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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49화 (298/1,000)

00349  40. 혼슈 전쟁  =========================================================================

40. 혼슈 전쟁

1594년 음력 2월 1일, 폐허가 된 시모노세키에 드디어 왜군이 나타났다. 그러나 왜병은 소수에 불과했고, 괭이와 토사 운반용 들것으로 무장한 왜인 수만 명이 들판에 흩어져서 땅을 팠다.

이들은 참호를 깊이 파면서 남는 흙으로 방벽을 쌓았다. 군량 운반을 마친 왜인들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굶어서 비쩍 마른 인간들이 마치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땅을 파냈다.

이민호는 계복과 함께 간몬 요새 정상의 등대에 올라와 있었다. 계복과 원정군 참모진은 왜군의 움직임에 꽤나 놀랐다.

“도련님! 마치 비무장 왜인들에게 포격과 총격을 해달라는 것 같습니다.”

“저런 역할을 총알받이라고 하지. 혜진에게 탄약을 더 많이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현재 일본 전역에서 왜인 100만이 동원됐다고 합니다. 못해도 50만은 저 산 뒤에 모여 있을 겁니다. 일제 포격을 해서 쫓아낼까요?”

“같은 편한테 위협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설마 도망가겠어?”

“그래도 적이 작전을 펼치는데 공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 포마다 한 시간에 한 발 비율로 쏘겠습니다.”

계복이 명령해서 간몬 요새에 주둔한 2연대와 3연대 포병이 포격을 개시했다. 한 시간에 한 발을 쏜다 해도 100문이 넘으니 1분에 포탄 두 발 이상이 날아갔다. 그 사이 히코시마에 배치된 1연대 포병은 지켜보기만 했다.

첫 포성이 울리자 이민호가 망원경으로 착탄 예정지를 살폈다. 포탄이 터지면서 왜인 일꾼 대여섯 명이 쓰러졌다. 폭발음이 천지에 진동하자 수만 명에 달하는 왜인들이 땅에 엎드려서 벌벌 떨었다.

그러나 겁에 질렸던 왜인들은 왜병들의 독촉에 못 이겨 억지로 일어나 일을 계속했다. 두 번째 포탄이 터지면서 다시 몇 명이 쓰러졌다. 사상자는 금방 다른 왜인들이 옮겨갔고, 빈자리는 다른 왜인들이 채웠다.

“너무 많이 쏘는 것 같다. 하루에 몇 발이야?”

“3천 발 정도입니다. 그 정도 수송 능력은 됩니다.”

“포탄 생산 능력이 안 돼. 구릿물을 부어 찍어내는 것은 포탄 껍데기뿐이야. 화약은 몰라도 뇌관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설마 한 달 넘게 저런 작업이 계속되지는 않겠죠.”

이민호가 고산국 왕성에 돌아가면 혜진에게 꼬집힐 것 같아 벌써부터 겁이 났다. 포탄 생산 비용도 감당 못하게 늘어날 수 있었다.

왜인들은 포탄이 터질 때마다 죽어 나자빠지면서도 참호선 세 줄을 파면서 차근차근 남하했다. 왜군이 해협 건너편까지 참호를 파면서 접근할 것이라는 정보를 듣기는 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무척 초조해졌다.

“지난번처럼 무작정 인력과 병력을 투입하는 무식한 방법이 아니네?”

“뻔히 죽을 자리로 밀어 넣으면 반란이 일어나기 쉬울 테니까요.”

“왜군은 차라리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나을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군량 수송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이민호가 망원경을 내리고 전선 위치를 살폈다. 국왕좌승함을 비롯해 전선들이 간몬 해협 중간에 닻을 내린 채 여차 하면 함포 사격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현재 해군 전선은 간몬 해협 동쪽에 20척, 서쪽에 10척, 해협 중간에 나머지 15척이 배치돼 있었다.

지난 몇 달 사이 고산국에서 두 척이 더 건조돼 첫 임무부터 큰 전쟁에 투입됐다. 수송선도 계속 건조해서 보내고 있었으나 부족한 것은 역시 기관이었다.

“주코쿠 지역에서는 내륙 도로를 확장해 마차로 운송하고 있답니다. 수송 효율이 조금 나아졌을 겁니다.”

“보급 추진에 동원된 백성들은 계속 죽어나가겠지.”

“예. 식량은 여전히 자비 부담입니다. 그리고 얇은 삼베 바지 홑옷을 입어서 추위를 견디지 못합니다. 겨울이 지난 지금도 숱하게 얼어 죽고 있습니다.”

1594년 음력 2월 1일은 양력으로 2월 20일이었다. 이 지역은 조선 남해안보다 봄이 빨라 이 정도 날씨면 초봄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세토 내해에 접한 혼슈 서부의 남해안은 따뜻한 편이었으나 주코쿠 내륙을 관통하는 도로는 고도가 높아 노숙하다가 얼어 죽는 자들이 아직도 속출하고 있었다.

이 시대 일본에서 솜바지는 평민들이 쉽게 살 수 없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또한 면화로 면포를 짜는 기술이 없어 조선이나 명나라에서 수입하다가 조선인 포로 여인을 통해 면직 기술을 배웠다. 왜병들이 괜히 조선에서 얼어 죽은 것이 아니었다.

요역에 동원되는 백성들은 식량을 자비 부담하는 것이 당시의 원칙이었다. 명나라 건국 초기 남경성을 쌓을 때 전국에서 벽돌을 가져오게 하는 부역을 시켜서 농민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지웠고, 농민이 세금으로 낼 쌀을 관청을 거치지 않고 봉급을 받을 병사에게 직접 전달해야 했다. 건국 초기의 살벌한 시대라서 황제가 이런 바보 같은 정책을 밀어붙여도 감히 말릴 사람이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에 보급할 군량을 강원도에서 경상도까지 운반하는 부역에 동원된 조선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시체의 살을 베어 먹는 이야기가 <쇄미록>에 자세히 나온다. 조선 백성들이 그렇게 힘들여 군량을 운반했으나 명군은 전투도 안 하고 퇴각하거나, 왜군의 기습을 받아 군량을 홀랑 빼앗기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지방의 백성이 교토에 가서 공사에 동원될 경우 식량이나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송 작업인 운가쿠(運脚)를 할 때는 여비 일체를 백성들이 자비 부담해야 했다.

예전 같으면 전쟁터에 상인들이 따라다니면서 군량 보급은 물론 병사나 하인들 개개인에게 식량과 부식을 팔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산국 군대가 워낙 신출귀몰해서 상인들의 목숨을 노리고 거리도 멀어 상인들이 따라오지 않았다. 휴대식량이 떨어지자 군량 운송에 동원된 백성들이 주변 마을을 약탈하기 위해 멀리까지 원정대를 꾸리기도 했다.

“포격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1분에 두 발씩 쏴서 열 명씩 죽여도 에, 잠깐. 한 시간에 600명, 하루에 14,400명, 한 달에 43만 명밖에 못 죽여. 굶어 죽고 얼어 죽는 게 더 빨리, 많이 죽겠다.”

“그냥 3천 곱하기 다섯을 하세요.”

대화하는 중에도 포대는 계속해서 포탄을 날리고, 공사에 투입된 왜인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갔다. 처음에는 발포 순간이나 착탄하면서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가도, 이런 일이 한 시간 넘게 지속되니 하품만 나왔다.

이민호는 호위들과 함께 임시 총독부에 내려가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점심시간에도 1분에 포탄 두 발 비율로 발사하는 것은 여전했다.

“저들이 밤에도 작업을 진행할까?”

“동원된 왜인이 많으니 아마도 교대시켜가면서 계속할 겁니다. 완성을 조금이라도 지체시키려면 우리도 밤에 계속 포를 쏴야 합니다. 상황 봐서 일부 병력을 건너편에 보내 공격할까 합니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 기다려 봐.”

포병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은 해협 건너편을 지켜보기만 했다. 해협의 폭이 평균 1km에 달하므로 총을 쏴서 쫓아낼 수가 없었다. 모지 성 부근에서 해협의 폭이 가장 좁았으나 그래도 400미터에 가까워 보병총의 유효 사거리를 살짝 넘는 거리였다. 현재는 해협 건너편에 대한 공격 수단이 3인치 야포밖에 없었다.

그러나 해군 전선은 사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만약 참호 공사가 해협 가까운 곳에서 이뤄진다면 국왕좌승함 호위전단을 해협 건너편으로 접근시켜 보병총을 발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으니 이만 들어가세요, 도련님.”

“그래. 보급이나 살펴보마.”

“포탄 한 달 치를 주시든지, 그게 안 된다면 하루 사용량을 정해주세요. 적당히 나눠서 쏘게요.”

“그럴게. 수고해라.”

이민호는 국왕좌승함에 돌아와 집무실에 들어갔다. 잠깐 다녀왔는데도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비올레타와 시녀들이 서류에 코를 박고 일하는 동안 주상아 공주가 고개를 들어 이민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전쟁이 시작됐는데 전하께서 자리를 비우셔도 돼요?”

“원정군 사령관은 계복이라오. 아무래도 보급사령부 같은 독립부대를 따로 만들어야겠소. 도와줘서 고맙지만 공주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제가 도울 수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어요.”

“고맙소.”

이민호가 눈길을 마주치자 주상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후궁들이 임신한 이후 주상아 공주는 꽤 우울한 날을 보냈었다. 그러나 원정에 따라온 주상아를 이민호가 더욱 신경 써주면서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뜨거운 눈길 탓에 실내가 몹시 덥군요. 아예 침전으로 들어가시지 그러세요, 전하?”

“비올레타 양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내버려둘 수는 없지요.”

요즘 비올레타의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이민호도 눈치를 봐야 했다. 비올레타가 주로 회계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민호는 보고서를 읽거나 서류 요약본을 읽은 다음 도장을 찍어 재가를 해주었다. 결재 대기 중인 서류가 빠르게 줄어들었으나 숫자가 틀리더라도 확인해서 수정할 엄두가 나지 않은 탓이었다. 이민호는 혜진이 보낸 편지를 읽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에휴! 역시 하루에 포탄 천 발 이상은 안 되는구나.”

뇌관은커녕 화약 생산량도 하루에 포탄 천 발 분량 이상의 생산은 불가능했다. 이민호도 이번 전쟁 전에는 화약이 이렇게 많이 소모될 줄 몰라 화약 제조시설 자체를 작게 지은 탓이었다.

화약 공장은 궁성 내부에 따로 건물을 마련해서 혜진이 비밀리에 만들고 있었다. 혜진의 지시에 따라 시녀들이 화공약품 같은 원료를 옮기고 내부에서 제조한 다음 뒤쪽 창고에서 완성품을 마차에 실어 포탄을 만드는 대장간으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혜진은 궁성에서 새로운 요리 개발을 담당하고 있어서 화약 생산 공장은 요리 연구소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만에 하나 이민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화약 공장에서 화재나 폭발사고가 일어난다면 화약을 만들 사람과 시설이 한꺼번에 사라지게 된다. 혜진은 고산국 통틀어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주인님! 조선에서 정벌군이 해산하면서 거제도 행영을 혁파할 거래요. 거제현 옥에 갇혀 있는 일본 사신들을 어떻게 하겠냐고 문의가 왔어요.”

“아! 거제도에 토도 다카토라가 남아있었구나! 배를 보내겠다고 해. 아니, 그냥 전선 한 척을 보내서 데려오면 되겠구나. 돌아올 때 경상우수사에게 거북선 포함해서 판옥선 열 척쯤 며칠만 빌려달라고 해. 장계를 써줘야겠다.”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본 일본 무장들은 예외 없이 경기를 일으켰다. 판옥선을 불러오는 것은 왜군 지휘관들에게 조선군이 다시 파병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민호는 고산국왕으로서 국서를, 명나라 주애공 겸 제독총병관 자격으로 자문을 조선국왕에게 보낼 수 있었다. 이것이 정상이었고, 조선국왕과 동등한 관계로 문서를 교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일부러 장계 형식을 빌려 조선국왕에게 요청하곤 했다. 덕택에 조선국왕은 물론 대신들에게서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아직 조선에서 뜯어먹을 게 많았으니 당분간 이 정도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왜장을 이곳 요새에 가두려고요?”

“아니. 집에 보내주려고.”

“전쟁이 안 끝났는데 석방하시려고요?”

“전쟁 중에도 양 진영에 사신이 오가야 한다고 했어.”

토도 다카토라는 원래 역사보다 빨리 시코쿠 서쪽 해안지방인 우와지마(宇和島) 영지를 받게 되었다. 이민호는 고산국의 군세를 적당히 과장한 다음 보낼까 하다가 이미 전투가 시작돼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무조건 석방하기로 했다.

서류 결재를 마친 이민호는 여러 곳에 편지 답장을 썼다. 혜진은 살살 달래고 혜영에게 안부를 묻고 아라 공주에게는 서양 상인들과의 봄철 교역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전령을 집무실로 불러 결재한 서류들을 돌려보내고 편지도 봉인해서 우편선에 보냈다. 바깥에서 포성이 울리고 적이 참호선을 파면서 접근하고 있지만 오늘의 일과는 일단 마친 셈이었다.

============================ 작품 후기 ============================

혼슈 전체 정복이 될지, 일부 점령이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일본의 기를 확실히 꺾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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