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8 45. 1595년 =========================================================================
1595년 4월, 개장을 며칠 앞둔 수족관을 방문했다. 해양강국답게 왕도에 동물원보다 먼저 수족관을 만들었고, 동물원도 조만간 개장을 준비 중이었다.
물 무게를 유리가 버티지 못할까봐 투명한 아크릴 수지를 수백 겹을 발라 한쪽 면을 막기로 했다. 그러나 이왕 아크릴 수지를 쓸 바에 창을 곡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수족관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3할 정도 작게 보이는 단점이 있었지만 깨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돛새치가 현란하게 몸빛을 바꾸며 빠르게 헤엄쳤다. 서울의 다른 아쿠아리움과 달리 이곳 수족관 일부에는 자연광이 비쳐 들어오게 설계했다. 그래서 물속에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고래상어가 압도적으로 커 보이는구나. 쥐가오리는 우아하게 헤엄쳐서 좋다.”
수족관에 커다란 고래상어와 여러 종류의 가오리, 그리고 바다거북 몇 마리를 구해서 넣었다. 그 외에도 바닷고기 수십 종 수천 마리를 넣었다. 산소발생 장치에서 계속 거품이 솟아올랐다.
커다란 개복치가 이민호와 눈을 마주친 다음 앞으로 지나갔다. 이민호는 불현듯 옛날 일이 생각나 화가 치밀었다. 이민호를 따르던 민영이 수족관장에게 물었다.
“고래상어가 수족관 안에 사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나요?”
“사료를 충분히 주니까 살아있는 것을 먹지는 않습니다.”
이민호는 고래상어가 플랑크톤을 먹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작은 물고기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어선이 끄는 그물이 터진 곳에서 쏟아지는 물고기를 입을 벌려 흡입하는 고래상어도 있었다.
“관장! 서류를 살펴봤는데, 상어 몇 종류가 더 들어와 있지 않았소? 지금은 몇 마리 안 보이는 것 같소.”
“황송하오나 바다거북이 밤마다 공격해서 며칠 동안 모조리 폐사했습니다.”
“저런!”
“저놈의 거북이가 상어를 해치운 다음부터는 구하기 어려운 물고기부터 잡아먹는 것 같습니다.”
수족관장이 몹시 분노했다. 어민들에게 잡혀 부두에서 해체되기 직전에 불쌍해서 살려왔더니 수족관 안에서 배은망덕한 짓을 하고 있었다.
“바다거북도 여러 종류던데 순한 놈으로 들이고 성질 나쁜 놈들은 빼서 바다로 돌려보내시오.”
“예. 어명을 받드옵니다.”
수족관장이 몹시 기뻐했다. 그런데 민영이 커다란 돌돔을 가리켰다.
“주인님! 저는 까만 줄이 세로로 난 걸로 할래요. 살이 아주 탄탄하겠어요. 주인님도 어서 골라보세요.”
“뭘 골라? 민영이 너 혹시 먹을 것을 선택하는 건 아니겠지?”
“아닌가요?”
“수족관에서는 구경만 하는 거야. 먹고 싶으면 어시장에 가자.”
수족관은 주로 학생들이 단체관람하거나 청춘 남녀들 데이트 코스로 계획했다. 자연사박물관을 만들기에는 전시품이 부족해 아직 계획만 세워두었다. 전쟁사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은 개방형 우리를 만들고 동물을 수집 중인 동물원을 방문했다. 동물을 모으기 전에 연구원들이 습성을 연구해 서식지를 만들고 있었다. 이미 구해온 동물들도 많아 호랑이와 표범, 아시아 코끼리 등 백성들이 말로만 들어본 동물들이 서식지와 흡사한 넓은 우리에서 불안한 듯 서성거렸다.
고산국에도 토종 동물들이 꽤 있어서 사슴이나 새 종류 말고도 일명 고산국 구름표범과 고산국 반달곰이 생포돼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고산국 구름표범은 무늬가 특이한 구름표범의 아종으로 분류됐다.
구름표범은 호랑이, 사자, 표범, 재규어 등 대형 고양이과인 표범속과는 다른 구름표범속을 구성했다. 꼬리가 길고 발이 큰 구름표범은 표범보다는 오히려 고양이나 살쾡이에 더 가까웠다.
“전하! 운남성과 브루나이에서 산 채로 잡힌 구름표범도 구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운남성 구름표범은 고산국에서 난 것과 거의 같은데 브루나이 것은 가죽과 피부 색채가 많이 다릅니다.”
동물원장은 예전에 강원도에서 사냥꾼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잡아본 동물은 많지만 키워본 야생동물은 매 한 종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고산국 백성들 중에서 야생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출신 지역별로 분리해서 섞이지 않도록 하시오. 동물학자들이 연구한 다음 분류해야 할 거요.”
이민호는 몰랐으나 브루나이 구름표범은 다른 지역 구름표범과 종이 달랐다. 그리고 고산국 구름표범도 나중에는 다른 지역과 아종이 다르게 분류됐다. 고산국 구름표범은 현대에는 멸종됐으나 이민호가 서식지를 보호해서 동물원뿐만 아니라 고산국 고원지대에서도 살아남게 됐다.
고산국 반달곰은 큰 놈으로 구해와서 키 160cm 정도에 몸무게는 100kg이 넘었다. 물론 미터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다르게 계량됐다.
“운송비용을 많이 들여서 사천에서 대나무를 먹는 판다 두 종류가 들어왔습니다. 동물원이 열리면 관람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 만한 동물입니다.”
“꺄아! 너무 귀여워요. 큰놈은 멍청해 보여요!”
민영이 귀엽다고 폴짝폴짝 뛰었다. 대나무 숲에서 움직이는 작은 동물은 너구리를 닮았지만 래서판다였고, 주저앉아서 대나무 잎을 뜯는 동물은 흰색과 까만색의 팬더였다.
“중국어 이름 그대로 하지 말고 큰놈은 대왕판다, 작은놈은 애기판다라고 하시오.”
“예. 이름을 적은 팻말을 바꾸겠습니다.”
“주인님 또 이름 대충 지으신다.”
원래 이름이 그런데 민영은 믿지 않았다. 팬더라고 하려다가 표준어가 판다이고 이 시대 조선 사람들 발음 문제도 있고 해서 판다라고 정했다.
몽골에서 보낸 작은 야생마 한 쌍도 넓은 우리에 들어왔다. 나중에 프로제발스키 말이라는 이름이 붙는 야생마였지만, 이민호는 몽골 야생마라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붙였다.
다음에는 극장으로 이동했다. 서양 배우들이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동물원과 수족관 외에도 극장 두 곳을 지어 하나는 극 중심, 다른 하나는 노래 중심으로 매일 저녁 공연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유럽인 유학생들이 어설픈 조선말로 그리스 비극을 연기했다. 학문에 재능이 없는 유학생은 취미만 있다면 배우로 정착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음악은 유럽에서 교회 음악 외에는 아직 제대로 발전하지 못해서 조선과 명나라의 궁중음악 위주로 공연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인기가 없을 것 같았다.
“놀고 즐길 곳이 많아졌어요.”
“이번에는 백화점에 가보자.”
“네에~”
마치 데이트하는 것 같아 민영과 호위들이 신이 나서 이민호와 함께 왕도의 백화점으로 향했다. 혜진이 운영하는 백화점에는 이름처럼 없는 것이 없었다. 숟가락과 젓가락만 해도 재료와 길이, 디자인에 따라 수백 가지였다. 그릇은 말할 것도 없고 주방기구도 다양했다.
최신 전자제품이랄 수 있는 선풍기와 냉장고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고산국 백성들은 이민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부자였다. 백화점 외에 시내 중심부에 전자제품 가게가 몇 개 생겨서 주인들이 떼돈을 벌었는데 그 중에 유태상인이 한 명 끼어 있었다.
고산국은 지진이 자주 나는 지역이라 관청 건물을 제외하곤 3층 이상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높지 않은 대신 넓었는데 의류와 신발이 그 넓은 백화점의 한 층을 다 차지했다.
백화점 안에는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는데 국왕 행차라고 하자 다들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다. 어서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고 나서야 손님들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라, 이민호와 호위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이민호도 신경 끄고 물건 구입에 열중했다.
고산국도 일종의 다민족국가라서 옷도 문화권별로 다 갖춰놓았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물론 아랍식 의상도 진열됐고, 간편복이라 해서 이민호가 디자인한 현대적인 옷도 당당히 매장 하나를 차지했다.
여기서 호위들이 물건을 사는 것을 세 시간이나 기다리던 이민호는 아무 한 것도 없었는데 기진맥진한 채로 궁궐로 향했다. 여진족 호위들은 옷과 구두를 잔뜩 사서 신이 난 채로 돌아왔다.
2차 태평양 탐사대가 귀국했다. 훨씬 늦게 출발한 3차 탐사대보다 늦게 돌아왔으나 1차 탐사대의 자료를 바탕으로 심도 깊은 조사를 해왔다. 알류산 열도의 대략적인 측량이 끝났고 베링 해에도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알래스카에서 출발해 낮에만 조심스럽게 항해해서 북미 서해안의 상세한 지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북미대륙 서해안 곳곳에 땅콩과 콩, 그리고 감자 재배법을 여러 인디언 부족들에게 가르쳤다. 교역하다가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 싸움도 몇 번 일어났다. 작년에 1차 탐사대가 심은 곳에서 땅콩을 수확해 압착기로 연료를 짜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디언 부족들이 더 많아서 교역을 하며 땅콩과 콩 종자를 널리 전파했다. 잘하면 몇 년 안에 연료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감자 재배법도 확산시켰다. 이상하게 북미에는 감자가 재배되지 않았다.
탐사대는 귀환하는 길에 파푸아 뉴기니 섬의 북쪽 해안을 철저히 조사했다. 피부색이 흑인에 가까운 원주민들과 교역을 하는데 탐사대원들을 보면서 자꾸 군침을 삼키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끝내 교전 같은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섬 서쪽에서 홀로 섬을 비우고 도망쳤던 술루 술탄국의 해적선들을 발견했다. 해적선들은 어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밭을 일구며 살았다. 술루 사람들이 고산국 탐사대 선박을 보면서 놀라 주저앉았다가, 포기했는지 나중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인구가 예상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탐사대가 보고했다.
3차 태평양 탐사를 마치고 한 달 넘게 푹 쉬었던 임현석의 탐사전대는 다시 출항해 이번에는 남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왔다. 임현석은 도중에 페루 부왕을 알현해 국서를 교부하고 영국 해적선이 태평양에 진입할 경우 공동으로 상대하기로 약속했다.
1588년 에스파냐 무적함대의 패배 이후 에스파냐가 쇠퇴하고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역사책의 설명과 달리, 실패를 거울삼아 에스파냐의 해상 지배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펠리페 2세는 1592년까지 화력과 방어력이 개선된 40여 척의 개량된 갈레온을 진수하고 영국 해적선을 서인도와 신대륙의 바다에서 쫓아냈다.
드레이크 선장은 해적질을 포기하고 플리머스로 도망갔고 1591년 하워드 경의 해적선들은 20여 척의 에스파냐 갈레온에게 쫓겨 다녔다. 그랜빌 경은 리벤지 호와 함께 수장됐다. 1590년대 후반에는 에스파냐가 콘월 지방을 공격하고 영불해협 곳곳에서 영국 배에 대한 나포를 감행했다.
이민호가 예상한 것과 달리 영국은 태평양에 배를 보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현재 남미 서해안에 침입한 영국 배는 한 척도 없었다. 탐사대는 네덜란드 해적선도 만나지 못했다. 서양 해적선들과의 전투를 예상해 바짝 긴장하며 출항했던 탐사전대는 에스파냐 선박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평화롭게 측량 작업을 계속했다.
탐사전대는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발견하고 해도에 기입했다. 호주 동쪽에서 현대의 뉴칼레도니아와 뉴질랜드, 그리고 채텀 섬과 태즈매니아를 발견했다. 섬들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이민호에게 떠넘겨 골치를 앓아야 했다.
“주인니이~임!”
왕궁 복도에서 파티마가 이민호에게 반갑게 달려왔다. 평소와 달리 화장을 하고 옷도 좋은 것으로 골라 입은 파티마는 역시 고산국 대표 모델답게 얼굴화장을 하면 정말 예뻤다. 그런데 파티마는 지난 연말에 왕궁에 들어온 갈라티아 소녀들 대여섯 명을 데리고 다녔다.
“파티마? 아직 어린애들인데 왜 벌써 일을 시키는 거야? 학교 보내라고 했잖아.”
“수업 끝나고 오후에만 잠깐 일을 가르쳐주는 거여요. 애들 예쁘죠? 이제는 조선말도 잘해요.”
“귀엽네. 왜 옷을 이런 걸 입혔어?”
열 살에서 열네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메이드 복을 입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미소녀 오타쿠들이 봤다면 코피를 흘리며 뒤로 나자빠질 만한 광경이었다.
“두아르테 씨가 특별히 예쁜 애들만 골라 왔나 봐요. 꺄악! 다들 너무 예뻐요. 어쩜 좋아!”
“요즘 그 지역에서 전쟁하나? 왜 애들이 노예로 팔려오지?”
그러나 갈라티아는 소아시아에서도 내륙 지방이었다. 외국군의 공격을 받기는커녕 요즘은 오스만제국이 유럽과 흑해 연안으로 진출해 영토를 확장하는 시기였다.
1571년 레판토 해전의 패배 이후 오스만제국의 해군은 더욱 강해졌고 지중해에 대한 패권 장악을 강화했다. 잠시 페르시아와 싸우느라 유럽에 신경을 안 썼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주력 전선이 유럽 방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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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월입니다. 인도양 진출 외에는 큰 일이 없는 해라서 쭉쭉 나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