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3 41. 일본 멸망 =========================================================================
“좋다. 원래는 비와(琵琶) 호를 중심으로 폭이 좁은 지역에서 남북으로 국경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많이 양보해주겠다. 오사카와 교토는 일본의 영토다.”
“감사합니다, 전하!”
“교토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운영하려면 식량 운송용으로 항구가 필요할 테니까 항구를 내주겠다. 불에 탄 오사카 성에서 30리 서쪽 지점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연장선을 긋겠다. 그 서쪽이 고산국, 동쪽이 일본이다. 기이 반도 서쪽도 비워야 한다.”
“으으! 너무하십니다.”
조건이 지나치게 가혹했지만 힘이 없는 일본은 그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산국이 언제라도 이 지역을 점령할 수 있는 반면 일본은 서일본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종전, 또는 휴전 시점의 전선이 국경으로 고착되는 경우가 흔했으니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지나가는 조선 기병을 불러서 국경을 나누라고 할까?”
“아, 아닙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임진왜란 때 침략을 당한 조선군이라면 국경 획정을 어떻게 할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민호가 지도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주코쿠를 포함한 서일본은 완충지대로 비워놓겠다. 왜인, 그러니까 일본인은 그 누구도 들어가지 말도록. 국경을 침범한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참수하겠다. 그리고 시코쿠는 아직 정복이 끝나지 않았지만 곧 끝날 테니 고산국이 다스리도록 하겠다. 괜히 도와줄 생각은 하지 마라. 여기 아와지 섬은 시코쿠의 부속도서다. 미리 비워놓으라고 해.”
“끄응!”
아와지(淡路) 섬은 오사카 만 앞에 떠 있는 큰 섬이었다. 오사카 만이 넓다 하나 아와지 섬의 북쪽과 동쪽 해협을 배 몇 척으로 가로막으면 오사카에 대한 완벽한 해상봉쇄가 가능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일본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만약 일본이 공격할 경우 이곳을 전초기지로 사용할 셈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어차피 저희들은 힘이 없습니다. 제발 전쟁을 끝내고 살려만 주십시오. 교토로 향하고 있는 잇키들을 막아주시면 뭐든 다 수용하겠습니다.”
고산국이 병력을 동원해 난민들의 진입을 막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런 위협이 없었다면 공경들이 직접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지 전체 또는 병력 대부분을 잃은 다이묘들은 더 이상 동원할 병력이 없었다. 다이묘들은 고산국의 공격으로부터 영지를 지키고 난민을 막기 위해 병력을 찔끔찔끔 나눠 보내다가 결국 다 말아먹었다.
“그리고 혼슈 북쪽 끝에서 남쪽으로 200리를 아이누 족에게 주겠다. 그 지역 가문들이 반발하면 여진 기병을 동원해 다 쓸어버리겠다.”
“일본이 점령하고 개척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반발이 적을 것입니다. 그 지역 다이묘들을 개역이나 전봉을 할 때 만약 명령을 듣지 않으면 저희들이 군을 동원해 토벌하겠습니다.”
사신들은 혼슈 북부가 힘없는 중소 영주들이 보유한 영지라서 그런지 의외로 순순히 동의했다. 혼슈 북부 지방 중에서도 해안 지방에는 에조라고 부르던 아이누 족이 지금은 물론, 메이지 시대까지 살았다.
그런데 이 시기 전후 아이누 족을 북쪽으로 몰아내면서 정착한 일본 사무라이 가문들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아이누와 함께 에조로 칭하는 경우가 흔했다. 교토 등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은 혼슈 북부에 사는 일본인들을 아이누와의 혼혈이라 의심한 것이다. 영지민들 일부가 혼혈되거나 소수 아이누 족이 영지민으로 흡수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지배층까지 혼혈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전쟁에 참가한 아이누 족은 사실 큰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다. 혼슈 북부에 왜군 병력 몇 만을 붙들어두고 서일본에서 고산국 주력 병력이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특전대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몇 번이나 몰살당할 뻔하기도 했다.
아이누 족에게 영토를 나눠준 것은 전쟁에 참가한 것에 대한 보답보다는 혼슈와 아이누 섬 사이, 쓰가루 해협의 통항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덤으로 아이누 족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했다.
이로써 일본은 교토와 오사카를 지키는 대신 관서의 극히 일부와 관동, 동북 지방만 남았다. 큐슈와 시코쿠, 관서 대부분을 잃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영토 절반 이상은 지킨 셈이었다. 물론 아이누 섬은 아이누의 영토였다.
그 외에 사도(佐渡)를 비롯한 모든 섬에서 일본인이 퇴거할 것, 돛을 단 배를 만들거나 바다에 띄우지 말 것, 외국 배가 표류했을 때 약탈하지 말고 선원들을 구호해서 큐슈로 보낼 것 등을 약속받았다.
“이제 어서 군을 편성해서 잇키들을 몰아내주십시오. 교토로 몰려오는 적이 10만이나 됩니다.”
“그렇게 하지. 하지만 일본 수도를 지키기 위해 출병하는 만큼 전쟁비용은 일본에서 부담해야 할 거야.”
“무, 물론입니다. 헌데 쌀 같은 것은 현지에서 공급하면 안 되겠습니까?”
“독을 탈지도 모르니 우리가 직접 보급하겠다. 그냥 전비나 내도록 하라.”
임진왜란부터 시작한 오랜 전쟁 때문에 쌀이 부족한 곳은 일본일 텐데도 사신들은 고산국 군대에 쌀을 제공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이민호는 이 기회에 일본 조정에서 보관한 쌀을 다 사버릴까 하다가 내버려두기로 했다. 혼란이 지속되는 이때 일본 기득권층이 보유한 쌀을 그대로 놔둬도 사람 입에 들어갈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종전 협정이 타결됐다. 주제도 모르고 종전을 반대하는 몇몇 다이묘들은 조정을 따르는 다이묘들이 진압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왜군끼리 여러 곳에서 싸우게 되었다.
“전하! 1년 치 배상금 황금 10만 냥과 백은 50만 냥을 먼저 바치겠습니다. 황금 3만 냥과 백은 10만 냥이 남았는데 이것으로 전비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모자라지만 받아주겠다.”
고산국 보병이나 조선 기병에 비해 여진 기병은 운영비가 싼 편이었다. 월봉으로 매달 은 석 냥과 월봉과 비슷하게 들어가는 쌀값과 고기값이 다였다. 그리고 일본에 온 여진족들은 여진 사회에서도 하류층이라서 쌀을 먹어본 자들이 드물었다. 쌀밥에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면서도 여진족 상류층이 쌀밥을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으므로 억지로 먹는 편이었다.
이민호는 톤 단위가 넘어가는 금과 은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일본 조정이 과연 다음 해 배상금을 고산국에 물어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이민호가 예상하기로 내년 여름까지 천황제와 조정, 그리고 다이묘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 배상금을 정할 때에도 사신들에게 호통을 쳐가면서 열 배로 올리긴 했지만 반드시 받아야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너희 사신들은 교토로 돌아가는 즉시 전 일본에 포고령을 내려라. 반민들은 교토로 접근하지 않게 해주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사신단이 허겁지겁 돌아갔다. 그러나 이민호는 금방 군대를 출발시키지 않았다. 적지인 일본에서 여진 기병이 자유로이 움직이려면 포고령이 일본 전역에 반포되길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의 정권이 누구의 손으로 넘어가든 상관없이 포고령에 선포된 국경선이 지켜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이 단계에서 일단 이익실현을 한 셈이었다.
며칠 시간을 끌다가 3월 하순에 여진 기병 2만을 다시 출전시켰다. 이번에는 내륙 지방에서 숙영도 해야 하므로 천막까지 준비시키고 휴대식량 사흘 치를 말안장에 매달았다. 출전 직전까지 벳푸 온천에서 며칠 쉬어서 그런지 다들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조선에서 소와 돼지 수천 마리를 사와서 여진 기병들에게 아주 잘 먹인 탓도 있었다.
여진 기병들이 슬금슬금 여자 생각이 날 때라서 이민호는 속으로 초조해졌다. 여진족의 술 소비량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여진 기병들이 통제를 잃고 난리를 치기 전에 얼른 여진 지역으로 보내 가족을 만나게 하는 편이 나았다. 희망자를 골라 큐슈에 5천 정도 남기고 나머지는 동해국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조선 기병은 계속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원정군 직할 기병대대를 딸려 보내려고 먼저 수송선에 태웠다. 지휘관은 1연대장 감불에게 맡겼다. 2연대장 감동이 시코쿠를 정벌 중이니 간몬 해협에는 3연대장 므부투만 남았다.
이민호는 작전도 설명하고 상견례를 겸해서 감불과 여진족 족장들을 군막으로 불렀다. 감불과 여진족 족장들이 여진어로 대화해도 처음에는 말이 안 통했으나 곧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이 시대 여진족들은 부족 또는 근거지마다 말이 많이 달라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여진족은 말로 대화하는 종족이 아니었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체구가 가장 크고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족장이 감불을 얕보고 큰소리 쳤다.
“너 같은 꼬마 놈이 감히 여진족 2만을 지휘하겠다고? 조선의 평안도나 함경도 기병이라면 우리와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여진어를 좀 할 줄 아는 것만으로는 고산국 보병 장군이 우릴 지휘할 수는 없다. 차라리 오응태 영감을 불러다오. 최소한 오 영감은 사나이다.”
“나도 여진 출신이거든? 어쨌든 내 명령을 안 듣겠다는 거지? 그럼 한 판 붙어보자!”
“좋다! 고산국 장군의 힘을 구경해보겠다.”
민영이 통역을 해줘서 이민호는 여진족이 역시나 말로 대화하는 종족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지 항 부두 공터에서 싸우기로 하고, 경기장 주변을 여진족 2만이 둘러쌌다.
“우와아~”
흑인 병사 5천 명이 간몬 요새에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여진 기병들이 험악한 흑인 병사들의 얼굴 표정에 놀라서 얼른 자리를 비워줬다. 마치 산사태가 난 듯한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달려오던 흑인 병사들은 겨우 싸움 구경하겠다고 경기장 주변에 주저앉았다.
“잠깐, 잠깐! 이런 재미있는 싸움을 그냥 구경만 하면 되나? 돈을 걸어서 더 짜릿하게 즐기자. 나는 감불에게 은 2만 냥을 걸겠다. 너희들도 돈을 걸어라! 고산국 병사나 여진족 기병은 최대 은 한 냥씩만 걸어라.”
이민호가 나서서 도박을 주선했다. 여진 기병들은 은 한 냥씩을 여진족 족장에게 걸었다. 3연대장 므부투를 제외한 흑인 병사들 대부분도 여진족 족장에게 은 한 냥을 걸었다. 이미 칼을 뽑아든 감불이 배신감 느낀다고 투덜거렸다.
여진족 족장은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고 온몸이 근육덩어리였다. 그에 반해 감불은 조금 마르고 약간 얍삽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수염도 몇 가닥 나지 않은 어린 나이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여진족 족장이 유리했다.
“이야아~”
감불과 여진 족장이 양쪽에서 말을 타고 달려와 중간에서 충돌했다. 두 사람이 휘두른 칼이 맞부딪치며 단박에 박살났다. 서로를 향해 부러진 칼자루를 집어던진 두 사람이 마상에서 씨름을 했다. 족장과 두 손을 맞잡고 힘겨루기를 하던 감불이 갑자기 발을 뻗어 족장의 배를 걷어찼다.
일격을 당한 족장이 즉시 반격했다. 족장이 다리를 잡아들어 감불을 낙마시키려 했고, 감불이 중심을 잘 못 잡았다. 그러나 감불은 안장에서 편곤을 뽑아들어 족장의 투구 뒤쪽을 후려쳤다. 족장이 정신을 잃고 말에서 떨어졌다. 실전과 똑같은 결투 형식이니 어떤 무기를 쓰든 상관없었다.
“우와아~”
돈을 잃든 따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돈을 번 이민호가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다.
“으하하! 감불에게 돈을 건 사람은 두 냥씩 받아가라. 민영이가 나눠줘.”
이민호는 승자인 감불에게는 은 5백 냥, 패자인 족장에게는 2백 냥을 주기로 했다. 일종의 대전료 지급이었다.
“도련님! 저를 믿어주시다니, 고마워요.”
“여진 기병들한테 상여금을 주려고 했는데 네가 이기는 바람에 승부를 조작한 것처럼 됐다. 옛다! 대전료 받아라.”
“헤헤! 고맙습니다.”
감불이 비록 스무 살 갓 넘었으나 실력을 보여줬으니 여진족 기병들이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태는 없을 것 같았다.
이 날은 여진 기병 지휘관들이 지휘권을 놓고 몇 분 동안 싸웠으므로 출전을 하루 더 늦췄다. 이민호는 감불이 여진족 족장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여진 기병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풀었고, 밤새도록 술잔치가 이어졌다.
다음 날 오후 느지막하게 여진 기병 2만과 원정군 직할 기병대대를 싣고 수송선 55척이 출동했다. 일본의 수군과 해적은 이미 전멸했으므로 전선이 호위해줄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적 함대가 나타난다 해도 일본 수군 정도는 수송선이 무장한 함포 2문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일단은 항복을 받았습니다. 거의 종전 협상 형식입니다.
일단은 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