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59화 (308/1,000)

00359  40. 혼슈 전쟁  =========================================================================

다음 날부터 여진 기병에 대한 보급 추진과 해협 주변의 전장 정리에 인력을 비롯한 모든 역량을 집중 투입했다. 여진 기병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원정을 떠난 탓에 개인 보급품 배급에 일이 많이 생겼다. 여진 기병 2만의 숙영지를 통째로 옮기는 것은 수송 능력 부족으로 불가능해서, 필수품만 어떻게든 만들어서 배급했다.

특히 솥과 식사용 칼을 놓고 떠난 여진 기병들 전원에게 칼을 지급해주고, 인원에 맞춰 솥을 분배해줘야 했다. 여진족 남자들은 전쟁터나 사냥터에서 무쇠 솥에 고기를 넣어 끓인 것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바닥에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식사였고 칼은 기원전에 중국에서 사용하던 날 없는 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비(匕)는 비수 외에도 숟가락, 화살촉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진 지역으로 수출하려고 함경도에서 만들어놓은 무쇠 솥을 큐슈로 급히 실어왔고, 해동상단 외륜선을 경상도에 서둘러 보내 비 2만여 개를 만들어 여진 기병에게 지급했다. 칼을 받기 전까지 며칠 동안 여진 기병들은 식판에 담긴 음식을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먹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누 사람들이 환장하고 먹던 것과 달리 여진족 기병들은 곡물류가 절반이 넘는 고산국 군대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쩐지 감동, 감불이가 죽어라 고기를 좋아하더라 했지. 민영이 너도 진작 고기를 많이 달라고 하지 그랬어?”

“남자들만 고기 위주로 먹어요. 수원에 처음 갔을 때 주인님이 저희들에게 사내애들하고 똑같이 고기를 나눠주셔서 많이 놀랐어요.”

“그랬어?”

남자들이 사냥 나가고 여자들은 농사를 짓거나 채집을 하는 채집수렵경제 구조에서 남자들은 잉여화되기 쉬웠다. 여자들이 획득한 곡물이나 견과류, 구근을 남자들이 매일 나눠먹는 반면, 며칠에 걸친 추격 끝에 사냥에 간신히 성공할 경우 사냥에 참가한 남자들 선에서 고기의 대부분이 소비된다. 이따금 남자들이 먹고도 남을 때에야 비로소 여성들에게 고기가 전달되고, 이것은 다시 남자 위주로 분배된다.

“여진족들은 숟가락이나 젓가락은 안 써?”

“젓가락은 가끔 써요.”

현대에서 젓가락 문화권은 한자 문화권보다 넓었다. 그러나 몽골과 여진은 이 시대에 젓가락을 적게 사용하는 편이었다. 영국에서 포크를 쓴 것이 18세기 정도로 매우 늦은 편이었으니 식기나 식사용 도구 없이 맨손이나 칼로 식사를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 시대에 숟가락을 쓰는 나라는 조선 외에는 드문 편이었다. 명나라는 예전 시대에 쓰던 숟가락을 식생활의 변천으로 인해 현 시대에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국물을 떠먹는 작은 국자 말고는 숟가락이라 할 만한 도구가 따로 없었고 일부 귀족들만 숟가락을 사용했다.

“앞으로 여진 기병에 대한 보급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보급 거점을 옮기는 게 어때요?”

“전방 보급 기지를 만들자고? 100리 정도라면 거리상 큰 차이가 없어. 괜히 방어 부담만 커져.”

여진 기병들이 전마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하루에 100리씩 동진하고 있으니 전체 작전 기간은 열흘 정도로 예상됐다.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함대와 간몬 해협 사이를 왕복하는 수송선의 숫자를 점점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전방으로 보급을 추진하는 게 맞긴 한데, 동쪽 시코쿠에서 왜군이 공격할 경우 방어하기 난감해질 수가 있어서 포기했다.

전장 정리는 왜인 포로들을 시켰다. 시모노세키 지역에 무수히 널린 시체들을 양지 바른 산기슭으로 옮겨 집단으로 매장시켰다. 갑옷과 무기는 회수하되 시체에 입혀진 옷은 벗기지 않도록 했다. 간몬 해협 근처의 스님들이 와서 장례를 도와주었다.

왜인 2만여 명을 동원하고도 전장 정리에 5일 넘게 걸렸다. 특히 히코시마 요새와 시모노세키를 나누는 수로를 파서 다시 복원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간몬 해협에 가라앉은 무수히 많은 왜병들의 사체는 건져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닷가에 떠밀려오거나 물에 떠다니는 시체만 건져서 땅에 파묻었다. 이민호가 낚시할 곳이 사라졌다. 참호선 여러 곳을 메우고 땅굴을 메우느라 때 아닌 토목 공사가 벌어졌다.

“기쁜 소식이 있소!”

좌승함 집무실에서 보급 문제로 서류 작업을 하던 주상아 공주와 비올레타에게 이민호가 소식을 전했다. 고산국에서 보낸 병국 관리들이 드디어 도착해서 이제 더 이상 후궁들이 보급작전을 도와주지 않아도 됐다.

이민호는 이들을 원수부 직속으로 돌려 계복이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고산국에서 보내는 정식 보급품의 관리뿐만 아니라 섬라군 때문에 추가적인 식품 수입이 필요할 경우까지 원수부에서 해동상단을 직접 움직였다.

“아아! 이제 여유가 좀 생기겠어요.”

“비올레타 양이 고생 많았소.”

비올레타는 계산을 잘해서 보급 일을 도와주고 있었지만 원래는 여러 나라의 생활을 살피며 좋은 기구나 제도를 다른 문화권에 접목해 발전시키는 문화교류 분야에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화라는 것이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모든 것인 만큼 출처를 가리지 않았다. 큐슈 지역의 쌀농사 기술이 고산국의 쌀 생산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다른 분야에도 피차 교류해서 이득이 될 만한 것이 많았다.

소파 좌우에 주상아 공주와 비올레타를 앉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이 시대라면 원양항해 기술과 화약 기술에서 서양이 앞서야 하지만 이민호 때문에 다시 동양이 역전했다. 사실 동서양의 차이보다 고산국이 더 이질적이라고 봐야 했다.

비올레타가 물어보는 질문에 이민호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비올레타가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몰라서 대화는 어느새 정치와 경제로 넘어갔다.

“멕시코에서 매년 그렇게 많은 은을 본국에 가져가고 고산국과 중국의 사치품을 유럽에 비싸게 팔고 있어요. 그런데도 에스파냐 왕실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전쟁을 여러 번 수행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몰린 걸까요?”

“에스파냐 국가 단위에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니까 그렇소. 에스파냐가 상업, 금융에 너무 치중하는 바람에 국내 산업이라고 할 만한 게 없소. 필요한 건 일일이 주변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할 것이오.”

“맞아요. 그 야만적인 영국도 양모를 수출하고 프랑스는 식량이 넘쳐나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람들은 국내에서 할 일이 별로 없어요.”

“할 일을 만들어줘야지요.”

일단 국내산업을 보호해 국제무역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상주의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왕실이나 귀족들은 외국으로부터 대량 수입하는 것이 일단 돈이 되므로 농업부터 공업까지 국내산업의 기반이 점점 무너졌다. 그런데도 넘치는 은 때문에 인건비가 높아 해마다 프랑스 사람들이 몰려와 계절별 노동을 하며 국부를 유출했다.

에스파냐는 신대륙에서 은을 싣고 오기 전에 먼저 유럽에서 자금을 빌려야 했다. 고금리로 빌리다 보니 자금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빚 갚느라 매년 쪼들리기만 했다. 멀리 떨어진 네덜란드의 독립을 막는 전쟁을 수행해야 했고, 영국과 벌인 해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원정 비용이 더 들어갔다. 에스파냐의 국가 파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스파냐는 신대륙 북쪽 땅을 개발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요?”

“보낼 사람이 없잖아요. 북미 서해안 캘리포니아는 태평양 항해권 내에 있어서 주민이 조금 살고 있지만 동해안은 항로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가난한 북유럽 사람들이 북미 동해안에 이민을 가려고 한다는 소문을 자주 들었어요.”

“북미 대륙이 에스파냐의 땅이라고 주장하기 어렵지 않소?”

“교황 성하의 중재 아래 포르투갈과 조약을 맺었으니 에스파냐의 영토가 맞아요. 조약은 여전히 유효해요. 다만 관리를 포기하다시피 내버려뒀으니 다른 나라에서 욕심을 낼 만해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같은 국왕을 모시고 있지만 엄밀히 따져 같은 나라는 아니었고, 그래서 국제조약으로서 유효했다. 동군연합이 이럴 때 편했다.

“왜요? 전하께서도 북미 대륙이 욕심나세요?”

“그렇다기보다는, 뭐 갖고 있으면 좋지 않겠소? 만약 북미 대륙을 에스파냐에서 매입한다면 얼마나 부를 것 같소? 물론 유럽 다른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에스파냐와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영토에 대한 보상을 지급해야 할 것 같소.”

“동아시아 황금 제국의 황제폐하께서는 정복하는 게 아니라 황금을 지불해서 영토와 백성을 매입하십니다. 호호!”

유럽에서는 이민호가 그렇게 소문 난 것 같았다. 포르투갈 상인들도 가끔 이민호를 부를 때 황금 운운하다가 얼른 얼버무리곤 했다.

“농담이 아니요. 길게 봐서 북미 대륙이 고산국에 필요하다고 봐요.”

“일단 북미 지역 일부분을 개발해서 고산국의 정식 영토로 만드세요. 특히 북미 서해안은 지도가 작성되지 않았으니 일단 도시 하나를 개척한 다음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줄 알았다고 변명할 수 있어요. 그럼 북미 전체를 매입하실 때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에스파냐와 협상을 하실 수 있을 거여요.”

“그래야겠군요.”

“가격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넓은 땅이라도 에스파냐의 1년 예산보다는 적을 거여요. 에스파냐 왕실이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방식을 사용해도 돼요.”

“생각할 게 많군요. 고맙소.”

대화를 하면서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안고 뺨에 입을 맞췄다.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주상아 공주에게도 뽀뽀했다. 양쪽에 동서양의 미녀를 안고 있으니 슬그머니 욕망이 피어올랐다.

“저. 목욕부터 해야겠어요.”

이민호가 지분거리자 비올레타가 슬며시 빠져 나갔다. 이민호는 쿡쿡 웃어대는 주상아 공주를 안고 침전으로 옮겼다. 공주와 같이 안으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으나 그 때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비올레타는 잘 도망 다녔다.

“공주는 이제 불안하지 않소?”

“예. 전하께서 이렇게 사랑해주시는데 불안할 이유가 없지요.”

주상아 공주는 이민호의 품에 안겨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민호도 주상아를 안고 눈을 맞추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별궁에 손님이 자주 오는 것 같은데 혹시 황실의 공주들 아니오?”

“여러 친왕부의 군주나 군군, 현군이에요. 왜요? 마음에 드는 황실 여자가 있으세요?”

황실의 미혼 여성들이 공부를 핑계로, 또는 신부수업을 이유로 고산국 왕도에서 머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북경의 황실이나 친왕부에서 고산국의 과자 종류가 인기가 좋아 만드는 법을 직접 배우러 오는 것이지만 사실은 놀러온 셈이었다. 친왕의 딸인 군주가 방문했을 때는 이민호에게 알현을 신청해 인사를 했으나 그 이하 신분은 개인 자격으로만 방문해서 이민호도 누가 왔는지 잘 몰랐다.

주원장이 명나라를 개국한 이래 이 시기에 황실 종친이 16만 명으로 늘었다. 명나라의 종친은 실권도 없고 특히 황실 여자들은 권신에게 시집가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친왕 등이 직위를 받으면 황실에서 종친에게 땅을 내려주거나 녹미를 하사했다. 이것은 지방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쳐서, 산서성과 하남성은 세금으로 걷히는 쌀의 두 배를 종친에게 지급해야 할 정도였다.

“아니오. 나는 그대만으로 충분하오.”

주상아가 풋 하고 웃었다. 주상아 공주는 화사한 미소를 보여줄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여진 기병이 일본 혼슈 서부를 공략한 지 이레가 지났다. 병참선이 길게 늘어지면서 군량과 건초 보급이 자꾸 늦춰지고 현지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기도 힘들어졌다.

섬이 많아 수로가 복잡한 세토 내해에서 수송선 두세 척만을 보내기가 몹시 불안했다. 아직도 남은 해적들의 잔당이 걸핏하면 수송선을 기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송선에도 함포가 2문씩 달려 있어 왜선 몇 십 척 단위는 금방 파괴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해적의 경우 근거지에 따라 분열돼 있어 평소에도 50척을 동원하기 어려웠는데, 이미 한두 번 토벌을 당한 이후라서 20척 이상을 기습에 동원할 수 없었다.

2월 말에 일본의 관백이 보낸 사신단이 간몬 해협에 도착했다. 일본의 기마 전령이 왕복해서는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일본에서도 배를 연락선으로 운용했다. 여진 기병이 오사카를 불사르기 전에 사신단이 간몬 해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왔던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가 이번에도 대표 사절을 맡았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국왕전하! 더 이상 일본을 침략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일본이 고산국 영토인 큐슈를 침략하는 건 괜찮고?”

============================ 작품 후기 ============================

또 늦었네요.

앞으로 한두 회로 이번 편 끝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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