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70화 (319/1,000)

00370  42. 남방 진출  =========================================================================

아라 공주가 전령을 호출해 아리수 강 하구 무역항으로 보냈다. 이민호는 아라 공주와 함께 해달 모피 처분 문제를 논의했다. 상인의 피를 타고 난 아라 공주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인들에게 해달 모피를 추가로 판매하는 것을 반대했다.

“계속 물량을 적게 풀어서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편이 좋아요. 독과점에 대해 제게 가르쳐주신 분이 전하시죠? 호호!”

“그 전부터 알고 활용하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요?”

“아잉~”

이민호가 힐난하자 아라 공주가 애교를 부렸다. 공주가 내뿜는 숨결이 이민호의 목을 간지럽혀서 소름이 끼쳤다. 아라 공주는 해서여진의 동가 공주처럼 노골적으로 유혹하지 않고 마치 아빠에게 매달린 천진난만한 꼬마아이처럼 행동했다. 이민호는 그게 더 위험하다고 느끼면서 슬쩍 밀어냈다.

그러나 아라 공주가 다시 이민호의 품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민호는 아라 공주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품에 꼭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려서 시집 온 공주를 보살펴줄 사람은 이민호밖에 없었다. 그리고 괜히 섭섭한 기억을 남겼다가 다 늙어서 구박받을 거리를 만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저는 어려서 이론적으로는 몰랐답니다. 그리고 북경에서도 해달 모피가 굉장히 비싸게 팔려요. 전하께서는 어째서 그 귀한 해달 모피를 북경에 안 파는지 모르겠어요.”

“해달 모피를 풀면 다른 모피 가격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렇소. 여진족도 먹고 살아야지요.”

아라 공주는 이미 고산국으로 시집 왔지만 고향인 유구국에도 여전히 충성스런 소녀였다. 유구국이 망하기 직전에 회생하고 최근 빠르게 발전해서 이민호에게 더 집착하는 것 같았다. 아라 공주 말고도 고산국으로 시집 온 다른 여자들도 두 나라의 우호증진과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했다. 이민호도 고산국만을 위하는 것보다는 양국의 이익을 위해 애쓰는 것을 더 좋게 봤다.

아라 공주도 그렇지만 특히 브루나이 공주들은 이민호에게 더 많이 의존했다. 3대에 걸쳐 뽑혀온 공주 다섯 명은 가만히 고산국 궁성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단지 목재회사를 통해 브루나이 술탄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힘을 억누르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장기적으로 고산국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이민호가 공주들에게 힘을 계속 실어주고 있었다.

“명나라는 건주여진의 힘을 줄이고 싶어 안달하던데 전하께서는 다르시군요. 전하께서는 여진족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흠. 길게 봅시다.”

화약무기가 맹렬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은 기마병이 우위에 선 시기였다. 그러나 고산국의 보병연대 정도로 기병과 포병이 보완된 편성이라면 평원에서 몇 배나 많은 기병과 싸우더라도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산국이 지금 보유한 병력으로 명나라와 싸우면 반드시 패하겠지만, 건주 여진과 전쟁을 벌인다면 단기간에 일방적으로 끝낼 자신이 있었다.

“그 동안 그리웠어요. 입 맞춰주세요.”

품안에 안긴 아라 공주가 눈을 꼭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이민호가 살짝 입만 맞추자 아라 공주가 목을 감아왔다. 아라 공주의 시녀들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곤란해진 이민호를 구해준 사람은 회족 양치기 소녀 아이샤와 시녀들이었다. 네 사람이 둘둘 만 양탄자와 몇 가지 물건을 들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주인님! 양탄자를 만들었어요. 보실래요?”

“오! 드디어 양산형 양탄자가 완성됐나? 원가는?”

폭과 길이가 적당한 것 같아 집무실 회의 탁자 주변에 깔았다. 이민호도 직접 탁자를 들어 옮기고 양탄자를 깐 다음 다시 탁자를 그 위로 옮겼다. 아라 공주가 뿔이 난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은 500냥 이하로는 도저히 단가를 못 맞추겠어요.”

“컥! 그 비싼 걸 바닥에 깔았네?”

이민호가 양탄자를 밟고 있던 발을 얼른 들어 올렸다. 최고급 캐시미어 산양의 가슴 털과 비단을 섞어 직조한 양탄자였다. 아이샤가 깔깔 웃었다.

“산양을 대량으로 키우면 털을 구하기 더 쉬워질 거여요.”

“어디가 가장 나아?”

고산국 고원지대와 제주도 정상, 철원, 개마고원, 아이누 섬 그리고 동해국 북쪽의 송화강 유역에 캐시미어 산양을 보내 키웠다. 각 지역에서 겨울을 지낸 산양의 털을 잘라 고산국으로 보내 아이샤가 면밀히 검사한 다음 결론을 내렸다.

“춥고 고원지대인 개마고원에서 기른 산양의 털 품질이 가장 좋아요. 영하나 오르도스에서 생산된 것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예요. 아이누 섬은 습기 때문에, 송화강 유역은 일조량이 부족해서 품질이 약간 떨어져요.”

“그거 잘 됐군.”

“하지만 개마고원에는 곰과 호랑이, 늑대들이 많이 살아서 방목은커녕 번식도 어려워요.”

“으음! 그럼 번식은 제주도나 고산국 같은 따뜻한 곳에서 시키고 털을 채취할 만큼 다 큰 산양만 겨울에 개마고원으로 옮기면 어떨까?”

“그것도 좋겠지만 산양을 산짐승들로부터 지키려면 군대가 주둔해야 할 거여요. 산양 20마리 중에서 다섯 마리만 살아남고 양치기 열 명 중에서 세 명이 죽고 네 명이 크게 다쳤어요.”

이민호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다른 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했었어도 그 정도로 사상자 비율이 올라간 적이 없었다.

“그럼 어쩔 수 없다. 품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아이누 섬과 송화강에서 키우자. 여진족이 양떼도 키우니까 재료 구하긴 쉽겠어.”

“방직, 방적 공장은 현지에 세울까요?”

이것도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을 해줘야 할 문제였다. 방직과 방적업이 기계 기술자들 외에는 그다지 숙련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드시 내연기관이나 전기를 써야 할 필요도 없어서,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 물레방아를 이용하면 되겠지.”

“이 옷도 입어보세요.”

아이샤가 가져온 것에는 현대 양복 수트 비슷한 남성용 상하의와 코트도 있었다. 이민호가 기억을 되살려 어설프게 그린 도안을 넘겨줘서 유구국 출신 시녀 아마가 직접 만들었다. 아라 공주도 아이샤에게 모직 코트와 옷을 선물 받아 갈아입으러 자리를 옮겼다.

이민호가 하얀 셔츠를 안에 받쳐 입고 모직 상하의를 입은 다음 전신 거울 앞에 서보니 그런 대로 보기가 좋았다. 벌써 여름이 다가와서 코트는 한 번 입고 다시 벗었다. 그 동안 아이샤가 눈을 깜빡였다.

“주인님! 너무 멋져요!”

“잘 만든 것 같다. 그 동안 수고했다. 이 옷 원가는?”

현대의 수트가 그렇듯 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가 입어야 맞았다. 이민호도 키가 큰 편이지만 아무래도 동양인보다는 다리가 긴 백인이나 흑인이 입어야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모직공업이 발달하면 자연산 동물 모피를 구할 필요가 줄어든다. 이민호가 산양을 키우고 오리털이나 거위털 패딩을 만든 것도 동물 모피를 대신할 따뜻한 의류 재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해달과 동물들을 멸종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기도 했다.

“재단비 빼고 재료값만 은 100냥이요.”

“크윽! 이거 아무나 못 입겠다.”

이 시대 유럽 귀족들도 입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가격이었다. 그러나 사치품으로 분류된 물건은 어떻게든 지불해서 팔리는 곳이 유럽 상류 사회였다. 이민호가 귀족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줄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판매가를 은 500냥 정도로 책정했다.

“키우기 까다로운 캐시미어 산양을 수십만 마리 단위로 키울 수 없잖아요. 캐시미어는 누구나 입을 수 없는 최고급품이에요. 대신에 일반 양털을 깎아서 대량 생산하면 단가도 낮아져요. 일단 아이누 섬과 송화강 유역에 양을 많이 키우도록 하면 모직 의류 값이 떨어질 거여요. 어때요?”

“양을 키울 장소로는 그다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 송화강 유역에는 말을, 아이누 섬에는 소를 키우려고 해. 당분간은 일반 양의 사육 두수를 늘리지 말고 캐시미어 산양만 키우는 게 좋겠어.”

“그럼 양을 키우기에 적당한 건조 지역이 따로 있나요?”

“있지. 하지만 고산국 영토는 아니야. 아직.”

“아직이라고요? 여운을 남기시네요.”

아이샤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민호는 사방으로 지평선이 펼쳐진 널따란 초원에서 양떼가 풀을 뜯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민호는 호주 원주민들을 양치기로 만들 생각이었다. 서양인이 호주를 처음 발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호주 원주민들은 이미 동아시아의 무역체제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호주 원주민들은 숫자가 너무 적었다. 고산국 본국도 인구가 적어 문제라서 고산국 백성들을 대량 이주시킬 수도 없었다. 일본과 명나라 사람들 위주로 보내면 자칫 독립하겠다고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이민호는 호주를 언제라도 차지할 자신이 있었지만, 호주를 지키고 개발할 사람이 부족해 아직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늦지 않도록 움직여야 했다.

전령이 달려 나가고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이 집무실에 헐레벌떡 뛰어왔다. 두 나라 상인 대표들이 이민호에게 축하인사부터 건넸다. 이민호는 미처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상인 대표들을 맞이했다.

“일본을 정복하신 국왕전하께 축하인사를 올립니다.”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국왕전하! 복장이 아주 멋지십니다.”

“고맙소. 어서 앉으시오.”

서양 상인들이 이민호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역시나 원하는 것이 있었다.

“아라 공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해달 모피를 500장씩 나눴습니다. 그러나 유럽과 인도, 오스만제국에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해달이 멸종 위기라서 그 이상은 못 잡는다고 하지 않았소?”

“탐사선이 돌아오면서 모피를 부두에 산더미처럼 내리는 것을 봤습니다. 최고 품질의 해달 모피가 일부 섞여 있더군요.”

상품 선적하느라 바쁘다면서 탐사선에서 무엇을 하역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에스파냐가 운영하는 마닐라 갈레온은 일본 근해까지 북상한 다음 북태평양을 횡단하지만 북위 38도 선을 타고 동진하므로 알류산 열도와는 1000km 정도 떨어져서 항해했다. 해달의 주요 서식지인 쿠릴열도에서도 한참 거리가 멀었다.

“얼음나라의 어느 부족이 10년 동안 모은 해달 모피가 좀 있소. 그런데 지불할 돈이나 있소?”

“험! 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국왕전하께서 특별히 대부해주시길 원합니다. 이자는 충분히 쳐드리겠습니다.”

에스파냐의 돈 페드로와 포르투갈 상인 동 두아르테가 각각 연 2할의 이자율을 제시했다. 두 나라는 해달 모피가 유럽 귀족사회에서 크게 호평을 받는 바람에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이민호는 두 상인에게 추가로 해달 모피 300장 씩 나눠주었다. 동 두아르테와 돈 페드로는 고산국이 일본과 전쟁을 할 때 정보 수집과 운송 등으로 이래 저래 도와준 것이 있어서 이 기회에 보답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무굴제국과 오스만제국에서도 해달 모피를 원해서 유럽 전체의 공급량은 천 장 이하로 추정됐으니 공급을 조금 더 늘려도 괜찮았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화약 수출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준 데에 대한 보상은 이미 은화로 지불했다. 전쟁이란 이렇게 뒷구멍에서도 돈이 많이 빠져 나갔다. 물론 빠져 나간 은화는 이번 교역을 통해 모두 회수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저희들이 전하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내게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소. 혹시 유럽에서 유명한 학자나 예술가 중에서 2, 3년 정도 동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셔오면 좋겠소. 한 사람 당 100냥짜리 금괴 한 매씩을 학자와 예술가를 모셔온 선장에게 지급하겠소. 체류 기간 동안 대학 교수나 궁정 예술가로 모시고자 하니 납치하면 절대 안 되오.”

“오오! 자연과학이나 의학 쪽에서는 고산국이 유럽에서도 이미 유명합니다. 학자들에게 공짜 여행을 제시하면 동양의 학문을 배우려고 얼마든지 올 겁니다. 다른 분야의 학자나 예술가도 많이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유럽 학자와 예술가를 대상으로 인신매매를 시작했다. 학자는 다양한 분야가 필요했고 예술가도 음악, 무용, 회화, 조각 등 다양할수록 좋았다.

“국왕전하께서는 인구가 부족해서 항상 고민이신 것 같은데 혹시 유럽인 이민은 안 받아들이십니까? 이탈리아나 아일랜드에 사는 유럽 평민들은 비록 가난하고 미련하다지만 일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고산국까지 너무 멀지 않소? 아프리카 흑인 노예 운반하는 것처럼 빽빽하게 태웠다가는 자칫 절반 이상이 병들어 죽을 가능성이 있소. 그럼 이민하겠다는 사람들이 금방 줄어들 것이오.”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께서는 파나마에 운하를 개설할 의향이 있습니다. 다만 비용이 문제입니다.”

이 시기 태평양을 횡단한 마닐라 갈레온에 실린 화물은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하역했다가 노새에 싣고 육로를 거쳐 멕시코시티 동쪽 베라크루스에서 다시 배에 실었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초기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왕복할 때는 가장 좁은 파나마 지협을 이용했다.

파나마에 운하를 팔 생각은 16세기 중반에 에스파냐 초대 국왕이었던 카를 5세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과 프랑스와 싸우는 동안 전비를 대느라 공사는 착공도 못했다. 얼마 전에는 영국 함대와 싸우느라 다시 미뤄졌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수에즈 운하를 완공한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에 의해 19세기 후반에 운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최종 완공은 20세기 전반에 해군 함선의 이동 때문에 고민하던 미국이 해냈다.

============================ 작품 후기 ============================

끙... 자정에 올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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