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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69화 (318/1,000)

00369  42. 남방 진출  =========================================================================

42. 진출

작년 여름에 태평양 항로 개척을 위해 떠난 탐사대가 거의 1년에 걸친 탐험을 마치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고산국 탐사선 두 척, 유구국 범선 한 척이 선단을 이루어 떠났는데 돌아올 때는 고산국 탐사선 한 척, 유구국 기범선 한 척으로 변했다.

당연하겠지만 동남아시아 바다를 훑었던 김몽돌 대위, 이제는 소령이 된 남방 탐사대보다 훨씬 고생한 것 같았다. 탐사대장을 비롯한 선장 두 명, 그리고 함께 보고하러 온 장교들이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보고서를 준비했습니다. 맨 앞장이 요약본입니다.”

“수고했다. 정말 고생했어. 그대들이 국가 발전을 최소 10년은 앞당겼다.”

이민호가 격려하는 말을 내뱉자마자 탐사대장 임현석 소령이 무릎을 꿇었다. 국왕집무실에 출두한 탐사대 소속 다른 장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이민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보고서 요약본을 훑어본 이민호가 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출발할 때 고산국 탐사대가 2척 160명, 유구국이 1척 120명이었는데 각각 절반 가까이 인원이 줄어들어 돌아왔다. 그래서 탐사대장과 장교들은 마치 석고대죄라도 할 듯이 죄송스러워 했다.

“국왕전하 소유의 귀중한 탐사선 한 척과 정예 탐사대원들을 수십 명이나 잃고 저희들만 살아 돌아와서 송구합니다. 이 죄인에게 죽음을 내려주십시오.”

“아니다! 그대들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만 자리에 편히 앉도록 하라.”

이민호는 탐사대원들의 사망 원인을 살폈다. 고산국 탐사대원이 70명 넘게 죽고 유구국 탐사대원들도 50명 가까이 죽어서 아라 공주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두 나라의 유능한 군인, 또는 뛰어난 모험가들로 구성된 인재들이 집단으로 허무하게 죽었다. 대부분 질병으로 죽었고 사고도 여러 가지가 발생해 일 년 동안 꾸준히 죽어나갔다.

배마다 배치한 의사 3인 중에 둘이나 병으로, 그것도 탐험 초기에 죽었다. 뱃멀미로 쇠약해진 몸이라 쉽게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의사 외에 건강한 군인들 중에도 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번 항해가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었다.

고산국 탐사선 한 척이 암초에 부딪쳐 좌초된 것은 비교적 탐사 초기인 알류산 열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대원들은 탐사선이 침몰하기 전에 보급품을 다른 배에 옮겨 싣고 기관 4기 모두를 떼어 낼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거센 풍랑 속에서 무거운 기관을 옮길 생각을 한 탐사대원들이 안쓰러웠다. 기관은 고산국 해군 전력의 절반 이상으로 평가됐으니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알류산 열도에서 탐사선이 좌초된 다음 풍랑 속에서 보급품을 실어 나르던 도중에 사고가 발행했다. 거센 파도에 단정이 전복돼 물에 빠진 여섯 명이 얼어 죽었다. 다른 단정에서 즉시 구조했으나 겨울이라 탐사선으로 옮길 틈도 없이 죽었다고 한다.

“안전이 최우선인데, 자연재해는 아직 인간이 저항하기에 이른 것 같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유구국 범선이 기범선이 된 것은 현대의 미국 서부 워싱턴 해안에 해당하는 북미 대륙에서 풍랑을 만나 반파된 다음의 일이었다. 범선을 기범선으로 개조하느라 한 달이나 시간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풍랑 때문에 유구국 범선이 좌초했어? 그래도 기범선으로 개조한 건 잘했다.”

“비록 유구국이 동맹국이라 하나 전하의 허락도 없이 국가기밀인 기관을 다른 나라 선원들에게 맡겼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범선에 내연 기관만 2기를 달았다니, 훌륭한 판단이었다. 조만간 내연 기관 생산량이 많아지면 유구국 배에도 달아주려고 했다.”

유구국의 금속가공 기술 수준으로 복잡한 디젤 기관을 복제하기는 어려웠다. 이민호는 구조가 더 간단한 터보 샤프트 엔진이 다른 나라에서 복제 생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놈의 곰 새끼들!”

보고서를 읽던 이민호가 이를 갈았다. 1590년대에 네덜란드 탐험대가 북방 항로를 개척하려다가 북극곰 때문에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해 두 차례 연속 탐험에 실패했다. 고산국 탐험대도 비슷한 참사를 겪었다.

캄차카 반도의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높은 산에 올라 주변을 관측하려고 상륙한 측량반에서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산 중턱에 천막 세 채를 치고 자던 측량반이 불곰에게 습격당해 아홉 명 중에서 두 명이 즉사하고 다른 한 명도 부상이 심해 탐사선에 돌아온 직후 사망했다. 불곰은 보병총을 다섯 발 넘게 맞고서야 죽었다고 한다. 장교들이 들고 온 거대한 곰 가죽을 보면서 이민호가 혀를 찼다.

“가만, 곰? 혹시 곰의 간을 먹었나?”

“예. 고기보다 부드러워서 간을 삶아 먹었습니다. 그 직후에 여러 명이 죽었습니다. 혹시 추운 지방에 사는 곰의 간에 독이 들어 있습니까?”

“으윽! 독이 들어있다. 추운 지방에 사는 곰이나 물고기의 간에는 독이 들어있어서 사람이 먹으면 죽는다. 앞으로는 간을 먹지 말라고 기록을 남기도록 해.”

독이 아니라 북극곰이나 극지방에 사는 물고기의 간에는 비타민 A가 과다하게 들어 있었다. 1596년 네덜란드에서 시도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북방항로 개척에 나선 바렌츠와 탐험대원들이 북극곰의 간을 먹고 떼죽음 당했다.

네덜란드는 결국 북방항로 개척을 위한 세 번의 탐험 모두가 북극곰 때문에 실패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비타민 중독증이라기보다는 비타민 과잉증이 맞는 말이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이민호는 보고서를 계속 훑어보았다.

“이누이트라고 했어? 자기들을 사람이라 부른 거겠지.”

알류산 열도에 사는 이누이트 족과 교역을 해서 모피를 많이 구했다. 이누이트 족이 절실하게 원하는 쇠도끼와 창촉, 단검 같은 철제 무기류 중심으로 교환했다. 여자들이 사용할 거울과, 보석 취급을 받는 유리구슬도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해달 가죽이 천 장이 넘어서 어떻게 처분해야 하나 고민했다.

“북미 대륙 원주민들하고 접촉을 일곱 번을 하고, 교역을 다섯 번하고, 그 중에 세 번은 전투를 했군. 혹시 탐사대가 원주민들에게 무례했던 것 아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교역을 했으나 우리의 무기에 욕심을 내서 야습을 해왔습니다. 하마터면 기병총 한 정을 빼앗길 뻔했습니다.”

탐사대원들은 전투병이 아니라서 방탄조끼와 투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두터운 방한복을 입고 방한모을 써도 부족할 정도로 혹독한 추위를 헤치고 나간 탐사대원들에게 철로 된 투구를 쓰라고 하면 죽으라는 소리였다.

추위가 더 두려운 적이었으나, 화살이나 도끼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세 차례의 전투 과정에서 열일곱 명이나 죽었다. 그 중에서 고립된 채로 사망했다가 머리 가죽이 벗겨진 대원이 두 명이었다. 북미 원주민들과의 추격전 끝에 다행히 머리 가죽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원주민들이 총을 알아? 그렇다면 북미 동해안 쪽으로 유럽인들이 이미 도착한 것 같다.”

이로쿼이 족이 네덜란드 모피 상인들로부터 화승총을 사면서 비버 가죽으로 교환하는 교역을 오랫동안 했다. 그러나 비버 숫자가 줄어들자 화승총으로 무장한 원주민들이 서쪽으로 계속 침공했고, 이것이 북미 원주인들의 정치 구도를 크게 변동시킨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비버 전쟁은 1609년 이후의 일이었으니 이민호는 네덜란드가 아니라 영국이나 에스파냐가 북미 원주민 부족들과 접촉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미국 개척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민호가 잘 모르는 사실이 많았다. 1540년대부터 자크 카르티에 등 프랑스 탐험가들이 오대호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세인트로렌스 강으로 진입하면서 북미 원주민들이 처음으로 서양인들과 접촉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방면에서 서양인들, 특히 에스파냐 상선대나 영국 해적선과 조우했다가 화승총의 위력이 알려졌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진출하는 게 조금 늦었지만 할 수 없지. 연료가 부족하지 않았나?”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브루나이에 도착해 연료 보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북위 34도 3분의 해안지대에서 통바라는 원주민 부족과 교역을 했습니다. 땅콩과 콩 맛을 보여주고 재배법을 가르쳐줬으니 잘하면 연료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북위 38도에서 동쪽으로 직항한다면 연료 부족 문제는 없겠군.”

“그렇습니다. 탐사대는 여러 곳을 탐험하고 경도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지도를 확인한 이민호는 그곳이 북위 34도 3분이 현대의 로스앤젤레스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기선과 범선을 함께 보낸 것은 무풍지대에서 기선이 범선을 예인하고, 혹시나 연료가 떨어지면 범선이 기선을 예인하도록 양쪽 모두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범선이 태평양 횡단이 가능하긴 하지만 해류와 바람을 제대로 타지 않는다면 시간이 몇 배나 걸린다는 것만 확인했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시간이 많이 걸릴수록 사고 위험이나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보급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야 하니 시간이 적게 걸릴수록 좋았다. 출발 당시 탐사선 세 척에서 적재량의 절반 이상이 연료였다.

“혹시 그곳에 유럽인들이 살지는 않아?”

“그 평원에 백인들은 없었습니다.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의 수도는 훨씬 남쪽 멕시코라는 도시입니다. 아카풀코에 상륙해서 500리 북쪽으로 이동해 멕시코에서 부왕을 접견하고 국서를 받아왔습니다. 조선말로 번역해놓았으니 읽어보십시오.”

필리핀 총독을 통해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이 보낸 국서를 고산국에서 이미 접수했었다. 이 국서는 형식이 약간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흐음. 물건 값이 너무 비싸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군. 몇 배나 이익을 얻으면서 뭘? 에스파냐가 요즘 어려운 가봐. 영국과 네덜란드 해적을 조심하라는 소리도 하는데 마젤란 해협 이야기는 쏙 빠졌네?”

아프리카 남단과 달리 남미 대륙을 차단하는 것은 지형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차라리 영국을 점령하는 편이 싸게 먹힌다는 결론이 예전에 나왔었다.

“생존자 전원 일 계급 특진, 순직한 대원은 이 계급 특진을 시키겠다. 그대들은 당분간 사관학교에서 특별강의를 맡도록. 7일에 한 번만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도록 해. 석 달 정도 지나서 다음 보직 발령을 내주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승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탐사대원들이 어깨가 축 쳐진 채 돌아갔다. 이민호가 보기에는 탐험이 대성공이었는데 대원들은 실패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이민호는 탐사대원들이 이룩한 업적의 대부분인 태평양 해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앞으로도 여러 곳에 탐험대를 보내야 하겠지만 그들이 의존할 가장 기초적인 해도가 드디어 만들어졌다.

“아라 공주. 아라 공주?”

“네? 네!”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아라 공주가 이민호에게 대답했다. 전쟁이 아닌 탐험 중에 이렇게 인명 피해가 크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공주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많이 놀랐소? 하지만 가장 위험한 첫 탐험에서 이 정도면 희생이 적은 편이오. 간을 먹지 않았다면 희생자가 이렇게 많이 생겼을 리도 없소.”

“전하께서는 탐사대를 또 다시 보내실 계획이신가요?”

“안타깝지만 그렇소. 그러나 앞으로는 위험이 훨씬 덜할 것이오. 그리고 다음부터는 유구국 범선이 참가하지 않아도 되오.”

유구국 범선은 풍랑에 배가 깨지고 좌초하면서 배 밑바닥이 너덜너덜해져서, 수리를 해서 간신히 고산국으로 귀환하기는 했지만 폐선하기로 결정했다. 범선 제작비용과 사망자들의 보상금은 고산국 왕실에서 지불하기로 했다. 살아 돌아온 탐험가들은 평생 먹고 살만 한 보상을 받았다.

“그래도 참가하고 싶어요.”

“범선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위험하오. 그러니 유구국 사람들도 고산국 탐사선에 태우도록 하시오.”

“전하의 자비로움에 항상 감탄한답니다.”

아라 공주가 이민호의 품에 안겨 목에 매달렸다. 성장할 때까지 육체관계를 하지 않을 작정인 것을 알아챈 아라 공주가 이런 식으로 이민호에게 은근히 도발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아라 공주도 그 동안 꽤 자라서 꼬마 티를 벗고 요즘에는 처녀 티가 물씬 났다.

“서양 상선들은 떠났소?”

“상품을 선적하고 있어요. 이틀 후에 출항 예정이에요.”

“상인들을 부르시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탐험과 교섭, 교역 위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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