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1 40. 혼슈 전쟁 =========================================================================
“적국의 백성들이라지만 너무 불쌍해요.”
“내가 먼저 공격했나? 나는 방어를 하고 있을 뿐이야.”
군량 운반이나 해협 매립 작업에 동원된 왜인들의 목숨을 구해주려면 고산국이 하루 빨리 혼슈를 침공해서 큐슈 탈환을 위해 나선 왜병들을 패주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임진왜란에 대한 보복인 동시에 외국에 대한 침공이었다.
물론 임진왜란이 시작된 이래 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큐슈가 점령되고 나서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었다. 고산국을 비롯한 연합국들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아직 공식적으로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왜군이 작전 기간으로 어느 정도를 정했는지 몰라도 그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우웅~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시간을 끌면서 그런 조건을 만들다니, 얄미워요. 만약 전염병까지 돌면 최악이겠어요.”
“전염병은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지. 전쟁은 이렇게 무서운 거야. 권력자들이 그런 생각을 잘 안 하고 동원된 병사들의 전사자 숫자만 생각하니까 쉽게 전쟁을 일으켜. 결과를 놓고 보면 적국이나 자국이나 백성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극악한 짓이지.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는 자국민에게 그런 정책을 시행하기도 해. 국가가 인구를 부양하지 못하나 봐.”
“혹시 명나라인가요?”
“응. 명나라도 당연히 포함돼.”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시대 명나라는 과도한 세금과 요역을 부과함으로써 백성들 숫자가 늘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대규모 반란군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이것을 군대가 잔인하게 진압함으로써 외국과의 전쟁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원래 역사에서 조선 후기의 정치도 마찬가지라서 군역과 부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이 스스로 인구를 조절했다. 에도시대 일본에서도 갓 태어난 아기를 부모들이 죽이고 딸을 유곽에 팔아넘기는 식으로 인구를 조절했다. 현대 한국이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예전과 달라졌다는 변명도 있지만,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직업을 만들어주지 못해 출생률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옛날과 판박이였다.
그러나 명나라가 말기에 아무리 황제들이 삽질을 해서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했더라도, 청나라 초기에 황제들이 백성들의 삶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명청교체기 중에 복건성의 인구는 꾸준히 늘어났다.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중가르, 대만, 티베트를 정벌하고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국경이 안정화됐다는 것만으로, 강희제가 자전과 명사(明史)를 편찬했다는 문화적 업적만으로는 인구가 늘어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고구마와 감자 같은 구황작물이 중요한 것이다. 명나라 건국 이후 계속 줄어들던 복건성의 인구는 1593년에 고구마가 도입된 이후 반란과 전쟁 기간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늘어나 청나라 초기에는 명나라 말기의 두 배 이상에 이르렀다.
명이든 청이든 조정에서 복건성 백성들에게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고구마 재배가 확산됐기 때문에 이런 인구 증가가 가능했다. 청나라 전기에 고구마가 황하변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꾸준히 확산된 덕택에, 사고팔 물건이 없고 손님에게는 돈이 없어 시장이 텅텅 비더라도 인구는 계속 늘어났다.
“이번 전쟁에서 주인님의 전략은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이었군요.”
“그렇지. 왜군 30만을 전멸시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우리 민영이도 많이 늘었구나.”
“헤헤!”
이민호가 민영의 머리를 쓰다듬자 민영이 기분 좋은 강아지처럼 웃었다. 민영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맹렬히 흔들었을 것이다.
현재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의 기반인 인구를 삭감하는 잔인한 작전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고산국 군대는 평범하게 방어전을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누가 이민호의 의도를 의심하더라도 증거가 없었다. 왜인들이 죽게 만든 잘못은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던 왜군 지휘부가 저질렀을 뿐이었다.
이민호는 이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일본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일본인들을 다 죽이지 않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이민호라고 해도 속이 좋지는 않았다.
“기리시탄 의용병들이 언제 나를 진정으로 주군으로 섬기게 된 줄 알아?”
“성탄 전야 미사에 참가했을 때인가요? 아니면 같이 점심을 먹었을 때?”
“솜바지를 나눠준 때야. 공짜로 나눠주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유료든 무료든 상관없었을 거야. 그들이 추위에 떨면서 느꼈을 고통을 내가 불쌍히 여기고 행동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준 거니까. 조선보다 따뜻한 큐슈에서도 겨울에는 춥거든.”
“일본에서는 솜바지가 비싸다고 해죠?”
“그래. 그래도 의용병들은 천막에서 숙영이라도 했지, 혼슈 서쪽에서 군량을 운반하는 왜인들은 삼베 홑바지를 입고 이슬을 맞아가며 노숙을 하고 있어. 하루에 수천 명이 얼어 죽고 있어. 날은 점점 풀리고 있지만 굶주린 탓에 시간이 갈수록 희생자가 더 많아질 거야. 끔찍한 일이지.”
갑자기 군인들이 우르르 뛰어다녔다. 해협 건너편을 살펴보니 왜인들이 참호에서 빠져 나와 간몬 해협에 돌을 굴려 넣고 있었다. 간몬 요새 언덕에서 포성이 연속 울리고 포탄이 터질 때마다 왜인들이 폭사했다.
이민호는 전투를 계복에게 맡기고 좌승함으로 돌아갔다. 쇠약해진 왜인들을 동원해 간몬 해협을 메우는 것은 고산국 군대의 주의를 끌기 위한 양동작전일 뿐이었다.
- 콰쾅!
- 타타탕! 따다다다닷! 땃따땃!
이민호는 포격과 총격을 들으면서 느긋하게 함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기관총 발사음이 들리자 놀라 관측실로 뛰어 올라갔다. 간몬 해협에 배치된 전선들이 해협 북쪽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지는 왜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었다.
여기에 새로 제작된 기관총 2정이 새로 건조된 전선에 장착된 채 연속 불을 뿜었다. 기존의 4정보다 발사속도가 아주 조금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발사 간격도 일정해서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그런데 저게 뭐야?”
아주 잠깐 사이에 왜인들이 간몬 해협을 3, 4미터 정도 매립했다. 사람을 워낙 많이 동원하니 해협 일부가 눈 깜박할 새에 메워졌다.
그리고 모리 군이 실패했던, 히코시마의 물길을 막는 공사도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왜인들이 참호선 안에 숨어서 돌을 굴리는 식으로 바다를 메워서 예전보다 희생자가 훨씬 적게 발생했다. 그러나 히코시마에 건설된 요새에도 성벽을 새로 쌓아서 방어력은 몇 배나 높아졌다.
“히코시마에 주둔한 병사들이 고생해가면서 물길을 넓혔는데 아주 간단히 메워버리네?”
“1연대 병사들이 허탈하겠어요.”
“어? 우리 해병이 전선에서 내린다.”
전선에서 내린 해병 300여 명이 해협 북쪽 해안에 올라섰다. 그리고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져 참호에서 일하는 왜인들 일부를 죽였다. 왜인들이 참호에서 빠져 나와 우르르 북쪽으로 몰려갔다.
- 타타탕!
“세상에! 같은 편을 쏴 죽였어요.”
왜인들을 감독하던 사무라이가 철포병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리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뜻밖에 고산국 해병이 아니라 도망가던 왜인들에게 총을 쏘고 있었다. 왜인들은 도망가지도, 참호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양쪽에서 쏘는 총탄에 맞아 차례로 죽어갔다.
- 땅!
“해병에 명사수가 있었군.”
유효 사거리 바깥인데도 어떻게든 명중시키는 자들이 있었다. 사무라이가 쓰러지자 왜군 철포병들이 곧 물러났다. 그 직후 왜인들이 조심스럽게 북쪽으로 걸어갔다.
왜인들은 똑같이 왜인 노무자들에게 총을 쐈다 해도 왜군에게 같은 일본인이라는 동류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고산국 군대는 악마의 부하들이라는 공포감이 많이 작용한 탓이었다.
- 콰콰쾅!
해병들이 왜인들이 파놓은 참호선에서 얼쩡거리다가 후퇴하는 순간 참호선 남쪽 돌벽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건설용으로 제조한 심지 달린 폭탄이 전쟁터에서 공병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해병들이 다시 배에 타고 전선들이 물러섰다. 해병을 잡으려고 몰려오던 왜병들이 함포 직사 사격을 받아 몇 명 죽고 나서 혼비백산 도망쳤다.
이민호가 민영과 함께 전투를 구경하고 있는데 국왕좌승함에 계복이 찾아왔다. 계복도 지금 벌어지는 전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전투는 여러 군데에서 진행됐지만 계복도 역시 왜인들이 파고 들어올 땅굴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도련님. 적의 땅굴을 수몰시킬 대응 땅굴을 팔 것을 건의합니다.”
땅굴이 지나갈 만한 곳을 중심으로 가로로 깊게 파서 바닷물이 지나가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왜인들이 땅굴의 출구를 팔 곳이 어디가 될지 모르니 계복이 제시한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방법이었다. 제대로 성공한다면 왜병들을 수장시킬 수는 없겠지만 땅굴을 파는 왜인들을 최소 수백 명을 익사시키는 동시에 20일 가까운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저쪽에서도 우릴 살펴보고 있으니까 막을 쳐서 우리가 공사하는 것을 가리도록 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으로 가리는 것보다는 잎이 달린 상록수를 심겠습니다. 포로 3천을 내주시면 천 명씩 3교대 시키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서 공사가 진행됐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일하는 사람은 왜인들이었다.
- 쾅! 타타타탕! 퍼엉!
한밤중에 요란하게 울린 포성과 총성에 깬 이민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총성이나 포성이 서너 번 울리고 마는 경우는 거의 매일 있었지만 오늘따라 심상치 않았다. 익숙한 작은 진동은 국왕좌승함에서 함포를 발사할 때 나는 것이었다.
주상아 공주의 따뜻한 몸이 아쉬웠으나 총성이 계속 이어졌다. 함장이 전령까지 보내서 이민호도 침대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하!”
“공주는 침전에서 나오지 마시오.”
주상아 공주의 뺨에 입을 맞춘 이민호가 서둘러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호위들과 함께 함교에 나가니 함장이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위로 조명탄이 날아간 다음, 해협을 가득 메운 왜선들이 조명 아래에 드러났다. 함포가 발사되고 갑판에 배치된 해병들이 쉬지 않고 총을 쏘았다.
유탄사수들이 발사한 유탄이 수시로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유탄사수는 평소 전투에서 유탄보다는 보병총을 쏠 때가 훨씬 많았으나 지금은 유탄만 쏘기에도 바빴다. 적이 대규모로 몰려오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왜선 수백 척이 기습을 해왔습니다.”
“함장! 해협 북쪽을 전선 두 척이 가로막지 않았소?”
“왜군이 육지로 배를 옮겨서 해협 중간에 띄운 겁니다. 지금도 해협 북쪽 해안에서 배를 내리고 있습니다.”
간몬 요새에서도 해협과 그 건너편을 향해 포를 쏘았다. 이민호도 바이킹 같은 왜병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완전무장한 왜병들 30여 명이 작은 배를 머리에 지고 경사를 내려오다가 폭발에 휘말렸다. 왜인들이 손에서 놓친 배가 떼굴떼굴 굴러 물에 빠지는 모습은 이민호가 여태껏 전혀 상상도 못한 장면이었다.
- 철컹!
갑판에 무언가 걸리는 소리가 나자 이민호의 고개가 무의식적으로 돌아갔다. 풍뎅이 모양의 투구를 쓴 왜병이 갑판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왜병은 갑판에 올라서다가 총에 맞아 물에 떨어졌다. 그 직후 다른 왜병들이 줄줄이 국왕좌승함에 올라왔다.
- 타탕! 탕!
왜병들 대부분은 갑판에 올라오는 중에 총탄에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해병들이 장전 중에 왜병이 칼을 휘두를 틈이 생겨서, 해병이 어깨에 칼을 맞았다. 방탄복 덕택에 타격을 적게 받은 해병이 총검이 달리지 않은 총구로 왜병의 가슴을 찔러 넘어뜨렸다. 다른 해병이 개머리판으로 그 왜병의 머리를 찍어 쓰러뜨렸다.
- 탕!
또 다른 왜병이 올라와 해병에게 칼을 내려치기 직전에 등에 총탄을 맞았다. 그 뒤로도 왜병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지금까지 전선에 배치된 해병 1개 소대가 적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오늘은 그런 특별한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다.
- 퍼엉!
요강처럼 둥그런 것이 갑판 위에 날아오더니 터지면서 불길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가까이 있던 해병의 몸에 불이 옮겨 붙었고, 해병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다른 해병들이 급히 천으로 덮어 해병의 옷에 붙은 불을 껐다. 그 사이 전선에 접근한 왜선에 유탄과 총탄을 쏘아 왜병들을 사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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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 중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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