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90화 (339/1,000)

00390  43. 호주 개척  =========================================================================

“전하! 중위 박덕수 질문 있습니다! 혹시 인도양도 적도 이하는 반시계방향으로 해류가 순환한다면 마다가스카르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서해안을 타고 유럽이나 지중해에 좀 더 쉽게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확히 해류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언하지 못하겠다. 그것은 그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항법사 박덕수 중위가 책이나 선원의 설명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이 기회에 알아보려고 이민호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사관생도들은 오랜 경험을 쌓은 선배 장교가 하는 질문에서도 많은 것을 얻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전하! 요 근래 영국은 대서양 기준으로 북서 항로, 네덜란드는 북동 항로를 개척 중이라고 합니다. 북극해를 통해 태평양으로 들어오는 항로는 없습니까?”

“내가 알기로 북극해는 여름에도 얼음으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야겠지. 그게 탐사선이 할 일 중 하나다.”

“헉!”

“북극점과 남극점이 진짜 있는지 나침반 들고 가서 직접 확인해야겠지? 진북과 자북을 같은 원정대가 동시에 정복하면 더 좋고.”

“허억!”

박덕수 중위가 심장이 멎으려 했다. 북극점 정복은 아직 먼 일이므로 개썰매를 몰고 가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북극곰이 생긴 것과 달리 흉포하다는 말도 아직 할 필요가 없었다. 극한의 추위에 사람이 얼어 죽고 총이 얼어붙을지도 몰랐다.

호주 동쪽 끝에서 침로를 북서쪽으로 바꾸고부터 모래톱이 서서히 발견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4천리를 모래톱을 피해서 가야 했다. 18세기 중반 호주를 찾아온 모험가들이 모래톱에 좌초돼 몇 달씩 수리를 하곤 했다더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함대는 밤에는 자고 낮에만 눈에 불을 키고 전방을 주시하며 항해했다. 선두에 체구가 작은 탐망선을 앞세우고 수심을 측량하며 가느라 이동속도가 많이 느렸다. 그러나 김몽돌 소령이 작성한 해도를 보면서 비교적 큰 문제없이 전선이 좌초한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 척이 동시에 기관 4기를 가동해서 예인해도 안 딸려옵니다. 뭔가 배 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국왕좌승함 함장이 좌초된 전선 예인작업을 하다가 포기하고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이민호는 웬만하면 포기할까 하다가 마지막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물주머니에 공기를 채워 전선 흘수선 밑에 매달고, 모든 배에서 텅 빈 철제 수조 두 개씩을 꺼내게 했다.

“수조를 가끔 햇빛에 말리라는 뜻입니까?”

“수조에 바닷물을 채워서 좌초한 배에 거꾸로 매다시오. 끝부분만 드러나게 하시오.”

“아! 배에 매단 다음 수조에 공기를 집어넣어 물을 빼라는 뜻입니까?”

“맞소. 부력을 충분히 받게 한 다음 공기를 불어넣으시오.”

이민호가 시킨 대로 하자 좌초된 전선이 쉽게 예인됐다. 배 밑에 바위가 걸렸던 것 같았다. 선저 부위를 살펴보니 저판 두 장이 뒤틀려 물이 새어나왔다. 전선을 긴급 수리한 다음 장영실 항으로 예인하기로 했다.

“과연 전하께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십니다.”

“면이 너 안 어울리게 아부하지 마. 사관학교에서 힘을 쓰지 말고 머리를 쓰라고 하는 이야기는 들었잖아?”

하필 이순신의 막내아들 이면에게 칭찬을 받으니 낯이 더 뜨거웠다. 이면은 나라와 백성 전체를 혼자서 어깨에 지고 살던 부친과 달리 꽤나 활달한 편이었다.

임진왜란 때 한 나라 전체가 이순신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던 경향이 있었다. 만약 이순신이 그리 무거운 부담감을 지지 않았더라면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민호가 도와줬더니 이순신이 함대를 이끌고 거의 부산포 앞바다에 진을 치고, 심지어 함대 일부를 울산에 보내기도 했었다. 이번 전쟁에서 이순신이 이민호 덕을 보기도 했지만, 이민호도 이순신 덕택에 아주 쉽게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콜럼부스의 달걀이나 알렉산더 대왕이 실타래를 칼로 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런 무식한 방법 말고도 해결법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동원해서 해결하면 좋지.

좌초된 다른 전선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예인해냈다. 이 배는 배 밑창도 멀쩡해서 장영실 항에 예인해 바로 승조원들에게 넘겨도 될 것 같았다.

“전하! 원주민들이 바닷가에서 부릅니다. 단정을 보내겠습니다. 에스파냐 귀족 청년도 통역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함장.”

두 번째 전선은 해안선 가까운 곳에 좌초하는 바람에 원주민들 눈에 띄었다. 다른 지역 같았으면 원주민들이 작은 배로 들락거리면서 지키는 사람 없이 좌초한 전선을 약탈했을 텐데, 전선에는 도둑 맞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역시나 교역하자는 의사표시를 해왔습니다.”

단정이 돌아와서 보고하자 좌승함을 해안 가까이 대고 이민호가 직접 상륙했다. 그런데 해변에 손바닥보다 큰 전복이 잔뜩 널려 있었다. 이민호는 단정을 몰고 온 해병 몇 명에게 전복을 주우라고 시켰다. 해병들이 양철로 만든 양동이에 전복을 가득 담았다.

“전하! 원주민들이 마른 해삼과 쌀을 교환하자고 합니다. 교환 비율이 부피로 일대일이랍니다. 절대 그 이상 양보할 수 없답니다.”

“이 동네는 해삼, 전복이 넘쳐나는 모양이야. 중위! 쌀 세 가마를 갖다 줘.”

열대 해삼은 품질이 낮은 편이지만 절대 이 가격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전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백사장에 깔린 전복들은 못해도 10년산은 넘은 것들이었다. 바다에 잠수해서 싸구려 해삼 한 마리를 잡을 시간에 해변에 널린 전복 100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쌀 외에 원주민들이 뭘 먹는지 물어봐.”

에스파냐 청년이 원주민과 대화를 나눴다. 원주민이 저 멀리 엎드려 있는 캥거루를 가리켰다. 나이가 많이 들어 앞발 근육이 무척 많이 붙은, 몸짱 같은 캥거루였다.

“빨리 뛰지 못하는 강구루를 쉽게 사냥해서 먹는답니다.”

“고기는 실컷 먹겠군. 교역은 얼마나 자주 하는데?”

“북쪽에서 얼굴이 적당히 하얀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정도 온답니다.”

파푸아 뉴기니의 식인종도 아니고 말레이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온다고 했다. 해삼은 품질이 낮다 해도 이 정도 양을 남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명나라 상인에게 팔면 한 마을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에 배를 타고 올 만한 말레이계 사람들이라면 열대 지방 주민들이라 전쟁이 나지 않는 한 굶어죽을 걱정은 없었다.

“원주민들이 농사는 왜 안 짓는지 물어봐.”

“농사짓는 기술이 끊겼다고 합니다.”

원래 신석기 농업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호주에 도착해서 건조지대를 지나는 사이 종자를 잃고 수렵채집 경제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호주 남동쪽에는 원주민들이 재배하는 기장밭이 있었다. 언어가 비슷한 원주민들이라도 호주로 이주한 시기에 따라 농업 기술이 다른 것 같기도 했다.

“땅콩과 콩 재배법, 요리법을 가르쳐줘.”

“말이 잘 안 통합니다만,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에스파냐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콩과 땅콩 재배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하품을 하는 것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원주민들은 구태여 힘겹게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채집과 사냥만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쌀은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특별식에 불과했다.

“여기서 300레구아 서쪽에 섬이 있는 것을 아는지 물어봐.”

“예. 인종이 약간 다른데 말은 적당히 통한답니다. 가끔 교역을 한다고 합니다.”

“그 섬 남쪽에 강 하구 있지? 장영실 항구라고 이름을 지은 곳. 그곳에 이 전복을 말린 것을 가져오면 같은 무게의 쌀과 교환해준다고 해. 전복 내장을 빼고 햇볕에 잘 말려야 할 거야.”

원주민들이 좋다고 동의했다. 다른 온대 지역이라면 1500km는 크게 부담 갈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원주민들은 캥거루를 잡아먹으면서 다녀오면 된다고 쉽게 말했다.

그러나 전복을 씨가 마를 정도로 너무 많이 잡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원주민들이 과연 말을 알아먹을지 알 수 없었다.

이틀 만에 장영실 항에 입항했다. 좌초됐던 전선 두 척을 끌고 오자 미리 도착해있던 다른 분대 승조원들이 만세를 부르며 이민호를 반가이 맞이했다.

그러나 전선 한 척은 수리가 필요했다. 지상에 선거를 만들어 전선을 끌어 올리고 배 밑바닥 판자를 교환하는 일을 시작했다. 승조원들과 해병들이 총동원돼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 사이 장영실 항에 선착장을 만들고, 2층 벽돌 숙소를 하나, 창고 건물 하나를 지었다. 연료창고를 따로 지어 수송선에 남은 연료를 모두 빼서 보관시켰다.

주변에는 밭을 만들어 콩과 땅콩을 가장 먼저 심었다. 여차하면 압착기로 갈아 연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밀과 감자, 고구마도 심었다. 장영실 항은 호주 개척을 위한 관문 도시로 이렇게 첫 삽을 떴다.

양과 염소, 소와 말도 풀었다. 외양간을 만들고 목초지에 철조망을 쳐서 가축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했다. 곳곳에 우물도 팠다. 근처에 강도 많아서 물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 사이 에스파냐 청년을 통역으로 삼아서 바다 건너 몽돌 섬과 순이 섬에 사는 원주민들과 우호를 다졌다. 그곳에서도 해삼과 전복을 쌀로 바꿔주는 교역을 해서 원주민들을 무척 기쁘게 했다.

“명령하신 대로 금 조각을 조금 주웠습니다.”

좌승함 집무실에 찾아온 기병중대장이 손수건에 싸인 것을 내밀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것부터 새끼손톱 크기까지 수십 개의 금 조각이었다. 그리고 금 조각이 발견된 위치가 표시된 지도도 작성했다. 칼굴리에 역시 금맥이 여러 곳 있었다.

“대단히 수고했다. 이 금은 발견한 병사가 기념품으로 갖도록 다시 돌려주게. 그리고 상으로 기병중대 전원에게 금화 하나씩 나눠주게.”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컸으나, 병사들을 시켜 금을 모아 자금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 아니었다. 이민호가 금화주머니를 건네자 바로 그 자리에서 세어본 기병중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황송하오나 금화가 몇 개 남습니다.”

“가장 큰 것을 주운 병사, 가장 많이 주운 병사, 가장 멀리서 주운 병사 등등 중대장이 알아서 상으로 더 주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전하.”

겨우 금화 몇 개 차이인데도 기병중대장이 몹시 기뻐하며 돌아갔다. 중대장이 직접 기준을 정해 병사들에게 포상할 수 있다면 지휘관의 권위가 더 올라갈 수 있었다.

“내륙 황무지에서 금광을 채굴하실 건가요?”

“당장은 아니오. 위치를 확인했으니 됐소.”

비올레타가 뒤에서 이민호를 껴안았다. 이제는 남녀 중에서 누가 더 즐거운지 비올레타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러나 시작은 남자가 먼저인 경우가 많았다.

호주에 금광이 남서쪽에 하나, 남동쪽에 하나 있는 것으로 이민호는 기억했다. 남서쪽은 기병중대를 보냈던 칼굴리로서 유명한 노천 금광이고, 남동쪽은 멜버른 가까운 곳이라는데 정확한 위치는 듣지도 못했다.

“이제 부하들에게 맡기세요. 누구에게든 시키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럴 생각이오. 이제 돌아갑시다.”

이민호가 커다란 종이에 줄을 가로 세로로 쫙쫙 그었다. 누가 걸릴지 몰라도 불쌍한 자들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공포의 사다리 타기다.”

다음 날 아침 이민호가 함장들을 지상의 천막으로 소집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전선 한 척이 남아서 장영실 항을 지키고 혹시나 원주민들이 쳐들어오면 몰아내야 할 군대가 이곳에 주둔해야 했다. 좌초됐던 전선이 빠르게 수리되는 바람에 그 배를 지휘했던 함장은 한 시름 놨다.

“전하! 이곳은 너무 멀지 않습니까? 고산국 왕도까지 만 리나 됩니다.”

“맞습니다. 브루나이 유전의 두 배 거리입니다. 이곳에 주둔하라고 하면 병사들이 귀양 온 것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해군이나 해병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함장들이 몹시 심하게 반발했다. 앞으로 해군 지원율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자! 걱정 마시오. 앞으로 장영실 항 주둔 병력 대다수는 육군으로 교체될 거요. 전에 약속한 것처럼 해군은 일 년 중에 최대 석 달만 해외에 주둔할 것이오.”

“나중에는 호주 거주민 중에서 군대를 뽑아야겠습니다.”

“맞소. 어쨌든 지금이 문제요. 호주 주둔군은 한 달 기준으로 교체해주겠소. 그러니 한 달은 호주, 나머지 한두 달은 좀 더 가까운 큐슈나 필리핀 같은 곳에 주둔하면 될 것이오. 나머지는 국내 근무요.”

우여곡절 끝에 당첨된 전선 함장이 망연자실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도 불쌍해서 첫 번째 호주 주둔군 사령관이라는 감투를 씌워주었다. 부인이 출산을 앞둔 병사 두 명은 먼저 귀국시키기로 했다.

인수인계가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마침 기병중대에서 여진족 출신 기마병 두 명을 포함한 네 명이 호주에 남기로 해서 가축 키울 걱정이 사라졌다. 기마병들이 해병과 수병들에게 목축을 가르치는 동시에 주변 정찰을 하기로 했다. 의사도 한 명 남았다.

============================ 작품 후기 ============================

아직 안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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