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95화 (344/1,000)

00395  44. 내부 발전  =========================================================================

큐슈에서 정문부가 매주 보고서를 보내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궁성을 방문해 이민호를 직접 만나 협의했다. 이번에는 일본에서 전염병이 도는 바람에 오사카 건너편 아와지 항을 폐쇄했다는 보고를 하러 왔다.

“항구를 폐쇄한 것은 잘 하셨소. 사는 곳이 더러우면 돌림병이 유행하는 법이오. 병이 시코쿠와 큐슈에 퍼지지 않도록 왜인들이 못 오도록 잘 막으시오.”

“혼슈에서는 여전히 식량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입니다. 혼슈 땅에서 가까운 곳에서 헤엄쳐 건너오는 왜인들을 적발해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도는 위험한 시기라서 월경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는데도 계속 헤엄쳐 옵니다.”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문제겠지요. 적당히 대가를 받고 쌀과 잡곡을 넘기시오. 식량을 넘길 때도 왜인들과 직접 접촉하지는 마시오. 그쪽 물건도 당분간 들이지 마시오.”

전쟁 중에, 혹은 끝난 다음에 전염병이 도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조선에 전염병이 크게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공중위생이 열악한 전쟁 시기에 영양상태가 극도로 떨어진 탓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병에 걸렸고, 걸리면 대부분 죽었다.

역사와 달리 조선이 아니라 일본에서 예상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코쿠와 혼슈 사이의 교역을 차단하고, 만약 시코쿠에도 전염병이 돌면 큐슈와 시코쿠의 통행을 폐쇄할 계획이었다.

“병을 차단하는데 최우선 목표를 삼겠습니다. 그럼 식량 값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다이묘들이 그때까지 살아남을지 모르지만요.”

“못 받아도 상관없소.”

혼슈로 영역이 줄어든 일본 내부에서는 중소 다이묘들만 남아서 현재 치열하게 내전 중이었다. 고산국은 중립을 표방했으나 군량과 화약을 사려는 사신들이 아와지 항에 장사진을 쳤다. 그러나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항구를 폐쇄하고 교역을 정지시켰다.

이민호는 시코쿠의 왜인들을 시켜 식량을 오사카와 사카이 항구에 버리듯이 던지고 돌아오게 했다. 그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왜인들끼리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큐슈와 시코쿠는 추수를 한 번 하고 나니까 한결 안정됐습니다. 왜인들이 이제야 온전히 살아남게 됐다고 안도하는 표정들입니다. 벳푸에서 일하던 왜인 포로 여자들 300명 정도가 여진 기병들에게 시집갔습니다. 대부분 후처나 첩으로 들어갔으나 개인 의사를 존중해서 허가했습니다.”

“그렇구려. 왜인 여자들이 일을 참 열심히 하던데 솔직히 말해서 여진 기병에게 주기에는 좀 아깝소.”

이 시대 일본 평민 여자들이 생활은 억척스럽게 잘 하나 남녀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수동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없는 동안에는 술에 취해 싸움이나 일삼는 여진 기병에게 납치당하듯 시집가는 일본 여자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러나 정문부가 사람을 보내 확인해보면 일본 여자가 자기 의사로 따라갔다고 주장해서 제재를 하지 못했다.

“다들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일본 여자들은 가급적 기리시탄 의용병들하고 잘 이어지도록 만날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다이묘들이 전하께 바친 귀족 여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아직은 조선말을 가르치면서 고산국식 생활에 적응시키고 있습니다.”

“잊어버렸는데, 얼마나 되오?”

“천여 명입니다. 왜인 여자 포로들을 통해서 관리하긴 하는데, 원래 신분이 높아서 함부로 대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이민호 개인에게 바쳐진 여자들이었다. 현실적으로 이민호가 천여 명이나 되는 여자들을 데리고 살 수는 없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부하 장수들에게 적당히 나눠주는 것이 상례인데 이민호는 전쟁 중이라 혹시 암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내버려두었다.

이제 일본과의 전쟁이 완전히 끝났으니 어떻게든 처분을 해야 했다. 그 여자들의 가문 대부분이 이미 멸망했거나, 망해가고 있었다. 돌려보내더라도 이들이 돌아갈 곳이 없었다.

처음에 이민호는 분명히 거절의사를 밝혔으나 여자를 데려온 일본 사신들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돌아갔다. 히메(姬)라 불리는 귀족 여자들 몇 명은 큐슈에 도착하자마자 양쪽에서 버림받은 사실을 알고 자살했다.

“불쌍하니 고산국으로 보내시오. 예전 같으면 고산국에서 아주 좋은 신붓감이었는데 전쟁 이후 일본 여자들 인기가 뚝 떨어진 것 같소.”

“초소카베 가문과 도도 가문의 여자들은 전하께서 받아주소서.”

“으음. 시코쿠를 다스리는데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소.”

큐슈는 속국, 시코쿠는 괴뢰국 정도의 법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원래는 방어 부담 때문에 싹 비워버리려 했으나 기리시탄 의용병들을 받아들이느라 떠맡게 됐다. 전쟁 전 상황으로 복구되려면 최소 몇 십 년은 넘게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혼슈의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간세들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내전이 벌어진 이후 인세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전쟁을 피해 산속 깊이 들어간 자들도 내전의 참화로부터 도망치지는 못했다. 외국 군대가 주요 간선도로만 지나간다면, 내전에서는 산길과 골목길까지 훑는 법이었다.

큐슈에 대한 경비 임무는 각 연대별로 1개 대대가 교대로 총독부 인근에 주둔하는 방식으로 수행됐다. 큐슈 전역에 대한 경비임무는 기리시탄 의용병과 왜인 지원병들이 총독부의 명령을 받아 주둔하거나 이동하면서 수행했다.

해상경계는 전선 4, 5척이 고산국에서 출발해 큐슈 연안을 돌다가 다시 시코쿠에 며칠 머물다 돌아오는 식이었다. 전선이 혼슈 연안을 돌다가 돛을 단 왜선이 발견되면 적선으로 간주해 여지없이 격침시켰다. 단기간에 혼슈 연안 어업이 극도로 위축됐고, 일본의 식량 사정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사쓰마의 히시카리 금광은 잘 돌아갔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갱도에 안전시설부터 제대로 설치하고 고인 물을 뽑아내 작업환경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잘 먹이고 작업시간도 8시간으로 제한해서 광산 작업에 투입된 포로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탈주를 시도하는 자들이 있어서 산간지방에서 추격전이 벌어지곤 했다. 대부분 잡혀 돌아와 일부는 처형당하고 일부는 심하게 벌을 받았다. 지금까지 2, 3명이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됐다.

금광에서 두 달에 한 번씩 금을 정련해서 왕도에 보내는데 톤 단위로 들어와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무조건 세금 절반부터 까고 시작해서 1년에 순금 10만 냥 이상이 국고에 유입됐다. 그러나 대부분은 전쟁 부채를 갚느라 내탕고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일본과 전쟁을 수행하는 중에 이민호 개인에게 진 빚을 갚느라 국가재정이 계속 압박을 받았다. 국가를 수익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두려운 이민호가 부채를 적당히 감해주었으나 여전히 많은 액수가 남았다. 결국 히시카리 금광에서 채굴한 금 대부분이 내탕고로 직행하게 되었다.

사실 3인치 포탄을 대량으로 군에 넘길 때 가격을 너무 높이 책정한 것이 맞았다. 무연화약을 제외한 나머지 포탄 생산비가 은 한 냥 정도 들었으니 현대에 비해 훨씬 비싸게 먹히는 편이었다. 여기에 화약을 충진한 다음 군에 넘길 때는 포탄 한 발에 은 20냥이라는 가격을 붙였다. 3인치 포탄은 현대 해군의 함포탄처럼 정밀도가 높은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바가지를 씌운 셈이었다. 포탄 한 발에 쌀 40석이라고 하면 처음 사격훈련에 나선 신참 포병들은 발포하기를 주저할 정도였다.

“전하께서는 어째서 저를 그리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십니까? 몹시 불안합니다.”

“그 동안 일본에서 잘해주셨소. 이번에는 호주로 가주시겠소?”

“으윽! 역시나. 신임 총독에게 인수인계가 필요할 테니 한 달만 쉬게 해주십시오.”

참의급 대신을 큐슈 총독으로 정하고, 함께 가서 인수인계를 마친 정문부를 사흘만 쉬게 하고 바로 호주로 보냈다. 드넓은 호주에 대한 설명 개요만 듣고도 정문부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정문부는 경운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왜 경운차가 필요한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 도착하면 다 이해하게 되어 있었다.

화학연구소에서는 석유에서 수많은 화합물을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서 이민호가 내버려둔 이쪽도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연구원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서 이민호가 가끔 방문했다.

연구소장이 회색 종이 같은 것을 가져왔다. 나프타에서 뽑은 다양한 고분자화합물을 분류하고 가공해 새로운 용도를 찾는 작업 중에 새로운 물질을 찾아낸 것이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전하.”

“그건 비닐 아니오?”

“이름이 비닐입니까? 그렇게 정하겠습니다.”

석유에서 뽑은 폴리에틸렌은 범용 필름인 비닐봉지나 비닐하우스 재료를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플라스틱 환경 쓰레기 시대가 도래했다. 태평양이 쓰레기로 채워지지 않게 하려면 석유화합물의 용도를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종이보다 얇게 만들 수 있지만 불이나 열에 너무 약하고 잘 찢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실패작으로 분류됐으나 혹시 용도가 있을까 해서 전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투명하게 만들면 온실 유리 대신에 사용할 수 있소.”

고산국이 조선에 비해 따뜻하다지만 겨울에는 역시 온실이 필요했다. 그러나 유리가 워낙 비싸서 온실농업은 그리 발전하지 않았다. 왕궁에서 먹을 채소만 왕궁 후원 온실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채소는 남쪽 지방에서 배로 실어왔다.

“그 비싼 온실 유리를 싸게 대체할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그럼 투명하게 해서 햇빛이 통과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열에 약하긴 하지만 색을 넣어 전선 피복을 만들어봅시다. 고무보다 낫겠소.”

“오! 그런 용도가 좋겠습니다.”

화학연구소에 특별히 의사와 간호사를 배치하고 최초로 창설한 소방대도 이곳에 근무시켰다. 연구원들 중에 몸에 화상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실험 중에 사고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연구원들이 실험에 들어갈 때마다 생명수당을 받는 유일한 연구소가 되었다. 미지의 물질을 연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새로운 물질의 합성법과 용도를 알아내는 일이 즐거워 연구원들은 저마다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사망 사고가 아직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전하께 오늘 소개시켜드리려는 물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상태가 연질과 경질이 있는데 성형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출 실험을 하다가 대나무를 대체할 원통형 수도관을 만들어봤습니다. 단단하고 길게 만들 수 있으며 전혀 썩지 않는 성질이 최대 장점입니다.”

“플라스틱 파이프인데, 혹시 화합물에 대한 통합적인 명칭 부여를 하고 있소?”

“그런 건 아직 없습니다.”

폴리염화비닐은 용도가 굉장히 많았다. 플라스틱 파이프만으로도 건축계에 혁명이랄 수 있었다. 구리 수도관을 대체하면 비용절감 효과가 컸다. 쉽게 부러지지 않아 나무 대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물질이 많을 텐데 분류가 제대로 안 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어렵더라도 합성실험을 통해 분자구조를 밝혀나가시오.”

“탄화수소를 최종적으로 분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오나 실험만으로 모든 연구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다른 지역에서 발간한 화학 관련 책은 없습니까? 유럽에 연금술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금속이나 생물학 쪽에 치우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없소. 유럽에서는 석유화합물에 대한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아라비아도 마찬가집니다. 누가 이런 더럽고 냄새 나는 물질을 연구하겠습니까?”

이민호가 이공계 출신이라도 화학은 약한 편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아직 이전 세상에 대한 기억력이 충만한 시기에 원소 주기율표를 기록해둔 것이 있었다.

예전에 화학연구소를 설립할 때 이민호가 연구원들에게 원자와 분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설명해줬다. 유럽 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고민하던 내용이며 마카오 대학에서도 어렴풋이 알던 개념을 이민호는 아주 단순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석유에서 비롯된 고분자 중합체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사실 중학생에게 석유화학자가 할 일을 시킨 셈이었으니 자그마한 성과만 나와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들 연구원이 없었다면 이민호가 직접 일일이 분류실험을 했어야 할 일들이었다.

“전하! 석유는 어떻게 생성되는 것입니까?”

“열과 압력을 받아 탄화수소 혼합물이 형성된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무기물입니까, 유기물입니까? 탄소화합물은 보통 유기물로 형성되는 것으로 압니다만.”

“유기물에서 형성되기 쉽겠지만, 조건만 맞으면 무기물에서 형성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석유는 유기물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맨틀 가까운 곳에서 형성된 탄화수소나,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가득한 탄화수소가 유기물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할 수 없었다.

석유에서 유연제나 약품, 비료, 화장품을 뽑아내기란 아직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바셀린 비슷한 물질은 이미 분류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힘들었네요.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