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16화 (365/1,000)

00416  46. 1596년  =========================================================================

나라가 약해지고 경제적 쇠퇴가 계속되면 백성들의 삶이 고달파지고 이는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나타난다. 예나 지금이나 부국강병을 이뤄 백성들이 잘 살게 해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었다. 방글라데시처럼 가난해도 인구만 늘어나거나, 포르투갈처럼 나라만 부자가 되고 인구가 줄어들면 국가가 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없었다.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는 효율이 증명된 체제를 유지하거나, 혹은 비효율적인 제도를 바로잡는 개혁을 해야 한다. 국가를 경영하는 이민호 입장에서 국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인 보수와 진보는 다른 이념이 아니고 효율을 보는 관점 차이에 불과했다.

“한때 강성했던 맘루크 왕조를 격파한 것이 오스만제국입니다. 그 오스만이 레판토 해전에서 패했습니다. 유럽의 단합된 힘은 정말 강한 것 같습니다. 특히 에스파냐는 제가 알던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그렇소. 동양에서는 에스파냐가 마닐라에 웅크리고 있는 상인 집단에 불과해 보이겠지만 서양에서는 강대국이라오.”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군대는 몽골군과 십자군을 몰아냈던 정예군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약해졌고, 결국 1517년 오스만제국군의 화포와 총기 등 우수한 화약무기 앞에서 무너졌다.

그런데 50여 년 후인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제국의 해군은 복합궁을 사용하는 궁수 위주라서 에스파냐 등 신성동맹이 앞세운 함포와 머스킷 같은 우수한 화약무기 앞에서 무너졌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궁수를 배양하는데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오스만제국은 다시는 이때만큼 해군력이 회복되지 못했다고 한다.

흔히 접하는 말이지만 여러 모로 문제가 있는 결론이었다. 현대인에게 과거의 두 문화권이 충돌했을 때 화약무기가 결정적인 승리 요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활과 칼 등이 낙후한 전근대성을 나타낸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50년 전에 화약무기를 전장에 적극 사용했던 오스만제국군이 레판토 해전에서 활을 주로 사용했다면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레판토 해전이 끝나고 200여 년 후 19세기 유럽의 전장에서 여전히 창기병과 검기병이 출전했다 해서 그 국가들의 전근대성을 드러내는 증거는 아니다. 이 시기 전장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무장을 했다고 봐야 했다.

“세계는 넓은 것 같습니다. 아랍과 오스만, 이집트를 다녀왔지만 그 너머에 남유럽과 서유럽이 있습니다. 그 너머에 북유럽도 있고, 동유럽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그리 넓은 것도 아니요.”

“전하께는 그리 느껴지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국 참판이 이민호를 다시 봤다. 그러나 구글 지도를 최대 스케일로 해서 돌려봤던 현대인 출신인 이민호 입장에서 유럽은 자그마한 땅덩이일 뿐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영향력이 충돌하는 현대 한반도에서 살았던 이민호는 유럽 국가들이 만만해 보였다.

현재 오스만제국이라는 강대국 하나가 중동의 패자, 동유럽의 정복자, 남유럽의 경쟁자, 서유럽 프랑스의 동맹국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고산국이 오스만제국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산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전하! 동시에 두 곳에서 거대한 토목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집트와 유럽에 유행한다는 흑사병이 걱정스러우니 파나마 운하를 먼저 건설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자금과 인력, 장비는 상관없소만, 양쪽으로 신경이 분산될 테니 파나마를 먼저 건설합시다. 운하가 완성되면 사람들이 기겁할 것 같소.”

“일 년 만에 완성하겠다는 전하의 말씀에 에스파냐 상인들이 기가 질려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일 년이면 충분하오. 다만 모기가 문제지요. 주변을 싹 밀어버리고 석유를 많이 가져가서 웅덩이마다 뿌려야겠소.”

실제 역사에서 파나마 운하 건설에서 가장 큰 장애가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인한 인력 손실이었다. 사고보다는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웅덩이에 석유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이 모기 유충 장구벌레를 질식사시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모기는 열대 우림의 나뭇잎에 고인 물이나 꽃에서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었다.

토목, 기계 기술자들을 모아 파나마 운하 건설단을 조직했다. 에스파냐에서 넘긴 지도가 고도까지 표시된 정밀 지도라서 이 지도를 기반으로 기본 설계를 하고, 탐사대가 따로 추가적인 측량을 실시하기로 했다.

운하 건설은 정상 부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확장시키는 작업, 태평양과 대서양 방면으로 인공 수로를 굴착하는 작업, 갑문을 제작하는 작업으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수로 옆길에 작업용 철로를 먼저 건설하고 노무자들을 위한 시설도 준비하기로 했다.

“전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국방연구소 책임 장인이 손을 들었다. 무슨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는 이민호가 씩 웃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물론, 현대인들 대부분이 상상하지 못할 방법이었다.

“운하를 파기보다는 기차에 배를 실어서 산을 넘기면 어떻습니까? 만약 옆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안전하게 선로 두 개를 깔고 기관차 두 대로 끌어당기면 됩니다. 경사가 심하면 기관차들을 연결해서 네 대가 끌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건설용 철도를 건설할 것이고, 일 년에 잘해야 몇 십 척만 옮기면 되니 이게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까?”

“물론 가능하오. 그리고 혹시나 수로의 물이 마를 것에 대비한 예비용으로 철도로 배를 운송할 운반차도 만들 것이오. 그러나 앞으로 배가 점점 커질 테니 언제까지나 기차에만 의존할 수는 없소.”

파나마든 수에즈든 일단 선로를 깔고 반잠수식 운반선에 배를 싣거나 기중기를 이용해 배를 운반화차에 실은 다음 기관차가 끌고 가면 된다. 공사기간도 훨씬 짧아질 수 있었다.

현대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서는 실제로 철도를 이용한 육상 운하 건설을 검토했다. 중남미 여러 나라들이 연합해서 4차선 도로를 이용한 육상 운하도 연구 중이었다.

“지금보다 배가 더 커진다는 뜻입니까?”

“그렇소. 앞으로 배가 전선보다 열 배, 스무 배 커질 것이오. 언젠가는 백 배 큰 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소.”

장인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치였으나 앞으로 배가 커질 거라는 사실만은 인정했다. 태평양 탐사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큰 배가 파도 앞에서 낙엽처럼 나뒹군다고 했다.

“현재 전선은 근처 바다에서는 충분히 효율적이나 큰 바다에는 폭풍이 일 때 아예 나가지도 못하오. 항해가 가능하더라도 풍랑이 조금만 거세져도 배에 탄 승조원들은 견디기 힘들다오. 지금보다 너덧 배 정도는 돼야 웬만한 풍랑을 견딜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탐사선에 연료를 가득 실어도 태평양을 왕복하기에는 항상 부족해서 따로 수송선을 대동하지 않소?”

“하지만 배를 더 크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철선을 만들어야지요.”

“으음!”

장인들은 철이 물보다 무거워서 철로 배를 만들 수 없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고산국에서 이미 철선을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선은 전선이 아니라 잔잔한 아리수 항에서 해안경비대가 외국 상선들을 임검하는 작은 기관선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철선에 처음 타는 사람들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갑문을 만들어 작동시키는 모형을 만드시오. 그것을 대형화해서 여기서 시험해본 다음 파나마로 가져가겠소. 미 대륙에서는 아직 철광과 탄광을 발견하지 못해서 현장에서 만들기는 어렵소.”

“규격은 어느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까?”

“수로의 폭은 100척이 적당할 것이오. 양쪽에서 두 개가 비스듬히 연결돼 수로를 막는 식이니 길이를 계산해서 만드시오.”

고산국에서는 도량형이 아직 통일돼 있지 않았으나 토목, 건축, 기계 분야에서는 야드파운드법에 기준을 맞춰 통용됐다. 1야드는 3피트이며 1피트는 30.48cm인데 이것을 고산국 한 자, 1척으로 잡았다. 1피트가 12인치이듯 1척은 12치였다.

“공사용 철도는 복선으로 깔아야 합니까?”

“그렇소. 공사용으로 필요하겠지만 전선을 운반할 만한 규격에 맞춰야 할 것이오. 그리고 운하 한쪽 항구에 하역된 화물을 반대쪽 항구로 실어 옮기는 일도 맡기면 될 것 같소.”

갑문을 여닫고 물을 채우는 기술은 국영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것을 많이 참조했다. 인공 호수의 수위를 올리기 위한 댐 건설 기술은 고산국 곳곳에 건설된 수력발전용 댐 기술로 충분했다. 댐과 수로 건설을 위해 조선에서 시멘트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로가 예정된 곳의 단단한 암반을 파내는 기술이었다. 국방연구소에서 대형 삽차와 화물차를 더욱 크게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냉각 계통과 서스펜션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속출했으나 장인들이 하나하나 해결해나갔다. 대형 건설 장비들은 파나마 운하가 완성되면 수에즈 운하 건설에도 사용하고 다른 대형 토목공사에도 사용할 계획이었다.

국영 조선소에서는 전선보다 큰 대형 수송선을 건조했다. 목선의 건조 한계는 컴퓨터를 이용한 역학적인 설계, 철조 골격, 철제 조인트 등으로 늘어날 수 있었으나 배수량이 늘어날수록 건조가 어려워졌다. 현재 고산국 해군에 취역 중인 전선이 2천 톤 남짓한 반면 수송선은 5천 톤을 목표로 건조가 진행됐다. 중형 철선도 시험적으로 건조 중이었다.

이민호는 별궁에서 브루나이 공주들이 추는 벨리 댄스 공연을 관람했다. 벨리 댄스는 날씬한 여자들보다는 허리에 적당히 살집이 붙은 여자들이 추는 편이 더 육감적이었다. 배꼽 주변에서 뱃살이 접히는 것이 이때만큼은 자연스러웠다.

공주들은 이민호의 혼을 빼놓겠다는 듯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그러나 이민호에게 박수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주 잘했다. 앉아서 좀 쉬어. 예뻤어.”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공주들이 숨을 헐떡이면서 찬 음료를 마셨다. 이민호 한 사람을 위해 열심히 연습한 것 같아 이민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공주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브루나이 공주들을 만나러 온 것은 브루나이의 목재가 대량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민호는 파나마에 운하 건설을 하기 위해 몇 가지 규격의 목재와 수량을 설명했다. 철도 침목도 많이 필요했다.

파나마에서도 목재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으나 일반 토목공사용이 아니라 장기간 고정 설치하는데 필요한 원목은 티크 목이 최고였다. 비싼 티크 원목을 공사판에 투입할 생각을 하는 이민호가 제 정신이라고 하기 어려웠지만, 이 시기에 티크 목은 충분한 양이 생산되고 있었다.

“네. 전하. 필요한 양을 필요한 시기에 선착장에 쌓아놓을게요. 묘목 관리도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그런데 전하께는 휴식이 필요해요. 오늘은 별궁에서 푹 쉬세요. 혜영님도 허락하셨어요.”

이민호는 브루나이 공주들하고 같이 쉬다가는 더 피곤해질 것 같았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악사와 시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다섯 명이나 되는 공주들을 시간을 두고 차례로 안았다. 마지막 다섯 번째 공주를 안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파요. 제발 천천히.”

“미안. 그런데 넌 누구냐?”

다른 공주들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화장을 진하게 했어도 분명 이민호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찬찬히 다시 보니 몸매가 다른 공주들과 달리 날씬한 편이었다. 이민호의 등허리에 매달린 다나가 대신 대답했다.

“네나 언니가 임신 중이라 대신 왔어요. 동생 야스민이에요.”

“야스민은 궁궐에서 생활한 지 여섯 달이 넘었어요.”

하나와 두나, 세나까지 거들었다. 이미 안아버렸으니 이민호는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동안 조선말도 열심히 배운 것 같았다.

“그래? 여기까지만 인정하겠다. 더 이상 데려오지 마라. 말 좀 들어, 제발!”

“네~”

공주들이 좋다고 합창을 했다. 어차피 나머지 동생들은 너무 어려서 데려오지도 못한단다. 이민호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나 공주들이 여자를 새로 들이는 문제에 한해서는 워낙 천방지축이라서 말을 들을지 알 수 없었다.

숫처녀에게 막판 스퍼트를 했으니 무리가 갔을지도 몰랐다. 이민호는 야스민을 부드럽게 안고 천천히 움직였다. 눈물을 찔끔 흘렸던 야스민이 이제는 덜 아파서, 그리고 하렘에 받아들여져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야스민 입장에서는 인생을 건 모험이었다.

“여섯 번째구나. 그럼 네 이름은 예나다.”

“네! 고마워요, 전하!”

얼굴은 예쁘고 몸매는 통통한 꽃돼지들 사이에 예나 같은 날씬한 몸매가 있으니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예나도 조만간 통통해질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곧 들어맞았다.

남자는 하루에 수백 번씩 섹스를 생각하는 짐승이었고, 여자는 하루에 수백 번씩 식욕을 느낀다는 짐승이었다. 다른 공주들과 식단이 같고 체질이 비슷하니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브루나이 공주들이 생활하는 별궁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브루나이 목재회사를 경영하기 위한 인력도 있었지만 공주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브루나이 궁성에서 옮긴 시녀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혜영과 미카가 궁성의 보안을 위해 통제를 확실히 하고 있으나 하렘이 점점 확장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슬람 하렘과 달리 시녀들이 시집갈 수 있도록 해서 그나마 이민호에게 부담이 덜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바로 공사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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