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4 42. 남방 진출 =========================================================================
“전체적으로 무역 흑자가 너무 많아서 명나라에 눈치가 보일 정도요.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명나라에서 수입할 만한 게 없겠소? 올해 당장 천만 냥 정도 수입대금으로 썼으면 좋겠소.”
1980년대 전반에 일본이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활황이었을 때 미국의 국부가 일본으로 다 넘어간다고 미국의 조야에서 아우성을 친 적이 있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영화가 개봉되고 여러 신문에서 낸 사설을 통해 일본에 대한 위기의식이 미국 국민들에게 확산될 즈음 일본의 구매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했다.
구매사절단은 미국 언론사 기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것저것 당장 필요하지 않은 미국산 물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이렇게 미국 제품을 사줄 테니까 제발 미국 시민들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줄이고 계속 일본 제품을 구입해달라는 쇼였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환율을 극적으로 높여 그 이후 일본은 저 성장과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었다.
“무역흑자라는 것은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었어요?”
“큰 항구도시에서 상업이 막힐 정도로 명나라에서 은화 유통이 줄어들고 있어서 문제요. 그렇지 않아도 명나라의 과도한 세금 정책 때문에 경제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판에 이렇게 은화가 씨가 마르면 앞으로 교역량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명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고산국 문제가 될 수도 있소.”
무역이 시작된 이래 말 그대로 고산국이 명나라의 은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명나라는 전쟁을 핑계로 가난한 농민들을 최대한 쥐어짜서 구매력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으니 상업이 발전할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고산국에서 판매하는 옥 도자기와 해삼, 전복은 명나라에 잘만 팔려나갔다. 명나라 부자들은 아직 금전적 여유가 많았다.
이때 명나라가 구조적인 무역 역조 현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명나라 상대로 대규모 무역 흑자를 올리는 고산국을 침공해 약탈하거나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명나라가 고산국 점령에 성공하면 산더미 같은 전리품을 들여와서 몇 십 년 동안 흥청망청 쓰는 것이고, 실패하면 거의 망한다고 봐야 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무역이 막히니 일단 무역적자는 덜 보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명나라는 고산국을 침공할 의사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충분한 병력을 배에 태워 동시에 해협을 건너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호가 초조해질 정도로 무역 역조 현상이 심각했으니 과다한 무역 역조를 줄여 두 나라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봐야했다.
물론 명나라 경제가 엉망이 된 것에 고산국의 책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고산국은 사치품 위주로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치품 수요가 큰 황실과 고관대작, 부자들은 고산국과 무역을 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명나라의 혹독한 세금제도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상업이 마비되는 것을 두고 이민호가 괜한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저희들이 느긋하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가 보군요. 하지만 웬만한 것은 고산국 국내에 생산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요즘에는 명나라에서 살 게 없습니다. 비단과 차, 약재와 책마저도 이제는 고산국 것이 더 낫습니다. 사실 명나라에서 수입하는 가장 큰 품목은 노동력입니다. 필리핀과 고산국에 명나라 노동자 10만 명 정도 숫자가 꾸준히 유지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고향인 복건이나 광동으로 돈을 보내 그나마 은 부족 현상이 누그러지는 편입니다.”
이들이 고향으로 송금하는 은 때문에 복건성의 경기가 활성화됐다고 들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매년 수출하는 쌀만으로도 복건으로 흘러들어간 은을 금방 흡수됐다. 지난해에 고구마가 도입됐으나 구황작물에 머물렀고 주식은 여전히 쌀이었다. 그러나 복건의 쌀 생산량은 인구에 비해 항상 적었고, 그마저 절반 이상은 세금으로 나갔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요. 우리가 명나라에 파는 상품은 사실 대부분 사치품이며 그것도 겨우 몇 가지 품목에 불과해요. 그런데도 명나라의 경제가 무너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책임 때문만은 아니나, 그 현상에 우리가 일조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고산국의 일방적인 무역 흑자를 고착화시킨 가장 결정적인 상품은 해삼과 전복, 그리고 옥 도자기였다. 특히 해삼과 전복은 명나라의 일부 부자들뿐만 아니라 웬만큼 산다는 사람들도 고급 음식으로 생각해 명절에 맛보거나 귀한 사람에게 보낼 선물용으로 구입했다.
사실 명나라도 물산이 풍부한 편이라 해삼, 전복을 빼면 고산국에서 수입할 상품도 별로 없었다. 고산국에서 국가의 핵심 역량인 선박의 기관이나 보병총을 명나라에 팔 리도 없으니 아직 자유무역이란 요원한 일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대부분 명나라의 정책 잘못입니다. 전비가 많이 소모된 것은 사실이나 내탕고를 조금만 풀면 될 텐데 황제는 끊임없이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나라를 위해 은을 사용해야 한다면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골동품이라도 사들여야하겠습니까?”
“명나라는 화려한 것, 고산국과 조선은 단아한 것을 선호해서 약간 다르오.”
그리고 도자기 신제품이라면 모르겠는데 골동품이라면 그 소유주가 장인이 아니라 상인이나 고관대작, 또는 부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은을 다량 지급해봤자 바로 금고에 들어가서 숨거나 고산국의 사치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명나라의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명나라의 기층 경제를 직접 활성화시키려면 빈민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했다. 이 시대에는 미국의 푸드 스탬프, 빈곤층 식료품 지원 프로그램 같은 것이 필요했다. 미국의 빈곤층 4800만 명이 혜택을 받는 이 제도를 한인 마켓 업주들이 악용해 카드깡을 해주면서 부당이득을 얻다가 최대 40년 형을 받을 위기에 몰렸다는 기사를 이민호가 예전에 읽은 적이 있었다.
이민호가 명나라의 빈민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해도 명나라 중간 관리나 상인들이 작정하고 뜯어먹으려 들 것이 빤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황제에게 은 일정량을 바치면 어떻습니까? 요즘 전비 때문에 환관을 보내 은광을 캐고 세금을 많이 걷는다니까 우리가 그 전비를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황제가 구두쇠라 일단 내탕고에 들어가면 풀지를 않아요. 세금은 그대로 걷게 될 거라서 별 도움이 안 될 것이오.”
신하들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문제는 명나라 황제가 이미 시장뿐만 아니라 고산국 조정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황제의 태정은 여전하고 환관의 발호는 더욱 심해졌다. 황제가 정신이 나갔다는 소문이 명나라뿐만 아니라 고산국 조정에서까지 공개적으로 나돌고 있었다.
“그렇다면 명나라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군요. 각 지방의 순무들에게 쌀을 지급해서 나눠주라고 하면 고산국이 명나라 영토를 노린다고 오히려 의심을 받을 겁니다. 그러니 황제의 이름으로 명나라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면 어떻겠습니까? 세금 문제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일본을 점령하는데 도와준 명나라 황제와 군사, 백성들에게 두루두루 감사한다는 의미로 선물을 한다는 명목으로 쌀을 보냅시다. 마침 명나라에서 쌀 가격이 올랐다니까 가격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산국 조정 대신들과 후궁들이 똑똑한 사람들이라 이민호가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명나라 황제에게 은 2백만 냥을 진상하고 명나라 조정에도 2백만 냥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명나라 황제에게 2백만 냥은 큰돈이 아니었으나 조정에만 주면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황제는 형식적인 칙서 한 장을 내려 치하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예산이 쪼들리던 조정 대신들은 이민호에게 몹시 고마워했다.
그리고 황제와 명나라 조정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명나라 빈민구제 사업이 실시됐다. 인구 밀집 지대, 특히 빈민이 많은 지역인 광동과 복건, 안휘와 절강에 쌀 8백만 석을 보냈다. 운송비까지 해서 총 5백만 냥이 소모됐다.
그러나 사천과 귀주, 광서 지역은 의도적으로 쌀 지원 양을 줄였다. 단순히 거리가 멀거나 치안이 불안해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장기적인 고산국의 국가 전략 때문이었다.
명나라는 확실한 망조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망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반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백성들은 긴 세월 동안 더욱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고산국에서 쓸데없이 명나라를 지원하는 바람에 멸망할 날이 더 멀어졌다고 분개하는 명나라 지식인도 있었다.
“조선에도 도와줘야겠지요. 조선에서 생기는 흑자가 너무 많습니다.”
“조선에는 딱히 도와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전하. 흑자라고 해도 주로 조선의 광산에서 채굴한 황금으로 지불됐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소만. 그래도 도와줄 방법이 없겠소?”
그 동안 광해군이 의외로 정치를 잘해서 이민호 입장에서는 몹시 초조해졌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살기 어려워진 조선 백성들이 고산국으로 향하는 이민 행렬이 늘다가도 최근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새로운 임금이 똑똑하다는 평가가 돌아서 백성들이 광해군에게 희망을 건 탓이었다.
“전하! 지난 전쟁 때 경복궁이 불타지 않았습니까? 조선국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해 경복궁 중건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조선에 나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국왕께서는 경복궁 재건에 반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계속 경복궁 중건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대신들과 후궁들의 대화를 듣던 이민호가 솔깃했다. 경복궁의 화재 피해에 대한 평가가 갈라지긴 했지만, 중건이든 재건이든 상관없이 큰 토목건설 공사라는 건수가 잡혔다.
“조선에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하오?”
“아무래도 궁궐의 기둥으로 쓸 만한 굵은 목재와 인건비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국고가 텅 비었으니 쉽게 큰 공사를 일으키기 힘듭니다.”
“그래요? 그럼 목재와 인부들 품삯을 우리가 해결해줄 테니, 경복궁을 지으라고 합시다. 아! 나는 이미 다른 나라의 국왕이 되었지만 고국인 조선에 여전히 충성스러운 것 같소.”
“그, 그렇습니다.”
예국 참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민호가 조선 왕실의 위엄이 드높아지길 원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예국 참판은 잘 알고 있었다.
궁궐 중건 작업에 사용될 목재는 단순하게 길이 몇 자, 지름 몇 치로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목재가 건축현장의 야적장에 쌓이기 위해서는 강원도나 경상도의 깊은 산골짝에서 고르고 자르고 옮기고 다듬고 다시 옮기는 일에 연인원 수천 명씩 동원해야 할 때도 있었다.
나무를 땔감으로 쓸 때와 달린 궁궐 신축용 목재를 옮기는 것은 한 지방 전체가 동원되어야 할 만큼 큰일이었다. 그러니 자금과 목재, 조선에서 해결하기 곤란한 가장 큰 문제를 고산국이 나서서 해결해주겠다고 하면 조선에서 사양할 방법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목재는 건축용으로 내구성이 가장 좋다는 티크 목이었다. 비록 버마에서 난 것보다는 못했으나 브루나이 산 티크목도 충분히 좋은 목재이며, 건조 과정이 길고 복잡한 소나무보다 차라리 나았다. 특히 궁궐의 기둥으로 쓸 만한 굵고 곧은 목재를 이 시대 조선의 산하에서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전하! 형제국에게 우의를 보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우리가 고향의 나라에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형제끼리 돕는 것뿐입니다.”
“조선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소. 조선에 당장 사신을 보냅시다. 우리에겐 브루나이의 광대한 삼림이 있소.”
이민호가 노리는 것은 한 가지였다. 팔도의 백성들을 교대로 불러 모아 공역을 시키면 누구든 고달픔을 느끼게 되어 있었다. 이런 대형 공사에서 품삯을 준다 해도 일부 장인들이나 제몫을 받지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끌려온 백성들은 끼니나 겨우 때울 정도였다.
조선시대에 대형 토목사업을 일으키면 좋은 소리를 할 선비는 아무도 없었다. 조선 대신들은 비록 왕조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경복궁을 재건하라고 청했지만, 자금도 부족한데 백성들을 끌어 모아 공사를 시킬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다. 즉, 대신들은 조선국왕이 현실을 들어 거부할 것을 알면서도 예의상 건의한 것에 불과했다.
바로 이때 고산국에서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그리고 조선에 전쟁의 참화가 남아있고 경복궁이 불탄 것을 위로하면서 목재와 자금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경복궁 중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고산국에서 공짜로 자금과 가장 곤란한 목재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하니 결국 조선 조정에서도 경복궁을 중건하기로 결정됐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되고 얼마 후, 조선에서 고산국으로 가족 단위로 이민이 몰려왔다. 이민호는 모른 척하며 속으로 웃었다.
브루나이는 나무를 제값에 수출하고 술탄의 왕권이 안정되면서 국내 치안을 안정시켰다. 조선에서는 토목과 건설 경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백성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일했다. 고산국은 부역에 시달릴까 두려워하는 조선 출신 이민자들을 가족 단위로 받아들였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고산국에서 무상 지원한 쌀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민호는 이왕 다른 나라에 준 것이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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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는 브루나이 목재 이야깁니다.
별 소재가 다 나오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