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30화 (379/1,000)

00430  47. 1597년  =========================================================================

“남들이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어 하는 그런 청년들을 모아주시오. 싸움을 두려워하지는 않되 함부로 싸움을 걸지도 않는 신중한 자들로 말이오. 식량이 부족하다고 원주민 마을을 약탈하면 안 되기 때문이오. 그들도 언젠가는 우리 백성이 될 것이오.”

“칸께서 송화강과 흑룡강 북쪽 땅을 영토로 편입하기 전에 그곳 사정을 자세히 알기 위해 보내시려는 모양이군요. 제 자식 놈을 포함해 일하기 싫어하는 놈팽이들로 자원자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동해국 여진족들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시베리아 원주민들까지 통치할 생각을 하니 이민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만약 매년 영토를 순행한다면 일 년의 절반 이상을 시베리아에서 보내야 할 것이 틀림없었다.

“영토를 넓힐 생각은 별로 없지만 껄끄러운 나라가 들어오기 전에 막으려는 계획이오. 그리고 북쪽에 얼음바다가 과연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소.”

“북쪽 땅 끝에 있다는 얼음바다라면 몹시 멀고 험난한 길이 되겠습니다. 그 일에 맞는 최고의 청년들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민호는 시베리아 지도를 작성하고 싶었다. 당장 개발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의 동진을 막을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미리 해둬야 했다.

고산국과 에스파냐, 포르투갈과의 모피 무역으로 인해 러시아의 동진이 멈췄더라도 잠시일 뿐이었다. 다른 산업이 없는 러시아는 반드시 우랄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를 탐험한 다음 정복하게 되어 있었다.

이민호의 장기적인 목적은 러시아의 동진을 적당한 선에서 막는 것이었다. 그 넓고 험한 땅은 방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시베리아 전체를 영토로 편입하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었다. 그저 러시아의 모피 탐험대를 한두 번 막아내면 러시아로부터 고산국 영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딱 거기까지만 신경을 쓸 생각이었다.

“탐사대 지원자들이 모이면 지도 그리는 법을 며칠 교육시키겠소. 날이 풀리면 첨사가 탐사대를 몇 개 집단으로 나눠 출발시키시오.”

“칸의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청년 탐사대가 출발하기 전에 미리 흑룡강 너머 최대한 먼 곳까지 식량을 추진해놔야겠습니다.”

여진족은 휴대 식량으로 말린 고기인 육포와 몽골인들처럼 고깃가루를 주로 썼다. 최근 고산국에서 곡식이 충분히 들어온 다음부터는 절반 정도를 미숫가루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럴 필요 없소. 일인당 말 다섯 마리를 끌고 가더라도 모자랄 것이오. 아예 처음부터 직접 사냥해서 식량 대부분을 충당해야 할 것이오.”

“북쪽 바다가 그렇게 멉니까?”

첨사 아오지도 젊었을 때 꽤나 싸돌아다녔다고 자부했지만 식량을 실은 예비마 4필로도 부족하다면 그 거리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민호는 태연하게 말했다.

“방향에 따라 왕복 8천 리에서 일만 리 정도 될 것이오. 여름에도 바다에 얼음이 어는 곳이오. 거기 사는 곰은 눈과 얼음 색깔에 맞춰 흰색이라오.”

“흰곰은 주변에서도 잡힙니다.”

“흑곰이나 불곰들 사이에서 가끔 태어나는 흰곰 말고 전부 다 흰곰이 사는 지역이 있소.”

알비노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이민호가 말한 것은 북극곰이었다. 네덜란드가 북극항로를 개척할 때 세 번 다 막아낸 철벽의 수비수였다.

소문이 퍼졌는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아사달 석성 정문 밖에 탐사대에 자원하는 여진족 청년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자기들끼리 벌써부터 선발 경쟁이 시작돼 여진족 청년들이 말을 달리고 활솜씨를 뽐내면서 약한 자들을 자진 탈락시켰다. 이민호가 아침을 먹고 석성 정문으로 나왔을 때는 60명밖에 남지 않았다.

“칸께서 시키실 일이 있다면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다들 씩씩해 보여서 아주 좋다. 평균 열두 명씩 다섯 집단으로 나뉜다. 마음에 드는 사람끼리 모여라.”

여진 청년들이 대충 열 명에서 열다섯 명까지 뭉쳤다. 이민호는 억지로 열두 명씩 나누지 않고 자연적으로 모인 그 집단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무리대장도 자기들끼리 협의하더니 자연스럽게 뽑았다.

“봄이 되면 아주 멀리, 북쪽 얼음바다까지 탐험할 것이다. 겁나는 자는 지금이라도 빠져도 좋다. 왕복하는데 대여섯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출발할 때 은 스무 냥을 일괄 지급하고, 살아서 돌아오면 서른 냥을 더 주겠다. 좁쌀 5백 석 정도 되려나?”

“우와!”

대여섯 달 동안 고생해서 최소한 여진족 장정 10년치 수입이 생기는 일이라 청년들이 무척 기뻐했다. 동해국이 세워진 이후 살기에 많이 좋아졌다지만 이곳도 역시 여진 지역이라 아직은 가난한 편이었다.

“너희들이 할 일은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칸! 산이나 강 같은 지형을 종이에 그려오면 되는 간단한 일입니까?”

“지도를 그리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 너희들은 닷새 동안 측량 기구를 다루고 지도를 작성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여진족 청년들이 다들 돌대가리는 아니었고, 그저 처음 접하는 도구에 적응이 느린 것뿐이었다. 끝내 측량도구 사용법과 지도 작성법을 깨우치지 못한 청년이 절반을 넘었다.

제대로 지도를 그릴 만한 청년들에게 은 두 냥을 지급하고 며칠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눈이 뒤집힌 나머지 청년들에게 집중 교육을 시켰다. 간단한 시험만 통과하면 받을 은전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도 끝내 배우지 못한 청년들이 3분의 1이나 남았다. 그것으로 지도 작성 교육은 종료됐다.

그 다음 화승총 발사 교육을 시켰다. 동해국을 세웠을 때 방어용으로 아오지 첨사에게 화승총 몇 백 정을 넘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화승총은 이전부터 동해국에 살던 아오지 첨사의 마을 사람들 위주로 배분이 돼서 청년들에게는 화승총이 없었다.

- 타앙!

“어이쿠!”

이론과 장전 교육을 마친 다음 첫 발을 쏘면서 뒤로 나자빠지는 것으로 사격훈련이 시작됐다. 젊은이들이라서 새로운 무기에 금방 적응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무기도 아니고 아오지 첨사의 마을 사람들, 이른바 국인(國人)들과 고산국 병사들, 일명 칸의 군대가 한 달에 한 번씩 사격 훈련하는 것을 구경했기에 신기한 것도 아니었다. 청년들이 화승총 사격에 익숙해지면서 고산국 병사들이 사용하는 보병총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평원에서는 활을 쏘면 된다. 그러나 숲에서 싸울 때나 적이 목책에 숨어서 도발해온다면 총이 더 유용할 것이다. 50보 거리에서 표적 네 개 중에서 두 개를 명중시킨 자들에게 은 한 냥씩 주겠다.”

은을 받으려고 눈이 벌건 여진족 청년들에게 사흘 동안 사격 훈련만 시켰다. 마지막 날에 4발 중 2발을 명중시킨 여진 청년이 60명 중에 딱 두 명 나왔다. 나선정벌에 동원된 함경도 포수들과 비교하면 형편없었지만 이 정도로 충분했다.

“탐사대에게 지역을 배분했으니 아오지 첨사가 적당히 날이 풀리면 출발시키시오.”

“예. 맡겨주십시오. 송화강과 흑룡강 유역은 예전부터 직접 정복을 하지 않더라도 통치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북쪽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민호가 갈 곳이 많아 어느덧 떠날 날이 다가왔다. 선착장에서는 여진족들이 모피를 전선과 수송선에 끊임없이 실어 날랐다.

“충분히 부유하게 되기 전까지는 세금을 안 걷을 테니 북쪽 사람들은 단순히 교역을 계속한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오.”

“세월이 흐르면, 아마 한 세대만 지나면 북쪽 주민들도 칸의 진정한 백성으로 신속할 것입니다.”

“그럼 좋지만, 아니더라도 크게 상관없소.”

앞으로 시베리아 이름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 이민호는 고민에 빠졌다. 흑룡강 북쪽 땅보다는 시베리아가 어감이 훨씬 좋아서 입에 착 달라붙었다.

이민호가 아사달을 떠나 함대를 동쪽으로 향했다. 연해주라 대충 이름 붙인 땅에서 백산 3부 여진족들이 살고 있었다.

연해주에 넓게 퍼져 사는 압록강부, 주셔리부, 너연부가 각각 항구 하나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에는 바다가 얼어 가장 남쪽의 압록강부가 위치한 항구만 통행이 가능했다.

“칸께서 직접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압록강부 여진족들이 바다가 반쯤 얼어붙은 항구에 말을 타고 몰려나왔다. 그런데 여진족마다 말안장 밑에 호랑이 가죽을 깔고 다녔다. 소년들이나 여자들은 신분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표범 가죽을 말안장에 깔고 다녔다.

이민호가 만나는 여진족 사람들마다 다투어 대호 가죽을 바치려 했다. 자기들이 지난 일 년 동안 잡은 호랑이 가죽 중에서 가장 큰 가죽을 골라서 바치는 것이다.

이민호는 가죽을 받을 때마다 은을 하사했다. 아오지가 귀띔한 바에 따르면 대호 가죽은 아사달에서 은 7냥에 거래된다고 해서 10냥씩 주어 공물을 바치는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조선에 가져가기만 하면 면포 400필 이상으로 가격이 뛰어오르는 것이 호피인데, 일반 호랑이보다 훨씬 커다란 대호 가죽이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에 가져가면 그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호랑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이오?”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애나 여자들에게 위험한 짐승이라 마을 근처에 출몰하는 호랑이부터 우선해서 잡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다른 사냥은 거의 안 하고 모든 부족 사람들이 호랑이 사냥을 하면서 그 가죽을 팔아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이민호는 호랑이 한 마리의 활동 영역이 꽤 넓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동네 호랑이들은 남의 영역을 별로 존중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한 번 사냥 나가서 두세 마리 이상 잡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너무 많이 잡아서 호랑이의 씨를 말리지는 마시오.”

“연해주에서는 절대로 호랑이가 씨가 마를 리가 없습니다. 알 낳으러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 떼처럼 많기 때문입니다.”

백산 3부 여진족들은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호랑이 개체수가 격감한 백두산이나 압록강변보다 훨씬 살기 좋다면서 이런 땅에 정착시켜준 이민호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살기 좋은 이유는 사냥할 호랑이가 많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에 백산 3부가 뭘 먹고 사나 걱정돼서 왔는데, 당분간은 걱정이 없을 것 같소. 혹시나 호랑이 숫자가 줄어들면 다른 방법으로 먹고 살아야 할 테니 그때 다시 생각합시다.”

“호랑이가 줄어들면 큰일일 것 같습니다. 지금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니 부족 사람들을 모아 호랑이를 적당히 잡자는 식으로 합의를 이끌어 내겠습니다.”

그날 오후 호랑이가 항구 마을 근처에 나타나 호랑이 사냥을 한다기에 이민호가 구경 갔다. 여진족 창수 3명이 연계해서 간단히 호랑이를 찔러 잡는 모습을 본 이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총으로 쏴서 잡는 것보다 훨씬 쉽게 잡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호랑이가 사람 3명을 상대로 도망가지 않고 싸우려 해서 더 쉽게 잡는다고 봐야 했다. 조선에서는 호랑이 한 마리를 잡으려면 몰이꾼들 수십 명이 동원되어야 하는 대규모 사냥이 되었고 호랑이를 추적하느라 사냥 시간도 많이 걸렸다.

“칸! 아사달에 갈 때마다 아오지 첨사님이 화승총으로 호랑이를 잡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더 어렵습니다.”

“창으로 잘 잡는데 화승총은 왜요?”

“창으로 잡으면 아무래도 가죽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냥할 때는 보통 두 명이 견제하는 사이 한 명이 호랑이 가슴을 찌르는데, 견제하는 중에 가죽이 많이 상합니다. 반면에 화승총을 쓰면 깨끗이 한 방에 잡을 수 있어서 가죽 품질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화약 냄새 때문에 호랑이가 쉽게 눈치 채고 도망갑니다.”

총을 쓴다고 호랑이를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랑이도 머리가 좋은 동물이라 사냥꾼을 역으로 사냥하는 수가 많았다. 맹수 사냥꾼이 오랜 기간 명성을 유지하기란 극히 어렵다. 중간에 맹수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활로 잡으면 어떻겠소?”

“조선 활과 조선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진족은 어렵습니다.”

이민호는 단발 보병총을 민간에 넘길 시기가 온다면 백산 3부 여진족들에게 가장 먼저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보낼 북미나 호주 개척민보다 연해주의 백산 3부 여진족들이 훨씬 더 위험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

“혹시 호랑이 몇 마리를 사로잡을 수 있겠소?”

“칸께서 원하신다면 잡아드리겠습니다.”

이민호는 여진족들이 함정을 준비해서 호랑이를 잡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진족들은 말 타고 숲을 달리며 호랑이가 놀라서 튀어나오게 한 다음 그물을 던져서 쉽게 잡았다.

한나절에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아 튼튼한 우리에 실었다. 당연히 고산국 동물원 행이었다. 자연농원처럼 호랑이와 사자를 풀어서 전시하는 사파리를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

“호랑이를 마치 토끼 몰이하듯이 쉽게 잡는 것 같아요.”

“민영이도 놀라는구나?”

“여진족도 출신 부족마다 특기가 달라요. 평원에서는 제가 말도 잘 타고 훨씬 더 잘 싸울 거여요. 주인님은 그런 것도 모르세요?”

민영이 괜히 토라져서 이민호가 한참 동안 달래줘야 했다. 민영이 얼마 전에 임신한 것 같다면서 몸에 손도 못 닿게 했다.

다음 날에 주셔리부, 그 다음 날에 너연부 사람들이 와서 이민호에게 대호 가죽을 공물로 바쳤다. 일반적인 호랑이와 대호는 다른 짐승 같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체급이 달랐다. 이민호는 공물로 호피를 바친 사람들에게 은전을 주었고, 다들 몹시 기뻐했다. 이민호도 기뻤다.

============================ 작품 후기 ============================

만주,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의외로 할 일이 많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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