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79화 (328/1,000)

00379  42. 남방 진출  =========================================================================

“그 섬에 포르투갈이 1508년에 세운 요새가 있다니까 협조를 얻어. 괜히 랑카 현지의 왕들과 엮일 필요가 없어. 왕들이 욕심이 많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거든. 지나가는 외국 배를 불러서 선원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술에 취하게 한 다음에 죽이고 화물을 탈취한다더군.”

“손님을 환대하는 관습을 이용하는 나쁜 놈이군요. 조심하겠습니다.”

실론은 포르투갈에서 붙인 스리랑카의 이름이었다. 랑카나 종족 이름을 따서 싱할라라는 이름도 통용됐다.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하지 않던 시기라서 아직 이 섬이 유명해지지도 않았다.

포르투갈이 동아시아에서는 고산국으로부터 거의 도움만 받았지만 인도양에서는 꽤 많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라비아 인근 바다도 포르투갈의 영해나 마찬가지라서 고산국은 포르투갈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로 했다.

“포르투갈이 인도 해안 여러 곳에 진출했으니 협조를 받을 수 있네. 그래도 가급적이면 인도는 건너뛰고 바로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가 주게. 브루나이처럼 석유가 나는 섬을 고아 총독으로부터 인수하기로 했네. 총독에게 줄 선물을 좀 갖고 가게.”

포르투갈과 영국, 프랑스가 인도를 욕심낸 것은 거대한 땅과 인구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자원도 다수 발견된다. 제국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만한 땅이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인도의 해안 도시 몇 개만 점거한 상황과 비슷하게 고산국도 인구가 적어 인도 정복은 엄두도 못 냈다. 이민호 개인적으로도 인도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인구를 세금 받아낼 현금인출기로 본다면, 이민호에게는 생활과 안전을 책임 져야 할 부담에 불과했다. 고산국 인구가 적은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먼저 뭔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민호 개인 탓도 있었다. 그래서 인구가 부족해 곤란을 겪으면서도 일본인과 중국인들을 마구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안에 탐사를 다 마쳐야 하는 일입니까?”

“그래. 이제는 조력자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끼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잘 가르쳐서 일을 시키겠습니다. 경력을 쌓은 장교들도 선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생기겠군요.”

거대한 태평양 탐사선과 달리 남양용 탐사선은 약간 작으면서 긴 선형이었다. 고산국에서는 최근 이런 탐사선을 다섯 척이나 뽑아냈다.

“그리고 어느 곳이든 국왕 친정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네.”

“그럼 수심을 측량하는 단위가 달라집니다.”

“만약 원정을 떠나야 한다면 준비하는 기간 동안 세밀히 측량하게. 서쪽의 최종 목표는 수에즈니까 주변 정세를 잘 살펴야 할 게야. 아랍 원주민들한테 선물을 뿌리면서 관계를 잘 다지도록 해.”

이민호는 장갑차로 중동의 사막을 달릴 일이 없기만 바랐다. 괜히 아랍 지역에서 식민지를 건설할 일도 없고, 아부다비에서 석유 조금만 캐면 그것으로 족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다면 아랍은 지나는 길에 불과했고 고객은 오스만 제국이나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국가들이 될 예정이었다.

두껍고 단단한 고무바퀴를 단 경운차가 쟁기질을 하다가 논에 깊은 골짜기를 파냈다는 소문이 요즘 왕도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농기계로 쓰기에 4기통은 너무 강했으나 계속 개량을 거쳤다.

아리수 중류에 철교가 완성되어 10리 정도 되는 짧은 구간에서 기관차 시운전 행사를 가졌다. 혜영의 출산일이 가까워 그 동안 철도 일을 도왔던 혜진도 참석하지 못해 장인들이 아쉬워했다.

차고 앞 가림막이 양 옆으로 열리면서 기관 가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기관차 앞에 강력한 전조등이 켜지며 어두운 차고 안에서 마치 시뻘건 두 눈이 달린 괴물이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 빠앙~

“놀래라! 애 떨어지겠네.”

기적을 울린 다음 기관차가 객차 두 칸과 화차 한 칸을 달고 천천히 차고를 빠져 나왔다. 전조등 밝기와 기적 소리에 놀라던 사람들은 커다란 기차가 줄지어 움직이자 더욱 크게 놀랐다.

“전하! 철로 된 덩어리가 저절로 움직입니다!”

“참판! 배도 저절로 움직이지 않소?”

“배야 물에 떠다니는 것이니까 이상할 것 없었는데 땅에서 움직이니 놀랍습니다.”

예국 참판은 기관 동력에 대해 설명을 듣고도 이해를 못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아는 분의 할머니가 엘리베이터가 무서워 타지 못해 온 가족이 아파트 1층이나 2층에서만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 끼이이이익!

기차가 승강장에 들어와 멈추면서 다시 선로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소음 문제가 꽤나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었는데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자! 탑시다.”

“전하! 이걸 꼭 타야 합니까?”

“마차 타는 것과 똑같소.”

국왕이 솔선해서 타는데 신하들이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민호가 좌석에 앉고 다른 관리들도 객차를 거의 다 채웠다.

두 번째 객차에는 고아원 원생들과 군병원에서 지내던 상이군인 10여 명이 탔다. 군인들은 전쟁 중에 팔이나 다리를 잃었지만 퇴원 후에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해맑게 웃고 떠들었다.

유럽의 집사 복장을 한 차장이 대기하고 있다가 이민호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 사이 메이드 차림을 한 여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냉차를 돌렸다.

“기차 시승식에 참석해주신 국왕전하와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0리 거리를 왕복하는데 10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가만히 앉아 계시면 이곳 승강장까지 다시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기대하겠소.”

차장이 앞 칸 기관차로 가고 나서 잠시 후 다시 기적 소리가 울렸다. 예국 참판이 화들짝 놀라는 순간 기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속도가 점점 올라가자 참판을 비롯해 나이 든 관료들의 얼굴이 허옇게 변색됐다.

“움직인다!”

“너무 빠릅니다!”

미터법으로 환산해서 시속 48km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기차에 탄 사람들이 기겁했다. 창밖 풍경이 옆으로 휙휙 지나가자 다들 몸이 움츠러들었다.

“창문을 올리시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기차나 마차나 똑같다고 하지 않았소? 심지어 창문도 마차와 같소. 너무 더워서 땀이 날 지경이오.”

관리들이 궁성과 관청을 오갈 때 타는 마차에도 일부러 기차와 비슷한 위로 올리는 창문을 달았다. 관리들이 창문을 위로 올리자 거센 바람이 객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주 시원하구먼. 저긴 논이 참 넓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구경하면서 이민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기차가 선로를 달리면서 내는 굉음에 질린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삐이익! 철컹철컹철컹~

“물 위를 날아갑니다!”

철교 위를 달리는 순간이 아주 절정이었다. 강 위로 기차가 지나는 순간 객차에 탄 사람들이 겁에 질려서 고개를 숙였다.

기차 시승식 행사를 알리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많이 나와서 구경했다. 어린아이들은 신기하다고 환성을 질렀고 중년들은 세상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노인들은 전깃불에 이어 기관차까지 보게 되자 너무 오래 살았음을 절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욱 자주 ‘오래 살다 보니’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게 될 것이다.

소가 놀라 펄쩍펄쩍 뛰며 도망치고 그 뒤를 농부가 쫓아가는 장면이 조금 웃겼다. 사탕수수밭 옆을 지날 때는 온갖 새들이 하늘에 새까맣게 떠올랐다. 원주민들이 괜히 사탕수수밭에 들락거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끼이익~

계속 신나게 달릴 것 같던 기차가 금방 속도를 줄였다. 어느새 시운전 종착점에 도착한 것이다.

아리수 하구까지 연결되는 30리 길이의 철도 공사가 끝나면 좀 더 오래 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시험 선로밖에 없었다. 이 선로도 나중에는 남쪽으로 이어질 철도의 일부분이 될 예정이었다.

선로가 여러 줄 나 있는 종착역 비슷한 시설에서 기차가 천천히 선회했다.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달렸다. 철도 주변에 늘어서 있던 구경꾼들이 아직도 안 흩어지고 있다가 또 구경하면서 환성을 질렀다.

짧은 기차 여행이 끝났다. 이민호가 승강장에서 내리자 관료들도 따라서 내렸다. 다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철길이 고남 시까지 연결됩니까?”

비록 임시라지만 북부에 치우친 왕도를 고북, 국토 중앙 서해안을 고중, 국토 남단을 고남이라고 정말 성의 없이 이름을 붙였다. 괜찮은 이름이 안 나오면 이런 멋대가리 없는 이름으로 고착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현대 대만에서 타이베이, 타이쭝, 타이난으로 이름 붙인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도시 이름 외우기도 좋고 위치를 이해하기 쉬우니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소. 고중 시를 지나 고남 시까지 한 줄로 연결할 것이오. 인구가 많은 서쪽 해안 지방을 지나는 철도를 먼저 깔겠지만 나중에는 국토 동쪽에도 철도를 건설하겠소. 고산국 본토는 어디든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기차가 서는 역은 100리 단위로 적당한 지역에 건설하고 있소.”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철광석과 석탄을 용광로로 보내고, 조선으로부터 수입한 선철을 원료로 전기로에서 선로를 뽑아내고 있었다. 고산국 서부는 대부분 평야라서 선로 까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철도 건설 공사는 스무 군데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배로 선로와 철근, 시멘트 등을 옮기고 자갈과 모래를 주변에서 구했다. 복건과 광동 노무자들 2만 명이 천 명씩 나뉘어 건설현장에 투입돼 금방금방 철도를 건설했다. 공국에서 세밀하게 분업화 작업을 지시해 더욱 효율적인 건설이 가능했다.

“국왕전하께서 내탕금을 헐어 이 거대한 역사를 이루시니 신하로서 그저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걱정 마시오. 사람이 타든 짐을 옮기든 요금을 낼 것이고, 투자한 자금을 모두 회수할 예정이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나 그 다음에 국영으로 전환하겠소. 그 후에 요금을 내릴지, 그대로 두고 동해안 철도를 건설할 자금을 모을지는 그때 봐서 알아서 결정하시오.”

공짜는 없었다. 이민호가 왕실 자금을 사용해서 철도를 건설하고 있지만 본전은 물론 이자까지 회수할 예정이었다. 기관차 개발 자금도 이민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 그 비용도 철도 요금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래도 승객 요금은 식사 한 끼 정도의 부담 가지 않는 금액이 책정됐다. 석유와 철과 인건비 등 모든 것이 싼 시대였고, 그에 반해 고산국 백성들의 수입은 꽤 높은 편이었다.

앞으로 기차에 가장 많이 실릴 화물은 국가에서 걷는 세곡 또는 국영 농장에서 수확하는 곡물이나 사탕수수였다. 지금까지는 수확철마다 배로 운반했는데 한꺼번에 수요가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 기차 같은 정기적인 육상 운송 수단이 나았다.

그리고 철도는 서해안에 가까운 마찻길보다는 훨씬 내륙 쪽으로 노선을 잡았다. 그 동안 내륙운송의 뼈대를 이뤘던 마차가 기차 운송의 하부 운송체계로 흡수될지 아니면 도태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평평한 고산국 서해안 지방에는 현재 인구 일만 이상의 도시가 다섯 개 정도 건설됐다. 나머지는 죄다 농촌 지역이었고, 그것도 아직 인구가 부족해 북부에 치우친 왕도를 중심으로 300리 거리까지만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고산국의 남북 거리가 천 리 정도이므로 아직 국토 면적에 여유가 남아돌았다.

나머지 지역은 원주민들이 띄엄띄엄 마을을 이룬 정도였다. 그래서 더 남쪽은 전략적으로 개발한 도시 주변 농경지 외에, 개간된 넓은 농지는 대부분 국영 농장으로 남았다.

“혹시 남쪽에 휴양도시를 만드시는 이유도 철도와 연관됐습니까?”

“꼭 그런 건 아니오. 휴양지를 필리핀에 하나, 큐슈에 두 개를 만드는데 국내에 없으면 섭섭하지 않겠소?”

고산국에는 온천이 흔한 편으로 100여 개 정도 있었다. 궁성에서 가까운 곳에도 두 군데였고, 하나는 왕실용으로 온천수를 끌어들여 사용했다. 해중국 쪽으로 가도 온천이 몇 개 있었다.

궁성이 완공된 직후부터 왕도 주변의 온천을 개발해서 백성들이 싼 값에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더운 지역인 고산국에서 애써 온천을 찾아다닐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거의 공중목욕탕 대용이었다.

============================ 작품 후기 ============================

철도 건설 일정을 조금 당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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