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3 47. 1597년 =========================================================================
47. 1597년
정유년, 1597년 음력 1월이 되었다. 외부로 진출하기 전에 내부를 먼저 다독이는 것이 제대로 된 일의 순서였다.
그래서 이민호는 명나라와 조선, 그리고 동해국과 아이누 섬, 큐슈 등을 연달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고산국은 내부도 아닌 집에 불과했다. 자고로 집은 여자에게 맡기고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돌아 다니시겠다 이 말씀이시죠?”
“남자가 밖에 좀 싸돌아다닐 수도 있지. 나 혼자 재미있자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다 후세를 위해서야.”
혜영이 날카롭게 노려보자 이민호는 간이 콩알 만해졌다. 그때 침대 위를 뽈뽈 기어 다니던 개똥이가 힘겹게 일어났다. 뒤뚱거리는 개똥이를 따라다니느라 혜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귀한 자식일수록 아명을 천하게 짓는 당시 관습에 따라 말똥이, 쇠똥이, 도야지 등이 이민호 아들들의 이름이었다. 개똥이는 고종 황제의 아명이었고,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였다. 이민호가 맏아들을 열심히 응원하는데 혜영이 고개를 돌렸다.
“다녀오세요. 고산국 본토가 국내라고 생각한 제가 속이 좁았어요.”
“미래를 생각한다면 수도를 북미로 옮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이민호가 어렵게 입을 열었는데 혜영은 이미 수도 이전을 충분히 고려한 듯 놀라지 않았다. 다만 필리핀 북부나 호주가 아니라서 의아해했다.
“건국 초에 기반을 옮길 수도 있어요.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북미도 장점이 많아요. 북미라면 서해안이겠죠?”
“북미 동해안일 수도 있어. 일단은 서해안을 개척한 다음에 생각해보자.”
혜영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사이 유모가 개똥이를 맡아 어르고 있었다. 유모는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아이를 여섯이나 건강하게 키워낸, 유모계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다른 유모 하나는 아이 넷을 키워낸 데 불과했지만 모두 아들이라서 더 인기가 좋았다.
“여자들도 그렇지만 백성들도 안정적인 생활을 좋아해요.”
“맞아.”
고산국 백성들은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런 백성들이 과연 이민호를 따라 거친 태평양을 건너 북미 대륙으로 이주해 고생할 각오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오래 된 건국신화들을 살펴보면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애써 건설한 첫 정착지도 버리고 지도자를 따라 잘도 이주했다. 그러나 첫 정착지가 좁거나 농사짓기가 어려워서 이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에 한했다. 반면에 고산국은 모든 것이 풍요로워서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북미에는 사나운 원주민들도 있고 유럽에서 적지만 꾸준히 개척민을 보내고 있어요. 북미로 이주한다면 원주민과 싸우고 유럽 개척민들과도 싸워야 해요. 백성들이 천국 같은 이곳을 버리고 북미로 옮기고 싶겠어요?”
“살기 너무 좋아서 백성들이 게을러졌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하지만 옮긴다면 첫 세대에 지금보다 훨씬 잘 살도록 해주고, 30년 이내에 열 배로 잘 살게 해준다고 약속하지.”
보통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안 믿겠지만, 이민호는 황무지였던 고산국을 짧은 기간에 옥토로 가꾼 실적이 있었다. 장난기 어린 얼굴을 보면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크게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거의 항상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보다 열 배요? 그게 가능해요?”
“겨우 몇 년 만에 고산국을 여기까지 끌어올렸어. 북미 대륙의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이라면 그 이상으로 부유해질 수 있어. 더 늦기 전에 후세들을 위한 땅을 미리 선점해야 해.”
“유럽의 최강대국인 에스파냐로부터 영토를 매입하고, 그 에스파냐로부터 단단히 보장을 받고도 불안하신 모양이군요.”
“그래. 최소한 북미 동해안을 빠른 시일 내에 확실한 고산국 영토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나중에 유럽에서 차례로 건너올 이민자들이 고산국에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어. 아니면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계속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몰라.”
고민하던 혜영이 결정을 내렸다. 이민호의 의견에 동의해주면서도 어이가 없는 것은 여전했다.
“일단 내부 순행을 하고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세요. 세상에! 명나라와 조선까지 내부라고 생각하실 줄 몰랐어요.”
“조선을 외부라고 생각하면 고산국이 성립할 수가 없어.”
이민호는 자존심 죽여가면서 명나라와 조선, 특히 조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고산국 백성 대부분이 조선 출신이고 앞으로도 이민을 받아서 세를 불려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고산국 백성들이 열심히 아이를 낳고 있지만, 앞으로 20년 정도는 조선에서 더 뽑아먹어야 했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서 더 골치 아팠다.
1월 5일에 15척 함대에 선물을 비롯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북경으로 향했다. 예전에 외륜선으로 갈 때보다 훨씬 빨리, 이틀 만에 북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겨울이라 북경의 잿빛 하늘 아래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북경 사람들 얼굴이 예전에 보던 것과 많이 달랐다. 갖가지 표정이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마치 가면을 쓴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예전과 달리 추운 겨울에도 바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동지사 이조 참판, 자는 자릉, 호는 기재? 아! 중국어 통역이 아니라 문과 출신이었나?”
객관인 옥하관에 짐을 푸는데 조선의 동지사 일행이 아직 북경에 남아 있다가 인편을 통해 이민호에게 문안인사를 전했다. 이민호는 동지사 정사 박동량을 바로 그날 저녁에 옥하관으로 불러서 함께 식사를 했다.
“전에 봤을 때는 중국어를 하도 잘해서 기재 선생이 중국인인 줄 알았소. 그대 같은 인재가 동지사 정사를 맡았다니 적재적소라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이구려.”
“전하! 저는 이제 겨우 20대 후반입니다. 전하께서 기재 선생이라 불러주시면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자로 불러주십시오.”
“예. 그럼 자룡. 정말 반갑소.”
박동량은 1569년생으로 20살에 진사시, 21살에 증광문과에 합격한 인재였다. 중국어도 잘해서 임진왜란 때 병조좌랑으로서 선조 임금을 호종해 중국 장수들을 만날 때 자주 통역을 맡았다.
얼마 전에 도승지를 거쳐 지금은 이조참판으로서 동지사 정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선조 임금 시대에 등용된 모래알처럼 많은 인재들 중에서도 특히나 빠르게 승진한 사람이었다.
“동지사가 아직 북경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그렇지 않아도 예부에서 독촉이 이만저만 심하지 않습니다. 책을 더 사야 한다는 핑계로 출발을 늦추고 있습니다.”
박동량이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쟁국본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어이쿠!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소?”
쟁국본은 국본, 즉 황제의 후계자인 태자 책봉과 관련된 논란이었다. 명나라 대신들과 태후는 당연히 장남인 주상락을 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만력제는 정 귀비의 소생인 삼남 주상순을 밀었다. 주상순을 태자로 책봉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태정을 지속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민호가 관심 없다는 투로 말하자 박동량이 어이없어 했다. 명나라에서 태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서 하마터면 광해군도 차남이라는 이유로 정식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할 뻔했다.
“조선 입장에서야 누가 태자가 되든 상관없습니다만, 어서 천조가 안정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고산국도 마찬가지요. 그런데 요즘 조선은 어떻소?”
“전하 덕택에 위아래 두루두루 평안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그리고 일본과 무역을 통해 은이 명나라에 끊임없이 유입되다가, 어느 순간 한계가 다가오면서 은 시세가 폭락하고 명나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일본의 은은 절강성 항저우 등 명나라 해적이나 다름없는 밀수 상인들에 의해 명나라로 옮겨지고,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서도 흘러 나갔다. 조선은 명나라에 인삼을 수출하면서 그 이상 금액을 사치품 수입을 위해 소모했다.
그러나 이민호에 의해 일본이 망하면서 연간 660만 냥에 달하는 은의 유입이 끊길 뻔해서, 이민호가 그 부족분을 채워주고 있었다. 조선은 고산국에 시멘트, 선철, 해삼과 전복을 수출하면서 큰 흑자를 봤다. 여기에 더해 고산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 조선에 남은 친척들에게 송금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덕택에 조선은 큰 호황을 맞고 있었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이 끝나면서 회복기의 일시적인 호황이 아니라, 고산국과 무역을 하면서 꾸준히 흑자를 유지한 덕택이었다. 물론 흑자 대부분이 명나라로 흘러 들어갔다. 고산국 비단이 명나라 비단보다 비싸고, 조선인들은 전통적으로 명나라 제품의 품질이 더 우수하다고 여겼기에 비단은 명나라제를 선호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선의 경기가 활황이라서 조선 백성들도 잘 먹고 사는데 굳이 고산국으로 이민 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민자들은 이앙법으로 인해 광작이 점차 확산되면서 땅을 잃은 소작민이거나, 신분의 한계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중인 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고산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 숫자가 적은 탓에 조선 조정에서 직접 이민을 억제할 필요가 적었다. 인구증가로 인한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데 고산국이 숨구멍을 터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역을 조절해 조선을 가난하게 만들어 이민자를 쥐어짜는 방법을 이민호도 고민했었으나,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괜히 쥐어짰다가는 조선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이민 길이 막힐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성 황태후께서 주애공 전하를 모시고자 합니다. 가능하시다면 지금 즉시 자경궁으로 와 주십시오.”
박동량과 한창 대화를 나누는 중에 황궁에서 환관이 옥하관에 찾아와 이민호에게 고했다. 이민호와 박동량이 눈길을 마주쳤다.
“황태후께서 황자의 거처인 자경궁으로 오라고 하셨소. 당연히 후계 문제 때문이겠지요. 동지사는 내게 조언을 해주시오.”
조선 같으면 후계문제에서 신하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도 있으나, 가급적이면 온전히 왕실에 판단을 맡기려 했다. 괜히 후계문제에 관여했다가 신하들이 피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런 관습이 형성됐다. 바로 몇 년 전인 1591년에도 세자 책봉문제인 건저 문제로 윤두수와 윤근수가 삭탈관직 되면서 회령으로 유배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유교의 이념과 긴밀히 연결된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해 신하들이 장자 우선 원칙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무력을 사용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최소 두 세대 동안 신하들로부터 진정한 충성심을 이끌어 내기 어려워진다.
“조선과 명나라는 다릅니다. 지금은 어려워 보이나 황위는 결국 장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고맙소. 기재 선생.”
이민호는 호위들과 함께 선물을 싸들고 황궁으로 향했다. 이미 늦은 밤이라 황궁의 문 대부분이 닫혀 있었으나 자금성의 동문인 동화문은 불이 환히 켜진 채 열려 있었다.
동화문을 지키는 환관과 지휘사가 이민호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절도 있게 인사를 올렸다. 이민호는 환관을 따라 궁, 전, 각, 재, 헌 등의 이름이 붙은 여러 전각을 지나 자경궁으로 안내받았다.
“주애공! 어서 오시오.”
“황태후폐하! 손자사위가 할마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아유! 씩씩하기도 하셔라. 상아는 잘 지내오? 어찌 이번에는 동행하지 않으셨소?”
“물론 잘 지냅니다. 의용공주는 이번에 회임하여 황태후폐하께 인사드리지 못하는 불효를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여기 문안편지를 받으십시오.”
“오오! 경하드릴 일이오. 낙아. 이리 오너라.”
열여섯 살이나 먹은 소년이 쭈뼛쭈뼛 황태후에게 다가왔다. 어느 나라든 군주의 아들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다 못해 심하면 아무한테나 싸가지가 없기 마련인데 주상락은 전혀 달랐다. 주상락은 이민호 눈치만 살펴서 마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주눅 든 열 살 먹은 꼬마 같았다.
“낙아. 주애공 형님께 인사 올리거라.”
“왕자 상락이 주애공 형님께 인사 올립니다.”
이민호가 손사래 치며 먼저 허리를 숙였다.
“황제폐하의 장자이시며 앞으로 황상에 올라 억조창생을 이끄실 분이 어찌 일개 제후에게 먼저 인사를 한단 말입니까? 제가 먼저 인사 올리겠습니다.”
법적으로는 고산국이 독립국이었지만 형식상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남아 있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다 그렇듯이 이익이 있으니 명나라 중심의 조공체계에서 저마다 제후국을 자처했다. 고산국은 특히 많은 이익을 보고 있었다.
인사가 진행되는 동안 황태후가 기뻐하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주상락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민호에게 맞절을 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정말 고맙소, 주애공. 앞으로도 두 분의 우애 변치 말아주시오.”
“제가 비록 변방에 산다 하나 이미 황가의 일원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가진 자그마한 무력이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신명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망극한 말씀이오나 그리 말씀해주시니 든든하다오. 정말 고맙소, 주애공.”
주상락이 비록 장자라 하나 황제의 지지가 없어 몹시 위태로운 처지였다. 셋째 아들 주상순이 황태자로 책봉될 경우 가장 위험한 자로 낙인 찍혀 언제 어떻게 암살당할지 몰랐다.
============================ 작품 후기 ============================
1597년 정유년입니다. 원래 역사라면 임진왜란인데 내용전개 중에 전쟁이 이미 끝났는데도 복잡한 일이 꽤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서 길지는 않게 묘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