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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72화 (321/1,000)

00372  42. 남방 진출  =========================================================================

“오스만제국이 홍해 쪽 외에는 아라비아 땅에 욕심을 내지 않는군요.”

오스만제국이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 땅,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북쪽과 서쪽 일부분만 영유하고 있었다. 사실은 맘루크 왕조를 합병하면서 이전의 아라비아 영토를 그대로 유지한 것에 불과했다. 현대의 바그다드와 쿠웨이트 지역은 오스만제국과 이란의 사파비 왕조가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어차피 아라비아 반도 중남부는 사막뿐입니다. 원주민들이 낙타 타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거나 오아시스에서 대추야자나 따먹고 사는 곳이지요. 에미르 또는 아미르라고 불리는 토호들, 그리고 셰흐나 셰이크라 불리는 작은 족장들이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혹시 여긴 어떻소? 아부다비라든지, 두바이라든지.”

이민호가 이란 건너편, 아라비아 반도에서 페르시아 만 쪽으로 툭 튀어 나온 지점을 가리켰다. 호르무즈 해협 남서쪽, 현대의 아랍에미리트가 위치한 지역이었다.

“이바디 이맘국의 북쪽 지역이군요.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페르시아 만에 여러 번 항해하면서 지나간 적은 있습니다만, 그 지역 섬들에는 모래나 약간의 숲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현재 페르시아 만 서안을 포르투갈이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으나 경제적 가치가 적은 편이라 느슨한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남지 않아 현대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카타르 반도를 제외한 페르시아 만 거의 전 지역이 포르투갈에 의해 정복되거나, 최소한 공격을 받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포르투갈에 공격받은 흔적이 카타르에 없다는 사실이 석기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카타르 반도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두바이 주변 현대의 아랍에미리트 지역도 마찬가지로 포르투갈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민호는 페르시아 만에서 백 년 동안 야만적인 해적질을 해온 포르투갈을 위해 영국과 네덜란드 해적을 때려잡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 남쪽 이바디 이맘국은 현대의 오만 영토에 세워진 나라였다. 특이하게 카리지트 일파의 무슬림들이 세운 신정일치의 국가였다.

“그럼 여긴요?”

이민호가 가리킨 곳은 아부다비로서, 현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가 있는 지역이었다. 아부다비는 아부다비 토후국의 이름이기도 하고 수도 이름이기도 했다.

“섬이 크지만 현재는 무인도로 표시돼 있습니다. 예전부터 사람이 살다 말다 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거주민이 없습니다. 아마 물이 없어서 아랍 원주민도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섬? 정말 섬이로군요.”

아부다비가 섬이라는 말에 이민호가 깜짝 놀랐다. 당시 아부다비는 무인도라서 카타르처럼 포르투갈의 공격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이민호는 몰랐지만 아부다비는 1760년에 처음 물을 찾은 다음에야 어촌이 들어서고 베두인 족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영국 해군이 군항으로 이용한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심지어 석유가 발견된 것은 한참 늦은 1958년이었다.

“어째서 그런 무인도와 황무지가 필요하십니까? 혹시 페르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입니까?”

“아니오. 바그다드 쪽 사막에 검은 기름이 흐른다고 들어서 말이오. 그것을 실어서 이 무인도에 보관할까 생각하는 중이오.”

“아! 그 썩은 기름은 예전에 그리스의 불을 만드는 재료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만 학자들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혹시 무기로 사용하실 계획입니까?”

“추운 곳에서 연료로 땔까 생각 중이오.”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의 리얼 부를 이루는 원천인 아부다비의 석유는 이민호가 갖기로 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아직 석유가 돈이 되는 자원이 아니었다.

이민호는 아부다비를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가는 고산국 상선들이 잠시 들러서 연료를 보충하는 보급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주변 나라들의 주목을 받아 침략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으므로 유전의 관리나 선착장의 유지를 현지인에게 맡길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석유가 중요한 자원이 되는 미래를 위해 아부다비를 확실한 고산국 영토로 가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혹시 그 섬이 필요하시다면 인도양에 원정 함대를 보낼 때 고아에 들러 부왕에게 허가서를 받도록 부하 제독에게 명령하십시오. 제가 부왕에게 편지를 써드리겠습니다. 고아 부왕이 우호의 선물로 넘겨드릴 것입니다.”

포르투갈의 인도 부왕이 고산국을 방문한다고 약속했으나 마침 주변 토후국들이 연합해서 쳐들어오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편지는 이민호와 여러 차례 교환했고, 충분히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아의 인도 부왕이 말레이계 여자에게서 낳은 혼혈 딸을 이민호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제안은 단칼에 거절했다.

“혹시 페르시아 만 전 지역을 포르투갈 영토로 간주하는 것이오?”

“확실히 지배하는 곳은 아니나 그래도 저희들의 이익이 걸린 곳이니까요. 하지만 무역항이 아니라면 고아의 부왕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현지의 아랍 토후들과 협상을 하면서 비단 몇 필을 선물로 넘기면 그 섬이나 주변 황무지는 전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잘하면 비단 몇 필에 사우디아라비아 전체와 맞먹는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아랍에미리트를 손에 넣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민호는 이곳에 배치할 인력부터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1개 소대 이상은 파견할 수 없었다.

“국왕전하.”

갑자기 동 두아르테가 목소리를 낮췄다. 에스파냐 상인들이 안 듣는 척 고개를 돌리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 다 보였다.

“그리고 국왕전하께서만 알고 계십시오. 포르투갈이 조만간 병력을 모아 그 남쪽 이바디 이맘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인도와 연결할 근거지가 필요해서 힘을 쓰기로 했습니다.”

“함구하겠소.”

포르투갈은 영국과 네덜란드가 인도양에 진출하려고 자꾸 시도하는 바람에 초조해서 그런지, 아니면 고산국과 무역을 하면서 자금이 남아돌아서 그러는지 약간 무리를 하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포르투갈이 이바디 이맘국 정복에는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기껏 정복한 이바디 이맘국을 영국에게 빼앗기고 만다.

포르투갈이 인구와 병력이 적어서 그렇지 역시 제국주의 국가답게 영토에 욕심이 많았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주로 국가가 형성되지 않은 지역이나 혹은 국가통제력이 미약한 국가를 무너뜨려 넓은 지역을 완전 식민화하는데 반해, 포르투갈은 주로 해안지방만 장악하려 했다. 내륙 깊숙이 들어가 전 지역을 정복하기에는 병력이 적어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에 욕심을 냈지만 인구를 비교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현지인 용병인 세포이를 고용하면서 서서히 점령지역을 넓혀 인도 대부분을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했다.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영국인은 4만여 명인데 비해 현지 용병인 세포이는 20여 만에 달했다. 물론 현지인을 고용하면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고, 결국 세포이 반란이 일어나 동인도회사는 해체된다.

“그런데, 전하. 이 모직물도 판매할 상품입니까?”

“예. 추운 지역에서는 쓸 만할 것 같소. 모피보다야 못하겠지만 훨씬 가볍고 쉽게 옷을 만들 것이오.”

“양모만 수출하던 영국은 플랑드르 출신의 모직 기술자들을 영국으로 이전시켜 최근 모직물 산업이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산국 제품이 우수하다 하나 유럽에 가면 가격 경쟁이 심할 텐데요.”

“유럽에 가져가서 비교해보시오. 귀족사회를 위한 모직이니 귀족들이 얼마나 지불할지 직접 확인하시오.”

고산국이 성장하면서 조만간 세계 패권을 두고 다툴 최종적인 경쟁국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농사짓기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라서 해외에 진출해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영국은 국력을 기울여 함선을 건조하고 함대를 유지해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른 경쟁국들을 차례로 꺾으며 식민지를 확대해 나간다. 결국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해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식민지를 수탈해 이루어진 제국이었다. 현재 추세라면 언젠가 고산국과 맞서게 되어 있었다.

현재 영국의 수출 산업은 양모와 일부 모직물에 불과했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영국의 지주 계층은 농경지를 양을 키우는 목장으로 전환하면서 농민들을 쫓아낸다. 그러나 아직 산업혁명이 시작도 안 됐으니 농민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14~15세기에 벌어진 백년 전쟁 때는 에드워드 3세가 플랑드르를 파괴하면서 양모 제조업자들을 잉글랜드로 강제 이주시키며 모직물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역대 국왕들이 잉글랜드의 양모 수출을 줄이고 직접 영국 내에서 모직 산업을 부흥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2차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밀려난 농민들은 도시의 비숙련 노동자로 전락한다.

고산국에서 생산을 추진하는 모직물은 바로 영국을 노린 상품이었고, 진짜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일단 최고급 제품을 수출해 유럽 사치품 시장을 장악한 다음 저가에 고품질의 모직물을 유럽에 대량으로 풀어 영국의 양모 및 모직 산업을 위축시킬 계획이었다. 대영제국이 인도에서 면직물 산업을 무너뜨린 것과 비슷한 계획이었다.

“양을 키우려면 넓은 초지가 필요합니다. 고산국은 아마도 대량 생산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고급 제품에만 주력하고 있지요.”

이민호는 모직물을 소량만 생산한다고 했지만 조만간 대량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양떼를 키우기에는 호주만한 곳이 없었다.

이민호는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 상인들과 달리 처음부터 호주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고산국에서 조선 남해안을 가나, 브루나이에서 호주를 가나 비슷한 거리였으니 말라리아 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좋은 선물을 받게 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은 얼굴에 함빡 미소를 짓고 돌아갔다. 에스파냐 상선들은 상품을 가득 싣고 남풍을 받아 북태평양 항로를 타고 멕시코로 갔으며, 포르투갈 상인들은 고산국에서 건조한 외륜선에 상품을 싣고 다시 마카오를 거쳐 말래카로 향했다.

고산국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대표적인 상품은 옥 도자기, 비단, 차, 모피 등이었다. 고산국에서는 수출 상품의 가격과 물량을 조절해 최대한 이익을 올리면서 동시에 유럽 시장의 수요량을 대부분 맞춰줄 수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모피를 구할 경제적 동인이 많이 줄어들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진출하는 시기는 원래 역사보다 크게 늦춰질 것이고, 그 사이에 고산국이 시베리아에 진출해 주민들을 영향력 아래에 두어 러시아의 동진 정책을 차단할 계획이었다.

북미 대륙이 유럽 이주민들에 의해 개발된 것도 일단은 모피 때문이었다. 지금도 유럽의 모험가나 모피 중개상들이 북미 원주민들과 모피 교역을 하고 있었다. 모피 교역 과정에서 북미 대륙의 지도가 완성되고 유럽인들의 본격적인 이민과 진출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고산국은 북미 대륙 진출을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더 늦기 전에 따라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민호는 한 달 뒤에 탐사선들을 다시 출항시킬 예정이었다. 1차 탐사대가 측량한 해도는 2차 탐사대에게 훨씬 안전한 탐사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됐다.

작년에 남양 제도를 성공적으로 탐험했던 김몽돌 소령에게 다시 탐사선 지휘를 맡겨 인도양으로 보냈다. 인도양 탐사선은 태평양으로 보낸 탐사선보다 소형이었으나 3인치 함포 2문이 탑재돼 기본적인 방어력은 충분한 편이었다. 말래카 요새에서 힌두어와 투르크어, 아랍어 통역 등을 고용한 다음 인도양과 홍해, 페르시아 만을 측량하도록 했다.

브루나이 남쪽에도 다시 탐사선을 보냈다. 위험한 탐사대에 누가 지원할까 걱정했으나 젊은 군인과 모험가들이 정원의 세 배나 지원했다. 이민호는 자원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탐사대를 구성하고,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약속한 다음 출항시켰다.

탈락자들은 추가 교육을 시킨 다음 가까운 필리핀 지역의 탐사를 맡겼다. 체력이 약해 탈락한 경우가 많아 잘 먹이고 체력 훈련을 시키면서 꾸준히 교육시켰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강한 전형적인 모험가들이라서 그냥 보내기 아까웠다.

============================ 작품 후기 ============================

꾸준히 탐사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계 정복을 할 것은 아닙니다. 제국주의하고 조금 다른 양상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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