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8 42. 남방 진출 =========================================================================
전임 총독 고메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는 몰루쿠 제도로 원정을 떠나던 도중 살해당했다. 필리핀의 에스파냐 상인들은 명나라나 고산국과 정상적인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지만, 본국 에스파냐와 필리핀 총독부에서는 더 많은 이익을 원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상품은, 시기만 잘 맞으면 한 번에 100배 이상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향신료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향료제도에 가서 향신료를 싸게 매입해서 유럽에 갖고 가 비싸게 판매하는 정상적인 무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향료 무역에는 천여 년 전부터 아시아 상인, 인도 상인, 아랍 상인들이 종사하고 있어서 이들과 가격 경쟁을 벌여야 했다. 향신료 무역을 하면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길은 향료제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판매를 독점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향료 제도에 자리 잡은 술탄들은 섬은 작아도 수백 년 동안 쌓은 재산을 활용해 주변 정치세력들이 가하는 압력을 버티며 독립을 유지했던 저력이 있었다. 그들은 군사력 하나만큼은 탄탄해서 다른 외국은 물론 포르투갈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낸 역사가 있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착해서 시장 가격을 제대로 다 주고 향신료를 산 것이 아니라, 향신료를 생산하는 섬들을 정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닐라 거주 중국인들과 틈이 생기면서 에스파냐가 당분간은 향료제도로 원정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섬라와 안남은 병력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어서 필리핀 총독부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메콩 강 하류 프레이 노코르였다. 그러나 이곳을 시작으로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가 캄보디아 내륙지역과 섬라, 라오스, 운남성, 티벳, 청해성까지 진입할 수 있어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마침 캄보디아가 섬라로부터 공격을 받아 멸망했고, 랑가라 왕이 라오스로 도망갔다는 소식이 마닐라에 전해졌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이 총독에게 몰려가 아시아 본토에 거점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라며 정복전쟁에 나서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바로 이때 이민호가 루이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 총독에게 편지를 보내 원정 계획을 단념시켰다. 캄보디아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섬라 군대를 영토 밖으로 내쫓아 이미 정국이 안정된 다음이어서 원정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안남이 메콩 강 하구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자칫 마닐라 총독부가 안남과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때는 필리핀 총독부가 배 세 척과 에스파냐 군인 120명 이상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기에 적절한 조언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에스파냐는 영토를 늘리기보다는 차라리 필리핀 경영에 전념하는 편이 나았다. 필리핀 남부 도서 지역 이슬람 원주민들의 저항이 극심한 탓에 에스파냐가 미국에 패해 필리핀에서 물러날 때까지 민다나오도 제대로 지배하지 못한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그렇게 야만인 행세를 합니까?”
“아니.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전쟁을 하다가 말다가 반복하는 중이야. 에스파냐가 아니더라도 영국과 독일, 프랑스라는 3대 강국 사이에 끼어 있으니 함부로 설치기 어렵지. 그런데 아시아에 와서는 제멋대로 설친단 말이지.”
물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지도 않았으니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그리고 17세기는 영국보다 빠르게 네덜란드가 해상 제국을 건설하는 시기였다. 영국은 네덜란드와 세 차례에 걸쳐 벌인 대규모 해전에서 런던과 템스 강을 지키는 것도 버거워했다.
“마닐라와 말래카 요새, 그리고 아리수 항구에서 서양 상선들을 봤습니다. 대포가 크긴 하지만 조선 수군보다 딱히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 배도 별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봐! 조선 수군은 이 시대에 세계에서도 알아줄 만한 전력이야. 기준을 그쪽으로 잡으면 곤란해.”
“조선 판옥선보다 고산국 해군 전선이 훨씬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해군의 9할 이상이 조선 출신이야.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조선과 전쟁을 할 리가 없지. 안 그래?”
“물론입니다. 이를 테면 말씀입니다.”
‘뭐하고 뭐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라는 유치한 질문은 애들뿐만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된다. 괜히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신무기를 개발, 배치하는 게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상선들은 정상적인 무역을 하기가 어렵다. 투자금을 아무리 모아도 모자라거든.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몇 년 동안 항해해야 할 배를 용선하고 선원들 급료를 주고 나면 상품 매입에 쓸 돈이 없어. 그래도 본국에 돌아가서 상품을 판매해 그 돈으로 투자자들에게 이익 배당을 해줘야 회사가 유지가 돼.”
“약탈밖에 방법이 없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뻔뻔하게 장사하는 것은 왜구밖에 없을 겁니다.”
“첫 번째 상행이 성공하면 또 몰려올 거야. 물론 실패해도 몰려오겠지. 유럽에서는 네덜란드가 돈을 벌 곳이 없으니까. 네덜란드가 독립한 것은 좋았지만 에스파냐와 무역을 못하게 됐거든.”
영국과 네덜란드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으로 배를 보내려 계속 노력했지만 포르투갈에게 자꾸 막혔다. 중간에 에스파냐 항구에 들렀다가 나포당하는 것은 물론 대서양에서 남쪽으로 항해하는 해상에서 에스파냐 선박에 나포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북방 항로를 개척하려고 시도했으나 영국은 먼저 포기하고 네덜란드도 부빙과 북극곰에게 세 차례나 막혔다. 두 번은 북극곰에게 습격당해 인명 피해가 나서, 세 번째는 북극곰의 간을 먹고 비타민 A 과잉으로 인해 여러 명이 죽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방해를 뚫고 다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올 수밖에 없었다. 두 나라의 동인도회사는 각각 1600년과 1602년에 설립되지만 이렇게 그 전에도 꾸준히 향료 제도로 항해를 시도했다.
여러 무역 회사들의 합병을 통해 거대한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것은 과다한 경쟁을 막아 향료 무역의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근대 최초의 주식회사라 하지만 자랑할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전하께서는 네덜란드 선박을 모두 격침시키시길 원하십니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야. 만약 네덜란드가 곱게 무역만 한다면 말릴 이유가 없지. 우리가 팔 물건이 많고, 다른 나라 물건도 중개무역을 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으니 유럽에서 오는 배가 많아질수록 좋아.”
“서양 범선보다 우리 기관 선박이 훨씬 빠릅니다. 우리가 직접 유럽에 상품을 갖고 가서 판매한다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좋겠지만, 배라는 것은 항속 거리가 있었다. 무역선이 상품을 주로 실어야지 배에 연료만 가득 채우고 다닐 수는 없었다.
이민호가 유전이 위치한 아부다비를 신경 쓰고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기관을 탑재한 상선이라도 한 번 연료 공급만으로 고산국에서 유럽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가 다 해결되더라도 한 번 항해하려면 몇 달씩 걸릴 텐데? 그리고 우리 배에 금은보화가 잔뜩 실렸다는 사실이 알려질 테니 유럽의 모든 나라 해적선들이 우리 무역선을 노리겠지.”
“에스파냐나 포르투갈 상인들이 본국에 왕래하려면 2, 3년씩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 해적선쯤은 무역선에 함포 2문만 달아도 해결될 겁니다. 남양에서는 그 어느 나라도 감히 우리 배에 도전해오지 못합니다.”
“그럼 좋겠지만, 항상 싸워야 할 거야. 이걸 받아.”
이민호가 김몽돌 소령에게 명단을 내밀었다. 탐사대원을 모집했을 때 100명에 들지 못해 탈락한 다음 훈련을 받고 있는 지원자 400여 명이었다.
“혹시 이들을 키우라는 뜻입니까?”
“그래. 마음만 앞섰다가 탈락한 놈들이야. 이들을 시험한 종목을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대부분 체력 위주야. 아니면 복잡한 항해술이지. 하지만 우리는 군인이나 선원을 뽑는 게 아니야.”
“대책 없이 밖으로 나가 모험을 즐기려는, 좀 위험한 자들입니다. 지도를 볼 줄도 모르고, 가르쳐줘도 배울 생각도 없는 놈들입니다.”
김몽돌 대위가 시험 과정을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동료 장교들을 통해 탈락자들에 대한 나쁜 평가를 익히 들었다. 장교들이 보기에는 탈락자들이 떨어질 만해서 떨어진 것이었다. 몇 과목은 장교들이 가르쳐준 다음 필기나 실기 시험을 봤는데 낙제를 한 지원자들이 과반수가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험가들이 필요해. 물론 그런 천방지축인 놈들이 설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를 해줄 사람이 따로 필요하겠지.”
이민호가 탁자에 지도를 펼쳤다. 유럽인들이 만든 지도를 수십 장 봐온 김몽돌도 처음 보는 지도였다. 브루나이 주변 남양과 태평양은 탐사대를 통해 측량이 어느 정도 되어 있더라도 아직 이 시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제대로 된 모습을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호주의 존재는 유럽에서 아무도 몰랐다.
“태평양 탐사대한테도 이야기했지만, 언젠가 북미 대륙을 가질 생각이야. 에스파냐에서 매입하거나, 정 안 되면 전쟁이라도 할 생각일세. 가능하면 적절한 시기를 살펴서 평화적으로 매입하는 게 최선이겠지. 지금도 유럽의 모피 사냥꾼과 상인들이 북미에 몰려가고 있어. 조만간 농업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니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네.”
“북미라는 곳은 명나라보다 두 배나 넓은 거대한 땅이로군요. 하지만 남쪽에 이 섬인지 대륙인지 모를 것은 처음 봅니다.”
현대 미국과 캐나다를 합하면 북미는 명나라의 두 배보다 훨씬 넓었다. 현대 중국은 청나라에 들어서서 티벳과 신강, 그리고 만주가 영토로 확장됐으니 그 이전 명나라 영토는 현대 중국보다 훨씬 좁았다.
예상대로 김몽돌은 북미대륙보다는 호주에 더 관심을 가졌다. 북미대륙은 두 번째 탐사대가 이미 출발한 다음이었으니 김몽돌은 이민호 입에서 호주 탐사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땅 모양은 대충 그린 것이니 오해 말게. 브루나이 동쪽 술라웨시 사람들이 여기 섬에 사는 사람들과 해삼을 거래한다네. 쌀을 주고 마른 해삼을 사는 약탈적인 교역이지. 헌데 사는 사람이 극히 적은데 반해 땅은 무지 넓어. 조선의 50배 정도야.”
“조선의 50배! 제가 평생 탐험을 해도 제대로 된 지도를 못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몽돌이 함박웃음을 지어서 이민호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옛날 국방과학연구소 시절이라면 다섯 가지 프로젝트에 동시에 참가해 성과를 내라고 강요받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김몽돌은 의욕이 넘쳤다. 탐험가는 아무리 일에 파묻힌다 해도 배의 이동속도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과로로 쓰러질 위험도 적었다.
“기뻐?”
“새로운 땅이 있는 줄 알게 됐는데 당연히 기쁘죠.”
“하지만 탐사선 한두 척만으로 이 섬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네. 그리고 우리는 인도양에도 진출해야 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흑인 병사들 나라도 세워줘야 해. 김 소령 자네 혼자서 다할 수가 없단 말일세.”
“그래서 모험가를 키우라는 말씀이시군요.”
김몽돌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만 충분히 준다면 혼자서 탐험해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김몽돌도 현실을 감안해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고산국에서 브루나이를 거쳐 호주로 가려면 자바 섬 동쪽 발리 섬 주변 해협을 통과하는 길이 가장 짧았다. 그리고 호주를 샅샅이 탐사하려면 브루나이에서 싣고 온 연료를 발리나 호주 북쪽에 추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 김 소령 자네는 중요한 지역을 살피고, 다른 부하들 배는 덜 중요한 곳에 보내게. 지상도 탐험해야 하니까 땀나고 위험한 일은 그런 일을 좋아하는 놈들에게 맡겨.”
“뭐, 좋습니다. 멍청이 놈들을 좀 가르쳐보죠. 다 필요한 일이니까요.”
“말래카 요새는 가봤지? 호주 쪽 탐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인도양도 탐사를 시작해야겠어.”
“말래카 해협을 빠져 나가면 바로 버마와 인도가 나옵니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로 향한다면 인도 남쪽 실론 섬과 잘 협의해야겠군요.”
이민호가 늘 해오던 일이 있어서 그런지 김몽돌 입에서 실론 섬을 정복하자는 소리가 먼저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탐험가들이 원주민을 만날 때마다 다짜고짜 전투부터 시작했다가 한 지역에 오래 묶인다면 최악이었다. 승리하더라도 남는 게 없을 수 있고, 패배하면 그쪽으로 다시 진출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고산국에서는 외국어 통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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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일 시키다 보니 아직도 못 나갔네요. ㅋ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