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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80화 (329/1,000)

00380  42. 남방 진출  =========================================================================

철도는 근대화와 산업혁명의 상징이었다. 군사용을 제외하더라도, 각 지역의 한계를 넘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폭발적인 생산 증대를 기대할 수 있었다.

철로가 완공되면 소비도 전국화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소금 간을 안 하고 얼음 약간을 재우는 것만으로도 생선을 다른 지역으로 짧은 시간 내에 수송이 가능했다. 자연히 어업 생산도 증대될 것으로 기대됐다.

또한 철도가 깔리는 지역은 확실한 국가통합이 가능했다. 고산국의 눈부신 발전을 한 발 비켜서서 가만히 지켜보던 원주민들도 어느새 고산국 백성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는 뜻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내는 고산국 국왕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됐다.

수송 수요에 비해 철도가 너무 일찍 만들어진 감이 있었으나, 거꾸로 기반 시설을 먼저 만들어 지역 개발을 촉진하는 면도 있었다. 지금까지 왕도에서 너무 멀어 백성들이 이사 가기를 꺼리던 지역에도 활발히 이주해 그 지역을 개발할 것으로 기대됐다.

“선로가 두 줄인데 하나는 상행, 하나는 하행인가요?”

“뭐, 그럴 수도 있지. 평소에는 그렇게 쓰다가 상황에 따라 둘 다 상행이나 하행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

왕도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이민호는 민영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장래 어느 시기에 어차피 복선화할 것, 공사하는 김에 미리 해버렸다. 시간이 흐른 다음 필요에 따라 급행과 서행, 여객열차와 화물열차가 분리될 것이다.

“고산국은 작은 섬나라라서 철도의 효용이 극대화되지 못해 아쉬워.”

“명나라나 다른 내륙 국가라면 엄청나게 영향이 클 거여요.”

“맞아. 배로 옮기는 게 더 싸니까. 헌데 고산국 영토가 이 섬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니까.”

필리핀 북부 바기오 같으면 항구에서 50리 정도 거리였다. 산길이라 말을 타고 가도 거의 하룻길이라 여기에도 철도를 놓기로 했다.

큐슈나 아이누 섬은 철도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철에 여유가 생기면 고산국의 국력을 과시하는 의미에서 철도 부설은 좋은 선전 수단이 될 것이다.

“다른 영토도 섬이거나 작은 항구만 갖고 있으니 효율이 떨어져요. 그럼 여진 북쪽 평원에 철도를 놓으면 어떨까요?”

“필요하면 놓아야지. 건설비와 유지비를 뽑을 수 있다면.”

세계를 정복해서 철도를 깔고 싶은 욕망은 없었다. 다만 장기적으로 필요한 곳에 차근차근 철도를 부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선박 운송이 더 효율적이었다.

궁궐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리는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무슨 일인지 대충 감이 잡혔으나 시녀들이 치맛단을 잡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몹시 생소했다. 작년에 닌자들에게 궁궐이 습격당했을 때도 이 정도로 당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전하! 혜영 귀인께서 드디어 양수가 터졌어요!”

최 선생이 달려와 소식을 전하자 이민호가 순간적으로 뻣뻣이 굳었다. 그러나 금방 정신을 차리고 혜영의 침소로 달려갔다. 시녀를 보내지 않고 최 선생이 직접 달려온 것으로 봐서 최 선생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의사 몇 명과 간호사 여러 명이 수시로 혜영의 침소를 들락거렸다. 침소 밖에서 민희가 남산만큼 부푼 배를 두 손으로 안아들고 우왕좌왕하고 있어서 차분히 의자에 앉혔다.

고산국 왕가 전체에서 처음으로 애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궁성에서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어의 선생님! 지금 아기가 나옵니까?”

“전하. 전하! 켁켁! 전하아~ 살려주시옵소서!”

이민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의 영감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있었다. 이민호가 깜짝 놀랐다.

“미, 미안하오.”

“제발 정신 차리시옵소서. 진통이 지금 막 시작됐고 혜영 귀인께서 초산이니 아마도 하루는 더 지나야 생산을 하실 것입니다. 진통 주기가 빨라지면 분만 직전에 전하께 알려드리겠습니다.”

궁성 입구에서 혜영의 침소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의사로부터 아직 해산하려면 멀었다는 소리만 들었다. 이민호는 침소에 들어가려고 발광하다가 간호사들에게 쫓겨났다.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나는 애 아빠란 말이오!”

“혜영 귀인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말도 안 돼! 나는 들어가겠소!”

민영이 다른 호위들과 함께 이민호를 잡아끌었다.

“부끄럽대요.”

“애 낳는 건데 뭐가?”

이민호가 소리를 질렀다가 잠시 후에 화가 누그러졌다. 산모의 성격에 따라 누구는 진통하는 내내 수염이나 상투를 쥐어뜯겨야 하고, 누구는 이렇게 쫓겨날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그때부터 침소 밖에서 소리를 지르며 혜영을 응원했다. 간호사가 들락거리며 침소 문이 열릴 때마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혜영이 힘내! 사랑해!”

비올레타가 이민호를 찾아왔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하는 거여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혜영에게 알려주려는 거요.”

“혜영 귀인님은 전하께서 이럴 시간에 차라리 하나라도 업무를 더 처리하길 바라실 걸요?”

“속마음은 다를 지도 모르오. 그리고 나중에 이 문제로 수십 년 동안 꼬집히고 싶지 않소.”

“풋!”

하루만 신경 써주면 수십 년이 편할 수 있었다. 미래를 생각한 이민호는 혜영의 침소 밖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물론 혜영이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의사나 여자들이 몹시 긴장하고 있어요. 제가 마닐라에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동양 여자들은 애 낳기를 몹시 버거워하는 것 같아요.”

“맞소. 해산은 위험한 일이오. 특히 동양 여자들은 골반이 작아서 더 위험하다오.”

동양인 머리 둘레가 백인보다 더 크다는 이야기는 뺐다. 동양인 산모는 분만도 힘들고 산후 조리도 훨씬 오래 해야 했다.

마카오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의사들이 고산국에서 처음 개업할 때 이민호가 몇 가지를 일러두었다.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한 소독 문제는 여러 번 강조했고,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들에게 회음부 절개에 대해 가르쳐준 다음 동물 실험에 들어가게 했다.

산도를 통해 아기 머리가 나오면서 어차피 회음부가 찢어질 테니, 괄약근이 손상되거나 산모가 더 큰 고통을 받기 전에 미리 회음부를 수술용 가위로 잘라주는 것이다. 의사들은 동물 실험에서 상처가 며칠 만에 아무는 것을 확인했고, 산모에 대해서도 사용해서 효과를 입증했다.

이민호는 산후 조리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고산국 의사들은 마카오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산부인과도 서양인 체질에 맞춰 배웠다. 게다가 대부분 조선 출신인 의사들이 어렸을 때는 애를 낳자마자 털고 일어나 밭일 나갔다는 할머니들의 치기 어린 영웅담을 듣고 자랐다.

의사들이 배운 대로 내버려두면 사람 잡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것 같아 산후 조리에 대해 몇 번이나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혜영이 귀인이라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동양인 산모에 대해서는 책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하라는 지시를 의사들은 처음에는 이해를 잘 못했다. 그러나 애를 받아보고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의사들을 의사가 아닌 동양인 의사로 만들어주었다.

“아! 저는 의료 재정 문제 때문에 왔어요. 의료비가 무료라서 국고에 부담이 너무 커요. 앞으로 인구가 대폭 늘어나면서 의료비로 인한 재정 부담이 더욱 커질 거여요.”

“드디어 때가 왔구려. 담배회사의 지분 전체를 의료원에 넘기겠소. 그 지분 대가로 황금 30만 냥을 10년 동안 분할해서 받겠소.”

“그렇게 싸게 넘겨요? 통이 아주 크시군요.”

처음 담뱃잎 종자를 수입했을 때 농가에서 자유로이 재배하는 외에 농업연구소에서도 시험재배를 해서 품질을 관리했다. 꾸준히 여러 가지 종자를 수입하고 종자 개량을 통해 몇 가지를 집중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었다. 다른 담뱃잎 종류를 섞어 담배를 만드는 법도 개발했다.

고산국에서 담배는 전매 상품이 아니었다. 농가 어느 집이나 텃밭에서 재배할 수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농가에서 담배를 생산해 담뱃가게에 파는 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도 유통됐다.

그러나 농가에서 재배하는 담배가 국가 단위에서 대량 생산하는 담배 품질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농가에서 재배하는 담배는 그 동네 농민들이 피우는 정도에 불과했지 도시에 대량으로 판매하거나 수출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담배 가격은 역시 흡연자들이 끊지 못할 정도로 살살 올려야겠죠?”

“못된 것만 배웠소.”

“전하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필리핀 등 외국에서 수입되는 담배도 있었으나 국산에 비해 품질이 낮고 가격 경쟁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종이 궐련과 필터 만드는 기술은 이 시대에 고산국밖에 없어서 잎담배 종류는 국산이 최고급 담배로 통했다.

담배 가격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그렇듯 담배 값 부담 때문에 흡연을 그만 두게 만드는 수준이 아니었다. 살살 올려서 끊지 못하고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만드는 것이 담배 가격 정책의 핵심이었다.

이민호도 예전에 흡연자라서 양심에 꺼렸으나, 외국 담배 가격을 살펴가면서 그리 비싸지 않은 수준으로 가격을 결정했다. 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백성들도 충분히 돈을 벌었다.

이민호가 개인 자격으로 담배 회사를 만든 이후 겨우 몇 년 사이에 자본 회수를 이미 몇 배나 했다. 담뱃잎을 일정한 길이로 자동으로 썰고 종이에 필터와 함께 말아 종이 곽에 넣는 작업을 자동화시켜서 생산가격을 대폭 낮췄다. 압도적인 품질과 가격으로 외국 담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그 조건에서도 최대한 이익을 낼 수 있었다.

담배회사가 왕립도 국립도 아닌 개인 자격 회사였다가 이번에 국립의료원으로 넘겼다. 고산국은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에서 백성들에게 국비로 치료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고 부담이 점점 커지면서 재원을 따로 마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료업계 종사자 수를 계속 늘리고 지역마다 의료시설을 제대로 만들려면 앞으로도 재원이 많이 필요했다.

“다른 나라는 보통 철과 소금을 전매제로 해요.”

“고산국에서 그럼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잖소? 특히 소금을 전매제로 하면 문제가 많소.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오.”

중국에서 나라를 무너뜨린 대규모 반란 수괴들 중에 염상 출신이 많았다. 소금 밀매를 통해 거대한 부의 축적이 가능해진다는 뜻이었다.

유럽에서도 소금 전매제로 인해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특히 자의적으로 운영하면서 지역마다 세율을 달리 책정해 프랑스에서 큰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 하지만 앞으로 재원이 부족할 것 같아서요. 전국적으로 신생아가 엄청나게 태어나고 있어요. 산부인과 병원을 더 만들고 의사와 간호사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부족한 것은 국고에서 지원하시오.”

고산국 백성들 중에 젊은 층이 많다 보니,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가 없어 다들 열심히 애를 만들었다. 지금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성장하면 경운차를 몰고 아버지 세대보다 100배 이상 넓은 농지를 경작하게 될 것이다. 백성들이 낼 세금도 예전 시대와 차원이 다를 것이다.

이제는 농민 100여 명이 병사나 관리 한 명을 겨우 부양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고산국은 이 시대 최초로 농민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 이하를 차지하는 곳이 될 예정이었다.

“국고를 손대기 어려워요. 술 공장도 넘겨주세요.”

“윽! 알았소. 황금 50만 냥, 10년 상환 조건에 넘기겠소.”

“너무 비싸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을 알지 않소?”

“특별히 봐드릴게요.”

주류제조회사도 이민호가 몰래 만든 개인 회사였다. 그러나 사탕수수 농장이 대부분 국영이므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제조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당밀의 흐름만 조사하면 럼주를 만들어 서양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주류회사의 실체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넓은 땅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해 설탕만 만든 것이 아니었고, 나머지는 발효시켜 주정을 제조해 다양한 술 종류를 생산했다. 무연화약을 만들 때 필수이므로 건국 초부터 사탕수수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에도 손을 댔다.

“술과 담배라는 건강에 안 좋은 상품으로 백성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웃기지 않소?”

“안 웃겨요. 건강에 나쁘지만 있어야 할 것이라면 이런 식으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해요.”

술과 담배 판매로 얻는 이익이 그 동안 쏠쏠했는데 비올레타에게 다 털리고 말았다. 술과 담배는 판매량 대부분을 고산국 백성들이 올려주는 상품이라서 다시 백성들에게 되돌리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찜찜했던 구석이 있었는데 털리고 나니 이제는 홀가분해졌다.

============================ 작품 후기 ============================

해산 장면은 차마 묘사하지 못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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