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6 44. 내부 발전 =========================================================================
초겨울이 되면서 조선에서 유랑 연희패가 하나 흘러 들어왔다. 패거리들은 팔도를 돌다가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에서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번에는 고산국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놀이패는 해중국에서 먼저 하루 공연을 한 다음 왕도로 넘어왔다. 해중국에서 인기가 좋아 놀이패가 왕도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소문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 구경꾼들 중에 이민호도 끼어 있었다.
“남사당패라는 이름이 아직 없구나. 몰랐어.”
이민호는 솜사탕을 먹으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인 어름을 구경했다. 얼굴에 큼지막한 점 하나 찍고 구경꾼들 사이에 섞이니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호위하러 이민호를 따라온 민영의 얼굴을 훔쳐보기 바빴다.
“와! 이번에는 꼼짝없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오후에 풍물패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손님을 모으고 대접 돌리기와 땅재주로 손님을 끌어 모으더니 밤부터 본격적으로 난장을 벌였다. 줄타기는 각본을 짜릿하게 짜서 손님들 입으로부터 연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조선에서 하는 놀이와 거의 다 같았으나 마당극만큼은 고산국에 맞춰서 진행됐다. 왕으로 분장한 배우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젊은 여자 손님들에게 껄떡거렸다.
“에헴! 나는 정력 넘치는 고산국 국왕이니라. 삼천 궁녀로 모자라니 너도 오늘밤부터 내게 수청을 들도록 하여라.”
“꺄악!”
왕으로 분장한 배우가 여자 손님들 얼굴에 아랫도리를 들이댔다. 여자들이 얼굴을 피할 때마다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이민호에 대한 백성들의 인상이 그런 모양이었다.
“하여간 너무 밝혀서 문제라니까요.”
옆에 앉은 민영이 이민호의 팔을 꼬집었다. 이 문제에서만큼은 이민호도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젊은 귀족 여자들 천 명이 왕도에 도착해서 대부분 면직공장에서 일하게 됐으나, 몇 명은 궁성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아직 여자들 얼굴도 못 봤는데 욕만 먹게 됐으니 너무 억울했다.
그 사이 말뚝이가 나타나 왕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주로 여색을 밝히는 왕을 비난하고 학정에 대한 준열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객석에서 우우~ 소리를 내며 야유를 퍼부었다. 배우들이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마당극은 계속 진행됐다.
“고산국이라는 나라가 조선에서 나왔으면 조선의 왕통을 모셔야지, 천한 무관의 아들이 왕이 웬 말이냐?”
“우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 능력이 있으면 나라를 세우고 나도 그럴 듯하게 왕 노릇 한 번 해봐야지.”
“옳소~”
배우들의 대사 중간 중간에, 관객들의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야유 소리가 높아졌다. 원래 극본은 고산국 왕이 반성하고 조선의 왕자에게 왕위를 넘기는 내용 같았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심각해지자 배우들이 그 자리에서 대사를 수정해나갔다. 나중에는 배우들이 고산국왕의 업적을 칭송하는 식으로 마당극이 흘러갔다.
“어머! 고산국의 국왕전하께서는 의외로 백성들에게 사랑받나 봐요?”
“그러게 말이다. 색골 주제에. 큭큭!”
민영이 농을 걸자 이민호가 동의했다. 놀이는 밤늦게까지 계속됐고, 이민호와 민영은 적당히 중간에 빠져 나왔다.
“놀이패가 조선에서 왔으니 조선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건지, 아니면 고산국에 친조선파가 있어서 내용에 관여했는지 모르겠어.”
“당연히 있겠지요. 비록 고산국에 이민 왔으나 아직도 조선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여요. 너무 섭섭해 하지 마세요.”
고산국 백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세대나 1.5세대는 조선 태생이라 아직도 고산국보다는 조선에 감정이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고산국왕인 이민호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마치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 1세대처럼 두 나라 모두를 조국으로 여기는 경향이 컸다.
그래도 고산국에 와서 생활이 나아진 덕에 백성들에게 이민호의 인기는 좋은 편이었다. 이민호를 비난하는 배우들에게 관객들이 괜히 야유를 퍼부은 것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살벌해지며 배우들이 중간에 극본을 바꿔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향반이나 중인 출신 노인들은 고산국에 몇 년째 살면서도 이민호를 탐탁찮아 했다. 조선과 달리 신분제가 없는 고산국에서 상실감을 크게 느낀 탓이었다. 공연히 불사이군 운운하면서 고산국에서 사는 주제에 여전히 조선의 충신인 척했다. 고산국이 오랑캐 나라라서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당연하겠지. 그래도 의외로 왕실에 대한 지지가 높구나.”
“주인님이 정치를 잘한 것이 아니라 혜영 총리님이 잘한 덕택이에요.”
“그래, 그래.”
고산국에는 상소제도가 따로 없었지만 누구든 국정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건의 또는 비판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상소 아닌 상소는 하루에 열 몇 장씩 궁궐에 도달했다. 혜영은 다 읽어보는 모양인데 이민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노인들이 보내는 상소 내용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왕이 솔선수범해서 근검절약해야 한다든지, 부지런히 유학을 공부해서 매사에 성현의 말씀을 따르는 성군이 되어야 한다든지 하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조선의 학식 있는 유학자들이 조선국왕에게 건의한 상소 내용을 고산국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그대로 베끼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죽고 나서 문집에 싣기 위해 괜히 상소를 보내는 실력 없는 자칭 유학자들도 많았다. 조상님이 국왕에게 충심을 담아 준엄하게 꾸짖으니 국왕이 충심에 감동해 나쁜 버릇을 고치고 조상이 충신이라고 칭찬했다는 식으로 윤색될 것이다.
그러나 가끔 괜찮은 내용을 보내면 혜영이 국정에 참조하기도 하고, 불러서 대화를 해본 다음 관리로 출사시키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은 유학을 공부하다가 이민 온 젊은이거나, 신분의 한계 때문에 문과에 합격하지 못한 중년들이었다. 조선에서 잡과나 무과에 합격했다가 하급직에서 금방 그만 둔 자들 중에도 의외로 학식이 있는 사람이 많아서 부족한 관리로 채용했다. 물론 이런 일은 혜영이 다 알아서 했다.
다음 날 오후 이민호가 꼭두쇠를 궁궐에 불렀다. 원래 오전에 부르려 했는데 밤늦게까지 공연하느라 다들 늦게 일어났다고 했다.
“흠! 내 욕을 걸쭉하게 잘하더군 그래.”
“황공하옵니다, 전하! 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납작 엎드린 꼭두쇠가 땅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이민호에게 사과했다. 이민호가 뒤끝이 있어서 이렇게 놀이패의 꼭두쇠를 불러 어제 마당극에 대한 보복을 하고 있었다.
“그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비난하겠다는 건가?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내 욕을 마구 하겠다는 거지?”
“당연합니다. 마당극은 관객들과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전하께서 성군이시면 굳이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암군이시면 마당극에서 실컷 까야지요. 그래야 관객들이 통쾌해하고 마당극이 더욱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조선 후기의 마당극에서는 양반층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도 소재로 삼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양반을 우스갯거리로 삼는 남사당패나 마당극의 재정후원자가 양반이라는 사실이었다. 놀이패가 양반을 신나게 까고 심지어 저질스럽게 모욕하는데도 돈을 내어 마당극을 열게 한 양반들도 상민들과 함께 껄껄대며 구경했다. 양반들도 걸핏하면 국왕을 비난하니까 양반이 천민에게 비난을 당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맞았다.
봉산탈춤의 연행자로 등장하는 배우는 진짜 관아의 서리 계층이었다. 현대로 치면 시사비평 연극을 하는 중에 등장하는 경찰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 알고 보니 진짜 현직 경찰인 셈이었다.
“내가 꼭두쇠를 부른 것은 욕먹었다고 열 받아서 그런 게 아니라네. 고산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놀이를 해줬으면 해서 불렀네. 고산국은 놀이가 너무 부족해서 사람들이 심심해하거든.”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조선은 겨울에 너무 춥거든요. 물론 겨울에 각종 곡예 연습을 해야 합니다만, 놀이를 열 수 있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국에서 놀이패를 위한 행정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놀이를 할 장소와 교통편, 숙박 장소를 잡아주고 놀이를 열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급하기로 했다. 관객들이 던져주는 돈푼은 당연히 놀이패가 차지했다. 그리고 모든 놀이패 단원에게 월 은 2냥씩 지급하기로 했다.
“마음에 들면 정착해도 된다네. 다만 놀이패에 새로 넣을 만한 고아나 거지 아이가 고산국에는 없어. 지원자가 어쩌다 있겠지만 어린이가 그런 결정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부모는 없겠지? 결혼을 해서 정착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물론 자네 아이들이라도 싫다면 억지로 놀이패를 시키지 못해.”
“저희야 항상 돌아다니고 싶습니다만, 사실 근거지는 있지요. 패거리들하고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춤이나 요술, 아슬아슬한 곡예라면 상관없지만 마당극은 어린이에게 보여줄 만큼 건전한 놀이가 절대 아니었다. 사실 음담패설 수준으로 놓고 보면 성인용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린이끼리 잘못된 성지식을 교환하느니 드러내놓고 성적 농담을 하면서 웃고 즐기는 게 차라리 나았다.
놀이패는 고산국에 정착해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 내용도 조선의 다른 놀이패와 많이 달라져 서커스 비슷한 요소가 꽤나 들어갔다. 나중에 다른 놀이패가 두셋 들어왔다가 한두 패가 나가는 식으로 수시로 변동이 있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인들이 도착해서 가을의 상담이 시작됐다. 지난번에 견본을 넘겼던 양탄자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해왔는지 포르투갈 상인들이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에스파냐 상인들은 아직 양탄자를 본국에 보내지 못할 시간이었으나 품질을 충분히 인정했다.
“인도와 아라비아, 페르시아 상인들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고 품질이라더군요. 같은 무게의 금과 바꾸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역시 고산국입니다.”
“섬세한 제조기술도 우수하지만 양털의 품질이 아랍 지역에서는 만들 수 없는 고급품이라고 합니다. 카슈미르 산양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더 낫다고 합니다.”
이민호가 한숨을 팍 내쉬었다.
“당연하지요. 조선과 여진의 영산인 백두산 남쪽 개마고원에서 극도로 추운 겨울을 보낸 산양의 가슴 부위에서 뽑은 털로 짠 양탄자라오. 백호와 곰, 설표에 맞서 싸우다 3명이 죽고 4명이 큰 부상을 입어가면서 정말 힘겹게 생산한 양털이오.”
“세상에!”
이민호가 입맛을 다셨다. 양탄자의 본산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도 계속 생산할 수 없어 정말 아까워 죽을 것만 같았다. 춥고 건조한 고산지대라는 지역은 의외로 구하기 까다로웠다. 물론 백호와 설표가 목장을 습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호랑이와 표범이 눈언덕 뒤에 숨어서 습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고급품은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오. 사람을 죽여가면서 돈을 벌 수야 없지 않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양탄자는 영원히 최고의 제품으로 남겠군요. 왕궁에 보낼 것 하나 외에는 박물관에 보관하겠습니다. 하오면 그보다 품질이 낮으나 가격이 좀 더 현실적인 양탄자가 있겠군요?”
상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째서 상담하는 곳에 양탄자 견본이 없느냐는 의문이었다.
“아시다시피 양털은 겨울에 채취해야 합니다. 초겨울에 채취하면 산양이 겨울을 못 버팁니다. 늦겨울에 양털을 채취해서 제조할 테니 봄에 사십시오.”
“그렇겠군요. 정말 아쉽습니다.”
그러나 양탄자는 못 만들더라도 스카프나 모자, 터번용 천은 만들어놓았다. 카슈미르 지방에서 생산되는 캐시미어 천과 비슷한 품질이었으나 직조 기술의 세밀함에서 고산국이 훨씬 우위에 있었다. 최고 품질을 생산한 곳에서 나온 제품이라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비단을 섞어 짠 제품도 특유의 광택으로 인해 좋은 값을 받았다.
옥 도자기 등 다른 제품도 대규모로 거래했다. 유럽 상인들 입장에서 충분한 이익이 나는 거래라서 규모가 갈수록 커졌다. 면포 거래 규모도 커졌는데 특히 빨간색과 파란색, 자색 옷감의 수요가 늘어났다.
“파란색은 쪽이 틀림없습니다만, 빨간색과 자색은 어떤 염료를 쓰는지요? 알리자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쪽 아니요. 빨간색도 알리자린이 아니오.”
“역시 쪽이 아니었군요. 세탁을 여러 번해도 물이 전혀 빠지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말해줄 수 없소. 가르쳐줘도 모를 거요.”
에스파냐 상인이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인도에서 쪽을 대량 생산하고 남프랑스에서는 꼭두서니를 생산합니다. 각각 그 지역에서 큰 경제적 비중을 차지합니다. 고산국에서 생산한 면포가 유럽에서 인기를 얻으면 지금까지 염료의 원료 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 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염색한 면포는 일정 숫자만 수출하기로 했소. 다른 나라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 말이오.”
사실 고산국에서 염색한 면포를 고가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염색하지 않은 면포에 비해 착색한 면포는 최소 두 배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염색하느라 추가로 들인 비용에 비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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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 좀 더 이어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