.”

이민호는 유대류인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떠올랐다. 실제 역사에서 태즈메이니아의 주머니늑대는 양을 노리다가 양치기들에 의해 꾸준히 사살당하면서 결국 멸종됐다.

“양을 키우게 해서 세금으로 양을 받으시렵니까?”

“세금을 바치게 하는 것은 좀 그렇고, 교역을 하는 것으로 하지. 쇠도끼 하나에 양 한 마리 이런 식으로. 그런데 가축은 키워봤대?”

“가축은 못 봤습니다만, 앵무새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 같습니다.”

세모 섬에는 딩고나 개도 없었다. 김몽돌 소령이 원래 뉴질랜드로 실어갈 양 중에서 10여 마리를 골라 단정에 태웠다.

원주민들과 대화하던 김몽돌은 양을 키워서 잡아먹으라는 말을 설명하는 것에 곤란을 느낀 모양이었다. 어찌어찌해서 양을 건네주고 원주민들과 헤어진 탐사대가 함대로 돌아왔다.

“간신히 목축을 설명했습니다. 기장처럼 양의 수를 늘려서 일부는 먹고, 남는 양을 다른 물건과 교환하는 것을 납득시켰습니다.”

“양털을 깎아 교환하는 법도 가르쳐줬나?”

“가위로 양털을 깎아 이불을 만드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최소한 천 마리는 넘어야 양털 교역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어. 다음에 올 때도 꾸준히 양을 전달해.”

차라리 양을 야생화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축화된 양은 털을 안 깎아주면 털이 계속 자라기 때문에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 염소를 야생화시킬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서해안 무인도에 방목한 염소가 섬 생태계를 초토화시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서 포기했다.

다음 날 세모 섬에서 출발한 함대는 뉴질랜드 남섬으로 향했다. 김몽돌이 2차에 걸친 탐사를 마치고 지은 임시 이름은, 호주 동쪽에 있으며 이상하게 생긴 새들이 많다는 뜻에서 새섬으로 지었다.

고유어 지명이 한자화되는 과정에서 새터가 신기(新基), 새말이 신리(新里), 새섬이 조도(鳥島)로 표기되는 경우가 흔했다. 말 한 마리 안 살아도 말섬은 마도, 소나무 한 그루 안 자라도 솔섬은 송도가 된다. 말섬과 솔섬은 큰 섬 작은 섬이다.

뉴질랜드 역시 태즈메이니아 섬처럼 아벨 타스만이 1642년에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상륙 당시 마오리 원주민들과 충돌하는 바람에 제대로 섬을 탐험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김 소령! 여긴 지난번에 탐사대가 상륙한 곳이 아니지?”

“예.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싸움이 붙어서 어쩔 수 없이 50명쯤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번 그곳과 충분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상륙하겠습니다.”

“같은 곳에 상륙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미 원수가 되어버린 곳보다는 새로운 곳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군. 알아서 하게.”

김몽돌이 탐사대원들을 이끌고 단정에서 내리는데 상륙하려는 해안에 이미 마오리 원주민들 수십 명이 나와 있었다. 물론 건장한 남자들이 창 같은 나무 무기를 들고 나왔으니 환영인파는 절대 아니었다. 얼굴과 몸에 문신을 새긴 원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고함을 치면서 일사불란하게 몸동작을 펼치고 있었다.

“거인들이네요. 무서운 몸짓으로 탐사대를 위협해요. 혀를 왜 내밀죠?”

“당장 떠나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뜻이오.”

“꺄악!”

아라 공주가 이민호 품에 안긴 채 오들오들 떨었다. 이민호도 다른 곳에 갈 때와 달리 이곳에서는 꽤 긴장했다. 마오리 족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우습게 봤다가 잡아먹힌 백인 탐험자들과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마오리 족은 체격이 워낙 좋아서 재래식 무기로는 결코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마오리 족 원주민들이 두 다리를 쩍 벌린 채 쿵쿵 소리를 내가며 발을 구르거나 펄쩍펄쩍 뛰면서 고함을 질렀다. 손바닥으로 가슴과 허벅지를 치고 눈을 부릅떠서 흰자위를 드러내는 것은 이것이 싸우기 전에 상대방을 위협하는 춤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손님을 환영하는 의식으로, 또는 갖가지 다른 이유로 출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전쟁에 앞서 사기를 고양하고 상대에게 겁을 주는 행동이었다.

마오리 와카가 진행되는 동안 김몽돌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다가올 때마다 권총을 겨눴다. 권총이 뭔지 모르는 원주민들은 김몽돌의 태도에서 그것이 위험한 무기임을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 타앙!

원주민들이 점점 다가오자 김몽골 소령이 하늘을 향해 권총을 한 발 발사했다. 원주민들은 벼락이 터지는 총소리에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가, 체면을 차리기 위해 얼른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호주 원주민이 대화를 해보려고 나섰으나 마오리 원주민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라 공주! 유구국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과 어떻게 교역을 하오?”

“통역을 서너 명 세워도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이 손짓 발짓을 해요. 상대방도 교역을 위해 나왔으니 어떻게든 뜻이 통해요.”

“우리는 종자와 양을 가져와서 원주민들에게 키우라고 하는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예. 게다가 상대방은 처음부터 싸우려고 작정하고 나왔으니까요.”

원주민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온 침입자를 침략자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남은 선택은 전쟁밖에 없었다.

“탐사대가 총을 쏴서 강한 자라고 인식을 시켰으니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여요.”

“강한 자를 잡아먹고 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수도 있소.”

“저 원주민들이 식인종이에요?”

“사람을 식량으로 삼기보다는 종교적 의식의 일종으로 식인을 할 수도 있소.”

이민호가 말을 마치자마자 마오리 족 원주민들이 나무 무기를 앞세우고 몰려들었다. 윗부분은 노처럼 납작한 나무 곤봉과 같았고, 아랫부분은 창날처럼 뾰족했다. 보통 사람이 들고 있다면 별 것 아닌 무기 같지만 그 무기를 휘두르는 원주민들의 체격과 근육이 엄청나서 더욱 위협적이었다.

- 타탕! 탕!

“쳇! 결국 싸움이 시작됐군.”

선두에 선 원주민이 따이아하를 휘두르기 직전에 김몽돌 소령이 권총을 쏘아 쓰러뜨렸다. 뒤따라 달려든 원주민들에게는 탐사대원들이 연달아 보병총을 쏘았다. 탐사대원 네 명이 기병총을 연사하는 사이 나머지 보병총 소지자들도 탄환을 장전해서 연속 발사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거의 60명에 달했다. 김몽돌 소령이 원주민들에게 권총을 쏘면서 침착하게 부하들을 뒤로 물렸다. 한 방 쏘고 서너 걸음 물러서면서 장전해 다시 쏘는 식으로 계속 물러나면서 전투를 수행했다.

탐사대는 곡식 종자와 양 20마리를 다 버렸다. 특히 양은 괜히 원주민들의 한 끼 식량이 되지 않도록 풀어줘 버렸다. 원주민들이 양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김몽돌과 탐사대만을 향해 몰려왔다.

“함장! 기관총을 사격하시오.”

“예. 그래도 좀 더 기다려보심이......”

김몽돌과 탐사대는 분명히 잘 퇴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탐사대를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에 내몰고 싶지 않았다.

“사격하시오!”

“11번 총, 12번 총, 쏴!”

- 따다다다닷!

함수와 함미에서 기관총 발사음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원주민들이 픽픽 쓰러졌다. 총구가 향한 곳마다 대여섯 명씩 한꺼번에 쓰러지자 원주민들이 전진을 멈췄다.

그 사이 단정까지 성공적으로 퇴각한 탐사대는 즉시 단정을 타고 함대로 돌아왔다. 마오리 족 원주민들이 다시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며 바닷가로 몰려왔다. 원주민들이 다시 마오리 와카를 추는데 팔뚝에 손바닥을 치는 행동이 마치 조선에서 감자바위를 먹이는 동작 같았다.

“얄미운 놈들! 함장! 원주민들이 맞지 않게 5인치 함포 한 방만 쏘시오.”

“예. 맞지 않게 쏘겠습니다.”

해변이 굉음이 울리면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원주민들이 파편에 맞지도 않았을 텐데 한꺼번에 쓰러져서 마구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네 발로 발발 기어서 포탄 구덩이에서 멀어졌다. 폭발에 놀란 마오리 원주민들은 더 이상 해변에 접근하지 않았다.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 소령과 탐사대는 최선을 다했다. 수고했어.”

이민호가 시무룩해진 김몽돌 소령과 탐사대원들을 위로했다. 극단적으로 호전적인 마오리 족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문명이 있다면 압도적인 힘의 과시를 통해 마치 19세기 제국주의 함대처럼 상대에게 개항을 강요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힘을 과시한 순간에는 이미 원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죽어 있었다. 그럼 다시 얼굴을 마주치기도 힘들게 된다.

============================ 작품 후기 ============================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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