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31화 (280/1,000)

00331  38. 큐슈 점령  =========================================================================

“오 방어사! 여진 기병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소?”

“물론입니다. 여진족들이 웬 일인지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제가 내린 지시를 철저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진족들이 도시를 불태우게 내버려두는 이유가 뭐요? 혹시 오 영감이 내린 명령이었소?”

“그렇습니다. 점령한 적의 근거지를 불태우는 것은 저나 함경도 군이 항상 했던 일이었습니다. 비록 왜인들이 시가지를 비우고 도망쳤다지만 그들의 집에는 곡식과 세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집을 불태움으로써 적의 전쟁수행 능력을 깎아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석조 건물이 많은 도시는 나중에 적의 저항 거점이 될 우려가 있어서 철저히 무너뜨리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끄응! 말을 유수처럼 잘하시는구려.”

이민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오응태는 함경도에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다가 가끔 두만강을 건너가 적호로 지목된 여진 부락을 소탕할 때마다 근거지를 남김없이 불태운 자였다. 아군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 경상 우병사 유숭인이나 경상 우방어사 김시민과 달리 오응태는 주로 적지에서 작전을 하던 장수라서 훨씬 과격했다.

오래된 도시인 하카다에 석조 건물이 많아 불안해진 오응태는 여진 기병들에게 특히 석조 건물을 철저히 파괴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응태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약탈로 먹고 살고 파괴 본능이 강한 여진족 기병들은 점령한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도 남을 인간들이었다.

“사전에 알려주지 그랬소? 다른 지휘관들하고는 이미 이야기가 됐었는데 오 방어사하고는 뭔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소.”

“그렇습니다. 제가 오해한 것이 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큐슈를 초토화 시킨 다음 물러설 계획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전하는 큐슈를 영구적으로 점령하길 원하십니까?”

명나라와 조선과 협의할 때 큐슈를 점령한 다음에는 고산국이 일정 기간 지키면서 왜군을 막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일본에게서 항복을 받든 말든, 딱히 큐슈를 영구적으로 점령하길 원하는 것은 아니요. 병력이 적은 고산국이 큐슈를 영토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르오. 다만 적대적인 세력이 큐슈를 기반으로 배를 띄워 주변 지역을 위협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 내 목표요.”

“그렇군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선에게 큐슈를 맡기기도 어렵습니다. 조선은 해외 영토를 유지할 능력도 없지요. 그것은 사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바로 그게 문제요.”

“허나 연합군이 큐슈에서 물러서면 왜인들이 금방 큐슈에 가득 찰 것이고, 정벌 전과 다름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따뜻한 기후 덕에 큐슈가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풍요롭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민호가 계속 고민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고산국이 인구가 적어서 큐슈를 점령하지 못한다지만 다른 나라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큐슈를 영토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조선이나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나라는 방어 병력을 큐슈에 주둔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럴 것이오. 문제는 지킬 사람이 없다는 것이오.”

“소신이 보기에는 큐슈는 고산국에서 동해국, 또는 아이누 섬으로 가는 항로 중간이라서 고산국이 반드시 영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우호적인 세력이 큐슈를 장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일본의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이 기회에 왜구의 근거지도 토벌한다는 것이 조선과 명나라의 군사 목표입니다. 그러나 고산국이 지향하는 바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민호가 큐슈에 신경 쓰는 이유와, 명나라와 조선이 원정에 참여한 이유를 오응태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오응태를 단순한 무관이라 판단했던 것은 이민호의 오해였다.

“그렇다고 여진족에게 맡길 수도 없지 않소?”

“더운 것은 둘째 문제고 말을 타고 마음껏 뛰지 못해서 여진족들이 더욱 싫어합니다. 여진족은 초원에서 뛰어놀게 해야 합니다.”

이민호는 속으로 몹시 답답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큐슈의 일본인들을 혼슈로 몰아내더라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민호는 묘족과 필리핀의 말레이계 원주민들에게 큐슈에 사는 것이 어떤지 제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워서 싫다는 여진족과 반대로, 조선 남해안 지방보다 따뜻한 큐슈가 춥다고 이주하기를 거부했다.

“전하! 다시 여쭙겠습니다. 큐슈를 점령하고 나서 왜인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실 그 문제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소. 나는 왜인들을 혼슈로 추방하길 원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소. 다른 이들은 왜인들을 농부로 부려 세금으로 쌀을 걷어야 한다고 했지만 세금보다 주둔비가 더 들어갈 것 같소.”

“조선에서 원정군이 처음에 구성됐을 때는 왜인들을 다 쳐 죽여야 한다고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물론 왜적에게 가족을 잃은 선비들은 아직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조선 땅에서 편하게 지내는 자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됩니다. 그러나 큐슈에 상륙한 장병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조선군 장수들은 물론 상륙하고 겨우 이틀 지난 병사들마저 지금은 그런 소리를 못했다.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다들 그렇게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그러게 말이오. 여진족들은 혹시 불만이 없소? 보급 문제 같은 것 말이오.”

“생각보다 잘 먹어서 다들 좋아합니다. 다만 왜인들에게 일을 시켜야 하니 마구 죽이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서 불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들 여진 기병을 인구가 많은 도시에 풀어놓으면 주민 대부분이 참살 당할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저들은 군인이 아니라 유목민에 불과하고, 상황에 따라 군령을 무시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은 큐슈를 영구 점령할 계획이 아니라서 왜인들의 인심을 살 필요가 없으나,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봐야겠소. 그리고 앞으로는 여진족을 조심해서 써야겠구려.”

이민호는 새로운 영토를 얻어 다스리고 싶은 의향도,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명나라와 조선은 물론이고 오응태까지 이민호에게 큐슈를 영토로 가질 것을 권했다.

어쩔 수 없이 이민호는 고산국에 편지를 보내 혜영의 의견을 물었다. 혜영은 원정을 떠나기 전에 절대로 큐슈를 영토로 편입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임신한 혜영이 길길이 날뛸 것 같아 걱정됐다.

그날 밤 여진 기병은 하카다에서 숙영하고 앞바다에는 고산국 함대가 정박했다. 밤새 바깥 바다와 도시 바깥을 경계했으나 왜군의 야습은 없었다. 간몬 해협 쪽에 탐망선 두 척이 배치돼 있어 바다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고산국 함대는 아침 일찍 출항해 간몬 해협 서쪽 입구에 도착했다. 함대는 여진 기병이 오길 기다리며 고쿠라(小倉), 현대의 기타큐슈에 포격을 퍼부었다. 고쿠라 성은 이미 무너졌기에 성하마을과 최근에 새로 재건한 항구 시설이 목표가 되었다.

고쿠라를 함포로 공격하는 동안에도 전선과 수송선들은 동쪽으로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간몬 해협을 이루는 땅 중에서 혼슈 쪽에 거의 붙어있는 히코시마(彦島) 해안에 1연대 병력을 상륙시켰다.

감불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통나무를 어깨에 멘 병사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달려 나갔다. 목책을 세워 혼슈로부터 떼를 지어 건너올 왜군을 막기 위해서였다.

“전하. 조선 수군이 도착했습니다.”

“오! 이제 든든하겠군요.”

함장이 기쁜 소식을 전해서 이민호가 관측실로 올라가서 확인했다. 고쿠라와 우마시마(馬島) 사이로 나타난 판옥선과 사후선 도합 300여 척이 노를 저어 해협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고쿠라에 포격하는 도중에 여진 기병보다 조선 수군이 먼저 도착한 것은 의외였다.

명나라 수군은 일단 부산포와 나고야를 잇는 병참선을 지키다가 상황을 봐서 간몬 해협을 지원하기로 했다. 큐슈를 공략 중인 군병들에게 보급을 유지하는 수송선들이 있고, 이들을 보호할 임무를 맡은 함대도 명나라 수군이었다. 세키부네 이상급은 모두 격파돼 명나라의 사선이 충분히 감당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았다.

큐슈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간몬 해협이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 혼슈에서 증원하는 병력 대부분이 간몬 해협을 건너 큐슈로 진입하기 때문에 이곳만 지킨다면 큐슈에 대한 증원을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형이 복잡해 많은 병력을 수비에 몰아넣고도 방어 효율은 떨어지는 지형이었다. 물론 시고쿠와 가까운 분고 수로도 고산국 해군이나 조선 수군이 지켜야 했다.

“전하! 여진 기병이 고쿠라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포격을 중지했습니다.”

“알았소. 이제 2, 3연대를 상륙시키시오.”

조선 수군에 이어 마침 여진 기병도 나타나 고쿠라 시가지를 휩쓸었다. 산그늘에 숨어 직접적인 포격을 당하지 않던 곳에 숨어있던 왜인들이 여진 기병의 출현으로 인해 날벼락을 맞았다. 피난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왜인들은 자기들의 선택을 후회할 정도로 당했다.

고쿠라가 바다와 육지로부터 공격받는 동안 전선과 수송선들이 간몬 해협 남쪽 모지(門司) 항에 배를 댔다. 7천 명이 넘는 인원이 배에서 내렸다.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산에 올라 나무를 베었다. 일단 급하게 목책을 세우고 그 다음 일부에만 석성을 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개인 군장만 갖고 내릴 정도였고, 심지어 대부분의 기병들에게는 말도 없었다. 말과 보급품을 수송하기 위해 수송선들이 거제도로 향했다.

“여기가 간몬 해협인가요?”

“그렇소. 해협의 폭이 좁으니 적의 저격을 받을 수 있소.”

비올레타가 좁은 해협을 바라보다가 이민호가 경고하자 흠칫 놀랐다. 그러나 고산국 함대가 해협 북쪽 시모노세키에 포격을 가하면서 해협을 통과할 때까지 적의 움직임은 없었다. 간몬 해협 서쪽을 조선 수군에게 맡겨두고 고산국 전선 43척이 간몬 해협을 통과했다.

“해협 북쪽 도시도 전체가 텅 빈 것 같아요.”

“우리 함대의 포격에 저항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오.”

시간이 지나 해협 동쪽 입구를 나오자 가로 세로 30km 정도 되는 넓이의 텅 빈 바다가 펼쳐졌다. 섬 하나 없는 스오 여울(周防灘)에는 배 한 척 떠 있지 않았다. 어선들이 도망갔거나, 관에 징발됐다는 뜻이었다. 이민호는 어선들까지 징발한 왜군이 큐슈로 상륙하기 직전이라고 판단했다.

“일본 수군이 해협을 장악하기 전에 통과해서 다행이에요.”

“사실은 탐망선들이 해협을 오가며 관찰하고 있었소. 만약 왜선들이 몰려올 경우 하카다에서 즉시 이동할 예정이었소.”

고산국 함대가 괜히 어젯밤에 하카다에서 정박한 것이 아니었다. 왜군은 준비를 철저히 해서 한꺼번에 해협을 넘으려는 듯 시간을 끌고 있었으나 그럴수록 간몬 해협에 대한 방어는 튼튼해졌다. 간몬 해협 근처를 지나는 모든 배들은 근대적인 해안 포대의 개념을 보게 됐다.

해협 남북, 실제로 동서에 위치하며 상대편을 향해 길쭉이 뻗은 반도 둘에서 미리 계획된 대로 축성이 진행됐다. 지금은 간단한 울타리 정도만 세워지고 있었으나 적의 공격 정면은 불랑기 포의 사격에도 버틸 정도로 단단히 돌을 쌓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산 정상 부분에 관측소와 포대를 중심으로 한 임시 요새를 빠르게 만들고 3인치 포를 배치했다.

만약 큐슈를 영토로 편입하기로 결정된다면 산 정상 주위에 아예 콘크리트 요새를 만들 생각도 했다. 철근과 시멘트를 비롯해 엄청난 양의 자재가 들어가겠지만 국경 요새 겸 도해 방지 요새이므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서 함대는 모지 반도 동쪽의 어촌에 정박했다. 그리고 명군과 조선군이 보낸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이 날 계획된 점령 목표인 사가와 마쓰우라, 오오무라 등을 모두 점령했다.

명군은 사가를 점령하는 전투를 벌이면서 왜군 1만여 명을 격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색이 좋지 않은 명군 전령에게 이민호가 다그쳐 물었더니 인명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고 실토했다. 그래도 전령은 정확한 사상자 인원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유정 제독이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운 탓에 전체적인 전략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공성 중에 피해가 많이 난 건가?”

“북병이 먼저 이동하는 중에 기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천군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지금 자면 아마... 오늘은 여기까지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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