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68화 (317/1,000)

00368  41. 일본 멸망  =========================================================================

“도련님! 1, 2연대나 큐슈에 정착할 여진 기병에게 첩으로 나눠주면 어때요? 일본 처녀들을 고산국에 데려가 봤자 정상적으로 시집 못 가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도련님이 다스리는 곳은 어디나 남자에 비해 여자가 너무 많아요.”

“너 병사들 마누라한테 잡혀서 얻어맞고 싶어?”

정식 부인이라면 몰라도 첩이라면 일본인에 대한 인종 말살 정책에 가까워서 이민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과도한 여초 현상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고산국은 민법 중에서 가족법 제도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일부일처제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았다. 그런데 축첩 금지와 첩 계약은 무효라는 조항이 들어 있어서 법률상 첩은 없었다. 그러나 일부 남자들은 첩이 아닌, 동등한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가진 부인을 여럿 거느리기도 했다. 감불이 말한 첩이란 두 번째 부인을 뜻했다.

“첩은 노동력이기도 합니다. 본부인의 권위만 확실히 세워준다면 본부인들도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처럼 오랫동안 원정 간 사이 본부인과 첩이 서로 말동무도 되고 좋잖습니까? 본부인이 허락한 경우에만 두 번째 부인을 들이도록 하면 어떨까요?”

“그런가?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보자.”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국가적인 사업이라서 혜영에게 물어봐서 장단점을 따진 다음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일본 처녀들을 고산국에 데리고 가서 본부인의 의사를 물어본 다음 첩살이를 시키는 것도 고려해보았다. 그러나 전 근대 사회에서 흔히 그렇듯 첩을 들이자는 남편의 말을 본부인이 거부했다가는 투기를 했다고 쫓겨날 수도 있었다.

“처녀가 첩이라니! 전쟁 때문에 처녀 가치가 개 값이 됐구나.”

“도련님에게 절반 정도는 책임이 있죠 뭐. 그러니까, 바다 건너서 일본에 복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나라가 이 세상에 고산국 말고 어디가 있겠습니까?”

이민호가 오랜 세월 준비한 끝에 난적 일본을 겨우겨우 때려잡을 수 있었다. 철저한 준비와 알고 보면 비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기병 작전, 그리고 행운이 겹쳐서 이런 완벽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이민호가 원한 대로 일본은 앞으로 최소 몇 세대 동안 외부로 힘을 투사할 능력이 없어졌다.

이번 감불이 지휘한 작전을 계기로 일본은 다시 통일하는 것도 벅찰 것으로 판단했다. 이민호는 일본 내부에서 돌아가는 사정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며 니시무라 겐타로를 통해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

온천에 몸을 담그면 혈액순환이 좋아졌고, 남성의 신체 일부에 영향을 주었다. 푹 쉬면서 잘 먹고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자연스레 후궁, 호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루에 다섯 번 정도 침소에 드는데도 저번처럼 코피를 쏟는 경우는 없었다.

이민호는 이 기회에 호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전쟁터나 병영에서는 씩씩하던 호위들이 침대 위에서는 다소곳하고 나긋나긋한 새색시로 변했다. 온천에서만큼은 호위들도 일인당 방 하나씩 쓰고 있어서 이민호와 처음으로 일대일 교감을 나눈 호위도 있었다.

“드디어 열 번을 채웠어요!”

“미안하다, 민지야.”

“기뻐서 한 말이었어요. 헤헤!”

이민호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민지를 품에 꼭 껴안았다. 그 동안 신분 높은 후궁들 위주로 잠자리 순번을 짜다 보면 이렇게 소외되는 호위들이 생겼다. 아직 후사가 없어서 회임 위주의 잠자리를 가졌지만 앞으로 몇 달만 지나면 자식들이 여럿 생긴다. 그 뒤부터는 이민호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주인님은 키가 큰 여자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응? 작으면 작은 대로 귀엽고 크면 큰 대로 육감적이라서 다 좋아.”

민영은 키가 커서 예전부터 열등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내고 보니 이민호가 가장 자주 안는 호위가 민영이었다. 온천에 와서 더 자주 안았더니 민영의 얼굴이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다른 호위들도 이 시대 여자들 기준으로는 건강미가 넘쳐서 이민호가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민호가 다시 한 번 민지와 결합했다. 이민호가 방을 떠날 줄 알고 시무룩해 있던 민지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다른 호위들에 대한 미안함과 기쁨을 동시에 표현한 어정쩡한 얼굴 표정이 웃겨서 이민호가 소리 죽여 웃었다.

4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철수 준비가 빠르게 진행됐다. 여진족 기병 일부는 벌써 동해국으로 출발했다. 수송선 20척을 동원해 1만 5천 명을 동해국으로 보내는데 열흘 넘게 소요될 예정이었다.

며칠 후 수송선들은 큐슈에 주둔하는 여진 기병에게 시집갈 여진 처녀들을 태우고 큐슈로 돌아왔다. 여진 처녀들 중에서 결혼 이민 희망자가 넘쳐나서 다행이었다. 현대 한국에서 돈 주고 동남아 여자를 사오는 그런 국제결혼이 아니라 같은 여진족끼리 결혼하는 것이라 조건이 훨씬 나았다.

여진 기병이 거주할 땅을 골라 왜인 포로들을 동원해 개간을 시켰다. 총독부가 들어선 오무타에 가까운 지쿠고(築後) 지방의 넓은 들판을 여진 기병 5천 명의 거주지와 농경지로 삼았다.

큐슈 주민들 중에 피난을 떠나거나 죽은 자들이 많아 땅은 넓고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 말을 키울 목초지도 널찍널찍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일본 농민 1만 호를 이주시켜서 소작농으로 삼았다.

기름진 넓은 땅을 경작하게 된 일본인 소작농들이 기뻐했으나, 세금과 소작료를 내고 나면 수입은 큐슈의 다른 지역 자작농에 비해 약간 더 많을 뿐이었다. 그러나 혼슈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일본 농민들의 사정에 비해서는 몇 배나 나았다.

간몬 요새와 히코시마 요새를 기리시탄 의용병 1천 명 단위의 부대에게 방어를 맡기고 2개월마다 교대하기로 했다. 3인치 야포가 있던 곳에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을 배치하고, 기관총이 불을 뿜던 곳을 조총을 쥔 기리시탄 의용병이 지켰다. 이것으로 간몬 해협을 지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어느 정도 병력이 주둔해야 했기에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큐슈 총독부에서 일을 시키는 포로 4만을 지키는 병사들도 계속 필요했다. 조사해보니 기리시탄 의용병 5만 명 중에서 1만 5천 명이 계속 군에 남기를 희망했다. 이민호는 큐슈 총독 정문부와 대화를 나눴다.

“전하! 왜병들에게 물어보니까 예전에는 농지를 경작하다가 다이묘가 징병을 하면 무기를 들고 모였다고 합니다. 갑옷과 군량은 다이묘 책임인데 나머지는 모두 왜병이 책임져야 합니다.”

“어느 나라든 군역이 백성을 수탈하는 부역의 한 종류인 것은 마찬가지지요.”

“일본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면 농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사시 병력 동원이 늦어지고 농번기에 징집을 하기 곤란하게 됩니다. 하오면 이들에게 고산국처럼 두 배의 농지를 주어 직업화된 병사를 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일반적인 일본인 농민이 경작하는 면적 두 배의 농지를 주어 병사의 가족이 경작하거나 다른 농민에게 소작을 주면 병사의 경제적 기반이 갖춰질 수 있었다. 여기에 월봉을 주어 무장시킨다면 왜병들의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산국과 비슷한 제도이면서도 큐슈는 고산국에 비해 농민 일인당 분배되는 경지 면적 자체가 좁아서 조금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정문부는 왜인들이 먹는 식사량이 조선인보다 훨씬 적어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평소에는 병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두 가지로 구분합시다. 직업군 외에 예비군이라 해서 유사시에 징병하는 쪽으로 말이오. 물론 대우가 달라야겠지요. 기리시탄 의용병 외에 일반 왜인들 중에서도 지원자를 받으시오.”

“이미 큐슈의 모든 농지 소유권을 무효화시켰습니다. 농지를 새로 분배할 때 예비군들에게 일반 농민들보다 확실히 유리하게 해주면 되겠습니다.”

결국 기리시탄 의용병과 지원병 합해서 2만 명을 직업병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예비군은 4만을 지정해 농한기인 겨울에 열흘, 나머지 기간에는 석 달에 이틀 비율로 소집해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큐슈에서 영토를 지배하면서 이익을 낼 생각이 별로 없었던 이민호는 남는 세금을 다시 큐슈에 투자했다.

오사카 앞 아와지 섬에 일본과 교역할 전담 무역항을 개설했다. 시코쿠의 영주가 관할하는 것이 아닌 큐슈 총독부 직할이었다. 항구 옆에 석성을 쌓아 초소카베 군과 도도 군이 교대로 지키도록 명령했다. 항구에서 거둔 세금 일부를 운영비로 나눠주었다.

오사카 남쪽 사카이에 개설돼 있던 에스파냐의 상관이 아와지로 이전했다. 오사카와 사카이는 일본 땅이므로 언제 전쟁이 일어나 휘말리거나 영주에게 착취당할지 몰라 불안에 떨던 일본 상인들도 모두 아와지로 옮겨와서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했다.

아와지에 거주하는 일본인 상인들이 큐슈 상인 또는 시코쿠 상인을 자칭하면서 일본의 상권을 천천히 장악해나갔다. 세금을 큐슈 총독부에 내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날이 더워지면서 일본 전역에서 전염병이 창궐했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난민들을 구호하던 귀족 처녀 히메들을 급히 큐슈로 이동시켰다. 그 전에 부모 잃은 아이, 처녀, 과부들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큐슈로 옮겨 정착시켰다. 아이들은 고아원을 세워 수용하고, 여자들은 명목상 큐슈 총독부 소속의 공무원 신분을 주어 일본 남자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난민 구호소는 오사카에 계속 남겨두고 식량을 지원했다. 초소카베 가문을 통해 오사카 주변 땅을 개간하는 난민들에게 마을을 구성하도록 하고, 농기구와 종자, 쌀을 넘겨 계속 보살펴주었다. 이상하게 오사카 지역을 욕심내는 일본 다이묘가 없었다. 아직도 살아남은 다이묘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빠 고산국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리고 히시카리 광산에서 금맥이 발견됐습니다. 다른 금광에 비해 금맥의 폭이 굉장히 두텁고 순도가 높습니다.”

히시카리 금광은 금맥의 폭이 2미터 이상이며 매년 채굴량이 순금 기준으로 7, 8톤에 달하는 엄청난 노다지였다. 매년 황금 20만 냥이라면 금액 기준으로 바기오의 금은광 다섯 곳, 그리고 조선의 금은광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산출량이었다.

“그거 반가운 소식이오. 안전장치를 잘 만들서 사고 없이 꾸준히 채굴하도록 하시오.”

“예. 갱목을 주변 산에서 벌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관 하나를 갱내에 쌓인 물을 배수하는 용도로 돌렸습니다.”

“갱도가 너무 깊어지면 막장까지 강제로 공기를 불어 넣어줘야 할 거요.”

“기관 하나로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산국 관리와 조선 출신 광부들이 기관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혹시나 광산에서 반란이 발생할 경우 기관을 가장 먼저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일본에서 기관을 복제할 가능성은 적지만, 효율이 낮게라도 복제할 수 있다면 고산국의 국력을 금방 따라잡을 수도 있어서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광에 배치된 포로들의 노동 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며, 옛날보다 잘 먹여서 반란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금광에서 금이 생산된 덕택에 총독부에서 차입한 부채를 금방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광 수익의 분배비율은 올해 채굴량과 큐슈 전체의 수확량을 봐서 정하시지요. 물론 절반 이상은 세금으로 떼어 고산국 왕실에 보내고, 나머지 금도 고산국이 소유한 은으로 바꾸겠습니다.”

전쟁 비용은 일본에서 배상금을 받기로 했으나 큐슈에 투자한 비용 은 3백만 냥에 더해 추가금까지 해서 총 5백만 냥을 큐슈 총독부에서 고산국 왕실에 갚기로 했다. 물론 큐슈를 점령하면서 사용한 여러 가지 비용을 큐슈 총독부에 덤터기를 넘기고 그 과정에서 다시 바가지를 씌웠다.

이민호는 구한말 조선 통감부가 했던 비슷한 일을 큐슈에서 하고 있어서 양심에 살짝 찔렸다. 그러나 큐슈 농민들을 직접 착취하지는 않았다. 농민들은 예전보다 살기가 훨씬 나아져서 큐슈 총독부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많이 남을 것 같소. 황금이 큐슈에 남지 않도록 하시오. 일본에서도 계속 금을 우대 교환해주는 교역을 하시오.”

“예. 일본과 무역을 통해 황금을 계속 빨아들이겠습니다.”

에스파냐가 신대륙에서 채굴하는 엄청난 양의 은 때문에 언젠가는 은 가격이 하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명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은의 양을 채우지 못했기에 은 가격이 폭락할 시기는 아직 아니었다. 그래도 이민호는 은보다는 금을 중심으로 삼았다.

“어쨌든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생산량과 소비량 증대에 힘쓰시오. 남는 자원을 다른 지역에 수출하고 모자라는 것은 얼마든지 수입하시오. 큐슈에 거주하는 왜인들이 배 터져 죽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때까지 먹이고 겨울에는 솜옷을 입히시오. 바닷물고기 같은 수산자원의 경우 의외로 빨리 소진되니까 종묘나 종패를 배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시오.”

“예, 전하. 어업연구소장이 여러 곳에 종묘 배양장을 만들었습니다. 치어를 매년 대량 방류할 예정이며 혼슈나 시코쿠 근해에도 방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코쿠에 거주하는 왜인들에게도 잘해줘야 합니까?”

“그들도 큐슈 총독부 관할이니 적당히 해주시오. 최소한 일본 땅에 사는 자들보다는 잘 살게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오.”

“고산국과 큐슈, 시코쿠와 일본이 어느 정도 격차를 느낄 수 있게끔 세밀하게 조절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식민지인 큐슈가 본국인 고산국보다 더 잘살게 만들 수는 없었다. 식민지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고산국 자체에 인구가 적어 큐슈에 이주민을 보내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히시카리 금광 외에는 큐슈에서 수탈할 것도 별로 없었다. 쌀이 많이 생산되니까 이것을 동해국이나 아이누 섬에 보내면 괜찮을 것 같았다. 큐슈를 활용할 방법을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4월 말, 이민호는 함대와 병력을 이끌고 고산국으로 돌아왔다. 1, 2, 3연대가 차례로 궁성 앞 선착장에 내렸다. 해산일이 가까워진 후궁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격렬하게 이민호를 맞이했다.

그러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좀 많이 꼬집혔다. 부인들의 임신 기간 동안 집을 비운 죄를 지은 이민호는 감히 아프다는 소리 한 마디 할 수가 없었다. 이민호가 동산처럼 부풀어 오른 혜영의 배에 귀들 대며 기뻐하다가 또 꼬집혔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일본 멸망편이 끝났습니다. 정복도 아니고 몰살도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드러날 것입니다. 일본의 변화는 가끔 언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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