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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76화 (325/1,000)

00376  42. 남방 진출  =========================================================================

티크는 내구성이 높고 나뭇결이 아름다워 현대에는 고급 원목 가구로 주로 활용됐다. 원목 자체에서 오일이 흘러나와 방부, 방충 작용을 하므로 따로 칠을 해줄 필요가 없어서 더욱 좋았다.

그러나 이 시대에 티크는 가구보다는 군함이나 상선 제작, 궁궐 신축에 주로 활용됐다. 습기에도 잘 썩지 않고 수백 년씩 변형 없이 보존되므로 이상적인 목재였다.

건축 수요가 많은 고산국에서 끝도 없이 원목을 소비하고 조선 궁궐 건축에도 사용했으나 브루나이의 숲은 무궁무진할 정도로 넓었다. 나무만 베는 것이 아니라 묘목을 계속 심어서 가꾸니 목재 자원이 소진될 염려는 초반부터 줄어들었다.

나무를 베고 나서 새로 심을 묘목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씨앗 하나에서 며칠 만에 싹 튼 어린 나무의 가지를 손가락마디 길이로 쳐서 꺾꽂이로 삽목하면 40그루 정도를 쉽게 얻었다. 이렇게 티크는 나무치고는 번식방법이 매우 쉬운 편이었다.

이민호는 목재와 석유, 향신료와 고무 등 천혜의 자원이 풍부한 열대 지역을 직접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한때 있었다. 보르네오 섬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호주,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등을 지배한다면 강력한 대제국을 쉽게 세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말라리아 때문에 함부로 고산국 국민을 브루나이로 보내기 어려웠다. 알렉산더 대왕도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설이 있어서 이민호는 더욱 몸을 사렸다.

그리고 브루나이를 비롯해 말레이계 정치집단이 워낙 많이 흩어져 있어서 직접 지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처럼 비용이 적게 드는 간접 지배 방식이 나았다. 지금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자원을 수탈하고 있는데도 돈을 조금 뿌려서 먹고 살게 해주니 브루나이 주민들도 고산국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설마 부족하지는 않겠지?”

“그럼요. 한꺼번에 다 자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자란 것만 하나씩 베어와요. 하지만 주인님 말씀대로 한 그루를 자르고 나서 묘목 100그루를 못 심고 있어요.”

“왜?”

“묘목을 심을 자리가 없어요.”

이민호는 베개에 편하게 등을 기댄 채 네나와 다나를 양옆에 안고 두나와 세나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하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시원한 과일 화채를 이민호에게 떠먹여 주었다.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티크 말고 다른 잡목은 다 베어버려. 거기에 티크 묘목을 심어. 아! 바나나 같은 유실수는 남겨둬.”

“네에~”

두나와 세나가 기쁘게 대답했다. 일꾼들이 일하면서 바나나 정도 따먹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숲 근처 주민들은 내란이 지속됐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직 바나나와 티크 열매만 따먹으면서 목숨을 연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벌목꾼으로 고용된 다음부터 전 가족이 하루 세 끼 쌀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습기가 높고 더워서 돼지를 키우기 좋은 곳인데도 종교 때문에 돼지를 키우지 않는다고 들었다.

“저번에 시끄럽던 귀족들은 뭐하고 있어?”

“술탄께서 삼촌들을 남부 원정에 동원했어요. 병사들을 이끌고 남부 지역을 돌면서 술탄에게 복종하지 않겠다는 마을들을 토벌하고 계세요. 자바나 술라웨시에서 바다를 건너온 주민들 대부분이 술탄께 복종하기로 맹세했어요. 조금씩이지만 세금도 걷히고 있어요.”

“그거 잘 됐구나.”

브루나이 귀족들이 더 이상 술탄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술탄의 권력이 너무 커져 귀족들을 원정에 동원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세상 다 산 눈빛을 하던 술탄이 이제는 기고만장해서 설치는 꼴이 우스웠다.

술탄의 힘이 커진 것은 임업회사를 술탄의 여동생, 딸, 손녀인 공주들이 경영하기 때문이었다. 브루나이 백성들을 실제로 먹여 살리는 임업회사는 브루나이 국내에서 영향력이 크게 확대 중이었고, 그 권력 일부를 술탄이 공유했다.

술탄과 임업회사의 배경에 고산국이 있으니 어느 누구도 감히 대항하지 못했다. 남중국해에서 설치던 명나라 해적들을 몇 차례나 몰살시키고 일본을 정복하고 술루해적을 쫓아낸 고산국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주인님께서 술탄께 매년 은을 얼마씩 보내신다고 들었어요. 왕궁을 지켜주기 위해 병력을 파견했으면서 오히려 은을 보내셔서 브루나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요. 고산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다고 오해해 술탄의 권위가 더욱 높아졌지만요.”

“응. 그거? 석유라는 시커먼 기름을 싣고 오잖아? 그것은 원래 브루나이의 영토에서 나온 것이니 고산국에서 독점할 수 없어. 채굴한 자원에 대한 몫이라고 편안히 생각해. 원래는 술탄의 것이 아닌 브루나이 전체 백성들의 것이지.”

“세상에! 그 더러운 것을 돈 주고 사요? 아까워요. 그리고 지금 그곳은 고산국 영토잖아요.”

현재 브루나이 유전에서는 1년에 원유 1만 톤, 즉 7만 배럴 이상을 생산해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고산국으로 실어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전 밖으로 원유가 줄줄 새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쇠파이프를 땅에 깊이 박아 채굴하고 있으며 예전보다 주변 환경이 훨씬 깔끔해졌다.

채광설비 굴뚝에서 솟아나는 가스 종류를 불태워 이것으로 전기를 만들어 유전 주변을 밤에도 대낮같이 밝히기도 했다. 유전 경비대가 머무는 숙사 옆 관사에 술탄이 괜히 한 달에 2, 3일씩 체류하는 속셈은 호가호위 그 이상이 아니었다.

“나눠주는 게 좋지. 그래야 혹시 기름이 다른 곳에서 나더라도 우리에게 팔겠지.”

“어차피 고산국 외에는 다른 곳에서 살 이유가 없어요.”

“지금이야 그렇지.”

고산국에서 1년에 한 번씩 원유 생산량과 관계없이 브루나이 술탄에게 은 2천 냥을 지급하고 있었다. 그 외에 옥 도자기와 비단, 면포 등을 계절마다 선물로 보냈다. 술탄은 그 선물을 주변 귀족이나 유력자들에게 뿌리면서 열심히 예전 권력을 되찾아오고 있었다.

브루나이 임업회사 면허세 명목으로 1년 1천 냥, 목재 수출에 따른 세금 명목으로 보통 2천 냥 정도 지급했다. 술탄에게 고정수입 1년 5천 냥은 용병을 1년 내내 500명 정도 고용할 정도의 큰 금액이었다. 내전이 일어나더라도 귀족 연합이 기껏 수천 명을 간신히 동원할 정도였으니 국왕이 징집한 병사들 외에 1년 내내 고용되는 용병 500명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여기에 더해 유전에 배치된 고산국 1개 중대가 유사시 왕궁을 보호하기로 조약이 맺어졌다. 그리고 임업회사가 1만여 명의 벌목꾼과 제재소 노동자들을 고용한 외에 천여 명에 달하는 경비 병력과 임업관리인을 운용하고 있어서 이것도 술탄에게 간접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귀족들이 감히 술탄에게 대들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떻게 보면 임업회사를 경영하는 공주들이 귀족들은 물론 술탄보다 큰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브루나이 공주들은 항상 뿌듯해하며 이민호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술탄께서 요즘 힘이 넘치세요. 새로 젊은 후궁을 들였대요. 어이가 없어 정말! 그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요.”

“왕실도 안정됐고, 백성들도 편하게 산다니 됐지 뭐. 상으로 생각해.”

“그건 그래요.”

공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브루나이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았다. 이민호는 그저 전체 브루나이 섬에 비해 극히 좁은 지역에 불과한 세리아 유전지대를 할양받고 공주들에게 임업회사를 운영할 자금을 대줬을 뿐이었다.

예전의 영세한 벌목 노동자 집단 몇 개를 흡수해서 단기간에 대규모 회사로 키운 것은 공주들이었다. 이민호는 그저 몇 가지만 가르쳐줬을 뿐인데 공주들은 1년도 안 돼서 벌목과 운반, 제재와 수출까지 일관된 사업을 운영했다.

멀리 고산국에 머무르고 있는 공주들이 어느새 브루나이의 실권을 쥐고 흔들면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일방적인 자원 착취가 아니라는데 안도하던 이민호는 나비효과가 너무 크다고 느꼈다. 그래도 비교적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책은 뭐야?”

“저번에 주인님께서 구해오라고 말씀하신 카마수트라예요.”

“오! 그래?”

이민호가 책을 펼쳤다. 남자와 여자, 혹은 남자 하나와 여자 여럿이 뒤엉킨 야한 천연색 그림이 장마다 그려져 있었다.

쭉 훑어보니 남녀 일대일로만 총 64가지에 이르는 체위가 묘사돼 있었다. 담쟁이덩굴 감기, 나무 타기, 연꽃 자세 등은 특이하면서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네 타기라 해서 결합한 상태에서 좌우로 흔들면서 하는 방법도 있었다. 뜻밖에 글은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아랍어로 되어 있어서 하나 공주가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이것은 좋은 그림책이다.”

“주인님~ 우리 책을 보면서 연습해 봐요.”

공주들 다섯이 이민호에게 한꺼번에 달라붙었다. 이민호는 책장을 넘기면서 공주들과 갖가지 체위를 시험해봤다.

하나 공주에게서 설명을 들어보니 단순한 자세보다는 그런 자세를 하는 이유와 상대방에 대한 마음가짐이 더 중요했다. 카마수트라에서 제시하는 체위와 기교는 영적 결합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일대일을 실습하는 중에도 다른 공주들이 자꾸 달라붙어서 이민호는 옛 경전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브루나이 공주들이 성 지식은 풍부했으나 아직 경험이 적어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상대를 계속 바꿔가며 여러 가지 체위를 고루고루 체험해봤다. 몸매보다는 몸속을 단련하는데 힘쓴 브루나이 공주들이라 이민호는 결합한 동안 내내 바짝 긴장해야 했다. 결합한 직후보다는 어느 순간 공주들의 몸 또는 감정에 변화가 생길 때가 가장 위험하고 아찔했다.

이민호가 드러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두나가 육중한 몸을 위에 얹었다. 숨이 턱 막혀서 옆으로 살짝 밀어냈는데도 두나가 다시 바짝 엉겨왔다. 부드럽고 토실토실해서 이민호가 힘껏 끌어안았다.

“주인님께 시집오겠다는 공주들이 많아요. 받아들이실래요?”

“됐어. 지금도 많아.”

공주라면 귀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곳에만 해도 다섯 명이나 됐다. 명나라 황실에서 숨기다시피 한 주상아 공주, 망해가는 유구국을 어린 어깨에 짊어진 아라 공주만 생각하다가 브루나이의 다섯 공주를 한꺼번에 안으니 이민호도 혼란스러웠다. 주인공이 악당과 일대일 결투를 벌이는 정통 서부 영화만 보다가 처음으로 마카로니웨스턴에서 주인공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본 충격과 비슷했다.

“브루나이 귀족의 딸, 손녀들로서 주인님께 오겠다는 여자들이 많아요. 술탄의 직계인 저희 동생, 언니, 조카들도 주인님의 하렘에 끼워 달래요.”

요즘 들어 먹고 살게 된 브루나이 백성들은 그저 술탄과 공주들의 은혜로만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귀족들은 정치가랍시고 배후를 꿰뚫어볼 줄 알았다. 멀리 고산국에 앉아서 공주들에게 일을 시킨 이민호가 최근 브루나이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온 핵심 인물이 맞았다. 귀족들은 해오던 대로 여자들부터 접근시키려 했다.

“난 더 이상 감당 못한다. 너희들만으로 충분해. 정략결혼 잘못했다가 독살 당한 군주도 많다더라. 만약 이상한 방법으로 내게 여자를 접근시키는 귀족이 있다면 박살내버리겠다고 전해.”

“헤헤! 그럼 다행이에요. 귀족들의 제안을 다 거절할게요.”

두나도 꽤나 귀여운 얼굴이고 살만 빼면 미인이 될 것 같은데도 조금 게으른 면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원래 상업국가의 공주답게 사업은 참 잘했다. 이민호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밀어주는 나쁜 습성이 있었다.

“브루나이에도 고무나무 있지? 고산국에서 조금씩 수입하던 것 말이야.”

“찐득찐득하고 하얀 진이 흘러나오는 나무요?”

두나가 이민호의 아랫도리를 슬쩍 훔쳐본 다음 피식 웃었다. 이민호가 언뜻 생각해보니 남자와 고무나무 사이에 확실한 공통점이 있었다. 두나의 오동통한 볼을 옆으로 잡아당겼다.

“장난 말고.”

“우엥~ 예전부터 자라던 작은 고무나무 말고 몇 십 년 전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심은 것들이 수도 북동부에 자라고 있대요. 수액을 넓게 펼쳐서 비를 막는데 쓰거나 둥글게 뭉쳐서 공놀이 하는 것 외에는 불에 약해서 별로 쓸모가 없어요.”

고무는 인도 원산도 있으나 남미 원산의 한 종이 천연고무로서 나중에 산업용으로 널리 이용됐다. 그리고 고무는 열대지역에서 잘 자라 나중에는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대량 재배됐다.

그러나 천연고무의 생산량보다 수요가 훨씬 많아져 결국은 합성고무로 대부분 수요가 전환됐다. 유럽인들이 고무를 발견한 것은 15세기 말 콜럼버스였으나 오랫동안 산업에 활용하지 못했다. 고무에 황을 가해 탄력성과 내화성을 올려 제대로 사용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다 써먹는 방법이 있으니까. 농장을 만들어서 대량으로 키워볼래? 손해는 안 보게 해줄게.”

“주인님이 시키신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얼마 전 경운차를 시범 운전했을 때 장착된 바퀴는 쇠로 만든 굴렁쇠에 나무를 두른 것이었다. 마차 바퀴나 광산에서 사용하는 수레바퀴도 마찬가지였다.

이민호는 브루나이에서 생산한 고무를 자동차 타이어와 전선 피복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아직 고산국에서도 수요가 적어 당분간은 고무가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만약 고무 품질이 안 좋으면 에스파냐 상인들에게 부탁해 남미에서 새 품종을 구할 생각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회부터는 바깥으로 좀 움직여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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