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7 39. 간몬 해협 전투 =========================================================================
“사쓰마에서 담배 농사를 지었나? 큐슈에서 담배 가격이 올라갈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게. 그리고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끊는 편이 좋아.”
“국왕전하만 믿겠습니다. 저도 담배를 끊고 싶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16세기부터 조선과 일본에 담배가 크게 유행해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웠다. 특히 조선에서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피워 젖먹이 아기 빼고는 다 피운다고 하는 시기였다. 환경오염이 적던 시대에 살던 옛 사람이라고 해서 폐가 깨끗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시대에는 담배를 약용, 특히 진통제나 구충제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민호는 조만간 구충제를 대량 생산해 고산국의 지배 영역에서 사는 백성들에게 나눠줄 계획이었다. 백성들 거의 대부분이 회충 같은 기생충에 감염돼 있어 평균 수명을 갉아먹고,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식사량을 강요하는 등 여러 가지 나쁜 영향을 미쳤다.
“형제들 혹시 전쟁이 끝나고도 계속 군에 남을 생각은 없나? 직업적인 병사가 되라는 뜻일세.”
“에? 저희들을 잡병으로 쓰시겠다고요?”
“응? 잡병이라니? 친위 상비군이지.”
여기에 온 목적을 위해 처음 말을 꺼낸 순간부터 뭔가 삐끗한 것 같았다. 이민호는 몹시 당황했으나 단어의 용례 차이를 맞춰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농지를 배분 받고 군사로 일하는 거야.”
“그건 아시가루인데요.”
“그리고 무기와 갑옷을 구비하고 생필품을 사는데 비용이 필요할 테니 월 얼마 정도 녹을 받으면서 몇 년 동안 군사가 되라는 거야.”
“그건 잡병입니다.”
일본 전국시대에 정병이라 할 아시가루는 농번기에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 주로 전쟁에 동원됐다. 잡병은 짐을 운반하거나 깃발을 드는 등 전시에 비전투임무를 우선으로 맡았으나 전투임무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때 잡병은 피고용자 신분일 때도 있고 단순히 임무에 따른 구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 이후 병농분리가 추진되고 풍신수길 집권 이래 용병이라 할 잡병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올라갔다. 특히 조총이 전장의 중심이 되고 잡병이 조총 사격법을 쉽게 배워 배치되면서 전쟁이 일어나는 시기가 농한기에서 벗어나는 빈도가 높아졌다.
농번기에 전쟁이 벌어질 경우 아시가루 중심으로 병력을 운용하던 다이묘들은 죽을 맛이었다. 아시가루를 적게 동원하면 패하기 쉽고, 많이 동원하면 한 해 농사를 망쳐 다음 해부터 영지의 군사력이 극히 쇠약해진다. 토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시가루만을 주력으로 두면 이렇게 전시에 병력을 충분히 동원할 수 없어 밀리는 경우가 잦았다. 에도시대에는 아시가루 일부가 토지와 분리돼 성 아래 마을 일정 구획을 차지하면서 상비군으로 변화했다.
“뭐가 됐든 상관없어! 큐슈에도 녹봉 받는 사무라이들이 있었잖아? 농지와 녹봉 모두를 주겠다. 나와 함께 하지 않겠나?”
“국왕전하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주인은 오로지 천주님뿐이십니다.”
“그래, 그래. 누구에게나 자유로이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혼슈에서 쳐들어오는 침략자를 막아야 한다.”
만약 천주교가 다수인 지역에서 종교의 자유 발언을 했다면 이교도 악마왕이라고 비난받고 암살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곳 큐슈에서 이민호는 소수에 불과한 천주교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기리시탄 의용병들은 이민호를 거의 선지자급으로 우러러 봤다.
“맞습니다. 혼슈의 다이묘들은 큐슈를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천주교를 말살하고 덤으로 토지와 노예를 얻으려고 침략하는 악마들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국왕전하께서는 큐슈를 정벌하는 와중에도 저희 기리시탄들을 특별히 보호하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진족 기병들이 처음 분고 지역에 투입됐을 때 공격 목표인 도시 지역이 많고 함대와 진격 속도를 맞추느라 여진족의 특성인 민간인 학살을 거의 못했다. 큐슈 서부 아마쿠사, 시마바라 지역에 투입된 섬라군도 군사거점을 점령하기 바빠 민간인 거주구역에 신경을 못 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의도치 않게 큐슈 동서 양쪽 지역에 집중 분포된 기리시탄들을 특별히 보호한 셈이 되었다.
“그래서 큐슈를 방어하기 위해 너희들 중에 일부는 병사가 됐으면 좋겠다. 조건은 말한 대로다. 땅과 녹봉이다.”
“둘 중에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국왕전하의 병사로 지원하겠습니다.”
아마쿠사, 시마바라에서 온 기리시탄 의용병들 중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병사가 되기로 했다. 분고 지역의 1만여 의용병들과도 고용계약을 맺었다. 최근까지 계속해서 불어난 기리시탄 의용병이 6만인데 이 중에서 4만이 20년 계약을 맺고 고산국 큐슈군에 편성됐다.
일본에서 봉건제가 실시됐을 때 영주 또는 영주를 모시는 가신으로부터 토지를 분배받은 사무라이들은 농민들을 아시가루 또는 잡병으로 동원하거나 고용해 작은 부대를 편성했다. 그래서 사무라이 1인이 지휘하는 1기(騎) 단위 안에 창병, 궁병, 철포병, 기수, 하인까지 다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영주 직할령이나 대규모 농지를 소유한 가신들만이 아시가루를 대규모로 동원해 장창병 부대, 궁병 부대, 철포병 부대를 따로 편성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기리시탄 의용병들은 처음부터 대규모로 단일 부대를 편성할 수 있었다. 절반 정도의 장창병과 노획한 조총으로 무장한 2할 정도의 철포병들이 주력 전투부대이고 나머지는 지원 임무를 맡았다. 기리시탄 사무라이가 의외로 많아서 각 단위별로 사무라이 대장을 맡았다.
필요에 따라 고산국 육군에서 중대나 대대 정도를 파견해서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조선군 이민자로 최근 고산국 왕도에서 편성된 5연대가 사격 훈련과 기본적인 교육을 마치면 곧 큐슈로 와서 이들을 도울 예정이었다.
1만 명씩의 의용병 부대를 이끄는 사무라이 대장 4명이 이민호로부터 만인장 직책을 임명받았다. 기리시탄 사무라이들이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 상인들을 본 딴 복장을 입어서, 이민호가 보기에 몹시 짜증났다.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겠다. 응? 복장이 아주 멋지다고. 제1 만인대는 큐슈 서부 방어, 제4 만인대는 동부를 방어한다. 나머지 2만은 예비대로서 당분간 이곳에 주둔하도록 해.”
“저희들도 총으로 무장하면 연대 체제를 갖출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총이 부족하니 어렵지. 나중에 연대 체제로 전환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기리시탄 의용병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고산국의 총기를 더 발전시킨 다음 구식이 된 보병총을 물려줄 계획이었다. 기리시탄 의용병들의 충성심이 거의 흑인 병사들에 근접했지만 기본이 왜인이니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현지인을 고용해서 군대를 편성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에 흔히 있는 일이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들은 국왕 또는 의회로부터 특혜를 받아 운영되는 민간 회사인데 국왕이나 왕실이 포함된 주주들에게 높은 이익배당을 실시하려면 값싼 현지 병사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산국은 애초에 인구가 부족한데다가 징병제를 실시할 경우 이민 올 사람이 줄어들까봐 여태껏 모병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들 먹고 살기에 부족하지 않아서 구태여 군에 입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인구가 적으니 이래저래 병력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기리시탄 의용병은 부족한 고산국군을 보조하는 군대로서 안성맞춤이었다.
사쓰마 지방에 보낸 왜인 포로들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정리하고 히시카리 금광까지 도로를 닦았다. 온천 근처 점토층 아래를 깊이 파 보라는 이민호의 권고가 제대로 적중한다면 의외로 금광을 일찍 발견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일부 포로들을 분고의 벳푸에 보냈다. 해안 곳곳에 산재한 온천들 중에서 최고의 온천 몇 개를 골라 냇물을 끌어들여 찬물과 섞어 사람이 들어갈 만한 온도의 온천을 만들었다. 주변에 별장과 여관, 음식점도 세웠다. 조만간 온천마을이 완성이 되면 1개 대대씩 교대로 보내서 며칠씩 쉬게 할 계획이었다.
온천 개발은 정문부가 조선에서 데려온 아전 출신 관리가 맡았다. 벳푸에서 먼저 온천을 개발한 것은 좁은 지역에 많은 온천이 몰려 있고 간몬 해협에서도 가깝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쌓인 건설과 운영 노하우를 사쓰마 지역에서 대규모 휴양지를 개발할 때 활용할 예정이었다.
“오늘도 적이 오지 않는군. 기다리는 것은 내 적성에 안 맞아.”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일이 급해서 가보겠습니다. 수행을 못해드려서 죄송하지만 도련님은 시간 남을 때 후사나 열심히 생산하십시오. 그게 바쁜 사람들을 돕는 겁니다.”
“그래? 쳇! 구박 좀 하지 마라.”
간몬 요새 정상 등대에 올라와 하품을 쩍쩍하고 있던 이민호를 계복이 쫓아냈다. 어쩔 수 없이 등대를 내려온 이민호가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다들 바빠서 환영해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차마 시뻘건 대낮부터 생산에 힘 쓸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민영이 내미는 낚싯대를 받아들었다.
이민호가 바쁜 척했지만 사실은 어제도 마찬가지로 그제도 오전에 일을 끝내고 오후에는 낚시를 했었다. 요새를 순시하는 일정은 금방 끝나고 일하느라 바쁜 수하들에게 이리 저리 채이고 다녔다.
특히 계복과 감불, 감동이 예전 같지 않게 이민호에게 드러내놓고 툴툴거렸다. 원정기간이 길어질수록 다들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민영이 너밖에 없다.”
“다른 귀인 분들은 주인님이 낮이나 밤이나 엄청 바쁜 줄 알아요. 낚시나 하시는 줄 알면 기겁할 거여요.”
“그렇게 알아주면 고맙지. 부하들에게 이리 저리 채이고 다닌다.”
이민호는 간몬 해협 쪽에서 낚시를 했다. 수평선이 보이는 요새 동쪽 넓은 바다 쪽 갯바위에서는 낚시를 할 수 없었다. 주변에 온통 군선들의 잔해나 시체가 쌓여 있어서 고기를 잡아도 먹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피했다.
해협은 물살이 센 곳이라서 가자미 종류밖에 안 낚였다. 그러나 씨알이 굵어 손맛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민영과 다른 호위들도 낚시를 하면서 즐거워했다. 현대 한국 여자들과 달리 낚싯바늘에 지렁이나 새우를 직접 끼울 줄 알아서 이민호는 편하게 낚시에만 집중했다.
“주인님! 히메지에 적 병력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현재 12만이 약간 넘었습니다. 그리고 주코쿠 몇 곳에 보급 거점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대규모로 동원돼 군량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구려. 니시무라 씨도 낚시나 좀 하시오.”
“아이들처럼 가자미 낚시입니까? 하하!”
니시무라 겐타로가 보고하러 왔다가 같이 낚시를 했다. 1인당 대여섯 마리씩 커다란 가자미를 잡아서 고춧가루를 풀어 시원한 가자미국을 만들어 먹었다. 생선이 비싼 현대 한국에서라면 아까워서 이렇게 먹을 수가 없었다.
“잡어 축에 끼는 가자미지만 국으로 먹으니 살이 아주 보드랍군요.”
“물고기가 이렇게 많이 잡히는데 어째서 큐슈 백성들은 굶주리는 것이오?”
“시장에서 생선을 사려면 비싸서 그렇습니다. 가격의 대부분이 유통 비용이지요.”
기본적인 식량인 쌀의 경우 유통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나 채소나 생선 등의 유통비용은 기본적으로 생산 원가의 몇 배에 이른다. 산지에서는 수매가가 너무 싸서 배추밭을 뒤집어엎을 때 소비지에서는 너무 비싸서 주부들이 한숨을 내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에서도 몇 년 전에 천일염전을 확대해서 건어물을 만들기 전까지는 남는 생선을 밭에 비료로 썼었다.
“소금 생산이 적어서 그렇지요?”
“예. 일본에서는 자염을 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만 나무를 때야 해서 너무 비쌉니다. 소금 순도가 낮아서 간장을 만들 때도 주의해야 합니다. 소금이 비싸고 순도가 낮으니 생선을 염장할 때 비효율적입니다. 일본에는 갯벌 지역이 거의 없어서 천일염전을 만들, 헙!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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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전쟁 준비가 한 회 더 남았습니다. ㅜ.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