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31화 (380/1,000)

00431  47. 1597년  =========================================================================

함대는 동해바다를 건너 아이누 섬 북쪽 항구에 도착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데도 이곳은 추웠다. 그러나 위도가 훨씬 높은데도 한성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

“저게 뭐지? 고랜가?”

“바다소입니다. 예전에 아이누나 얼음 섬 원주민들이 가끔 사냥한다고 들었습니다.”

만 안쪽, 이민호가 가리킨 곳을 살피던 함장이 보고했다. 물 위에 등 부분이 떠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커다란 동물은 스텔러 해우인가 하는 해양 포유류였다. 길이가 자그마치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의 바다소 10여 마리가 항구 주변에 떠다녔다.

“저렇게 큰 동물이 겨우 해초를 뜯어먹고 산다고 들었습니다.”

“겨울이라 남쪽으로 내려온 것 같소.”

“아이누와 얼음 섬 원주민들이 전하께 바친 전하의 재산입니다.”

“카카카! 앗! 실수했소. 험! 험!”

아이누 사람들이 곰이나 사슴 고기, 보리 등을 공물로 바쳐도 이민호가 거절하다가 해달에 관심을 가진 다음부터 해달과 바다사자를 비롯한 아이누 섬 주변의 해양 포유류는 모두 이민호의 것이 되었다. 아이누 입장에서는 고산국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철제 농기구와 무기, 화승총 같은 화약무기를 얻고 있으면서도 고산국에 겨우 금과 은을 줬을 뿐이라 뭔가 더 줘야한다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래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물고기로 취급됐다.

원주민들이 해달을 많이 잡으면 바다 속에 성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다시마가 줄어들어서 바다소가 굶게 된다.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아도 생태계는 이렇게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다. 얼음 섬 원주민들이 매년 1천 마리 이하로 잡는 해달 외에는 잡지 않기로 해서 해달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전하! 바다소를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전시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너무 커요. 다시마를 밥으로 먹이기에는 아깝소.”

한반도와 일본까지만 다시마가 자라기 때문에 고산국 수족관에서 다시마를 바다소의 밥으로 주려면 운송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았다.

“왕이 오셨다!”

이민호가 배에서 내리자 수많은 아이누들이 몰려들었다. 몇 년 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털북숭이 아이누 사람들이 정말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작은 선착장만 있던 항구가 어느새 작은 도시로 성장했고 호수 주변은 넓은 농경지로 변했다. 총독부가 삿포로 쪽에 있어서 여기서는 이틀만 머무르기로 했다.

“다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와봤지.”

“보시는 대로, 다들 살이 쪄서 산신령님 몸매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하하!”

겨울이라 아이누들이 모피를 여러 겹 걸쳐 입어서 마치 곰처럼 보였다. 곰 머리 투구를 쓴 자들도 많아 곰의 소굴 같았다.

하루 지나면서 소문이 퍼지자 근처 아이누 촌장들이 몰려들었다. 바다 건너 사할린에서도 아이누들이 배를 타고 몰려왔다.

배를 타고 온 자들 중에는 고산국 장인들도 있었다. 1년 전에 사할린으로 보낸 제지 기술자들이 이민호에게 종이 한 묶음을 바쳤다.

종이가 거칠고 약간 누리끼리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민호가 일부러 종이 몇 장을 찢었다. 찢기는 방향마저 제멋대로였다.

“잘 찢어지고 변색되기 쉽겠군.”

침엽수 목재를 부순 다음 화학처리를 통해 셀룰로오스 이외의 성분을 제거해야 하는데 사할린 제지공장에서는 그 과정을 생략했다. 펄프에 리그닌 등의 성분이 남아 있으니 제대로 된 종이라고 하기 어려웠고 기껏 신문지나 갱지 정도로 사용될 낮은 품질이었다.

“하오나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전하.”

“잘 만들었네. 깨끗한 종이를 만들려고 화학약품이나 표백제를 쓴다면 오염물질을 처리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 거야. 원주민들과 충돌은 없나?”

사할린 남쪽 항구마을에 제지공장이 건설돼 있었다. 수력발전소를 만들기 어려워 물레방아를 돌려 간신히 회전톱날을 돌리고 분쇄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계였다.

“원주민들을 고용해 나무를 베거나 옮기게 하고, 빈 벌목지에는 농경지를 확장해서 다들 좋아합니다.”

“아직은 베기만 해도 되겠지. 바닷가에 방풍림을 잘 만들어주게.”

“예, 전하. 추운 지역이라 나무가 자라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에 길게 봐야겠습니다.”

옻칠을 한 한지는 2000년 넘게 보관할 중요한 책을 만드는데 쓰고 이번에 싸게 대량으로 만든 갱지는 고산국에서 다방면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 교과서 제작비가 10분의 1 이하로 뚝 떨어지게 돼서 혜영이 몹시 기뻐할 것 같았다. 한지는 제작과정이 너무 길고 원가가 비싸게 먹혔다.

1년 동안 유배생활이나 다름없이 춥고 불편한 사할린에서 살아온 제지공장 장인들을 특진시키고 상여금도 두둑이 내렸다. 문제는 앞으로 사할린에서 근무할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민호는 월봉을 은 20냥 정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사할린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지겨워서 2년 이상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장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사할린 남부에 사는 아이누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맡겨도 품질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국영기업 체제를 유지하고 아이누 사람들을 고용해 제지공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몇 년 이내에 제지공업이 사할린 최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고산국 사관학교를 졸업한 자들도 예복을 차려입고 멀리서 찾아왔다. 촌장과 사관학교 졸업생들이 대부분 부자 관계라서 권력이양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편이었다.

“왕께서 주신 화승총으로 산신령이고 늑대고 다 때려잡고 있습니다.”

“인가나 밭 근처에 접근하는 놈들만 잡아. 괜히 산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그 짐승들도 아이누 섬에서 살 권리가 있다.”

이민호는 고산국에서 사관학교를 다녔던 촌장 아들들을 마을회관으로 불러들여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아이누 마을들을 급격히 성장시키고 있는 변화의 주체세력이었다. 그러나 불만이 가득 쌓인 표정들이었다.

“문제가 있나?”

“전하! 아이누들이 원래 야만인은 아니지만 곰에 대한 제사 같은 일부 야만적인 풍습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못하는 주제에 늙은이들이 저희들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총칼로 아버지 세대를 몰아낼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여차하면, 생각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풍습은 억압한다 해서 쉽게 바뀔 것도 아니었다.

“조선이나 명나라 출신들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잖아? 곰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그 핑계로 아이누들이 모여 교류도 하고 같은 아이누라고 합심할 수 있는 거야. 내버려둬.”

“신부님들은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도 야만적인 풍습이라고 했습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제사를 그 지역 관습이라고 인정하잖아?”

신교와 구교가 나뉘면서 네덜란드에서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나 예수회는 지역 풍습에 유연하게 대처한 편이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도 17세기 중후반에 중국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규정하면서, 그 탓에 기독교가 한때 청나라에서 탄압받은 적도 있었다.

“전하! 그런데 저 움직이는 바윗덩어리는 뭡니까?”

도착한 어제 지형을 파악하고 오늘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아이누들이 개간한 손바닥만 한 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널찍한 밭이 한 순간에 완성됐다.

아이누들은 넓은 토지를 이용해 곡물 경작과 목축을 반반 정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도 곡물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작지의 지력 하락에 대비해 휴경지와 목초지를 충분히 갖추려는 의도로 밭을 개간했다.

“너희들이 고향 섬으로 돌아온 다음 발명됐다. 삽차와 밀차, 경운차라고 하는데 밭과 도로를 만드는데 쓰일 거다.”

“고산국에서도 계속 발전하고 있군요. 저희들도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분발한다거나 열심히 한다고 저런 중장비가 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학생 출신 젊은이들이 앞서간다고 자만하다가 이번에 반성할 기회는 된 것 같았다. 사관학교 졸업생 몇 십 명 정도로 아이누 섬이 발전하리라고 이민호는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아이누의 젊은이들이 왕립대학교나 사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합이다. 제도나 풍습을 바꿔서 그게 더 좋다면 일반 아이누들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바꿔나가라.”

“그렇게 늦게 발전하면 저희들은 언제 고산국처럼 되겠습니까?”

아이누 청년들이 비교 기준을 고산국 왕도인 고북으로 삼는다면 언제나 불만에 쌓일 것이었다. 이민호는 이들을 다독여주기로 했다.

“너희들이 늙어죽기 전에는 고산국처럼 도시와 공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괜히 서두르다가는 내전이 벌어져 더 후퇴한다. 이게 더 무섭다. 사관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느냐?”

“그렇긴 합니다만, 이왕이면 빨리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더 빨리 발전시키고 싶다면 교육에 중점을 두든지. 교육은 가장 느린 길이 아니라 가장 빠른 길이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사관학교 출신자들 사이에 조급증이 퍼져 있었다. 발전 속도 차이를 두고 다투는 보수와 진보의 일반적인 논쟁 수준이 아니라 자칫 전쟁으로 번질 수 있어 이민호가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잘 알겠지만 내분은 멸망의 지름길이야. 조금 빨리 가려다가 아주 빨리 가는 수가 있다.”

교통사고 예방 표어 같은 소리를 해서 쉽게 설명해줘도 아이누 청년들은 못 알아들었다. 멍청이들이 이렇게 잘난 척을 해대니 이민호가 보기에 몹시 걱정됐다.

아이누 청년들은 아이누 섬에서 평생 살아온 늙은이들을 멍청이, 이민호나 고산국 사람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민호가 보기에 고산국에서 배우고 돌아온 아이누 청년들은 고산국 시골 총각들보다 못했다.

“만약 너희들끼리 싸우면 내가 너희를 멸망시키겠다.”

“아이누끼리 싸울 일은 없을 것임을 국왕전하께 약속드립니다.”

아이누 청년들에게 협박은 아주 잘 먹혀들어갔다. 그러나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았으니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들은 초기에 고산국에서 유학한 것을 기득권 삼아, 나중에 더 제대로 공부하고 돌아온 후배들을 무시하거나 억누를 것은 안 봐도 빤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들을 통해 차차 발전해나가는 법이었다.

이민호는 너른 평원이 펼쳐져 있는 삿포로와 동부를 개발하기 위해 다시 배에 중장비들을 태웠다. 아이누 섬 북부보다 훨씬 넓어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드넓은 평원이 그 두 곳에 있었다.

다음 날 삿포로에 도착하니 아이누들이 해협 건너 혼슈 북단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때마침 이민호가 함대를 몰고 도착하자 역시 세상 모든 곳을 관조하는 왕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니까 혼슈 북부 아이누 영토에 일본인들이 살고 있단 말이야? 아이누들은 왜군을 남쪽으로 내몰려다 두 번이나 실패했고?”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도와주소서.”

일본인들이 역시나 약속을 어겨서 이민호는 몹시 화가 났다. 삿포로에 중장비를 내려놓은 다음 아이누 전사들을 승선시킨 함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전선에 탄 아이누 전사들은 오랜만에 고산국 음식을 다시 먹게 돼서 기뻐했다.

“아이누어로 아오모리, 일본어로 우토 촌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오후에 출발한 함대는 다음 날 오전에 무쓰 만 깊이 들어왔다. 잔잔한 수면과 그 주변에 흩어진 어촌의 풍광이 무척 아름다웠으나, 일본인들은 여러 가지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이곳 풍광이 아름다운 것도 오늘로서 끝났다.

“이봐! 아오모리에 아이누가 사나?”

“소수 아이누가 살더라도 일본인들과 함께 지낸다면 아이누보다 일본인에 더 가까운 자들입니다.”

이민호가 아이누 족장들에게 묻고 있는데 어촌에서 배 한 척이 빠르게 다가왔다. 함대가 긴장한 가운데 그 배에서 사무라이가 외쳤다.

“고산국 국왕전하! 이 지역 영주 쓰가루 우쿄다이부 다메노부 님의 전령이오!”

“우경대부는 종5위 하 관직명이며, 쓰가루 다메노부가 개명 전에 난부 우쿄노스케로 불렸습니다. 임진왜란 전에 이 지역의 다이묘가 된 자가 맞습니다. 일본 정벌이 끝나면서 남쪽으로 옮겼다가 최근에 다시 돌아온 모양입니다.”

항법사가 일본 영주목록을 확인하면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이민호는 애타게 외치는 사무라이 전령을 무시하고 국왕좌승함 승조원들에게 지시했다.

============================ 작품 후기 ============================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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