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9 43. 호주 개척 =========================================================================
8월 말에 호주 대륙 남쪽에서 다른 분대와 합류했다. 남쪽은 바다, 북쪽은 황무지로서 지형 참조물로 삼을 만한 곳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합류 장소를 경도로만 정했더니 이런 이상한 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동쪽으로 갔던 분대 11척 중에서 배가 두 척이나 비었다. 이민호가 의아하게 여기는 사이 김몽돌 소령이 탄 탐사선이 국왕좌승함으로 접근했다.
“김 소령. 전선 두 척은?”
“전하! 호주 북동쪽 해안 50리에서 100리 사이에 모래톱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민호는 호주 북동 해안 어느 곳에 둥그렇게 환초가 형성됐다는 줄로 잘못 알아들었다.
“모래톱이 그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고?”
“해안선 50리에서 100리 사이 바다에 모래톱이 위치하는데, 그 모래톱이 쌓인 곳들이 자그마치 4천 리 정도나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4천리?”
호주 대륙이 크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이민호조차 4천 리, 대략 1500km에 걸쳐 모래톱이 있다는 말에 심히 당황했다. 그리고 해안에서 100리 떨어진 곳까지 모래톱이 생성된다면 배가 안전하게 멀리서 해안선을 확인하면서 항해하기 몹시 어려워진다.
“모래톱이 생기는 일정한 규칙을 알아내기 전까지 배들이 정말 숱하게 많이 좌초됐습니다. 대부분 부드러운 모래톱이라 배가 좌초될 때마다 예인해냈지만 결국 전선 두 척은 끝내 모래톱에 세워놓고 왔습니다.”
“승조원은?”
“해군과 해병 모두 다른 전선에 태웠습니다. 배는 아직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럼 됐어. 인명 피해만 나지 않으면 상관없다.”
이민호는 전선 두 척이 몹시 아까웠지만 그런 좌초 사고가 나면 할 수 없었다. 괜히 배를 지키려다가 풍랑에 난파되거나 침몰해서 사망 사고가 나오는 것이 더 안 좋은 일이었다.
“좌초된 배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내가 도착해서 다시 예인을 시도해보고, 정 안 되면 기관과 함포를 철거한 다음 배를 불태워야지. 김몽돌 소령의 분대에서 다시 그런 좌초 사고가 나면 그런 식으로 처치하도록 해.”
“해도가 완성된 곳으로만 조심해서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함대가 합류한 순간부터 항해사와 항법사들이 좌승함에서 만나 서로 지도를 맞춰봤다. 하루 가까이 걸린 이 작업을 통해 호주 대륙의 전체적인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 지역별로 세밀하게 작성한 해도도 수십 장이 복사됐다. 정밀해도는 기밀문서에 속해 분대장인 탐사선 배와 좌승함에만 보관됐다.
다음 날 출발하기 전에 좌승함과 탐사선에서 항법사 한 명씩을 교환해서 태웠다. 그리고 오던 길을 통해 계속 갈 길을 갔다. 다시 합류할 곳은 호주 북쪽 장영실 항이었다.
다음 날 동쪽으로 향하던 함대는 뾰족 튀어나온 반도를 여러 척이 에워싸고 좌표와 면적을 측량했다. 숲과 초지가 밀생한 지역만 가로 세로 각각 100km, 면적은 1만 평방킬로미터가 넘었다. 축구팀 2만여 개가 동시에 경기를 할 수 있는 면적이었다. 그 북쪽에 황무지와 뒤섞인 초지 면적은 그보다 훨씬 넓었다.
“만약 여기에 감자를 심어서 수확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한 소리 같소. 옮기기도 전에 대부분이 썩어 버릴 것이오.”
이민호는 전율이 일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호주의 녹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호주 전도에서 남동해안과 동해안이 온통 푸른색으로 표시돼 있었다.
건너편 반도는 물론이고 육지에도 초지와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배가 남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는데도 1000km 넘게 녹색의 땅이 이어졌다. 1000km면 한반도의 남북 방향 길이이며 스위스에서 흑해까지 거리와 같다. 그런데 김몽돌 소령의 탐사선이 측정한 바에 따르면 호주 동해안이 3000km 이상인데 전체가 녹지라는 것이다.
중간에 해도에 표시된 자그마한 섬에 도착했다. 길이가 겨우 120km 정도밖에 안 되는, 제주도보다 조금 더 큰 섬이었다.
“적당히 비가 내리고 강과 호수도 있습니다. 식물이 잘 자라는 곳인데 다만 뒷발로만 뛰어다니는 동물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륙 후 정찰을 마치고 온 해병 소대장이 보고했다. 만약 방탄복 낭심가리개를 안 입고 갔다면 하마터면 고자가 될 뻔했다고 한다. 캥거루가 뒷발을 들어 사람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고, 발이 치솟는 각도가 인간 남자의 사타구니를 향하기 쉬웠다.
“항법사! 이곳을 캥거루 섬이라고 이름을 짓게.”
“알겠습니다. 그 동물 이름이 캥거루입니까?”
“원주민들은 강구루라고 부르는 모양이야.”
에스파냐 귀족 청년과 호주 원주민이 대화를 해보니 말이 조금은 통했다. 캥거루는 원주민들이 여러 캥거루 종류들 중에서도 대형 종에 속하는 회색 캥거루만 지칭하는 이름 같았지만 이민호가 아는 것과 같이 전체를 캥거루로 정해버렸다. 원주민 말로 ‘나도 모른다’는 뜻이라는 속설이 있으나 거짓말이었다.
좌승함에 생물학자도 몇 명 탔는데 동물과 풀 몇 종류만으로도 다들 정신이 없었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왈라비를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서, 이민호는 간단히 포유류 중에서도 유대류와 태반류를 나눠주었다. 알을 낳는 포유류인 오리너구리를 발견하면 또 다시 분류 문제로 골치 아플 것이다.
캥거루 섬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쯤 더 가니까 길이가 300km쯤 되는 백사장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중간에 바위 등 다른 지형지물이 전혀 없이 매끈하게 통째로 하나짜리 백사장이었다.
“조금 짧지만 천리포라고 짓게.”
“반올림하면 천리 맞습니다.”
태안의 천리포 해수욕장이 백사장 길이를 200배 과장한 것이라면 이곳은 훨씬 덜 과장해도 괜찮았다. 만약 호주 해안에 백상아리만 출몰하지 않는다면 이곳이 진정 천국일 것 같았다.
다음 날 입구의 폭이 2km에 불과한 거대한 만으로 들어갔다. 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안쪽 바다가 몹시 넓고도 잔잔한 것이 아마도 현대 호주에서 멜버른 지역인 것 같았다. 북쪽에 수평선이 보였는데 계속 북상하니까 땅으로 막혀 있었다. 육지로 둘러싸인 만의 안에 수평선이 보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여기에 도시 수십 개와 항구 수백 개를 만들 수 있겠어요.”
“배후에 농경지를 만든다면, 그 감자 심는다는 반도의 100배는 될 것 같소.”
“수도는 반드시 이곳이 되어야 해요.”
비올레타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던 이민호에게 호주는 그저 넓은 땅덩어리 그 이상이 아니었다.
“왕도를 옮기자는 말이오? 하지만 이곳은 너무 멀고 남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는 문제가 있소.”
“사람은요? 인구가 많은 곳에서 사람들을 데려와 이곳에서 살게 했으면 좋겠어요. 유럽에는 땅이 없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 풍요로운 땅을 놀리는 건 죄악이에요. 마닐라의 말레이계 빈민들도 데리고 와서 이곳 땅을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일단 이곳 주인은 원주민이 아니겠소? 어차피 땅도 충분히 넓으니 원주민들과 공생을 먼저 생각해 봅시다. 나는 그들 원주민도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싶소.”
“그들도 선주민을 몰아내고 이 넓은 땅을 차지했을 걸요? 그리고 이렇게 넓은 땅을 얼마 안 되는 원주민들이 우선 사용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에요!”
미국인들이 북미 인디언들을 학살하던 19세기, 들소 떼를 따라 이동하며 살던 인디언들이 토지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다 죽여야 한다고 악을 쓰던 중년 부인의 인터뷰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비올레타는 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인종 구별 없이 불쌍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으나, 소수 원주민에 대해서는 배려해줄 의사가 별로 없었다.
만약 남의 땅을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다면 내 땅을 빼앗길 경우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적자생존이니 현실이니 다 인정하더라도 이민호는 최소한의 도덕성은 남겨두고 싶었다.
“비올레타! 진정하시오.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만큼 땅이 충분히 넓어요. 굳이 빼앗을 필요가 없소.”
아시아든 유럽이든 땅이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프리카나 북미에서도 땅을 두고 싸움이 벌어졌으니 사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고산국은 땅에 비해 인구가 부족해 문제였고, 호주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유럽으로부터 이민을 받기로 했소. 그러니 진정하시오.”
“죄송해요. 너무 넓은 땅을 봤더니 제가 많이 흥분했어요.”
“괜찮소.”
함대가 만에서 나가는 길에 김몽돌 소령이 세워놓은 동판을 확인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워져 있었는데도 들어갈 때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이민호는 만 입구를 가리면서 길게 나온 땅에 등대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함대는 계속 남동쪽으로 향했다. 수평선 너머 몇 백 km 남쪽에 태즈메이니아 섬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들러볼 겨를이 없었다.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들끼리 잘 살고 있을 테니 괜히 구경하러 갔다가 전염병 옮기기는 싫었다. 뉴질랜드도 당분간은 마찬가지였다.
호주 동해안에 접어든 함대는 북쪽으로 쭉쭉 나아갔다. 육지로 움푹 들어간 자연적인 항구가 몇 곳 있었으나 어디가 시드니인지 이민호는 분간하지 못했다. 최소한 오페라하우스라도 서 있어야 알만했다.
“항법사! 호주 남서 해안에 강 하구 두 개가 합친 곳 있지 않나? 그곳이 서쪽에 있으니 새여수라 하고, 동쪽에 만이 무지막지 넓은 곳을 새부산이라 하게.”
“동래가 아니라 포구에 불과한 부산의 이름을 따서 지으십니까?”
“부산포가 동래부의 항구니까. 여수도 순천부의 항구가 아닌가?”
여수는 전라좌수영이 위치한 순천부 여수면이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보통 항구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이민호가 외우기 쉽게 현대 지명과 같은 부산과 여수로 정하고 싶었다.
“전하께서는 혹시 서쪽으로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 유럽으로 배를 보내실 겁니까?”
“자넨 탐사선 항법사라서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군. 하지만 답은 아니야.”
“고산국 본토에도 사람이 아직 적은데 벌써부터 굳이 호주 남단에 항구를 만드실 이유가 따로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항법사가 근무복 가슴에 단 명찰에는 박덕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민호는 이 항법사의 이름을 외워두기로 했다.
“맞아. 네덜란드나 영국이 발견하기 전에 영토로 삼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항구를 이용하려는 목적도 있어. 태평양에서 해류가 도는 방향을 알지?”
“시계 방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헌데 적도 남쪽에서는, 그러니까 남반구에서는 반대야. 그러니 반드시 범선이 아니더라도 위도가 높은 해역에서는 모든 배가 동쪽으로 가는 게 더 편해. 적도에서는 서쪽으로 해류를 따라가는 게 편하지. 세계 지도를 펼치게. 사관생도들, 해도대 앞으로.”
“넵! 해도대 앞으로!”
에스파냐 귀족 청년 두 명은 답답해서인지 함교 밖 갑판에 나가 있었다. 조선말을 알아듣는 외국 참관단 눈치를 살피느라 그 동안 사관생도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다.
“생도들도 들어라. 가칭 남태평양 해류는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호주 남쪽에서 서풍피류 또는 가칭 남극순환류를 타고 이렇게 남미 대륙으로 쉽게 갈 수 있다. 페루 앞바다를 통해 북상할 수 있으나, 계속 동진해서 남미 대륙 남단을 지나 남대서양에 접어든다. 남대서양도 반시계방향으로 해류가 돌아. 그럼 우리 배는 어느 대륙에 붙어서 가야겠나? 가까운 남미 동해안?”
“해류를 타려면 약간 멀더라도 아프리카 서해안이 낫습니다.”
“맞아. 아프리카 서해안을 타고 북상하다가 적도를 지나면서, 잠깐! 북반부는 해류 방향이 어떻다고?”
“시계 방향입니다.”
“그렇다. 북미 대륙 동해안을 타고 계속 북상하면서 대서양을 건너다가 아일랜드 근해에서 남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이 줄줄이 있다.”
사관생도들이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유럽 상인들은 범선을 타기 때문에 오래 걸리더라도 고산국에 올 수 있는 반면, 고산국 전선들은 연료를 때우기 때문에 멀리 못 간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돛만 달면 고산국 전선도 언제든 유럽에 갈 수 있었다.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는 필요가 없습니까?”
“필요 없을 수도 있고, 필요할 수도 있다. 있으면 좋지. 아무렴.”
이민호는 사관생도들의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풍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남반구든 북반구든 중위도 이하에서는 적도 수렴대가 서쪽으로 불고, 고위도에서는 편서풍이 분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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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호주 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