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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52화 (301/1,000)

00352  40. 혼슈 전쟁  =========================================================================

다시 총소리와 함께 갑판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그리고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이민호가 기억하기로 좌승함에 배치된 해병소대 3분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소대장님, 지원 요청합니다! 우현에서 왜적이 떼로 올라옵니다!”

“2분대 우현으로!”

좌현에서 왜병들과 싸우던 해병 1개 분대가 우현으로 몰려가서 갑판에 올라온 적을 막았다. 그 사이 함장이 수병들을 동원해 보병총으로 무장시킨 다음 갑판에 배치시켰다. 자다 깨어 간편한 활동복 차림의 수병들이 어깨에 탄띠만 두르고 갑판으로 나갔다.

좌승함 갑판에 오른 왜병들의 숫자가 의외로 많았다. 해병과 수병들 중에서 유탄사수들만 좌승함에 접근하는 왜선들을 견제하고 나머지 소총병들은 갑판에 오른 왜병들을 사살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할 정도였다. 심지어 함포 사격을 맡은 수병들도 급할 때는 총을 들고 싸워야 했다. 유탄사수들이 탄약을 가지러 선실로 내려갈 때마다 왜선들이 우르르 접근해서 위기가 닥쳤다.

“민지 포함해서 사격 실력이 좋은 셋은 위로 올라가서 도와!”

이민호가 함교 위 관측실에 호위 세 명을 올려 보내 돕도록 했다. 높은 곳에서 갑판을 내려 보고 쏘아대니 방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대신 왜선에 남은 왜군 철포병이 조총을 쏴서 위험에 노출됐다. 민영은 함교 양쪽 출입문에 호위들을 배치하고 이민호 옆에 바짝 붙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치렀던 해전과 달리 이번에 왜병들이 갑판에 많이 올라온 것은 좌승함이 정지해 있기 때문이었다. 갑판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사이 왜병들이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빠르게 전선에 올라왔다. 갈고리 달린 줄을 던져 한 명씩 올라올 때와 올라오는 속도에서 차원이 달랐다.

“전하! 배를 전진시키겠습니다. 1전단 전체에 기동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 어서 그렇게 하시오.”

그 사이 기관 4기 중 3기를 작동시키면서 좌승함의 갑판을 비롯해 외부 조명을 환하게 밝혔다. 좌승함에 이미 올랐거나 오르려던 왜병들이 강한 빛에 잠시 눈을 뜨지 못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 해병들이 왜병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닻을 올린 좌승함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왜병들이 갑판에 걸친 대나무사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며 좌승함 앞을 가로막았던 왜선들이 부서져 나갔다. 좌승함에만 최소 왜선 여덟 척이 붙어 있다가 떨어졌다. 왜병들이 급히 노를 저었으나 이미 속도가 붙은 전선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좌승함 갑판에서는 아직도 왜병들과 전투가 계속됐다. 이민호는 권총을 만지작거리면서 긴장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위기에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더 불안했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괜히 남 탓을 하고 싶어졌다.

“1전단 전선들은 뭐하는 거야?”

이민호는 국왕좌승함이 적의 집중 공격 목표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좌승함을 호위해야 할 1전단 소속 다른 전선들도 갑판에 올라오는 왜병들과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육지를 통해 이동했다가 모지 항 건너편에 내려서 해협을 건너오는 왜선이 너무 많았다. 바이킹이 육지에서는 배를 머리에 이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민호도 설마 하다가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좌승함이 딱히 왜선들의 집중 목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좌승함과 호위 전선들은 모지 항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가는 왜선들의 흐름에 휘말린 탓에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국왕좌승함은 다른 전선들과 외관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웠다.

“다른 전선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적에게 점령된 전선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에 배치된 전선들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함상 전투를 지휘하던 함장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외부 조명을 환히 밝힌 전선들이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간몬 해협 내부 경비를 맡은 1전단 전선들은 좌승함을 호위하는 임무도 맡았다. 그러나 해협 동쪽부터 서쪽까지 방어를 해야 해서 모지 항 앞에는 좌승함을 포함해 겨우 세 척만 남아 있었다. 수송선들은 평소 모지 항 서쪽 기타큐슈 항에 집중적으로 정박하므로 다행히 전투에 휘말리지 않았다.

전선들이 좁은 해협 안에서 기동을 시작하자 왜병들이 쉽게 오르지 못하게 되면서 적에게 배가 점령될 위기에서 빠져 나왔다. 아직 바다에 떠 있는 왜선들이 많아 전선에서 함포를 쏘아 차례로 격파시켰다.

나중에 알았는데 좌승함을 포함한 전선 3척이 지금까지 왜선 3백 척을 상대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 배치된 1전단 소속 전선들이 모지 항 앞으로 몰려들면서 왜선들을 빠른 속도로 격파했다. 구원하러 온 전선들 덕택에 좌승함은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부두에 불이 났어요!”

민영이 깜짝 놀란 눈으로 항구 쪽을 가리켰다. 모지 항 부두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이민호가 어렴풋이 예상한 것이 맞았다.

“목표는 모지 항에 쌓인 보급품이었나?”

큐슈에 상륙한 이래 처음으로 모지 항의 부두에서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중에 해가 뜨고 나서 확인해 보니 왜선 32척이 모지 항 선착장 주변에 버려져 있었다. 왜선의 탑승 인원을 30명으로 잡는다면 거의 천 명이 모지 항에 상륙한 셈이었다.

해협 건너편에서 작은 왜선 300척이 출발했다고 치면 좌승함을 비롯한 전선 세 척이 왜선의 거의 9할을 막아낸 셈이었다. 고바야보다 작은 왜선에 민간인 노잡이가 아니라 왜병들이 직접 노를 저어 왔으니 해협에 투입된 왜병만 일만 가까이 되었다. 물론 300척이란 추정에 불과하고 직접 눈으로 살펴보면 해협과 해안에서 격파되거나 침몰한 배가 수도 없이 많았다.

모지 항의 수비는 2연대 병력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2연대가 간몬 요새 서쪽 거의 10km에 달하는 해안선 방어를 맡아야 했으므로 모지 항에는 겨우 1개 중대가 방어 임무에 투입됐다.

평소에 전선이 정박해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전에도 왜군이 야습을 시도했을 때 전선에서 막아줘서 모지 항의 방어 병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방어능력을 넘어서는 적이 야습에 나서는 바람에 제대로 막지 못했다. 전투 중에 이곳저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나서 계복이 뒤늦게 원정군 직할 기마대대를 투입해서 간신히 적을 막을 수 있었다.

“전령! 모지 항에서 발생한 사상자 숫자와 불에 탄 화물이 뭔지 확인해 봐.”

이민호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달려 나간 사이 모지 항 창고와 야적장에 쌓인 화물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이 동원됐다. 병사들과 보급작전에 동원된 해동상단 선원, 유구국 상인 등이 바닷물을 퍼부어서 불을 껐다. 민간인들은 10리 정도 떨어진 기타큐슈 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탄약은 폭발에 대비해 땅을 깊이 파고 주변에 담을 둘러친 창고에 따로 보관해서 다행히 이번에는 공격받지 않았다. 분산과 집중 문제로 항상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탄약이었다. 얼마 전 고산국 부두에서 탄약이 한꺼번에 폭발한 탓에 그 다음부터는 분산 보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15번, 16번 창고가 공격을 받아 15번 창고는 전소, 16번 창고는 반쯤 불탔습니다. 불에 탄 보급품은 주로 천막 같은 숙영용 장비나 예비용 겨울 군복입니다. 야적장에 쌓인 것은 브루나이에서 싣고 온 건설용 목재인데 다 타 버렸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러나 부족한 것은 즉시 고산국에 연락해 만들어 와야 했다. 전투 지휘는 주로 계복에게 맡기고 이민호는 보급 쪽을 지원해줘서 원정군이 아직까지 물자부족에 시달리지 않았다. 모지 항에 기마대대 투입이 늦었다면 자칫 보급품들이 홀랑 불타오를 뻔했다.

모지 항에 상륙한 왜병들을 완전히 진압한 새벽이 되고 나서 보다 상세한 정황을 보고 받을 수 있었다. 예상보다 좋지 않아서 이민호에게 보고하는 함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해협 동쪽 입구를 지키던 3번, 8번 전선 중에서 8번 함이 반소됐습니다. 갑판이 점령되는 바람에 해병이 거의 전멸하고 함교 쪽에서 전사자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8번 함에서 확인된 인원만 41명 전사, 27명 부상입니다. 총함장님께서 급히 전선들을 몰고 와 왜선들을 격퇴했습니다. 기관실 출입문을 막아서 적을 차단해 기관실 피해는 없습니다.”

전투는 모지 항 주변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간몬 해협 동쪽 입구에 배치된 1전단 소속 전선 두 척은 순항 속도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으나 왜적 200여 척이 야음을 틈타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하마터면 전선을 완전히 점령당할 뻔했다. 8번 함은 3번 함에 의해 모지 항으로 예인됐으며, 함장도 부상자 명단에 올라 야전병원으로 실려 갔다.

국왕좌승함을 비롯한 다른 전선에서도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좌승함에서는 해병 세 명이 전사하고 다섯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른 전선 두 척에서도 왜병들이 포락화라는 수류탄 비슷한 것을 갑판에 던져 터뜨리는 바람에 화상 환사가 10여 명이나 발생했다.

“낮이라면 상대도 안 되겠지만 야습을 받으니 어쩔 수 없구려.”

이민호는 일본과 해상 전력 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이렇게 피해를 입자 몹시 씁쓸했다. 그러나 전선 한 척을 반소시키는 동안 오늘 야습에 동원된 왜선은 소선 중심으로 500척이 불타거나 가라앉았다. 왜군이 의욕적으로 야습을 감행했으나 고산국 해군력을 감히 상대하기 어렵다는 사실만 증명한 꼴이 되었다.

“3번, 8번 함이 고립돼 있었던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습니다. 해협이 왜선들로 꽉 들어찬 바람에 종선을 띄워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두 척을 목표로 밤에 2백 척이 몰려오면 누구든 어쩔 수 없었을 것이오.”

예상치 못한 과도한 적을 맞아 싸우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 간몬 요새나 모지 항에 몰래 들어와 불을 지르려는 왜병들이 탄 왜선 한두 척을 잡으려고 배치시킨 전선 두 척이었다. 오히려 단 두 척에 몰려든 왜선 200척을 막아냈으니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했다.

“총함장님께서 해협 동쪽 입구 경계를 맡겠다고 합니다. 1전단은 국왕전하 호위에 전념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휴우! 방어전면을 좁혀야 하니 어쩔 수 없소. 그렇게 하시오. 다만 상륙작전이 어렵게 될지도 모르겠소.”

주코쿠 방면으로 병력을 뽑아 보내 방어가 허술해진 나머지 지역을 습격하려던 계획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구마모토 지역에 반란이 발생해 상륙전에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큐슈를 완전히 점령했다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왜군이 본격적으로 간몬 해협을 공격하는 시기에 맞춰 구마모토와 휴가 지역을 비롯해 큐슈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반란이 일어난 곳마다 기리시탄 의용병들을 파견했으나 진압에 시간이 걸리면서 여진 기병도 투입하기로 했다.

해가 뜨면서 모지 항 주변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해협 전체가 부서진 왜선의 잔해로 메워졌고, 판자조각들이 물결 흐름에 따라 서쪽으로 천천히 흘러갔다. 해협 남쪽과 북쪽 해안에도 부서진 왜선의 잔해가 가득 쌓였다.

왜병들의 시체가 해협에 떠다녀서 이민호가 아침식사를 할 때 상당히 거북했다. 여진족 출신이라 동물이나 인간의 시체에 거부감이 별로 없는 민영이 태연하게 물었다.

“주인님이 낚시할 곳이 없어져서 어떡하죠?”

“당분간 민물낚시나 해야겠어.”

간몬 해협을 지키면서 왜군이 물러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 고산국의 전략 목표였다. 적지에 대한 공격도 자제해야 하니 이민호에게 시간을 때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때마침 큐슈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이 이민호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반란이 계속 격화되자 이민호가 큐슈 총독 정문부를 불렀다. 큐슈에서 점령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불러서 미안하게 됐다고 이민호가 먼저 사과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사실은 제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습니다. 그 동안 책으로 읽고 큐슈 출신 고산국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실제 와서 직접 보는 것이 훨씬 정확했습니다.”

“앞으로 반란이 계속 일어날지도 모르겠소. 병력을 보내 진압해도 그때뿐이고, 다시 반란이 일어난다오.”

“총독부를 제외한 큐슈 모든 지역의 성곽을 무너뜨리고 해자를 파묻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사무라이나 병사들이 충성을 바쳤던 다이묘들의 상징이 성곽이기 때문입니다.”

============================ 작품 후기 ============================

하나 더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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