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8 43. 호주 개척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함대가 2개 분대로 나뉘어 출발했다. 이민호는 함대를 정확히 둘로 나눈 11척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면서 배 네 척을 10리 거리 폭을 두고 넓게 항해했다. 거의 세 줄로 중첩되게 움직여 서로 가까운 거리 내에서 관측이 가능하도록 해서 배 한 척이 슬쩍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유의했다. 처음 가는 해역이라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몰랐다.
좌승함을 포함해 서쪽으로 향한 분대는 지난번에 김몽돌 소령이 동판을 세운 곳을 확인하면서 계속 서쪽으로 항해했다. 대부분 지역이 황무지나 사막이라서 상륙해서 정찰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황무지에도 건조지대에 적응한 왈라루 같은 호주 고유의 유대류 짐승이 살겠지만 그런 것을 확인하자고 내릴 이유는 없었다.
황무지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3일째에 남쪽으로 침로를 꺾었다. 사막이나 황무지보다 더 최악의 땅이 소금 사막인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지옥 같은 땅을 보면서 비올레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끔찍한 곳이에요.”
“그러게 말이오. 저곳에 호수가 있는데 혹시 소금 호수일지도 모르겠소.”
터키의 염호 같으면 소금 채취라도 가능하지, 저런 흙먼지 날리는 곳에 소금이 섞인 땅이라면 소금도 못 얻을 쓸모없는 땅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지나친 사막이 훨씬 풍요로워 보였다.
호주 북쪽 끝 장영실에서 출발하고 4일째 되는 날 해안선에서 푸른 띠를 발견했다. 남쪽으로 항해할수록 초지는 점점 더 두꺼워졌다. 거리가 멀어서 안 보이지만 까마득히 지평선 너머로, 최소한 100리 이상 작은 숲 또는 풀밭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무지막지하게 넓군.”
“농경지로 개간하지 않더라도, 소나 양을 풀어서 키워도 충분히 수익이 나겠어요.”
이민호의 기억으로는 호주의 숲과 초지는 대부분 동부와 동남부 해안지방에만 넓었을 뿐, 남서부는 기억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넓은 평지가 농경지나 목초지로 개간이 가능하다면 더 없이 기쁠 일이었다.
“비올레타 그대 얼굴이 이제야 좀 풀렸구려. 훨씬 낫소. 이것으로 2백만 냥 값어치는 충분히 하겠소.”
“저를 놀리지 마세요! 처음부터 전하와 고산국의 땅이에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단지 조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로소득을 얻겠군요.”
“그게 외교요. 어느 나라도 독불장군이 될 수 없소. 네덜란드와 영국을 막기 위해 연합군을 구성하는 비용이라 치시오.”
이미 유명무실해진 조약 때문에 2백만 냥이 눈앞에서 날아가는 동안 아무 것도 돕지 못해 미안해하던 비올레타 얼굴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비올레타뿐만 아니라 모든 승조원들이 드넓은 초원을 보면서 감동했다.
소떼가 가득 달리는 서부시대 텍사스보다 이곳이 훨씬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리고 텍사스보다 호주가 열 배 이상 넓었다.
“전하! 강 하구가 보입니다. 저곳에서 식수를 보충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소, 함장. 분대 전체 정박시키시오.”
11척이 해안에서 약간 떨어져 배를 대고 단정 두 척이 먼저 내려 해병들이 정찰을 했다. 처음 상륙했던 해병들이 갑자기 놀라서 도망쳐왔다. 좌승함에 뛰어 올라온 해병들이 이민호에게 황급히 보고했다.
“무슨 일이야?”
“껑충껑충 뛰는 커다란 동물들이 저희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머리는 사슴 같고 다리는 토끼 같았으나 사람 키 정도로 컸습니다.”
“그래서 전투에 패배하고 도망쳐왔나?”
“앗! 적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일단 여쭤보러 왔습니다. 다시 돌격하겠습니다.”
“됐어! 총은 쏘지 말고 막대기 같은 것으로 두들겨 패서 쫓아내. 아니, 그물 가져가서 한 마리만 잡아와.”
다시 상륙한 해병들이 잡아온 것은 캥거루도 아니고 그보다 작은 왈라비였다. 사람 몸무게 반도 안 되는 동물인데 겁을 집어먹고 무작정 도망쳐왔었던 것이다.
그물에 걸려 바동거리는 왈라비를 살펴본 해병들이 갑자기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동물의 배에서 더 작은 동물이 머리를 삐죽 내밀었기 때문이다.
“으악! 새끼가 어미 배를 찢고 나왔다!”
“배에 새끼를 담는 주머니가 달려 있는 거야.”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 영화 <에일리언>에서 외계 괴수가 사람의 배를 찢고 나오는 장면과 흡사할 정도의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이민호가 왈라비를 숲에 풀어주도록 해병들에게 명령했다.
그 사이 다른 배에서도 왈라비를 충분히 구경했다. 다음에 이것보다 훨씬 큰 캥거루를 처음 보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물. 식수 가능한지 확인하고 떠오도록 해.”
“예! 이제 처음 보는 동물에도 놀라지 않겠습니다.”
“행여나.”
이민호가 피식 웃자 해병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렸다. 다른 배에서도 단정들을 내리고 해병들이 물동이를 들고 내렸다. 단정에 작은 기관이라도 달아주면 좋겠지만 아직 충분한 수량이 생산되지 않아 미뤄두었다.
전선이나 탐사선에는 간단한 정수장치가 있었다. 물론 작전 중에는 물을 끓여먹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빨래 등 허드렛물 저장고도 따로 있었다.
“으아아아!”
“또 뭐야?”
단정에서 내린 100여 명의 해병들이 겁에 질려 일제히 도망쳐 돌아왔다. 해병 절반쯤은 강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냥 같이 단정을 타고 배로 돌아왔다.
“물속에 용이 수십 마리나 있습니다!”
“악어겠지. 너희들 악어 봤잖아? 만약 사람을 위협하면 총으로 쏴서 잡아.”
크로커다일은 호주 북쪽 해안지방에만 서식하는 줄 알았는데 서부 중심까지 내려와서 살고 있었다. 해병들이 다시 단정을 타고 해안선으로 향했다.
“쟤들 전쟁은 잘하면서 야생동물에는 무지 약하네.”
“사람은 처음 보는 동물을 두려워하게 돼 있나 봐요.”
비올레타가 다른 해군 승조원들처럼 열대 함상 근무복을 입고 함교에 나와 있었다. 긴 바지에 반팔 소매 옷이 기본인데 다리가 무진장 길어 보여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도시마다 동물원을 만들어야겠소. 각 지역 동물들의 기본적인 생김새와 습성을 대충은 알아야 하지 않겠소?”
“설마 모든 백성들을 모험가로 만드실 셈인가요?”
“그렇지는 않소. 다만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켜야 할 경우가 생길 것 같소. 그 백성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오.”
이곳 호주나 북미대륙처럼 먼 곳에 과연 스스로 원해서 이주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뭔가 유인책이 있어야 하는데 땅이 가장 적당할 것 같았다. 백성들이 지금 직업은 농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농민의 자식 출신이라 땅 넓은 것으로 유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농경지와 초지가 예상보다 훨씬 넓어요. 어떻게 활용하실 건가요?”
“농업은 조선과 일본 출신으로, 목축은 여진 출신으로 해야겠소. 이곳에 이주한 모든 백성이 기본이 만석꾼이 되겠구려. 일할 사람은 부족하더라도 땅만은 넓게 가질 수 있겠소.”
땅이 넓은데 반해 이주해올 사람이 적을 것이므로 호주에서는 처음부터 농업 기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농민이 경운차 같은 비싼 것을 가지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필요해지면 갖추는 수밖에 없었다.
“여진족 중에 타타르가 섞여 있다면서요?”
“몽골 초원에서 동쪽으로 이주해온 몽골족은 대부분 여진족과 혼혈돼서 이 시대에는 명확히 식별될 정도는 아니오.”
게다가 동해여진은 순수 여진족 출신으로서 송화강 북쪽 지역에서 내려왔다는 설이 사실에 가까웠다. 해서여진은 몽골족의 피가 많이 섞인 여진족이라 하나 동해여진에서 너무 멀었다. 어느 쪽이든 동유럽을 공격하거나 러시아를 지배했던 몽골족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초지가 충분히 넓다면 여진족을 데려와 소와 말, 양을 키우게 하면 괜찮겠소.”
“초지든 농지든 전하께서 원하는 만큼 있길 바랄게요.”
“그럼 좋겠소만.”
호주 남서쪽에서는 초지와 숲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이민호가 원하는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녹색지대의 폭을 알아보기 위해 기마정찰대를 투입했다. 이민호는 기마정찰대원들에게 동쪽 방향을 잡아 직선으로 최대 100리까지만 살펴보고, 그 전에 초지가 끝나면 즉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기마정찰대는 저녁이 다 돼서 돌아왔다. 그리고 동쪽으로 초지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고 보고했다.
전선과 수송선들이 기마정찰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미리 남쪽에 보낸 탐사선에서 특이한 지형을 발견해서 보고했다. 바다와 이어진 입구는 좁은데 강 두 줄기가 만난 넓은 하구가 육지 안에 있더라는 것이다. 조사를 하다가 그날 밤은 널따란 강 하구에서 정박했다.
그 사이 탐망선이 앞바다 섬 두 곳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20리쯤 떨어진 섬 안에는 민물 호수 여러 곳이 있고 해안선이 움푹움푹 파여 선착장으로 쓸 만한 만이 수십 개나 된다고 보고했다. 남쪽의 길쭉한 섬에는 그다지 큰 특성이 없었다. 만약 이 지역이 대도시 급으로 발전한다면 그 길쭉한 섬을 방파제로 삼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남서부의 중심 도시를 세운다면 바로 이곳이 좋겠소.”
“숲과 초지가 엄청나게 넓어요. 항구 시설을 따로 만들 필요도 없을 정도니 아주 이상적인 도시가 될 거여요.”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도시의 입지를 결정했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서 배산임수의 이상적인 마을 배치는 불가능했지만 나지막한 언덕 지형을 선택하기로 했다.
다음 날 더 남쪽으로 항해해서 호주의 남서부 끝에 도달했다. 방향을 동쪽으로 틀었는데 그 뒤에도 육지 쪽에는 초지와 숲이 지평선 너머까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대략 추정치만 한반도 넓이보다 넓은 숲과 초지가 펼쳐져 있어서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남서부에 초지가 이렇게 넓었나?”
예상보다 너무 풍요로워서 만약 칭기즈칸을 이곳에 데려왔다면 세계정복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찌 됐든 농작물과 가축을 키울 수 있는 녹색지대가 넓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좌승함이 포함된 분대는 동쪽으로 계속해서 항해했다. 작은 섬이 꽤 많이 흩어져 있는 바다가 나왔다. 이민호는 거대한 호수 두 곳에 가까운 해안에 수송선을 정박시킨 다음 직할 기병대대 소속 1개 중대를 상륙시켰다.
“중대 모여!”
이민호도 직접 땅에 내려서 말 150여 마리를 뒤에 두고 기병중대를 집결시켰다. 그리고 야영 준비를 갖춘 말들을 확인한 다음 본격적인 장거리 정찰 임무를 기병중대에 부여했다.
“중대장! 북쪽으로 천리쯤 달려가서, 주변 사막에 흩어져 하루 동안만 금덩이를 찾아서 주워오게. 손톱만 한 거라도 좋아.”
“천리를 북상해서 넓게 흩어져서 금덩이를 찾아보겠습니다.”
“금덩이까지는 아니고, 금 부스러기 정도는 있을 거야.”
기병 중대장을 필두로 기병 150여 기가 국왕의 명령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이민호는 이런 개떡 같은 명령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일단 수행하고 보려는 기병대의 행동에 가슴이 찡해졌다.
“전하! 그게 말이 되는 명령이에요?”
“그렇소. 이곳은 호주요, 비올레타.”
“뭔가 알고 그런 명령을 내리신다면 몰라도......”
“못 찾아도 할 수 없소. 수색과 정찰이란 그런 것이오.”
“적이 아니라 금 같은 자원도요?”
“물론이요. 금은 앞으로 국가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오.”
이민호는 현대 호주 남서부 칼굴리라는 사막 지역에 거대한 노천 금광이 있다고 기억했다. 정확한 위치도 몰랐고 금의 품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몰랐으나 금 채취를 취미로 삼는 아마추어 프로스펙터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금광이 산재한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노는 날에 금속탐지기를 가지고 너겟이라 하는 아주 작은 금덩이를 찾는 것을 봤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무슨 핏이라 불리는 거대한 노천 금광에서 1년에 금이 20톤씩 채굴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분대 출항.”
이민호는 좌승함에 돌아온 즉시 배들을 출발시켰다. 비올레타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전하! 기병중대를 내버려두고 가시려고요?”
“기병중대를 수용할 수송선 한 척이 남아 있으니 걱정 마시오. 우린 할 일이 많소.”
배가 11척씩 함께 움직인다고 하지만 경도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정오 가까운 시간에는 흩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고 강 하구를 탐색하는 것은 작은 탐망선이나 탐사선이 할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분대 11척 전체가 동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이제는 10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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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한 바퀴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