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1 45. 1595년 =========================================================================
정문부는 왕실 재산 관리와 외부 사업을 맡아 운영하는 내수사 전수의 역할로 오해했다. 그러나 조선의 이조와 달리 고산국 이국에는 내수사 조직 자체가 없었다.
왕궁에서 일상적인 일은 대부분 궁녀들이 처리했다. 내명부 소속이거나 고용됐거나 간에 대부분 여자들이 맡아 일을 했고 힘든 일은 호위병들이 도와주었다.
그렇다고 궁정 숙수 등 왕궁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환관은 몇몇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곤 군주 개인에 대한 충성심 면에서 압도적이었으나 고산국에서는 남녀 호위들이 그 비슷한 역할을 해주기에 구태여 환관을 고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왕립 회사나 내 개인회사는 내가 따로 운영하고 있소. 고산국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철도와 전화 회사, 염전, 사탕수수 농장처럼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국영기업들이 많소. 담배 같은 전매품뿐만 아니라 국가가 아니면 못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사업, 그리고 민간에서 하는 것과 똑같으나 규모만 큰 사업도 있소. 그것들을 맡아주시오.”
“대체로 자신 규모가 큰 국영기업이군요. 하오나 각 국영기업에 이미 사장을 임명하지 않으셨습니까?”
“국영기업들은 백성들의 삶에 직결되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 함부로 맡기기 어려운 사업들을 맡고 있소. 그런데 사장들 대부분이 조선에서 아전을 했던 사람들이오. 부패 문제는 없으나 다들 현재 그대로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구태의연한 사람들이라 문제요. 설립 목적에 최대한 맞도록 국영기업들의 기반을 닦아주시오.”
상인들이 아전보다 회계와 경영에 더 밝은 편이었으나 국영기업 사장에 임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일단 사업에서 무조건 이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손실이 나는 사업이 있기 마련이었다. 얼마 전에 개관한 수족관이나 동물원에서 만약 억지로 이익을 보려고 입장료를 올릴 경우 백성들의 교육에 공헌한다는 설립목적을 잃게 된다. 부수입에 집착하다가 자칫 현대 중국이 하는 것처럼 호랑이 뼈와 고기를 파는 꼴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상하수도 사업소 같으면 하수도가 무료라서 상수도에서 난 흑자로 하수도 분야 적자를 메우는 식이로군요. 전화는 기술적 독점 사업이라 어마어마한 흑자를 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면 사용료가 적당한 수준에 그쳐야겠지요. 요새나 군부대에 연결될 전화선도 무료로 가설해야겠지요.”
“바로 그렇소. 관리도 중요하겠지만 공공적 성격을 유지하는 일에 주력해주시오. 혹시나 구매사업에 부패가 개입하면 관리나 직원들을 쳐내고, 횡령한 자가 있으면 횡령액 전액을 추징하시오. 새로운 사업도 진행해주시오. 예를 들어 서부 철도에서 난 흑자로 동부 철도를 건설하는 사업 같은 것 말이오.”
“알겠습니다. 할 일이 참으로 많겠습니다.”
정문부를 국영기업청 청장 직에 임명했다. 감사 업무는 주로 감사원에 맡기고 정문부는 새로운 사업 기획과 운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국영기업을 모아 보니 알짜배기만 수십 개 이상이었다. 그 동안 주먹구구로 운영했던 옥 도자기 공장과 나전칠기 공장, 제철소, 탄광과 금광, 견직 공장과 방적방직 공장도 국영기업으로 법인화했다. 국방연구소에서 개발한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공장들도 묶어서 국영기업화하기로 했다.
“운영만 잘하면 백성들에게 세금을 받을 필요가 없겠습니다. 사실 백성들에게 세금을 나눠주는 셈이지요. 농민과 상인이 아직 빠졌습니다만.”
“미곡가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농민들에게 세곡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나중에 재정에 여유가 생기면 미곡을 수매하고 농민들에 대한 세금도 면제해줘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오. 그리고 잘못하면 백성들이 돈 많이 버는 농민만 하겠다고 나설 수가 있어요.”
나라를 운영하려다 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정책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전체 백성들이 골고루 잘 사는 것보다는 나 하나만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고, 남들보다 조금 못 살게 되면 분노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정치를 하려면 이들의 불만도 잘 다독여야 했다.
일례로 현대 미국 정치에서 극우세력인 티 파티의 주요 구성원들 대부분은 가난한 남부 백인 레드 넥이었다. 레드 넥은 햇볕 아래에서 일하느라 목이 빨갛게 탄 막노동자나 농민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백인이라는 출신 인종 외에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주제에 자기들보다 더 가난한 계층에 대한 복지제도를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기와 물, 원료 공급을 원활히 하고 수출을 쉽게 하려면 아리수 하구로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단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자칫 바다에서 적함이 대포로 공격하지 못할 곳이 좋겠소.”
“아! 방어도 감안해야겠군요. 직원들이 출퇴근하기 좋게 기차역 주변에 공단을 건설하겠습니다. 다만 방직 공장은 직원들이 많이 필요하니 기존 위치에 두겠습니다.”
정문부는 아리수 하구 주변의 대지 중에서 언덕에 가려 바다에서 안 보이는 위치에 공단 입지를 정했다. 그리고 앞으로 수력발전으로는 전기가 부족할 것이 예상된다 해서 석유 분류 시설에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경유를 생산하고 나서 남는 인화물질이 많습니다. 이것을 불태우면 꽤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석유가 싸지 않습니까?”
“외국에서 수송해오는 것이라 결코 싸지는 않소만, 생각해봅시다.”
브루나이에서 원유를 워낙 싸게 들여오다 보니 현대라면 말도 안 되게 비효율적인 석유 화력발전소를 정문부가 당당히 제안했다. 수입 단가와 운송비를 계산해보니 석탄 화력발전소보다 확실히 싸게 먹히긴 했다.
그러나 앞으로 석유에서 뽑아낸 다양한 물질을 사용할 테니 석유를 분별 증류한 다음 찌꺼기가 많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철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석탄을 땔까 하다가, 이것은 오염물질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중유를 때는 화력발전소를 만들기로 했다. 증기 터빈을 돌리면서 배연기관에 집진장치를 설치하는데 애를 먹었다.
가을에 이민호는 기차를 타고 고중 평야를 방문했다. 남과 북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곳이 온통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논으로 바뀌었다. 호주 북쪽 장영실 항에서도 수확물이라며 쌀을 대량으로 바쳤다. 남는 쌀을 처리하는 것이 큰 문제가 돼서 동해국과 아이누 섬에 사는 사람들이 주식을 쌀로 바꾸게 되었다.
호주 장영실 항 주변은 적도 바로 아래 열대 지방이라 베트남처럼 쌀의 3기작도 가능했다. 그러나 고산국 전체적으로 쌀이 남아돌고 호주 북부는 강우량이 적어서 내년부터 일부 밭에서 기장과 메밀, 총체보리라는 3모작을 시도하기로 했다. 가축에게 먹일 사료 위주의 농사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험용일 뿐, 땅이 넓은 호주에서는 연작을 할 필요가 없으니 몇 년씩 목초지로 묵혀두어 지력을 회복하는 편이 나았다.
1595년은 큰일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쉽게 지나가는 해란 없었다. 네덜란드 범선들이 수마트라와 자바 섬 사이 순다 해협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연말에 고산국 왕궁에 전해졌다.
1522년 포르투갈이 자바 섬 북서쪽 순다 왕국 끌라바 항구에 거점을 마련했고, 이슬람 왕국인 드막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1527년 드막 왕국 술탄의 사위가 2천여 명을 이끌고 순다 끌라바를 공격해 점령했고, 포르투갈 세력을 쫓아냈다. 술탄은 승리의 도시라는 뜻의 자야카르타로 도시 이름을 고쳤다. 드막은 1588년 마타람에 정복됐다.
포르투갈 세력이 원주민들의 무력에 의해 쫓겨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체에서 쫓겨나고 잔지바르에서 쫓겨나고 향료제도에서도 쫓겨났다. 같은 서구 제국주의 세력인 네덜란드에 의해 말래카에서 쫓겨나고 자카르타에서 쫓겨나고 일본에서도 쫓겨났다.
그렇다고 해서 포르투갈이 항상 당하는 만만한 호구도 아닌 게, 마카오를 지키기 위해 겨우 몇 십 명이 열 배가 넘는 병력을 쏟아 부은 네덜란드의 침공을 물리치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정성공에 의해 대만에서 쫓겨났다.
현재 자카르타는 드막 술탄국에서 독립한 반튼 술탄국의 항구 도시였고, 포르투갈 상관이 다시 들어와 있었다. 이곳에서 바로 서쪽 순다 해협에 코넬리스 하우트만과 프레데릭 하우트만 형제가 이끄는 범선 네 척이 나타나자 주변 술탄국과 상인들이 브루나이 세리아에 연락선을 급히 보냈고, 유전 주둔군이 왕도로 급히 전령선을 띄웠다.
“아직은 상거래와 주변 조사만 하는 것 같네. 잘 지켜보도록 하게.”
“예, 전하. 유사시엔 즉시 포격을 가해 침몰시키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가급적 함대 도착 전까지는 대치만 하도록 해. 네덜란드 범선들이 무역만 하면 좋겠지만, 네덜란드가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서 문제일세.”
이민호는 마침 인도양으로 출항하기 직전이었던 김몽돌 소령을 불러 탐사전대 4척을 순다 해협으로 보냈다. 그리고 분함대 12척을 이끌고 이틀 후에 직접 자야카르타로 향했다.
중간에 기항한 브루나이 세리아의 유전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원유가 꾸준히 뽑혀 나와 파이프를 통해 선착장에 접안한 대형 수송선에 채워졌다. 작은 분별 증류 시설도 아직까지 고장 없이 돌아갔다.
그런데 주둔한 병사들과 직원들이 심심풀이로 논을 경작하고 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었다. 약간 높은 곳에 저수지 제방을 쌓고 수로까지 갖춰서 제법 농촌마을다웠다. 이것이 의외로 브루나이 원주민들에게 영감을 줘서 신 농법이 확산 중이었다. 퇴비를 만들면서 브루나이 왕도의 공중위생이 많이 개선됐다.
함대는 다시 이틀 더 항해해서 자야카르타에 입항했다. 뜻밖에 네덜란드 범선 네 척이 탐사전대 4척과 나란히 항구에 정박 중이었다. 이민호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건가?”
“네덜란드 상인들이 아예 처음부터 싸울 의도가 없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출발할 때 고산국의 강함에 대해 누누이 들었다고 합니다.”
김몽돌이 네덜란드 상인들을 국왕좌승함으로 데려왔다. 그 사이 선착장에는 머리에 꼭 끼는 블랑콘을 쓴 자바인 상류층 사람들이 몰려와서 조용히 기다렸다. 이민호는 통역을 시켜 단순한 상업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이들을 진정시켰다. 평시에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전쟁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아 이민호도 이들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코넬리스 하우트만과 프레데릭 하우트만이라는 형제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이민호에게 굽실거렸다. 허리를 자주 숙이는 인사법은 어디서 배웠는지 알 수 없었다.
“스페인어 가능한가?”
“제가 할 줄 압니다, 폐하.”
이민호가 고산국왕인 것을 벌써 아는 눈치였다. 이민호는 통역을 사이에 놓고 네덜란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나는 이 지역의 안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네덜란드 상선들이 이 지역에 들어오더라도 평화롭게 교역만 한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그대들을 싫어할 것 같은데?”
“폐하 말씀대로 유럽에서야 서로 싸우는 입장입니다만, 여기서는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또 약간 다릅니다. 저희들은 에스파냐 항구에서는 배를 나포당하는 입장이라 포르투갈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동인도제도에 대한 정보도 포르투갈 상인과 귀족들로부터 많이 얻었지요.”
“그럼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와 안 싸우겠다는 건가?”
네덜란드 범선들이 오자마자 처음부터 치열하게 싸울 줄 알았는데 예상과 영 달랐다. 이들은 원주민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미리 세워둔 계획이 엉망으로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포르투갈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포르투갈 상인들과는 지난 며칠 동안 같이 술도 마셨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문에 직접 전쟁 중인 에스파냐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폐하의 말씀을 존중해서 이 지역에서 에스파냐를 먼저 공격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네덜란드가 이곳 자야카르타나 반탄, 혹은 향료제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해 식민지를 삼으려고 시도할까 두렵다. 내 세력이 뻗친 곳 안에서 해적 행위를 했다가는 교수대에 매달릴 줄 알아야 한다.”
“저희들은 무역을 하러 멀리서 왔습니다. 위험한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네덜란드의 투자자들이 전 재산을 이번 항해에 투자한 경우가 많아서 하우트만 형제도 모험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네덜란드 상선들이 몰려와 경쟁을 하다가 1602년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다음부터는 맹렬하게 확장에 나선다.
“네덜란드 범선이 이 지역에서 20척쯤으로 불어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은데?”
“고산국 전함도 아닌 소형 탐사선 3척이 아랍 해적선 50여 척을 격파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아랍 해적선과 싸워봤는데 도저히 고산국 함선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우트만 형제가 몰고 온 범선 네 척을 격침시키는 편이 가장 간단하겠지만, 별다른 이유도 없이 공격하는 것도 유럽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법도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을 격파한다 해도 앞으로 네덜란드 배는 끊임없이 몰려올 것이다.
좌승함에 포르투갈 상인 두아르테가 올라왔다. 네덜란드 배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카오에서 부랴부랴 출발했다고 한다.
“동 두아르테! 어서 오시오.”
“폐하! 네덜란드 상인들을 잡아 가두고 있다고 해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잡아두긴 했지만 해적질을 한 것이 아니라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모르겠소.”
이민호는 네덜란드 배들이 아시아에 오면 당연히 해적질부터 할 줄 알았다. 그럼 간단히 격파하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계속 몰려와도 계속 침몰시키면 언젠가는 오지 못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백기를 내걸고 있으니 처리하기가 난감했다.
이민호는 포르투갈과 함께 인도양에서, 또는 아프리카 남단에서 네덜란드와 영국 배들을 가로막으려 했는데 이렇게 직접 와버리니까 황당했다. 다음에 올 배들에 대처하기에 늦었다는 뜻도 됐다.
“저희도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본국에서는 어째서 이들 네덜란드 상인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유럽에서는 처리하기 곤란하니까 아시아에서 처리하란 뜻은 아니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우트만 선장은 리스본의 포르투갈 귀족들이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한 포르투갈어 편지까지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뇌물을 받고 편지를 써줬겠지요. 그 편지가 포르투갈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두아르테가 난감해 했다. 여기서 문제는, 두아르테가 포르투갈 귀족의 편지를 무시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시도할 때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는 유력한 가문의 귀족 같았다. 귀족이야 뇌물만 받으면 그 후론 신경도 안 쓰겠지만, 뒤처리를 감당해야 할 동 두아르테나 포르투갈 상인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동 두아르테가 말씀해보시오.”
“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동인도제도의 향료 교역권은 일단 포르투갈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번에 폐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저희가 독점권을 누리던 좋은 시절이 바야흐로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수에즈 운하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오.”
“하지만 저희들은 가급적 길게 향료무역 독점권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네덜란드 배의 입항을 연간 몇 척으로 제한하고, 향신료도 일정한 한도만 구입하도록 강제하겠습니다. 나중에 아시아에 도착할 네덜란드 상인들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의외로 나왔다. 두아르테는 협상에 전향적이었지만 본국의 귀족들 때문에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출발지에서는 난리가 나겠지요.”
“남는 적재공간에는 인도의 후추를 실어도 됩니다. 후추도 이익이 많이 남는 향신료니까요. 그리고 고산국에서 네덜란드 상선에 상품을 파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사실 고산국 상품이 인기가 너무 좋아서 유럽에 가면 다른 나라에 판매할 물량이 얼마 안 됩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귀족들이 구입하는 것으로 다 소진될 정도로 고산국과 명나라 상품의 인기가 좋습니다.”
“으음.”
이민호는 포르투갈 및 네덜란드 상인들과 협의했다. 뜻밖에 하우트만 형제가 외교교섭 권한을 갖고 있어서 일정 수준까지는 네덜란드 공화국을 대리해서 조약 체결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나중에 네덜란드에서 항의할지도 모르겠지만 세 세력이 합의한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네덜란드가 인도양에 들어올 배는 연간 20척 이내로 제한한다. 면허장은 네덜란드 공화국이 본국 항구에서 교부하고 아프리카 남단에서 고산국 또는 그 대리인에게 확인을 받는다. 동인도제도 안에 진입할 배는 12척 이내로 제한한다. 네덜란드 상선이 구입할 동인도제도의 향신료는 전적으로 포르투갈이 물량을 배정한다. 기타 노예무역 금지, 아프리카 대륙에 물을 얻기 위한 목적 외의 상륙 금지 등을 합의했다.
고산국 함대는 1596년 1월 초에 자야카르타를 떠나 왕도로 출항했다. 바다에는 고산국 함대, 땅에는 말레이 전사들의 포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향신료와 고산국 제품을 가득 싣고 유럽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네덜란드 범선이 동인도제도에서 무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항구가 자야카르타였다.
네덜란드는 의외로 무력 분쟁 없이 지나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산국 함대의 존재가 네덜란드 상인들의 과욕을 자제시켰다. 그러나 아직 영국이 남았다.
============================ 작품 후기 ============================
고민하다가 결국 네덜란드는 '일단' 평화적으로 진입시켰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