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6 47. 1597년 =========================================================================
다음 날 아침 일찍 교동도를 출항한 함대는 한강 하류로 진입했다. 이민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하류로 내려온 해동상단 배에 탄 상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함대와 상선들이 한 줄로 길게 이어지며 마포나루에 도착하는 사이 구경꾼들이 한강변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산국 국왕전하. 방문을 환영합니다.”
예조판서 이덕형이 호위 군사들을 이끌고 직접 마중 나왔다. 특별히 취타대가 마포까지 나와서 이민호와 사신 일행을 환영했다.
이민호는 호위에 더해 기병중대를 이끌고 내렸다. 동지사 사신들도 같이 내리는데 짐이 워낙 많아 하역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부와 하인들이 쇄마에 짐을 싣는 것을 보면서 이민호가 이덕형에게 항의했다.
“한강 진입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정박하는 곳이 교동도인데 하필 임해군을 그곳에 유배한 이유가 뭐요?”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임해군과 고언백 때문에 봉변을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임해군을 다른 곳으로 이배시킬 것을 주상전하께 상주하겠습니다.”
이덕형이 사과하는 중에 억지로 웃음을 참아서 더 얄미웠다. 임해군 때문에 이민호가 피곤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함경도 장수들이 치를 떨고, 백성들이 왕자에게 학을 떼다 못해 반란까지 일으켰을까 싶었다. 열 받은 이민호가 계속 투덜거렸다.
“교동 현감에게 고가 역도로 몰릴 뻔했잖소?”
“임해군이 안 좋은 쪽으로 워낙 유명해서 전하를 그렇게 오해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임해군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고언백을 의금부로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내려왔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혹시나 임해군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주상전하께 임해군이 형님이라 어떻게 하지는 못하실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나라 국왕을 봉변당하게 해서 국내 정치에 이용할 생각이오?”
“그것은 아닙니다. 물론 임해군에 대한 비난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면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당연히 조선이 손해 볼 것이 아닙니까? 의도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능력이 되면 그 핑계로 조선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라고 이덕형이 노골적으로 충고해준 셈이었다. 이민호는 그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내 이번에 작정하고 조선에 손해를 끼치겠소.”
“이번에 저희가 잘못했으니 그럴 의향이시라면 그렇게 하시지요.”
원래 역사에서는 1604년 고언백이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된 다음 광해군이 즉위하고 나서 임해군 문제로 1609년에 처형됐다. 그러나 선무공신 책록 전에 광해군이 즉위했으니 고언백이 공신이 되기는 틀렸다.
현재 조선 조정에 공신청이 세워져 몇 년째 활동 중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문무관료와 백성들 중에서 공신을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선정 작업은 순조롭게 이뤄졌으나 큐슈에 원정을 간 조선군 장수들을 포함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갖고 논의가 길어지고 있었다.
대낮에 조선군 취타대를 앞세우고 이민호와 호위들, 기병중대에 동지사와 짐꾼들, 이덕형이 데려온 군사들까지 해서 행렬이 꽤나 길어졌다. 청파 들을 지나 용산에서 행렬이 나뉘어 이민호 일행은 서소문으로, 동지사 일행은 남대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취타대가 예상과 달리 동지사가 아니라 이민호의 앞길을 선도했다. 교동도에서 봉변을 당한 이민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광해군이 특별히 취타대를 보낸 모양이었다. 조선 사람들이 연도에 늘어서서 활짝 웃음을 보내주어 이민호는 그 어떤 환영보다 기분이 좋았다.
“도련님! 어서 오십시오!”
수원에서부터 이민호를 모신 늙은 종들이 서소문 저택 문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호가 장성해도 여전히 어린애 보듯 하는 중년의 종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민호를 맞이했다.
“그 동안 잘들 지냈는가? 고산국에 와서 편히 살라니깐?”
“이렇게 가끔 도련님이 오시면 저희들이 모셔야지요. 고산국에는 자식들이 가 있지 않습니까? 그놈들이 도련님을 잘 모시고 있습니까?”
“다들 훌륭한 장수가 됐다네. 종으로 있기에는 능력이 아까워서 말일세.”
“모두 도련님 덕분입니다.”
자식들이 보내는 편지와 인편을 통해 자식들 소식을 매번 듣고 있으면서도 주인의 입을 통해 직접 듣길 원하는 종들에게 좋게 말해주었다. 조선에도 돌아올 집이 있어서 이민호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민영과 여진족 호위들도 고향에 돌아온 듯 몹시 들떴다. 비록 수원의 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집에도 좋은 추억이 많이 새겨져 있었다. 민영은 동침한 다음 아무래도 이번에 임신할 것 같다고 했고, 마침 날짜가 맞아서 이민호가 민영을 한 번 더 안았다.
“이 집에 다시 안 오실 생각이시죠?”
“왜 그렇게 생각해?”
“주인님이 쓸쓸해 보여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민호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고향이라지만 국왕이 된 이상 조선에 직접 올 일은 사실상 없었다. 이번에도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온 셈이었다.
다음 날 광해군과 신년하례를 나누고 회견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회견장에 감돌았다.
그러나 이민호가 임해군과 고언백 때문에 기분 나쁜 척을 해서 거의 일방적으로 광해군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광해군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민호에게 몇 번이나 사과해야 했다.
이민호가 광해군의 눈치를 살펴보니 임해군을 탈출시킬 의도를 노출한 고언백은 이미 죽은 목숨 같았다. 겨우 30명의 사병을 키우며 왕권을 욕심낸 임해군이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임해군에게 붙은 고언백이나 마찬가지로 제 정신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내세워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함부로 빼앗는 사람들치고 정상인은 없었다.
회견이 진행되면서, 임해군의 목숨을 지키려는 광해군은 이민호에게 몇 가지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채굴 중인 금광과 은광의 경영권을 더 확고히 했으며, 광산에 부과된 현재의 낮은 세금도 영구히 고정시켰다.
그리고 양평의 잣나무 산지 주변 땅을 추가로 매입해 두 배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거의 2년마다 돌아오는 잣 수확기에 주변 농민들을 고용하므로 조선 입장에서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수확기에 잣나무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1년차는 한 달에 은 반 냥, 3년차부터는 한 달에 은 석 냥으로 수입이 뛰었다. 잣을 따기 위해 사다리나 갈고리 등 온갖 물건을 동원했지만 잣나무가 너무 높이 자라 결국 사람이 직접 나무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추락사고가 나면 치료 후에 농지를 사주는 보상을 해줬으나 양평 백성들이 잣 수확기마다 고용되고 싶어서 사고는 극히 적었다.
회견이 끝나고 한 시간 정도 쉰 다음 실무진과 본격적인 무역협상을 했다. 류성룡이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에 내려가서 참 다행이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임해군과 고언백 사건으로 건수가 제대로 잡혔으니 이 기회에 고산국에 유리한 협정을 맺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나 협상장에 나온 사람들이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같은 사람들이었다. 원래 역사와 달리 정인홍 등 의병장 출신 북인이 조정을 장악하지 못했다. 예국 참판이 열심히 도와주긴 했으나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로 손꼽히는 관료들인 세 사람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었고, 이민호도 이들을 상대하느라 몹시 피곤했다.
“고산국이 독립국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고산국은 더 이상 조선의 속국이 아닙니다.”
이민호나 최 참판이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항복이 실무협상에서 몇 번이나 강조한 말이었다. 이항복이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러니 당연히 조선 땅에서 교역할 때 그 액수에 따라 조선에 세금을 내야 합니다.”
“애초에 조선과 고산국 사이에 무관세 교역을 한 이유가 있었소. 항구 입항료나 선착장 이용료가 사실상의 세금 아니었소?”
“임진왜란 때 고산국에서 많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금은 세금입니다. 조선의 상인들이 상거래 때마다 세금을 내고 있는데 고산국 상인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 됩니다. 이번에 반드시 시정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해동상단도 사실상 전하께서 소유하고 계시나 상단의 국적은 분명 조선이므로 조선에 세금을 내야 합니다. 해동상단은 고산국에도 세금을 내지 않고 이익을 나누는 것에 불과하니 이중과세 금지를 말씀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이항복과 이덕형이 합당한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반면 이원익은 현실을 감안해 합의를 이끌어가는 식이었다. 상대적으로 이원익과 대화가 통한다고 볼 수 있지만 따져 보면 더욱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원익은 이런 식으로 이민호를 설득했다.
“전하. 고산국과의 교역 규모가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산국 배들도 매년 커지고 있어서 예전에 했던 대로 배의 척수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그건 인정하겠소.”
“그러니 선착장 사용료를 없애지는 않더라도 대폭 줄이고 정상적인 교역에 따른 세금을 납부하면 어떻겠습니까? 고산국이 조선과 특수한 사이임을 감안해 다른 나라에 비해 세금 문제에서 특혜를 부여하겠습니다.”
“특혜란 조선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사라지겠지요.”
“고산국 국왕전하께 여러 모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록 고산국과의 교역에 세금을 부과하더라도 조선에서는 앞으로도 그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를 선무공신에라도 끼워주겠다는 건가요?”
조선의 고관들인 세 사람이 깜짝 놀랐다.
“예? 바로 며칠 전에 결정된 건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명나라와 고산국에서 외국인을 공신으로 선정한 이후 조선에서도 따라야 할지 그 동안 논란이 많았습니다.”
“예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을 정벌한 뒤에 명나라와 고산국에서 먼저 공신을 책봉했다. 이민호와 계복, 감동과 감불이 명나라의 공신록에 이름을 올렸고, 조선인 중에서는 이순신이 유일했다. 고산국의 공신에는 외국인으로서 이순신과 김시민을 비롯한 조선 장수들 여러 사람, 그리고 명나라 장수로는 이여송과 유정이 올랐다.
“전하와 도원수 권율,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이렇게 세 사람이 선무공신 1등에 선정됐습니다. 다만 순서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아무래도 주애공 전하를 첫째로, 이 통제를 두 번째로 올려야겠지요?”
“무슨 말씀을! 저는 세 번째로 족합니다. 누구든 이 통제를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이오.”
마침 협상장에 나온 사람들이 공신청의 도제조, 제조, 부제조를 맡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고위 관료들이 여러 직함을 겸임했다.
“전공은 그렇습니다만, 전체 전쟁에 끼친 영향력은 전하께서 더 많이 행사하셨습니다.”
“돈과 무기, 병력을 갖고 움직인 저 같은 사람이 첫 번째가 되어서는 안 돼요. 그런 것 없어도 나라에 충성하려고 불철주야 고심한 분이 앞에 서는 것이 나을 것이오.”
“저도 공감합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선무공신 1등에 이순신, 권율, 이민호, 2등에는 조선 장수들 외에 이여송과 유정, 계복이 들어갔다. 감동과 감불, 고산국으로 이민 온 오응태는 3등에 책록됐다.
이순신은 고산국과 명나라에 이어 조선에서도 공신으로 책봉됐다. 세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선무공신으로 선정된 조선인은 이순신이 유일했으며, 세 나라 백성들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여송과 유정은 명나라와의 외교관계상 이름을 올려준 것에 불과했다. 이민호는 본인이 조선의 공신이 된 것보다 이순신이 일등공신 첫 번째에 이름이 오른 것을 더 기뻐했다. 나중에 땅과 노비를 받아, 노비를 해방해 명목상의 소작농으로 삼았다.
다시 무역협상이 지루하게 계속됐다. 양쪽에서 적당히 공감대를 형성했을 때 이원익이 이민호에게 제안했다.
“전하! 무역에 대한 과세권은 거래가 이뤄진 항구의 주권국이 갖는 것이 맞습니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등해야 하고, 정책에 부응해야 합니다. 항구 사용료를 수리비와 운영비 정도로 대폭 줄이는 대신 무역 상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상품 가액의 5푼으로 하고자 합니다. 만약 조선에 수입될 경우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만한 면포와 쌀 등 몇 가지 상품에 한해서는 5푼에서 5할 사이로 수시로 조정하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면 동의합니다.”
항구 사용료를 대폭 낮춰 실비만 받고 세금도 겨우 5퍼센트라고 해서 이민호가 얼른 받아들였다. 예상보다 훨씬 적은 세율이었다. 명나라나 왜국에서 수입한 물품에는 최소 1할이 세금으로 징수됐으니 고산국에만 특혜 세율이 부과된 게 맞긴 했다.
“고산국에서는 앞으로도 무역상품에 과세를 하지 않으실 겁니까?”
“예. 수입품에 과세하면 전체적인 물가가 오를까봐 걱정이라 그렇습니다.”
“조선에서도 요즘 물가가 올라서 걱정입니다.”
“은이 너무 많이 풀리면 그런 경우가 생깁니다. 명나라의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상품에 비해 은이 너무 많아서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은값이 하락한 셈이지요.”
에스파냐도 신대륙에서 은을 실어올 때는 좋았지만, 은이 너무 많아지면서 가격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가격 폭등이 일어났다. 은 가격 폭락이 산업혁명에 기여를 했는지 이민호는 쉽게 공감하지 않았다.
“은이 나라에 많이 유입된다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겠군요.”
“뭐든 적당한 비율이 좋은 것이지요.”
중상주의 학파의 주장은 여기서 이미 틀려먹었다. 조선과 명나라는 은이 너무 많이 유입돼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었다.
특히 명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은이 그렇게나 많이 유입됐지만 국가가 부강해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명나라는 국방비가 모자라 쩔쩔 매고 백성들이 시장에서 거래할 물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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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주인공이 직접 조선에 갈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하지만, 건주여진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아직 모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