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7 43. 호주 개척 =========================================================================
43. 호주 개척
8월 하순에 호주 북쪽에 도착했다. 반다 섬에서 600km 남짓한 거리는 고산국 함대에게 하루 항행 거리도 되지 않았다.
“몽돌 섬과 순이 섬입니다.”
“동쪽 큰 섬이 몽돌, 서쪽이 순이 섬이라는데 구별되지 않는군요.”
“부부 아니랄까봐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지난번에 김몽돌 소령이 이끈 탐사선은 브루나이 수도 앞바다를 지나서 자바 섬과 발리 섬 사이 해협을 지나 호주 북서쪽 해안에 도착했다. 거대한 브루나이 섬을 크게 서쪽으로 우회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함대를 마닐라 남쪽 민다나오 섬에서 트르나테, 암본 섬으로 남행했다가 남동방향으로 틀어 반다 섬에 도착한 다음, 다시 직 남방으로 항해해서 몽돌 섬에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항로는 조금 더 복잡했어도 항해거리는 이번이 훨씬 짧았다.
만약 고산국에서 필리핀 동쪽 해안을 따라서 남진한다면 주변에 섬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태풍에 휩쓸릴까봐 함부로 선택하기 어려운 항로였다. 그 항로는 일기예보와 무선통신이 가능해진 다음에 개척하기로 했다. 이민호에게 전공이나 다름없는 전파는 언제든 쉽게 이용할 수도 있었으나, 라디오나 통신기 제작, 송신탑 같은 복잡한 문제가 딸려 있어서 아직 미뤄두고 있었다.
“전하! 저기가 김몽돌 소령이 확인한 강 하구입니다.”
“섬 바로 남쪽에 강 하구와 넓은 만이라. 이정표로 삼기에 딱 좋은 곳 같소. 평지도 넓어서 도시와 근교 농경지 정도는 충분히 만들어도 되겠소.”
“근처에도 강과 숲이 있어서 충분히 개척 가능합니다. 그 면적이 거의 고산국 국토 넓이입니다.”
“땅은 넓소. 좀 더 살펴보면 더 비옥한 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오.”
해도를 확인하면서 함대는 몽돌 섬과 호주 북단 사이의 만으로 들어갔다. 탐사대장 김몽돌 소령이 이 주변을 특히 꼼꼼히 측량해서 밤에 해도만으로 항해가 가능할 정도였다.
이민호는 이곳이 아무래도 다윈 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민호는 호주에서 정확한 도시 위치는 북쪽 섬 바로 남쪽 다윈밖에 몰랐다. 오히려 남동쪽 대도시인 시드니와 맬버른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시드니는 해안에 있고 맬버른은 잔잔한 호수 같은 만 안쪽에 있다는 차이 정도만 기억났다.
“함장! 이곳에 유명한 과학자 이름을 붙이면 좋겠는데 누가 좋겠소?”
“세종대왕은 황공하고 같은 시대 장영실은 어떻습니까?”
“좋소. 항법사! 몽돌 섬 남쪽 강 하구를 장영실이라 정한다.”
항법사가 해도에 장영실이라는 지명을 기재했다. 고산국은 조선의 분국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이민이 계속되는 등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 고산국의 공동 역사로 인정했다.
아직 이 지역 기후를 몰라 언제 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므로 강 하구로 살짝 들어가서 함대 전체가 정박했다. 저녁 식사 후에 함장들을 좌승함으로 불러 모았다.
“이 호주 대륙에는 어떤 생물이 살지 모르니 어디서든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과학자들이 조사하기 전까지는 처음 보는 곤충이나 풀이 몸에 닿지 않도록 주의시키시오. 그리고 덥다 해서 함부로 물에 들어가서 수영하지 말도록 지시를 하시오.”
호주에는 독충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뱀상어 혹은 범상어라 불리는 상어가 열대와 온대의 바다와 강을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물에서 움직이는 어떤 동물이라도 공격했다. 백상아리도 대표적인 식인상어에 속했고, 호주 해안에 자주 출몰했다. 황소상어는 호주의 민물에서도 활동해서 더욱 위험했다. 다만 범고래는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이 보이는 족족 계속 사냥을 해서 그런지 배와 사람을 발견하면 먼저 피하는 편이었다.
“예. 김몽돌 소령이 작성한 주의사항을 모든 병사들에게 나눠줘서 주지시켰습니다.”
“경고를 가볍게 여기고 장난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소. 전쟁도 아닌데 괜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헌데 호주 원주민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트르나테 사람들과 약간 비슷한 말을 쓰는 모양인데, 그 섬에서 말레이어 구사가 가능한 자를 데려올 걸 그랬소.”
함교 뒤쪽 전단회의실에는 함장들 외에 사관생도들, 그리고 에스파냐 귀족 청년 두 명이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상이 프랑스계가 확실한 금발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전하! 트르나테 말이라면 향료 무역을 하면서 제가 조금 배웠습니다.”
“어? 자네 조선말도 할 줄 아나?”
“아! 실수했습니다. 조선말은 모릅니다. 에휴! 조금 배웠습니다.”
회의실 분위기가 갑자기 싸하게 돌아갔다. 지금까지 이민호와 선장들이 조선말로 대화한 것을 다 듣고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이민호는 그 동안 말실수한 것이 없나 대충 훑어봤다. 향료제도를 지나면서 에스파냐와 관련된 민감한 대화를 좀 했던 것 같았지만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하! 고산국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기준으로도 손꼽히는 강대국이에요. 그리고 국제적인 영향력으로 따지자면 지금은 오히려 명나라보다 고산국의 영향력이 더 강해요. 국제정세에 관심이 있는 나라라면 고산국과 같은 조선말을 배우는 것이 당연해요.”
“맞는 말이오, 비올레타.”
제발 외국인들이 조선말을 많이 배워서 의사소통을 쉽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언어장벽 때문에 교역이나 우호관계를 다질 때 효율이 많이 떨어졌다. 교역을 하기 위해 중간에 통역 서너 명이 끼어야 한다거나, 탐사선에 통역관이 최소 다섯 명씩 타야 하는 비효율이 생기기도 했다. 대신 앞으로는 외국인들 앞에서 말조심을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에스파냐의 귀족 청년들은 듣게. 이 대륙은 고산국의 것일세. 우리가 먼저 발견했고, 이미 탐사를 했고, 해안선마다 고산국 영토임을 나타내는 동판도 박아 넣고 있어. 이걸 봐.”
“하오나 전하!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르면 이 지역은 포르투갈의 영토입니다. 여기서 좀 더 동쪽으로 간다면 에스파냐의 영토겠지요. 그러나 조약이 유명무실해지고 있으니 고산국에서 두 나라에 적당한 형식으로 통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브라질을 지나는 서경 43도 37분을 기준으로 동쪽은 포르투갈, 서쪽은 에스파냐로 세계를 분할한 것이 1494년 체결된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주요 내용이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화하면서 그 경계선 서쪽으로 더 움직인 대신 태평양 방면에서는 에스파냐가 필리핀을 차지한 것이 1529년 사라고사 조약에 의해 확인됐다.
“말래카 해협 영유권을 두고 포르투갈이 에스파냐에 위약금을 물어줬다고 했나?”
“예. 토르데시야스 조약 체결 당시 말래카 해협이 당연히 포르투갈에 속한다고 봤는데 몇 십 년 후에 측량을 해보니 실상 에스파냐의 영역에 속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이 위약금 35만 두캇을 에스파냐에 물어주고 말래카 해협의 영유권을 계속 차지했습니다.”
“에스파냐에서 이 대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건가?”
“설마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조약의 내용을 고산국에 강요하겠습니까? 다만 성의를 보여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두 나라가 체결한 조약의 효력을 고산국에서 인정해준다면 생 돈 뜯겨야 하게 생겼다. 그런데 고산국은 조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처럼 그 조약의 효력을 부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스파냐로부터 북미 대륙을 매입할 계획을 세운 이민호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효력을 인정해주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앞으로 북미 대륙에 몰려올 유럽 국가들을 막아낼 때 에스파냐와 맺은 영토 매매조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있고, 유럽에서 강대국인 에스파냐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호주는 두 나라에게서 양해를 얻어 영토로 삼는 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돈으로 때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얼마면 돼?”
“예?”
“성의를 보여주겠어. 금화 35만 두캇은 대략 황금 3만 3천 냥 정도 되는군.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5.57배의 광둥 기준이 아니라 유럽 기준으로 10대 1로 잡겠어. 은 33만 냥을 두 나라에 나눠주지. 호주 땅은 포르투갈 쪽이 넓지만 어차피 태평양은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졌으니까 똑같이 나눠주겠어.”
“하하! 전하! 호주는 대륙이라면서요? 거대한 대륙과 자그마한 해협이 같습니까? 35만 두캇은 말래카 해협의 귀속 조항에 대한 위약금입니다.”
“꼬우면 전쟁을 하든지.”
에스파냐가 그 돈을 먹고 떨어지지 않으면 혼내주겠다고 이민호가 온 몸으로 표현했다. 1두캇은 순금 3.5그램을 함유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마닐라에 물어보십시오. 하지만 에스파냐는 이 대륙인지 섬인지에 대한 욕심보다는 고산국과의 우호에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판에 참 여러 나라 말을 넣었군요.”
청년 둘이 슬쩍 말을 돌리면서 호주가 고산국 영토라는 선언이 담긴 동판을 구경했다.
“좋아! 두 나라에 은 100만 냥씩 주겠다. 가을 교역에서 은 100만 냥 어치를 추가로 구매하도록 해주지.”
“멕시코 부왕에게 물어봐야겠지만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자넨 이번 일로 작위를 받을지도 모르겠군. 미리 축하하네. 외교관으로 소질이 있겠어.”
“그거야 잘 모르겠지만 미리 감사드립니다, 전하.”
1803년 미국은 당시 미국 식민지의 두 배나 되는 면적인 2백만 평방킬로미터의 드넓은 루이지애나를 프랑스로부터 매입하는데 1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호주 때문에 거의 그 절반 이상의 금액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두 나라에 지급할 생각을 하니 이민호는 몹시 배가 아팠다.
그러나 해달 모피 몇 백 장을 더 팔면 해결될 금액이었다. 이민호는 아주 잠깐 고민했으나 해달 모피를 추가로 팔면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아 비단이나 옥 도자기를 더 팔기로 했다. 고남 지방에서 대량 재배하는 향신료를 줘도 상관없었다.
“영토 협상은 따로 하기로 하고 계속 발언하겠소. 내일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탐사를 시작합시다. 이미 계획을 세운 대로 함대를 2개 분대로 나뉘어 하나는 동쪽, 하나는 서쪽으로 출발하되, 10일 후에 이곳과 같은 경도의 남쪽 해안에서 합류합시다. 위도는 모르겠지만 동경 130도 49분이오. 대륙이 얼마나 클지 아직 모르니 웬만하면 상륙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면서 탐사선을 해안에 보내 영토 동판을 세우게 하시오. 좌초나 풍랑에 유의하시오. 탐사는 나중에 다시 해도 상관없으니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아직 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위도와 경도를 측정해서 해도에 기입하기도 바쁠 것 같았다.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태즈메이니아나 멜버른에서 다시 만나자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북극성이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서 안 보였고, 북두칠성은 시간에 따라 관측이 됐다. 그래서 김몽돌 소령의 제안에 따라 남십자성이라고 이름을 붙인 작지만 뚜렷한 별자리를 기준으로 대략 방위를 잡고 있었다. 다들 남반구는 처음이라 무슨 돌발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호주 본토에는 얼마든지 상륙해도 괜찮으나 섬에는 상륙하지 마시오. 아마 전염병에 면역이 없어 자칫하면 그들이 떼죽음당할 수 있기 때문이오.”
혹시 이 시대 호주 원주민 인구가 극히 적은 것은 동인도제도에서 해삼 교역을 하러 온 항해자들이 전염병을 옮겼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시간이 좀 흘렀으니 지금은 호주 본토의 원주민들도 전염병에 내성이 생겼을 것으로 판단했다. 호주 원주민들이 최소한 남미 원주민들처럼 허망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하께서는 기후로 미루어 남동쪽에 숲이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어째서 중요한 지역을 놔두고 서쪽으로 가시려 하십니까?”
“호주 대륙 남쪽에서 합류한 다음 다시 동쪽으로 항해하면서 관측하려는 거요. 서쪽에는 황무지뿐이라니까 한 번만 지나도 되겠지요.”
“그런 뜻이 있으셨군요.”
물론 이민호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남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호주 대륙이 땅이 워낙 넓어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막과 황무지를 빼고도 농경지나 목초지로 쓸 만한 땅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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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개척을 해야 할 텐데, 초기 개척 단계만 묘사하고 간단히 넘어가겠습니다.
웬 상어, 악어 공부하다가 많이 늦게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