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94화 (343/1,000)

00394  44. 내부 발전  =========================================================================

“사실 전하께 말씀드리기 외람되오나, 백성들이 건국 초부터 농지 때문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저도 느꼈습니다만, 농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몰랐소. 모든 백성들에게 농지를 공짜로 나눠줬는데 어째서죠?”

예전부터 미카가 여러 차례 보고했으나 백성들이 품은 여러 가지 불만들 중의 하나로 언급돼서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못했었다. 그저 농민들이니 당연히 땅 욕심이 많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농지를 백성들에게 적게 분배해줬기 때문이지요.”

“뭐라고요? 설명을 해주시오.”

“조선에서는 성인 남자인 농부가 최소 열 마지기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식구들을 먹여 살리지요. 헌데 전하께서는 조선에서 이민자가 올 때마다 다섯 마지기밖에 안 되는 논과 그보다 조금 넓은 밭을 분배하셨습니다.”

한 마지기는 볍씨 한 말을 파종하는 논의 면적이다. 조선 남부 지방은 200평, 기름진 경기지방은 150평, 강원도나 북부지방은 300평 등 생산성에 따라 면적이 달랐다. 산출되는 쌀은 보통 300~500kg에 달했다.

열 마지기는 조선시대에 성인 남자가 혼자서 경작할 수 있는 면적으로 통용됐다. 열 마지기와 비슷한 면적인 농지 3천 평을 1정보라고 하며, 1950년 토지개혁 당시에는 논밭 합해 3정보를 상한선으로 잡고 농민에게 분배했다.

“2기작을 하면 조선보다 훨씬 많이 생산하잖소? 그리고 바둑판처럼 경지정리를 했고 비료를 뿌려서 조선보다 땅이 훨씬 기름지오. 집안 식구들이 가진 모든 땅을 성인 남자 혼자서 농사지어야 하는데 그 이상 나눠 줘봤자 땅이 너무 넓어서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알고 있소.”

“맞는 말씀입니다. 2기작이 가능하니 다섯 마지기의 두 배인 열 마지기를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오나 두 번째 수확에도 세금이 따라붙지요. 사람이란 본시 늘어난 수확량에 기뻐하는 것보다 늘어난 세금을 더 아까워합니다.”

“끙! 불만이 그렇게 많았는지 몰랐소. 땅을 나눠줘도 백성들이 별로 기뻐하지 않아서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가 잊어버렸소. 그래도 한 집안 기준이 아니라 모든 식구들에게 나눠줬지 않소?”

일인당 다섯 마지기라 해도 5인 가족 기준으로 25마지기나 되는 넓은 논이었다. 고산국의 논이 처음부터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있고 집집마다 황소를 한두 마리씩 키우고 있어서 그 넓은 논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퇴비 외에 동사군도에 몇 미터씩 쌓인 새똥, 인산염을 캐서 비료로 사용해 조선에 비해 농지가 엄청나게 기름진 편이었다.

그러나 가장이 아닌 식구마다 농지를 나눠준 바람에 결국 가장이 전체 농사를 짓게 됐어도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은근히 불만이 쌓였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일로 애나 마누라가 가장에게 땍땍거릴 때마다 이렇게 농지를 배분해준 국왕에게 화를 내게 됐다.

“그래서 제대로 알고 난 다음부터는 불만을 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식구가 태어날 때마다 국왕전하께서 땅을 또 나눠주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백성들이 완전히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끄응! 그럼 내가 땅을 나눠준 것은 새 왕조가 개창할 때 당연히 나눠줬어야 할 땅을 나눠준 것뿐이란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오? 그것도 절반만?”

“바로 그렇습니다. 25마지기라 하나 한두 세대만 지나면 땅이 줄어들어 금방 굶주릴 걱정을 했던 셈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요. 고마워하면서 지금은 너무 많이 나눠준다고 전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민호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민호는 백성들에게 배포가 큰 왕이 아니라 쩨쩨하기 그지없는 구두쇠 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실과 달랐지만 처음 인식이 그래서 사실이 알려진 다음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땅을 받고 나서 여자들은 다들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불만이 많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공짜로 땅을 나눠줘도 백성들이 별로 기뻐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동양에서 새로이 나라를 열 때 농지를 농민에게 무상 분배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토지와 경제력이 귀족이나 승려 집단에게 집중되면서 누적된 모순을 새 나라를 개창하면서 한꺼번에 해결하고, 구체제 기득권층의 경제적 기반을 몰락시키는 유효한 정치적 수단이 바로 농지 분배였다.

해방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에서 먼저 1948년에 농지를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하면서 대한민국 농민들의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미 군정에서 급히 토지개혁에 착수하도록 만들었다. 미 군정은 귀속농지의 가격을 생산물의 3배로 쳐서 매년 2할씩 15년 간 분할 상환하도록 했다. 그러나 귀속농지는 일부에 한정되고 분배가 진행되는 동안 전쟁이 나면서 제도가 변경됐다. 일반 농지와 같이 농지 가격을 소출량 1.5배로 쳐서 5년 간 갚도록 한 것이다.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1949년 농지개혁법을 통해 토지개혁을 할 때 처음에는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계획했다. 국채를 발행해 지주로부터 땅을 사들이고, 소작농이었던 농민을 자작농으로 만들기 위해 소출량의 1.5배를 지가로 산정해 5년 동안 3할씩 땅값을 갚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연기하거나 몇 차례 규정이 바뀌고 전쟁 통에 쌀값과 땅값이 들쑥날쑥해졌다. 결국 지가를 세금으로 현물 납부하면서 거의 무상 분배나 다름없게 되었다.

“나는 백성들에게 아주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려.”

“전하께서는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계십니다. 다만 땅 문제에서는 처음에 오해를 해서 백성들이 불만이 좀 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며 지금은 전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예국 참판이 위로했으나 이민호는 백성들에게 많이 섭섭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은 이민호의 잘못도 있었다.

고산국 본토, 즉 대만에 산악지방이 더 많다고 하지만 그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국토 면적당 경지 면적의 비율은 현대 한국보다 대만이 더 높았다. 경지 면적으로 비교하면 대만이 90만ha일 때, 한국은 170만ha였다. 대만 쌀 생산량은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1976년 기준으로 271만 톤으로서, 대만 전 국민이 충분히 자급자족을 하고도 남았다.

대만의 논 면적은 1976년 기준으로 52만ha이었으나, 2기작 가능면적이 36만ha나 돼서, 쌀 생산면적이 78만ha에 상당했다. 한국은 2009년 기준으로 논 면적이 101만ha였다. 고산국이 현대 남한 면적의 3분의 1에 불과했으나, 상대적으로 경지 면적이 넓고 또한 대부분의 논에서 2기작이 가능해서 현대 한국 쌀 생산량의 거의 8할에 육박하는 생산성을 자랑했다. 고산국의 농지는 임노동자 10만 명을 고용해 대부분 개간을 끝내서, 당분간 인구가 4배로 폭증하더라도 고산국 본토의 경지면적만으로도 인구부양 능력이 충분했다.

“어쨌든 농민이 아닌데 농토를 계속 쥐고 있는 것도 이상해서 이번에 돈으로 바꾸어 지급하게 된 것이오. 앞으로 호주나 다른 땅에서 곡식이 남아돌 테니 식량 가격이 오르거나 기본 소득이 줄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물가 변동이 심해지면 안 되니 당분간 은 한 냥에 쌀 2석 기준을 맞추도록 합시다.”

“하오나 백성들이 무서운 속도로 아기를 낳고 있습니다. 이런 속도면 인구가 25년에 두 배씩 늘어날 것입니다. 부부가 보통 넷씩 낳는 추세입니다. 이민 오는 자들이 대체로 젊어서 당분간 늙어 죽을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사람이 아메바도 아니고, 평소라면 절대 그렇게 늘어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아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에는 짧으나마 그런 높은 인구증가율이 가능했다.

“앞으로 50년 안에 고산국을 꽉 채워서 천만 명, 100년에 4천만 정도 되겠구려. 아직 부족하지만 최소 그 정도 인구가 되어야 강대국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부부가 겨우 네 명만 낳는 것으로는 부족하오.”

“50년 정도 지나면 사람들이 늙어죽을 테니 숫자가 좀 줄겠습니다. 호주가 넓다 하나 과연 그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글쎄요.”

호주의 넓이를 아는 이민호는 이 시대의 농업 기술로도 1억 이상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산국 관료들과 이면 등 조선 출신 사람들은 호주에 널린 황무지를 간척할 생각부터 하던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북미 대륙까지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아차! 북미도 있구려. 앞으로 200년 동안은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려도 괜찮소. 6억 4천만? 괜찮소. 얼마든지 낳으라고 하시오. 나라에서 먹여살려줄 테니.”

“헉! 명나라보다 몇 배나 많은 인구를 다스리시려고요?”

명나라 말기의 등록 인구는 6천만이 채 못 됐다. 비등록 인구를 최대로 추정을 해도 1억 5천만 수준이었다.

“그 정도 되면 우리는 늙어죽었겠죠.”

“200년 후의 미래가 몹시 보고 싶어지는군요.”

물론 수백 년 동안 꾸준히 인구가 두 배씩 늘어날 일은 없었고, 출산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수명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인구팽창기는 짧은 시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부족한 인구를 유럽에서 어느 정도 유입시킬 계획이었다.

그리고 북미 대륙을 구매할 때 멕시코 부왕령의 영토인 텍사스 지역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인디오 다수를 백성으로 받아들일 것을 감안하고 있었다. 북미 원주민인 인디언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문화적으로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여기에 유럽 백인들까지 이주하면 북미 대륙에서 어느 한 세력이 압도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게 되면 북미에서 어느 인종 집단도 감히 독립할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이민호는 여차하면 왕도 자체를 북미 대륙으로 옮길 생각도 했다. 북미 서해안의 거점 도시로는 자연적인 방파제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나, 평지가 넓은 로스앤젤레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산모들이 나중에 늙어서 고생하지 않도록 해산 후에는 아예 한두 달 푹 쉬면서 산후조리에 신경 쓰라고 하시오. 산모와 아기 옷을 지어 보내고 미역과 고기, 멸치 같은 것을 계속 나눠주시오. 그 동안 마을에서 공용으로 키운 염소가 젖을 잘 짜고 있지요? 모자라지 않게 충분히 먹이시오. 염소젖은 반드시 데워서 먹이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부족한 게 멸치 한 종류인데 조선에서 더 수입해서 나눠주겠습니다.”

고산국 어민들은 고기잡이보다 가두리 양식에 더 의존하고, 어선도 일정 크기 이상의 그물을 사용해야 해서 멸치나 작은 새우를 잡지 못했다. 오직 어업연구소에서 치어를 잡을 때만 눈금이 작은 그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가 해산을 도우면서 산파들이 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구시대적인 산파라는 직종은 없애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요? 해산 전후에 산모를 도와줄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산파가 계속 임산부를 보살펴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소. 출산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경험이 많은 산파가 아니면 경황이 없는 산모를 제대로 못 도와주오. 중요한 일이니 계속 고용하시오.”

신생아 증가에 맞춰 의료조직이 계속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긴 한데, 커지는 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서 문제였다. 술, 담배 회사의 수익을 의료비에 전용하기로 했으므로 술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명나라에 싸고 도수 높은 술이 워낙 많아 차라리 다양한 향을 첨가한 고급술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술에 설탕과 향신료를 적당히 섞어 넣어 달달하고 부드러운 술을 만들어 부자들에게 판매했다. 고산국은 고급스런 이미지 자체가 강력한 홍보수단이라 판로가 점차 확대되었다.

고산국 국내의 담배 소비는 줄었으나 수출량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말과 소를 팔려고 동해국 시장을 방문했던 몽골 사람들이 우연히 담배를 얻어 피우게 되면서 몽골 전체에 유행을 탄 것이다.

고산국 담배는 명나라의 차에 이어 두 번째로 몽골에 중요한 수입품이 되었고, 소화제나 정신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명약으로 인식됐다. 오래지 않아 몽골에서 손님 접대할 때 차나 술 대신 담배를 내는 것으로 변했다. 몽골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담배 가격을 좀 높이 책정했다.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룬 다음 회의가 끝났다. 6국 참판들을 6조 판서로 올려주기로 했으나 귀찮아서 체제개편을 아직도 하지 못했다. 참판들이 정치적 결단은 내리지 못해도 행정과 관리는 아주 잘하는 편이었다.

현재 총함장 이순신이 전선 20여 척을 몰고 나가 주산군도의 해적을 토벌하고 있었다. 절강 순무가 울고불고 매달릴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함대가 출동했다. 닝보 앞 주산군도는 섬이 많고 수심이 얕아 좌초될 우려 때문에 극히 신중하게 전진하며 섬을 하나씩 점령해나갔다.

며칠 전 밤에 해적선 몇 척이 빠져 나가다가 아군 전선에게 걸려 모두 격침됐는데 거기에 해적 두목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됐다. 그 다음 날부터 해적들이 지리멸렬해서 항복하는 자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포로가 된 해적들은 모두 항저우로 보내 명나라 관원들에게 인계했다. 해적으로 해적을 잡으려는 명나라 조정의 항복 제의를 거부한 해적들의 운명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다. 해적들이 울면서 고산국 해군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했으나 진작 항복했으면 명나라 몰래 탄광에라도 보내줬을 텐데, 이미 늦었다. 포로 2천 명을 명나라에 넘기고 천여 명은 사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아직 수색하지 못한 섬이 절반 이상이라 해적 토벌은 좀 더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 작품 후기 ============================

깜빡 조느라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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