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7 46. 1596년 =========================================================================
황열 예방 백신이 완성됐다는 소식에 이민호가 왕립대학교 의과대학을 방문했다. 마카오에서 초창기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던 선교사가 의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번 황열 백신의 개발을 주도했다.
말라리아 예방약과 치료약은 남방 탐사대와 브루나이 유전 주둔군을 비롯해 열대 지방에서 활동하는 부대에서 이미 사용 중이었다. 흑인들도 귀향하기 직전에 예방약을 먹었고, 몇 안 되는 흑인 의사들이 치료약을 가져갔다. 적대적인 부족의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치료약을 쓰면 평화적으로 그 세력을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므부투에게 알려주었다.
“축하합니다, 전하. 이제 고산국의 확장을 가로막고 있던 마지막 빗장이 벗겨졌습니다.”
“수고하셨소. 고산국은 종교적 열정이 없으니 에스파냐보다는 확장을 자제할 것이오.”
에스파냐가 식민지를 개척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대외적인 명분은 선교였다. 로마 가톨릭 신앙을 세계인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그 침략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식민지 무역을 허락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선교 목적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더라도 에스파냐 정치인이나 상인, 모험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신앙을 타국을 침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에스파냐는 신을 위해 세계로 향했습니다. 고산국은 무엇을 위해 세계로 확장하는 것입니까?”
“인간을 위해서요.”
이민호의 대답을 듣고 학장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학장도 이민호를 잘 알기에, 인간은 신을 섬기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설교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학장도 에스파냐의 식민정책에 진저리치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고산국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예수회의 선교 사업이 무척 편해지지 않았소?”
“그 점에 있어서는 전하께 감사드립니다.”
이민호는 로마 가톨릭, 특히 건국 초기부터 고산국을 많이 도와준 예수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금 지원과 선교사 신변보호는 물론 심지어 브루나이와 자바 섬의 이슬람 국가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강요해 선교사들이 자유로이 들락거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도 고산국의 그늘 아래에서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는 것이 배가 아플 뿐이었다. 이민호는 이슬람 국가들이 종교 자유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마카오에서도 다른 종교인들이 선교의 자유를 누리도록 강권했다.
“비올레타 님처럼 교회에 자주 나오십시오, 전하.”
“바빠서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오. 그래도 성탄절에는 매년 가지 않소?”
“사탕 먹으러 성탄 전야 미사에만 나오는 아이 같습니다.”
이민호가 천주교회에 가는 만큼 이슬람 모스크에도 가고 절에도 들렀다. 심지어 이민호를 신으로 모시는 일본식 신사에 가서 이민호 신에게 고산국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다.
학장과 함께 의대부속병원에 들러 황열 환자 치료과정을 살폈다. 마카오와 마닐라에서 말라리아 환자로 오진해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이 고산국 왕도로 이송돼 치료받고 있었다. 환자들은 최근에 아프리카 혹은 남미에 다녀온 백인 선원들이었고, 이들 덕택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황열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노예무역을 통해 16세기에 남미에 퍼졌다. 유카탄 반도까지 황열이 퍼진 것은 의외로 빠른 16세기 전반이었고, 이후 유럽과 북미까지 번진다. 19세기 말까지 황열이 유행하면 시민들이 도시에서 도망쳐 나올 정도로 공포의 질병이었다.
“환자들이 백인들인데 황인보다 얼굴이 누렇게 떴군요. 황열 치료약은 개발했습니까?”
“아직 딱히 치료약은 없습니다. 환자의 열을 내리고 편안하게 쉬게 해주면 생존율이 높습니다.”
“치료약이 없으면 곤란한데. 말라리아처럼 얼른 만들어보세요.”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께서 도와주시겠지요.”
이민호가 의학자들이 실력이 형편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최소한 21세기 초반까지 황열 치료약은 개발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보낼 물량은 준비됐습니까?”
“예. 사흘만 더 있으면 1차분 생산이 완료됩니다. 생산 즉시 보내겠습니다.”
태평양 탐사대와 파나마에 갈 건설단도 전원 예방 백신을 맞기로 했다. 그리고 운하 건설에 참가할 원주민 자유노동자들도 맞힐 계획이라 백신을 꾸준히 생산하기로 했다.
이민호는 민영과 함께 왕립대학 교정을 걸었다. 궁성 내에도 내명부 소속 여자들을 위해 왕립 고등교육원을 만들어주긴 했으나 진짜 대학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모로 손색이 있었다.
그렇다고 왕의 여자들을 밖으로 내돌릴 수는 없다고 해서 교수들을 초빙해 강의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슬람 왕국의 하렘처럼 일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수업 시간에 빠지는 경우가 흔했다.
“여기가 대학 교정이구나. 공기마저도 자유로운 것 같다.”
“학생들 표정은 세파에 잔뜩 찌든 것 같은데요?”
민영이 한 말처럼 학생들이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면서 걸었다. 그래서 이민호가 지나가는 백인 학생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이봐! 학생들 표정이 왜 그래?”
“시험기간이잖아.”
백인 대학생이 귀찮다는 듯이 어깨에 올린 이민호의 손을 툭 치고 지나갔다. 교수들이 공부 하나는 제대로 시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산국 학생들은 비교적 쌩쌩했다. 수업의 반 이상이 조선말로 진행돼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더 어려운 듯했다.
마카오에서는 대부분 외국어로 수업이 진행됐는데 고산국에서는 반대로 외국인 교수들도 조선말을 익혀서 수업을 조선말로 진행하려 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국적이 너무 다양해서 결국 소재지 국가의 언어를 전체가 사용하게 됐다.
“민영이 대학 다니고 싶다 했지? 다닐래?”
“싫어욧!”
민영이 단번에 거절했다. 학기 중에 대학생들이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며 노래 부르는 것이 부러웠던 모양인데 지금은 아니었다.
7월 초에 태평양 탐사단이 파나마 지협의 정밀 지도를 작성해왔다. 파나마 운하 건설단은 이를 기반으로 설계를 수정해 최종 계획안을 만들었다. 장비도 속속 완성됐고 건설용 물자와 보급 물자가 아리수 항 야적지에 가득 쌓였다. 모기장이 내장된 4인용 조립식 천막 1만여 채가 준비됐다.
7월 중순에 파나마 운하 건설단을 태운 선단이 아리수 항을 출항했다. 새로 건조한 대형 수송선에 장비와 물자를 가득 싣고 1천여 명의 고산국 기술자, 1만여 명의 명나라 노무자들이 선단에 탑승했다.
전선 6척과 탑승 해병, 그리고 육군 1개 대대가 호위와 경비 임무를 맡았다. 해외주둔 임무는 1년 중 3개월 한정이므로 왕복 기간 포함해 여러 번 교대시켜야 했다. 해군에게는 특별 수당을 지급했다.
“내가 가야 하는데, 아쉽소. 참의가 수고해주시오.”
“흐흐! 이런 역사적인 큰 공사를 제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선착장에서 출항행사를 마치고 선단이 출항 직전이었다. 일 년 동안 열대지역에서 고생할 텐데 공국 참의는 뭐가 좋은지 자꾸 실실 웃었다. 이름이 만세에 이르도록 전해질 것이라나, 하여튼 긍정적이라서 다행이었다.
“철로를 가장 먼저 건설해서 전선 세 척을 대서양 방면으로 넘기는 것을 우선하시오. 요즘 영국과 프랑스 해적들이 그쪽 해역에 자주 출몰한다고 합니다.”
“예. 물자가 모두 준비됐으니 횡단 철도는 석 달이면 완성될 것입니다.”
프랑스 해적은 영국 해적에 비해 별로 유명하지 않은 편이지만, 어떻게 보면 더 악질이었다. 서인도제도에서 은을 운반하는 에스파냐 보물선을 턴 영국 해적선이 룰루랄라 귀국하는 길을 노려 털던 자들이 바로 프랑스 해적이었다. 생-말로는 16세기에 국가의 묵인 하에 영불해협을 지나는 영국 배들을 털었던 대표적인 해적 도시였다.
네덜란드 해적들은 바다의 거지단, 제 고이센을 조직해 에스파냐 함선을 노략질했다. 베스트팔렌 조약 전까지 네덜란드 해역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각국의 해적선들이 우글거리며 에스파냐 선박을 노렸다. 에스파냐가 아무리 강대국이라 해도 행운과 부를 시기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군침을 삼켰으므로 에스파냐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워했다.
“전하! 쿠바의 아바나가 에스파냐에게 무척 중요한 항구라고 합니다. 두 척은 파나마, 두 척은 대서양 쪽을 지키고 두 척은 아바나로 보낼까요?”
“아바나라. 해적들의 주요 공격 목표이긴 한데 구태여 우리가 지켜줄 필요는 없소. 에스파냐가 할 일은 에스파냐에게 맡기시오.”
안데스 산맥의 포토시에서 캔 은과 과야킬에서 생산된 금은 페루 서부 리마 항으로 옮겨졌다가 파나마 지협을 넘어 아바나까지 운반했다. 콜롬비아의 금과 은은 북부 해안 카르타헤나에서 모인 다음 아바나로 보내졌다. 멕시코 중부 지방인 타스코, 사카테카스, 과나후아토에서 캔 은과 마닐라 갈레온이 무역해 온 명나라 비단과 도자기는 육로를 통해 베라크루스에 옮긴 다음 다시 아바나로 해상 운반했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출항하면 멕시코 만류를 타고 플로리다와 북미 동해안을 지나 쉽게 세비야까지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해적들은 카리브 해에 산재한 섬들에 숨어 있다가 아바나에서 출항한 에스파냐 보물선들을 나포할 기회를 노렸다.
아바나를 처음 공격한 것은 1537년 프랑스 해적이었고 1553년과 1554년에는 프랑스 해군이 공격했다. 그 뒤부터 에스파냐는 아바나를 비롯한 주요 항구를 요새화했다. 그러나 프랑스 해적 자크 드 소어(Jacques de Sores)가 1588년 아바나를 점령하고 도시 대부분을 파괴해버렸다. 영국에 비해 덜 알려져서 그렇지 프랑스도 해적질에서는 만만치 않았다.
“예. 전하. 구원 요청이 오더라도 무시하겠습니다.”
“그건 좀 그렇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시오. 책임 지우지 않을 테니 참의의 판단을 믿겠소. 다만 에스파냐가 플로리다에 세운 도시에서 구원 요청이 오면 반드시 지원해주시오.”
플로리다 북동부 세인트오거스틴은 에스파냐가 이 시기 북미에 세운 최초의 도시였다. 플로리다 전체를 고산국에 넘겨주기로 했으니 이민호는 이 도시를 가급적 온전한 상태로 인수하고 싶었다.
에스파냐로부터 북미를 매입할 때 이민호가 리오그란데 강을 동부 국경으로 정하는 바람에 나중에 문제가 생겼다. 리오그란데 강 하구에서 같은 위도로 연장선을 그으면 플로리다 반도 남부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에스파냐에서 흔쾌히 넘겨주기로 했다. 그리고 고산국이 가급적 빨리 플로리다에 해군을 주둔시키기로 합의했다. 에스파냐 영토인 서인도제도에서 활개 치는 해적을 공동으로 없애는 것이 고산국 영토인 북미 동부를 지키는 길이었다.
“해적이 문제로군요. 파나마 운하 건설 후에 계속 우리 군대를 주둔시켜야 하지 않습니까?”
“운하는 에스파냐가 방어하겠지요. 잘못하면 주권 침해에 해당해요.”
원래 역사에서는 자메이카 해군사령관 헨리 모건이 1671년 병사들과 해적들을 이끌고 파나마 지협을 넘어 태평양 연안의 파나마를 약탈한다. 그 다음 우여곡절을 거쳐 자메이카 총독이 된다. 파나마 운하가 완성된 뒤에는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기관차는 운하 건설에 잘 활용하겠습니다. 그런데 에스파냐 사람들이 기관 제작법을 가르쳐달라거나 기관차를 뜯어보자고 하면 어떻게 대처합니까?”
“기관차를 뜯어보든 말든 상관하지 마시오. 현재 유럽 기술로는 절대 복제할 수 없으니 안심하시오.”
대형 화물선에는 기관차 2대와 예비용 기관차 한 대, 화차와 객차가 실려 있었다. 부품과 연료도 충분히 적재했다. 1년 기한으로 기관사들과 승무원, 역무원들도 탔다.
1년 안에 에스파냐 사람들에게 기관차 운영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기관차가 고장 날 경우 수리는 고산국에서 영구히 해주기로 했다.
“말라리아 예방약은 다 먹였소?”
“예. 황열병 예방주사도 다 맞았습니다. 명나라 노무자들 일부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어쩌고 하면서 저항했습니다만, 건설단에서 빼버리겠다니까 순순히 주사를 맞았습니다.”
명나라 노무자들은 파나마에서 1년 기한으로 한 달에 석 냥을 주기로 하고 전원 지원을 받았다. 연말연시에 춘절을 고향에서 보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지원자가 적은 편이었으나 은의 유혹에 넘어간 노무자들로 1만여 명을 충분히 채웠다.
“그래도 병에 걸릴지 모르니 주변 밀림을 아주 싹싹 치워버리시오. 보급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수시로 요청하시오.”
“예. 매달 왕도와 연락선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대형 수송선이 사람과 물자, 편지 등을 싣고 고산국과 파나마 사이를 왕복하기로 했다. 마닐라 총독부에서 멕시코 부왕령에 보내는 급한 보고서를 맡기겠다고 요청하기에 승낙했다. 그래서 멕시코시티 남쪽 아카풀코 항에도 정기적으로 기항해 고산국에 오는 사람들을 태우기로 했다.
“시간이 됐으니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전하. 그 간 강녕하소서!”
“수고해주시오. 사정이 있어서 운하 건설에 실패해도 괜찮으니 살아서 돌아오고, 사람들도 최대한 살려서 돌아오시오.”
“물론입니다.”
공조 참의가 깊숙이 허리를 숙인 다음 대형 수송선에 탑승했다. 그리고 수송선들이 차례로 아리수 항을 떠났다.
이민호는 한 번쯤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옆에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혜영이 째려본 순간 사고가 마비됐다. 혜영은 이민호의 생각을 읽다 못해 뇌를 정밀 스캔하는 정도였다.
“가고 싶으면 완성할 때쯤 한 번 가보세요.”
“아니, 됐어.”
이민호가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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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지 않고 보냈습니다. 그래도 한 번 가봐야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