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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26화 (275/1,000)

00326  38. 큐슈 점령  =========================================================================

이민호는 비올레타와 함께 전투를 계속 지켜봤다. 해안에서 먼 곳은 안 보여도 가까운 곳은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남병들이 목책에 횃불을 환히 키고 멀리 앞으로 불더미를 던져서 지금은 피아를 충분히 분간할 수 있었다.

덕택에 함포 사격이 더욱 정밀해졌다. 목책선 앞에 왜병들이 시체가 차곡차곡 쌓였다가, 근처에 포탄이 터지면 한꺼번에 날아가 흩어지길 반복했다. 그래도 왜병들은 목책을 향해 끊임없이 몰려왔다. 야습에 참가한 왜병들이 최소 2만은 넘을 것 같았다.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목책 몇 곳의 방어가 뚫리고, 왜병들이 목책을 넘어와 방어선 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척계광의 원앙진(鴛鴦陣)은 단병접전에 강한 왜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 진법이었다. 남병들은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왜병의 얼굴을 향해 기다란 낭선을 흔들어 견제하고 등패와 당파가 적의 공격을 가로막는 사이 장창으로 찌르고 그래도 접근한 적은 장도와 곤방(棍棒), 즉 곤봉으로 내리쳤다.

“명나라 병사 열두 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네요.”

“저게 그 유명한 원앙진이며, 척계광이 만든 절강병법이라 한다오.”

“원앙이라면 금슬 좋은 부부를 뜻하잖아요?”

“마치 우리처럼 말이오.”

이민호가 다시 비올레타를 꼭 껴안았다. 그러나 원앙진의 원앙은 암수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따라죽는다는 속설에 맞춰, 대장이 죽으면 나머지 11명 전원이 처형된다는 살벌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또한 여러 가지 무기 체계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바깥에서 이러면 부끄럽지 않나요?”

“부부 사이에 애정 표현하는 것뿐이오.”

“전하는 일반적인 동양 남자들과 많이 다르시군요.”

비올레타가 먼저 고개를 돌려 이민호에게 입을 맞췄다. 비올레타도 전투복을 입어서 이민호가 제대로 만질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이렇게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민호가 하체를 비올레타의 엉덩이에 붙이고 손으로 앞쪽을 더듬었다. 비올레타가 이민호의 손을 잡았으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비올레타는 주상아 공주나 다른 후궁들보다 부끄럼을 적게 타고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 타탕! 타탕!

남병의 원앙진은 냉병기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원앙진 중에는 창병을 줄여 조총수 2명씩을 배치하기도 해서 이들이 왜군을 향해 사격하고, 당파수는 짧은 당파의 창날 사이로 화전을 장전해서 날렸다. 크기가 작아서 위력도 작으나 이동이 간편한 호준포를 쏘기도 했다.

남병의 목책선에 위기가 찾아온 순간 왜병들이 목책을 넘어선 곳마다 남병 예비부대가 투입됐다. 왜병들이 목책을 넘으면서 왜병들의 방진이 흩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야전과 달리 목책 주변에서는 왜군 방진보다 남병의 원앙진이 더 강했다. 예비부대까지 투입되니 왜병들은 금방 제압되거나 목책 바깥으로 밀려나갔다.

결국 전투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끝났다. 왜군은 2만 넘게 야습에 참가했으나 그보다 적은 수의 남병에게 격퇴 당했다. 함포 지원 사격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이민호가 남병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 펑!

남병들이 보유한 작은 호준포가 어둠 속으로 도주하는 왜병들을 향해 연속 발사됐다. 남병은 확실히 근접전은 물론이고 총격전, 포격전에도 강했다.

만약 요동 기마병인 북병이 방어를 맡았더라면 울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박에 무너져 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울산과는 달리 여기서는 도망갈 곳이 바다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기마병으로서 자부심 넘치는 북병들 입장에서는 귀찮은 방어를 남병에게 떠맡긴 셈이었으나, 만약 북병이 방어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싸움이 끝났어요, 전하.”

“적은 다 도망갔소. 더 이상 피해를 버틸 수가 없었겠지요.”

전투가 마무리되자 남병들이 횃불을 들고 목책을 넘어가 왜병들의 수급을 베었다. 가끔 부상자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단칼에 베어버렸다. 이 시대에 못 움직일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면 치료를 받더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왜병의 목을 내리쳐 머리를 집어 올리는 순간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끌어당겼다.

“징그러워! 어서 내려갑시다, 비올레타.”

“네. 중국군은 야만스럽게 사람 머리를 베어 군공의 증거로 삼는군요. 황제와 장군이 서로 믿지 못한다는 증거일 뿐이에요.”

“그러게 말이오. 어휴! 야만스러워!”

이민호와 비올레타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명나라 군대의 야만성을 실컷 비웃었다. 그러나 이민호도 그 동안 왜병들의 수급을 베어 북경에 보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함교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에 제독 유정이 전령을 보내 전투 결과를 보고했다. 수급 7천여 개를 베었고 5천 급을 고산국 함대에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민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전령은 자랑스럽게 보고를 이어 나갔다.

“남병 천여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목책 주위에서 죽은 왜병은 2천 명도 안 됩니다. 그러니 나머지 수급 5천 개는 고산국 함대의 전공이 분명합니다. 예전처럼 수급을 나눠 주애공 대인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괜찮으니 직접 싸운 남병의 전공으로 삼게나. 내 말을 유 제독에게 전해주게.”

이민호가 비올레타의 눈치를 살피다가 명군 전령에게 말했다. 그러나 유정에게서 특별한 명령을 받고 온 전령은 단호했다.

“유 제독께서는 이여송 제독과 달리 전공과 포상이 확실하길 원합니다. 지난 임진왜란 때도 고산국에서 수급 수 만여 급을 챙겨 황제폐하께 바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동래 전투 때도 수급을 가장 많이 나눠 받으신 것으로 압니다.”

“어허! 그거야 서류상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명군이나 조선군이 목을 베어 북경으로 보낸 것이야.”

“제가 알던 것과 다릅니다만.”

“밤이 늦었으니 전령은 어서 돌아가게. 아침 일찍 출전해야 할 것 아닌가?”

전령이 돌아가자 이민호가 비올레타의 눈치를 살폈다. 비올레타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서 이민호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험! 고산국은 그리 야만스러운 국가가 아니라오. 직접 수급을 벤 경우는 거의 없소. 단지 명나라에서 전공을 판단하는 기준이라서 어쩔 수 없이 나눠받은 것뿐이오.”

“네, 네. 그러시군요.”

이민호가 비올레타에게 손을 뻗자 비올레타가 살짝 몸을 움직여 손길을 피했다. 마치 더럽다고 피한 것 같아 이민호는 서러웠다. 그러나 오해였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애정 표현을 자제하시는 편이 좋겠어요. 부끄럽긴 해도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이곳은 항상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전쟁터잖아요. 전하께서 조금 더 진지해지시면 좋겠어요.”

“오! 그렇게 하겠소. 비올레타 그대는 정말 생각이 깊구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소.”

이민호가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자 비올레타가 선실로 도망갔다. 이민호는 차마 뒤쫓아 갈 수 없어 함교에 남았다.

“함장! 내가 좀 지나친 것 같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닭살이 돋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험! 그럴 수 있겠구려.”

민영 등은 호위라서, 비올레타는 에스파냐의 관전무관 자격으로 전선에 탑승하고 전투를 관람할 자격이 있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호색한 국왕이 전쟁터에 나와서도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뭐, 내게 후궁이 많다 해도 고산국에 와서 장가 못 가는 총각은 없으니 질투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내가 정치를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들 먹고 살게 만들어주고, 특히 사내들 장가보낸 것만큼은 자랑으로 삼고 있소.”

“안타깝게도 저는 아직 총각입니다, 전하.”

“함장이 어째서요? 나이가 40 중반을 넘기지 않았소?”

오랜 시간 이민호가 탄 배를 지휘했던 함대 기함 함장이 해동상단 선장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국왕좌승함 함장은 전라좌수영 판옥선에서 선두무상을 했던 사람이었다. 수군으로 근무를 하지 않을 때 선장은 어선을 타고 고기를 잡았다. 거의 일 년 내내 바다에서 살아온 뱃사람이었다.

“새까맣고 주름진 제 얼굴을 살펴보십시오. 슬프지만 저는 아직 30대 중반입니다, 전하. 평생 바다에서 일하다 보니 강한 햇빛을 쬐고 소금기 머금은 거친 바닷바람을 쐬니까 이렇게 겉늙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신분이 낮은 뱃놈이라서, 고산국에 와서는 가정에 충실하기 어려운 해군이라서 장가가기 힘듭니다.”

“미안하오. 해군과 해병 장병들을 위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소. 특히 배를 타고 나가는 날짜를 줄여야겠소.”

“그렇게 하려면 승선 정원의 2배수를 고용해야 합니다.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전선을 항구에 정박시킨 채 놀려야 합니다. 아직 건국 초기라서 그렇게 하기 어려울 테니 저희들이 더 고생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요? 모든 백성들이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갖추도록 해줘야 그게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겠소? 모든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직업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혼하는 것도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오. 그리고 함장도 무조건적인 충성만 하지 말고 문제가 생기면 즉각 개선을 건의하시오.”

이민호의 말에 함장이 약간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다. 고산국은 조선이나 다른 왕조국가들과 전혀 달랐다. 백성들이 국가를 위해 해줘야 하는 것보다 국가가 백성들에게 해주는 것이 훨씬 많았다. 이민 오는 사람은 여전히 적었어도, 한 번 정착한 사람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을 바쳤다.

“감사합니다, 전하. 그럼 저 같은 노총각을 위해 어떻게 해주시겠습니까?”

“그야 처녀들과 미팅, 아니 만남을 주선해야겠지요. 30대 중반 나이에 벌써 중령으로 출세했으니 처녀들에게 결코 부족한 배우자는 아닐 것이오.”

무슨 상상을 했는지 함장이 몸을 배배 꼬았다. 보기에는 조금 역겨웠으나 몹시 안쓰러웠다.

“여기 항해사나 참모들 모두 주목! 그대들은 젊은데도 다들 장가를 가지 않았나?”

“다 갔습니다, 전하.”

위관급 해군 장교들은 젊은 나이에 비해 높은 계급이라서 처녀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얼굴도 아직 하얀 편이라 함장처럼 용모 때문에 장가 못 갈 일은 없었다.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다지만 높은 봉급을 받아 좋은 집에 살면서 멋진 제복을 입고 다니다 보면 쉽게 장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조금만 더 들면 급속히 노화되는 문제가 있었다. 30대 중반에 노안이 된 함장의 외모는 빵점에 가까웠고, 바로 이것이 함장이 아직도 미혼으로 남게 된 이유였다.

“그럼 함장을 위해 처제라도 소개시켜주지 그랬어?”

“상급자에게 함부로 소개시켜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장교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어서 이민호가 더 이상 질책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여기서 누구 마누라가 젤 예쁜가?”

“황 중위의 아내가 가장 예쁩니다, 전하.”

다른 장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한 것 같았다. 그래서 항법사인 황 중위를 이민호가 직접 불렀다. 황 중위는 키가 크고 체구도 적당히 좋고 얼굴도 잘 생겨서 직업이 뭐든 장가는 잘 갈 사람이었다.

“자네가 오늘부터 함장 결혼 추진위원장일세.”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오나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말 그대로야. 함장이 장가갈 수 있도록 약탈혼을 제외하곤 무슨 짓이라도 해보게. 자네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네.”

“해, 해보겠습니다, 전하!”

이민호는 권력의 횡포를 실컷 부린 다음 침전으로 돌아왔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이 든 해군 장교라는 이유로 장가를 못 가고 있다면 해군의 미래를 의심케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다음 날 아침 명군 기마병, 즉 북병이 대대적으로 출전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왜군 1만여 명이 목책 바깥에 거리를 두고 진을 쳤다. 이민호는 왜군의 진채가 완성되기 전에 먼저 조선군을 투입해 적을 격파하라고 이항복에게 전령을 보냈다.

조선군 1만여 명이 몰려나오고 그 병력은 중군장 경상우방어사 김시민이 지휘했다. 김시민은 진주대첩에서는 방어전을 잘 수행한 것으로 유명해졌으나 그 외의 전투에서는 기마병들을 몰고 나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치열하게 싸웠다. 다만 보병 중심의 야전을 잘할 수 있을지 이민호는 걱정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었다.

“무슨 진형이 저래? 전혀 조선군답지 않네.”

============================ 작품 후기 ============================

또 올리고 싶지만 모르겠습니다. 기다리지는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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