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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29화 (278/1,000)

00329  38. 큐슈 점령  =========================================================================

“감사합니다, 전하. 그렇게라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문명국이라서 닭고기를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혹시 조선에서 닭고기를 사올 수 있다면 구매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문명국 기준이 닭고기를 먹느냐 마느냐로 가르는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으나 사소한 문제를 두고 따지지 않았다.

섬라 병사들에게 닭고기란 이민호에게 쌀밥과 함께 먹는 김치와 비슷한 위치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다른 계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겨울이라 닭을 많이 살 수 없을 것이오. 닭이 겨울을 지내야 봄에 병아리를 칠 것 아니겠소? 하지만 해동상단을 통해 가급적 닭을 많이 구해보겠소.”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겨울은 여러 가지로 정말 끔찍한 계절이군요.”

섬라의 1만 병력 중에서 3천 명이 서쪽으로 이동해 대규모 양계장을 건설했다. 야전축성용으로 준비한 판자가 꽤 많이 소모됐다.

열대지방 출신인 섬라 왕제는 가금류 전염병을 감안해 충분한 거리를 두고 양계장을 세웠다. 이민호는 조류독감을 떠올렸다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전염병이란 어느 시대든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유행했다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비올레타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전선으로 돌아가려 했다. 왕제의 요구사항 여러 가지를 두고 협의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했을 것이다.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격려했다.

“긍정적으로 보시오. 그나마 연합군 중에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가 없는 것이 다행이오.”

“와아! 음식 재료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서 정말 기쁘군요.”

비올레타가 과장된 반응을 보이면서 국왕좌승함으로 돌아갔다. 최악의 경우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가 뒤섞인 부대는 보급이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현대 인도군이나 파키스탄군에서는 충분히 그런 부대의 존재가 가능했다.

여러 나라 군대가 모인 연합군으로 공동작전을 하면서 음식문화 교류가 꾸준히 이루어졌다. 음식은 여러 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었고 쉽게 배울 수도 있었다. 연합군이 편성된 이때 다양한 음식을 먹이는 것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올릴 수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건어물을, 섬라에서는 말린 열대 과일을, 명나라에서는 차를, 유구국에서는 사탕을, 고산국에서는 과자를 내놓고 다른 나라 부식으로 교환해갔다. 섬라 병사들은 짭짤하게 소금 간이 된 조선의 말린 생선을 가장 좋아했다. 향신료를 듬뿍 친 섬라의 음식도 명나라와 조선 병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섬라에서는 아직 천일염전을 만들지 못했다. 불붙은 석탄에 바닷물을 뿌린 다음 긁어내거나, 바닷가 바위에 붙은 소금기를 모으는 방식이었다. 소금이 대량으로 필요한 경우 라오스의 소금 광산에서 수입했다. 천일염전이 원래 열대 지방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밀물과 썰물, 또는 강우량 등 생산 조건이 은근히 까다로웠다. 그래서 고대는 물론 현대에도 소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소금광산에서 암염의 형태로 산출됐다.

이민호는 섬라 왕제와 협의해 섬라에 천일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함께 싸우는 연합군이므로 저렴하게 황금 5만 냥을 제시하자 왕제가 이민호에게 고맙다고 절을 했다. 암염과 비교해 상품경쟁력이 떨어져 주변국에 수출하기는 어렵겠지만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에는 소금만한 것이 없었다.

그 사이에 전투는 거의 끝났다. 북병을 따라 남하했던 명나라 남병들 일부가 수레 가득 전리품을 실어왔다. 남병들은 왜군의 군기와 무기 외에도 수급이 가득 쌓인 수레를 끝없이 끌고 왔다. 포로가 된 고위 사무라이들도 줄줄이 끌려왔다.

제독 유정이 보낸 전령이 이민호에게 전과를 자세히 보고했다. 기병들이 시도한 포위작전은 대성공을 거뒀고, 적의 피해 규모에 비해 아군의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지상전에서도 가끔 이렇게 압도적인 전과 차이가 나기도 했다.

“아직 집계 중이지만 아군의 피해는 천군과 조선군을 합해 천이 안 됩니다. 그리고 대략 4만의 왜적을 섬멸하고 1만은 숨거나 도주했습니다. 남병들이 주변 언덕이나 숲에서 계속 찾아서 주살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병과 조선 기병은 송포강 북안에 주둔하고 있으며 남병들이 강변에 도착하는 대로 목책을 쳐서 기본적인 방어시설을 만들 예정입니다.”

“수고했다. 어제 오늘 7만 정도를 격파했구나.”

“유정 제독 대인께서는 주애공 노야께서 이번 대첩을 황제폐하께 보고할 주문을 작성해주시길 원합니다. 천조에서는 노야께서 보내시는 문서가 가장 신빙성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전령이 이민호의 눈치를 살폈다. 여러 나라의 군대가 모인 연합군이 되다 보니 장수들마다 이래저래 원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특히 대국으로서 자부심이 큰 명나라는 이렇게 보급 말고도 원하는 것이 많았다.

“원래 큐슈 전체를 점령한 다음에 주문을 보내기로 하지 않았나?”

“그거야 그렇지만 오늘 워낙 큰 대첩을 거뒀으니 황제폐하를 기쁘게 해드리고 본국에 있는 백성들의 사기를 올릴 겸 주문을 보내시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제독 대인의 전언입니다.”

“약속대로 해. 대신 경략군문을 통해 수시로 보고하라고 해.”

“예, 노야.”

명나라는 철저한 문민우위를 바탕으로 모든 군대를 문관의 통제 아래 두었다. 송응창은 병부시랑으로서 임진년 말부터 경략군문을 맡아 지금은 진주에 머물면서 명나라 원정군을 형식상 지휘했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사실상 지휘를 포기한 셈이었고, 군령권을 이민호와 유정이 쥐고 있어서 송응창의 업무는 보급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북쪽 수평선에 배가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왔군.”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이민호가 얼른 바닷가로 달려갔다. 동래 부산포에서 새벽 일찍 출발했는지 수송선들은 점심때에 벌써 도착했다. 순풍을 받은 덕택에 판옥선이나 조운선들도 비슷한 시간에 큐슈 북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합군이 지금까지 상륙한 나고야 성이 아니라 10리 동쪽 모래사장이 깔린 넓은 포구에 여진족 기병들이 상륙했다. 건주여진과 달리 두정갑 같은 두루마기 형 갑옷이 아닌 털가죽을 입은 험상궂은 여진족 2만이 말과 함께 상륙했다.

“어서 정렬해라, 이놈들아! 내 말 듣기 싫으면 당장 여진 땅으로 돌아가든지. 아유~ 고소해!”

함경도 방어사 오응태가 기고만장해서 여진족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요동에서 동래까지 호송할 때는 여진족들이 말을 안 듣고 걸핏하면 민가를 침해해서 고생했던 평안도와 함경도 기병들은, 지금 이곳에서는 여진 기병들을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이 다뤘다.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으나, 고산국에 고용된 직할 용병인 조선 북방 기병들이 동해국 백성이 되길 원하는 여진족 기병들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험에 든 자들은 약해지기 마련이었으나,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지 걱정됐다.

“국왕전하! 여진족 기병 2만과 조선 북방 기병 3천이 아무 탈 없이 상륙을 마쳤습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오응태는 대놓고 이민호를 국왕전하라고 불렀다. 조선 땅에서만 말조심하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김시민이나 정문부처럼 문무 양쪽에 걸친 명장은 아니라도 이민호 입장에서는 오응태처럼 유능한 지휘관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그리고 함경도에서 오래 근무한 오응태는 거친 습성의 여진족을 잘 다룰 줄 알았다.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양의 보급과, 가급적 많은 숫자의 적입니다. 적이 있는 곳을 알려주십시오!”

이민호는 오응태와 여진족 대표, 그리고 오응태에게 배속시켜주기로 약속한 3연대 기병대대장을 지휘막사로 불렀다. 고산국 총함장 이순신과 조선국 삼도수군통제사 이억기, 그리고 명나라 함대 지휘관인 부총병 진린이 계복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휘막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겐타로가 몇 년에 걸쳐 만든 큐슈 육상 지도는 꽤 정밀한 편이었다. 이민호가 나고야 성부터 서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선을 쭉 그었다.

“나머지 연합군이 공략할 방향은 남쪽, 사가에서 구마모토를 거쳐 사쓰마 지역이요. 수십 개의 성을 함락해야 하오.”

이민호가 큐슈 지도에서 북동쪽 간몬 해협부터 큐슈와 시고쿠 사이의 호요 해협(豊予海峡)까지 가리켰다.

“오 방어사는 기병을 이끌고 큐슈 북동쪽 해안, 특히 분고(豊後) 지방을 쓸고 다니시오. 저항하는 성이 있으면 기병대대의 포병을 이용해 격파하시오. 점령한 성을 지킬 필요는 없소.”

“흐흐! 드디어 고산국 포병이 내 손에 들어오는군요.”

오응태가 묘한 열기에 들떠 있었다. 여진 기병 2만에 조선 기병 3천, 포병이 포함된 고산국 기병 1개 대대라면 이 시대 기준으로는 실로 막강한 전력이었다. 이민호는 이런 괴물을 오응태에게 맡겨도 될지 의심스러웠으나, 계복은 큐슈 정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해서 대안이 없었다.

“간몬 해협을 육지에서 지키기로 한 계복 대원수가 부르면 즉각 간몬 해협으로 돌아와서 지원해야 하오. 만약 우리 수군의 방어선을 뚫고 큐슈 북동 해안에 상륙하는 왜군이 있으면 알아서 격파하시오.”

“혼슈에서 20만 이상이 큐슈로 올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는 고산국 병력 1만으로 왜적 20만을 막으실 작정이셨습니까?”

“우리에게 강력한 수군이 있으니까 가능한 작전이오. 이제는 오 방어사와 여진 기병 2만도 있지 않소?”

“훗! 그렇긴 합니다만. 국왕전하께서는 정말 완벽하게 멋지십니다.”

“지금 바로 출발합시다.”

“예! 근질근질하던 참입니다.”

오후에 고산국 병력 전체가 배에 타고 연합함대는 동쪽으로 출항했다. 오응태도 기병을 이끌고 큐슈 북쪽 해안을 따라 달렸다. 해안도로가 바다에서 보였다 말았다 해서 이민호는 조금 걱정스러웠다. 교두보에 남겨둔 연합군이 잘할지도 걱정됐다.

섬라군은 큐슈 북서부 해적 영주들의 영지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제대로 된 성곽도, 병력도 남지 않았기에 일은 쉬웠다. 다만 섬라군은 왜군과 왜인을 구별하지 못해 민간인들을 많이 살상했다.

상륙 교두보를 지키는 일을 맡은 유구군은 불만이 많았다. 혼슈를 공격할 때 선봉에 세우겠다고 이민호가 약속하는 식으로 다독였다.

연합함대가 하카다를 지나기 전, 해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적의 군세를 발견했다. 함대가 함포 사격을 준비하는 중에 여진 기병들이 공격 대형을 갖췄다.

강원도 동해안과 마찬가지로 해안단구를 따라 자연스럽게 난 넓은 길은 고대시대부터 이용하던 도로였다. 왜군도 고산국 함대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지만 산을 넘어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주 잠시 해안도로를 이용한다는 것이 이렇게 우연히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마주치게 되었다.

“함장! 함포로 먼저 적의 철포대를 잡도록 하시오!”

“함대 기함에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이민호가 명령하자 국왕좌승함 함장이 신호수에게 깃발 신호를 올리게 했다. 이순신이 탄 기함에서 신호를 수신한 다음, 다시 전체 함대에게 명령을 전파하는 식으로 군령 체계가 갖춰졌다.

명령 전달 절차가 복잡했지만 이민호가 항상 함대를 따라다니며 지휘할 수도 없어서 이 절차를 그대로 놔두었다. 해군 함대 지휘는 이민호보다는 이순신이 훨씬 잘했으니 이민호가 나설 필요가 없었으나, 지금은 지상전을 지원해줄 때라 잠시 개입했다.

- 쾅! 콰쾅!

전선 43척과 수송선 25척에서 쏟아 붓는 화력은 실로 막강했다. 2만 정도에 달하는 왜병들의 방진이 깨져 나갔다. 포격으로 혼란에 빠진 왜군을 여진 기병들이 덮쳤다.

“무섭군요.”

관측실에 함께 오른 비올레타가 몸을 떨었다. 이민호도 여진 기병의 전투를 보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여진 기병들은 둘로 나눠 왜군의 좌우로 돌아가면서 화살을 퍼부었다. 그리고 왜군의 전열 일부가 무너져 기회가 왔다 싶었을 때 왜군의 대열 안으로 돌진했다. 여진 기병들이 가진 무기는 짧은 칼에 불과했지만 빼어난 승마실력이 받쳐주자 왜병들이 도저히 대항하지 못했다.

왜병들에게는 더 불행하게도 이들은 큐슈 북동부의 여러 영지에서 긁어모은 연합군이라는 사실이었다. 각자 영지별로 대응하다 보니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기병 돌격과 함포 공격을 동시에 받으며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전투는 패잔병 추격까지 합해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리겠습니다.

다음은 가장 핵심적인 곳 점령 작전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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