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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400화 (349/1,000)

00400  44. 내부 발전  =========================================================================

국방연구소와 농업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파종기를 시험하는 곳에 국왕 일행이 거둥했다. 경운차에 간단한 설비를 달아서 씨앗을 심는 작업을 가장 먼저 했고, 그 다음 설비를 교체하고 유리온실에서 키운 모판을 가져와 추운 겨울에 모내기를 했다.

경운차를 소형화한 경운기로도 똑같은 시험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예 전용 이앙기를 만들어 여섯 줄로 모를 빠르게 심고 지나갔다.

“와! 확실히 전용 이앙기가 효율적이군요. 농민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손톱이 아렸소이다. 이제 그럴 일은 줄어들겠군요.”

“그렇습니다, 전하. 너른 평야에서는 이앙기를 쓸 만합니다. 고중 평야는 고북 평야의 열 배 이상이며 논을 만들 만한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인력이 적어서 대부분 땅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고남 인근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북에도 몇 대 두고 공용으로 쓸 만하겠소.”

“모내기 날짜가 약간 차이가 있으니 모내기를 마친 고남에서 빌려오면 됩니다.”

이앙기 가격이 너무 높아 일반 농민이 개인적으로 쉽게 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고산국 백성들의 소득이 높다 하나 이 시대에 쇠로 만든 정밀기계의 생산 원가는 현대와 비교하기 어려웠다. 물론 마을 단위로 갹출해서 살 수 있는 정도였으니 시간이 지나면 마을마다 이앙기를 갖출 것으로 예상했다.

“그 방법이 있군요. 쌀 생산량이 확 늘겠소만, 더 이상 먹을 사람이 없소. 지금도 쌀이 남아돌아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꿀꺽!”

농업연구소장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침을 꼴깍 삼켰다. 예전부터 고산국의 쌀 생산량이 소비에 비해 많아서 남아도는 쌀은 조선이나 동해국, 아이누 섬에 수출했고 일본에는 안남 쌀을 중개 무역했다. 그러나 술을 빚을 쌀은 남지 않았다.

쌀이 더 남으면 쌀로 술을 만들어도 되니 술 좋아하는 남자로서 기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사탕수수를 발효한 술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농업연구소장은 쌀 생산량 증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

- 찰찰찰찰~

커다란 바퀴가 달린 경운차와 달리 쇠바퀴가 무한궤도 위를 구르는 식으로 움직이는 차량 두 대가 나타났다. 불도저와 포클레인, 건설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비였다. 흉물스럽게 생긴 거대한 기계를 처음 본 호위들은 물론 이미 몇 번 봤던 장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불도저는 개발단계에서 배토기, 평토기 등의 임시 이름을 붙였다가 지금은 장인들이 흔히 땅고르개로 부르고 있었다. 포클레인은 굴착기, 굴삭기라고 하다가 지금은 삽차로 불렀다. 바위를 깨는 일보다는 토사를 퍼 담는 일을 더 많이 하는 탓이었다.

땅고르개가 굉음을 울리며 밭에 쌓인 흙을 밀고 지나갔다. 이 장면은 누구에게나 기억에 오래 두고 남을 인상적인 장면이 틀림없었다. 땅고르개가 전진해오면 정면에 서서 버틸 사람이 없었다.

“힘이 아주 좋소. 일꾼 100명 몫을 충분히 하고도 남겠소.”

“힘만으로 따지면 그 이상입니다.”

국방연구소장이 맞장구를 쳤다. 이번에는 삽차가 행동에 나서서 긴 팔을 움직이더니 뾰족한 쇠침을 바위덩어리 같은 것에 대었다.

- 딱! 딱! 딱! 따따따따따! 땃!

“어휴! 시끄러워.”

굴착기가 보통 바위가 아닌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를 단 몇 초 만에 부쉈다. 기다란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잔해를 이동시키더니 제자리에서 360도 빙빙 돌았다. 잠시 정을 삽으로 교체하는 동안 이민호가 장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전하! 어명에 따라 바퀴 달린 소형 건설차를 만들고 있사옵니다. 헌데 대형 건설차에서 땅고르기와 삽 두 가지를 동시에, 또는 바꿔가면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크게 만들려면 효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알겠소. 나중에 소형 건설차에서 기능을 합하더라도 중형 이상은 아예 처음부터 나눠서 개발하시오.”

“무한궤도 달린 차량은 쓸모가 많을 것 같습니다. 험지나 사막, 빙판이나 눈밭에서도 추진력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군용으로도......”

“건설 현장에서 저 두 가지 차가 큰일을 할 것이오. 화물차는 잘 만들고 있소?”

“전하께서 시키신 대로 유압으로 작동하는 쇠기둥으로 적재칸을 세웠다 눕혔다 하는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운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불도저와 포클레인, 덤프트럭 세 가지면 토목공사 현장에서 두려울 게 없었다. 자동차보다 기관차와 농업용 트랙터, 건설장비를 먼저 만들어서 차례가 뒤바뀐 느낌이 들었으나 필요한 것을 먼저 개발한다는 고산국 국방연구소의 원칙에 들어맞았다.

삽차가 땅을 파고 흙을 퍼내 화물차에 실었다. 삽차의 팔에는 보이지 않지만 불끈불끈 힘이 넘쳤다. 유압 실린더를 만드는 중에 고생을 많이 한 장인 대표가 눈시울을 붉혔다.

“땅고르개가 자력 운행하면 도로가 다 깨질 것이오. 반드시 화물차에 싣고 움직이도록 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군용으로 전용하면......”

“하하! 수고하셨소. 금일봉을 하사할 테니 그 동안 고생한 장인들과 한 잔 하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국방연구소장을 따로 부른 이민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장인들끼리는 다음 개발목표가 뭔지 수군거릴 수 있겠지만, 장갑차 개발 계획이 미리 밖으로 퍼져 나가서 좋을 일은 없었다.

“군용은 나중에 생각하시오. 저것들은 건설용 중장비요. 나중에 군용으로 전용할 생각은 말고 건설에 가장 알맞게 만드시오. 알겠소?”

“예. 전하. 입을 다물겠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시켜주십시오!”

“풋! 알겠소. 다음 계획을 기대하시오.”

개발 중에는 그렇게 우는 얼굴을 하며 일 많다고 투덜거리더니 장인 대표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이민호 입장에서야 일이야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었다.

터널 굴착기나 시추선을 개발하는 일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 될 것 같았다. 이민호도 개요만 알지 정확한 작동방법을 모르는 물건을 만들려니 개발기간이 많이 소요됐다.

12월 중순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오스만제국의 술탄 칼리파, 무라트 3세로부터 국서를 받았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반대했어도 일단 고아 부왕은 예전에 수에즈 운하 건설에 대한 문의를 오스만제국에 해두었던 모양이었다.

부황 셀림 2세는 인도네시아를 정복하려 했고, 무굴 제국 외에 인도의 토호, 군주들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무라트 3세 재위 중에는 유럽 쪽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무라트 3세 폐하는 정말 위대한 군주에요.”

“예를 들자면?”

무라트 3세는 20대 후반에 즉위해서 현재 50세 가까이 됐으니 가장 이상적인 나이에 즉위해서 지금 가장 정열적으로 국사를 돌볼 때였다. 그러나 무라트 3세는 한 달 후인 1595년 1월 15일에 사망하고 제위는 큰 아들 메메트 3세가 이어받는다.

오스만제국은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신성동맹에게 패배했으나 금방 해군력을 복구하고 키프로스 섬과 튀니스를 점령하는 등 여전히 지중해에서 군사적인 우위를 장악했다. 1574년에 즉위한 무라트 3세는 발칸반도 대부분을 석권해 유럽에 큰 위협이 되었다.

“자식을 100명도 넘게 두었어요.”

“정말 위대하구나.”

브루나이의 두나 공주가 터키어와 아랍어, 프랑스어로 병기된 국서에서 아랍어로 된 부분을 통역해주었다. 두나 공주는 아랍어 문어뿐만 아니라 구어도 능숙하게 구사했다.

“인사말이 굉장히 긴데 넘어갈게요. 고산국왕은 강력한 해군을 동원하고 신의 도움을 받아 아시아의 바다에서 활동하던 여러 해적 집단들을 격파했소. 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에 종사하는 아랍과 인도 상인들을 보호해준 고산국왕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대에 대한 우호의 감정을 국서에 실어 보내는 바이오. 내 딸 암리예 술탄이 그대를 몹시 흠모하고 있다오.”

“설마 나한테 시집보내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오스만제국의 군주를 술탄 칼리파라고도 하며 보통 샤한샤나 파디샤 등으로 불렀다. 이 시기에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왕자, 공주, 왕비 등에게 붙은 명칭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제국의 군주를 황제 또는 술탄으로 흔히 부를 수 있었다.

“계속할게요. 이집트의 운하가 메워진 것은 운하가 건설된 뒤 천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탓도 있었지만 그 지역을 장악했던 나라의 군사 안보상의 결정에 따른 결과였소. 그러나 내 나라 오스만은 아시아와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만큼 두려워할 만한 적이 있을 리가 없소. 그래서 장남이자 후계자인 메흐메트를 시켜 수에즈에 운하를 건설하는 일로 고산국왕과 협의하라고 칙령을 내려두었소. 이집트의 천한 노예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고산국왕은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 메흐메트와 함께 운하 재건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도 좋소.”

“의외로 긍정적이네.”

이민호는 하나 공주와 세나 공주의 푹신푹신한 몸을 안고 잠시 고민했다. 오스만 제국의 하렘에 비교하면 이민호가 거느린 여자들 숫자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대역사를 이뤄보겠구나.”

“운하를 건설한다면 목재를 어마어마하게 팔 수 있겠네요?”

큰 공사가 시작되면 여러 나라가 알게 모르게 참가하게 된다. 브루나이에서 목재, 조선에서 시멘트, 명나라와 필리핀에서 철광과 석탄, 이집트에서 인력과 모래, 유구국에서 수송을 맡으면서 경기가 좋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를 만들 때의 비용 분담과 완성 후의 수익 분배는 아직 정해진 게 전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운하 건설 계획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었다. 오스만 황제가 이집트 총독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도 어쩐지 수상했다.

“그래. 브루나이 전체가 민둥산이 될지도 몰라.”

“흣! 브루나이가 얼마나 넓은지 주인님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셔서 그래요. 지도로 볼 때와 전혀 달라요. 나무를 베는 동안 어린 나무들이 얼마든지 자랄 거여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가 한때 보르네오 섬 전체의 목재가 마를 뻔했었다. 현대의 보르네오에서 티크 목이 씨가 말라서 이후 버마가 티크 원목의 주산지로 등장했다.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니까 괜히 김칫국부터...... 아니 섣불리 벌채량을 늘리지 말고 묘목 가꾸는 일에 더 신경을 써.”

“네! 얼마든지 키운 다음 실컷 팔아먹을게요.”

이민호가 두나까지 끌어 당겼다. 통통하고 따뜻한 브루나이 공주들의 몸을 안고 있으면 조금 무겁긴 했지만 편안해져서 졸음이 쏟아졌다. 예전 같으면 여자로 안 봐준다고 섭섭했던 브루나이 공주들은, 이제는 이민호를 가장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면서 뿌듯해 했다.

12월 말에 태평양 탐사대장 임현석 중령이 돌아왔다. 1차 탐사대장이었던 그는 서양 상인들이 떠난 다음인 12월 초에 출발한 3차 탐사대를 이끌었다.

먼저 떠난 2차 탐사대는 1차 탐사대의 항로를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반면에 3차 탐사대는 태평양 항로를 최단 기간에 도는 임무를 맡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돌아왔다.

“항해일지 요약본을 제출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 남쪽에서 2차 탐사대를 따라잡았습니다. 그들이나 저희들이나 큰 사고는 없었습니다.”

“대단하군. 훌륭해. 사고 없이 돌아와서 기쁘다.”

“감사합니다. 멕시코 부왕, 그러니까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이 여름에 보냈던 국서의 답서를 받아보곤 몹시 놀랐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태평양이 우리에게 넘어왔다는 뜻이니까.”

탐사대는 북태평양 대권항로를 따라 최단 거리로 태평양을 횡단한 다음 북미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멕시코 부왕을 방문하고 적도에서 서쪽으로 항해했다. 그리고 지난 탐사에서 중간 중간 빠뜨렸던 뉴기니 섬과 필리핀 동부 해안의 측량을 마치고 무사 귀환했다.

3차 탐사대는 대형 탐사선 2척, 대형 연료수송선 2척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배가 예비 기관 4기씩을 추가로 탑재하고, 평소 기관 4기를 가동해 순항속도로는 최고 속도로 달렸다. 배마다 기관 몇 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다가 결국 완전히 고장나버렸다.

탐사대가 멕시코시티 남쪽 아카풀코에 도착했을 때는 비상용 경유 약간을 남겨두고 수송선 연료저장고에 실린 연료가 모두 떨어진 다음이었다. 아카풀코에서 땅콩을 대량으로 사들여 압착기로 연료를 짜내 수송선의 연료저장고를 가득 채운 다음 다시 출발했다.

“통상 순항속도였다면 연료수송선을 대동하지 않고도 북태평양 횡단이 가능합니다. 왕복은 조금 어렵습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경유와 연료유 저장 시설이 있다면 언제든 배를 보낼 수 있겠군.”

“예. 하오나 거대한 파도에 겁을 내지 않을 용감한 조타수가 필요합니다. 조타수 두 명이 더 이상 배를 타지 못하게 됐습니다.”

산더미 같은 파도를 정면에서 받으며 헤쳐 나가야 하는 대양의 선원을 제정신으로 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동영상을 봤던 이민호는 그 장면을 상상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타수라면 근무시간 내내 거대한 파도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조타수들이 다른 선원들보다 정신적인 타격을 크게 받은 것 같았다.

“안됐군.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지상근무를 시키거나 원하면 전역시켜. 몇 년차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면 평생 연금 받을 자격이 충분히 된다.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자주 생길 텐데, 그때마다 조타수를 잃으면 안 되지 않나? 문제 해결 방법이 있다면 듣고 싶네.”

============================ 작품 후기 ============================

계속 이어질 내용입니다.

어느덧 400회나 올렸군요.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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