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23화 (272/1,000)

00323  38. 큐슈 점령  =========================================================================

목욕을 마치고 서둘러 몸을 말린 이민호가 가운만 입고 침대에 올랐다. 그 직후 비올레타가 잠옷을 입고 침전으로 들어왔다. 파티마의 여동생 아이샤가 수건 몇 장을 올린 은쟁반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이민호가 손짓으로 비올레타를 침대로 오르게 했다. 조금 전에 민지를 안았는데 금방 또 새로운 여자를 안아야 했다. 이것은 왕의 숙명이라고 이민호가 체념했으나, 상대가 비올레타라면 상황이 또 달랐다.

“어서 오시오. 그대는 항상 아름답소.”

“전하,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이세요. 신경 쓸 일이 많죠?”

비올레타의 커다란 눈이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어서 이민호는 몹시 부끄러웠다. 그때 민영이 조명을 끄고 흐릿한 취침등을 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민영과 민지가 이불을 위로 끌어올려 잠자는 척했다.

“몸은 괜찮소?”

“이제는 아프진 않아요. 그런데 또 하면 다시 아플까봐 겁나요. 저는 처음이었는데 그렇게 격렬하게 하시면 어떡해요?”

“미안하오. 오늘은 살살 하겠소.”

“피곤하실 텐데 그냥 주무세요. 아니. 저 아직 아파요. 그러니 오늘은 안고만 자요.”

“비올레타는 마음 씀씀이마저 참으로 천사요.”

비올레타가 조금 전에 침전 안에서 있었던 사정을 알아챈 것 같았다. 웬만한 여자라면 침전에 조금 늦게 오라는 말만으로도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끌어안고 같이 누웠다. 그러나 미안해서 비올레타와 입을 맞추거나 몸을 만지지도 못했다.

- 콰콰쾅!

갑자기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창밖으로 거제도 방향에서 화광이 충천했다. 심상치 않은 사태에 놀란 이민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실제 역사에서 칠천량 패전 과정을 알고 있던 이민호는 왜군이 밤에 기습 공격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대비했다. 그런데 하필 상륙전 전 날에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것은 큰일이었지만, 밤에 넓은 거제도의 모든 해안을 완벽히 봉쇄할 수는 없었다.

민영과 민지가 이민호에게 서둘러 전투복을 입혔다. 비올레타도 전투복을 입으러 자기 방으로 향했다.

“주인님! 북쪽에서 폭발이 계속되고 있어요. 왜병들이 침투해 병참기지에 불을 지른 것 같다고 해요.”

침전의 문이 열리고 야간 당직 민정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그 사이에도 멀리서 조총 쏘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왜병들이 침투한 것을 확인했대?”

“그건 아니지만, 당연히 그럴 것으로 알고 있어요. 들어보세요! 서로 총을 쏘고 칼을 맞부딪치잖아요. 화재가 크게 번지고 있어요. 지상으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이 있으니 전체 함대가 포구에서 떠나야할까요?”

“민정이 정신 차려!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진정해!”

“네? 네. 하지만 주인님이 위험......”

이민호가 일부러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당황했던 민정도 조금 차분해지자 이민호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아는 것, 들은 것만 전해. 연락관에게는 수륙군을 불문하고 확실한 것이 파악될 때까지 전원 제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전해줘. 어두운 밤에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예! 함장님과 연락관에게 그렇게 전할게요.”

전령들이 여러 부대로 말 타고 달리는 동안 좌승함에 탑승한 해병들도 전원 전투 위치에 배치돼 초조하게 적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호는 민영과 함께 국왕좌승함 관측창으로 올라갔다. 함장도 함교를 떠나 관측창에서 육지 쪽을 살피고 있었다.

“함장! 상황이 어때요?”

“어서 오십시오, 전하. 바로 북쪽 지세포는 아니고 그 북쪽 옥포에서 명군의 화약창고가 폭발한 것 같습니다. 총성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으나 불을 지른 자가 왜병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탐망선을 내보내서 확인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민호의 가슴에는 고산국 함대를 동원해 옥포로 가서 모든 불빛을 향해 함포를 쏘게 하고 싶은 욕망이 피어났다. 그러나 그 불빛 대부분은 아군일 것이 빤했다.

지금은 상황 파악을 위해 기다려야 했다. 적이 나타났다 해도 소수일 뿐일 테니,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알고 나서 대응해도 충분했다.

“아군에게 얻어맞고, 응사하고, 그럼 본격적으로 아군끼리 싸우게 되겠지요. 기다리시오. 총함장의 기함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소?”

“기함에서 대기 신호를 보내기에 즉시 수령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민호는 함장과 함께 함교로 내려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와중에도 북쪽에서는 끊임없이 총성이 울렸다.

이순신이 탄 기함에서 다시 모든 함선들에게 불빛으로 대기 신호를 보냈다. 총함장의 명령이 그러니 어느 배도 움직일 수 없었다.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 몰랐습니다, 전하.”

“불안하지만 야간전은 다 그렇소.”

잠시 후 관측창에 위치한 무상이 함교로 보고했다. 수군에서 해군 체제로 전환됐어도 무상이라는 높은 명칭을 굳이 아무나 하는 견시로 바꾸지 않았다.

“횃불이 움직입니다! 길을 타고 내려옵니다. 전령이 말 타고 옵니다!”

전체 원정군 총지휘관인 이민호가 보낸 전령이 돌아올 시간은 아직 아니었다. 확인해 보니 지세포 근처에 주둔한 조선군에서 보낸 전령이었다.

전령은 고산국 원정함대 기함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함에서 상황해제 및 평시 상태를 뜻하는 불빛 신호를 보냈다.

어느새 총성도 그치고 마치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위가 고요했다. 너무 쉽게 끝나서 다들 어리둥절했다.

“뭔 일이랍니까?”

“아무래도 사고가 났던 모양이오.”

잠시 후 기함에서 국왕좌승함으로 따로 단정을 보내왔다. 통신참모 송희립이 좌승함에 올라 함교에 들어왔다.

송희립이 이민호에게 힘차게 군례를 올렸다. 군례를 받은 이민호가 상황을 묻자 송희립이 조금 감탄한 듯했다.

“국왕전하! 날이 추워서 명나라 병사들이 때던 모닥불에서 불씨가 날아가 화약창고로 번지며 연쇄 폭발, 결국 세 동이 전소됐다고 합니다. 총소리는 겁에 질린 명나라 병사들이 무작정 쏘던 것이었습니다. 일부는 적이 온 줄 착각하고 부대를 이동시켰으나 곧 오해를 알아차려서 아군끼리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하께서 보낸 전령이 명령을 전해 지금은 모두 진정됐습니다. 다만 사상자가 약간 발생했으나, 정확한 것은 날이 새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알겠소. 수고했소.”

그러나 조선군 육군에서 고산국 수군 기함으로 전령을 보낸 것은 문제였다. 이민호가 원정군 총지휘관이므로 조선군 전령은 국왕좌승함으로 왔어야 했다. 기함에 이민호가 탔다고 전령이 오해했을 수도 있었다.

“전하께서는 상황이 끝날 때까지 기함에 어떠한 명령도 내리지 않으셨더군요.”

“함대 지휘를 총함장님께 위임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오?”

“전하와 함께 싸움에 나서게 돼서 영광입니다.”

송희립이 깊숙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한 다음 함교에서 나갔다. 누구도 송희립이 국왕에게 군례를 올리지 않았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함장! 새벽에 일찍 출항해야 하니 다시 3직제로 전환해서 휴식을 취하게 하시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전하.”

야간에 적에게 기습당했다고 오해한 것치고 함장은 꽤나 신중하게 행동했다. 과연 이민호가 믿고 국왕좌승함의 함장을 맡길만한 사람이었다.

실제 역사의 칠천량해전에서는 밤에 작은 배를 타고 조선군 함대 사이에 침투한 왜병들이 하늘을 향해 조총 서너 방을 쏘는 순간 전 함대가 서쪽으로 달아났다. 통제사 원균의 퇴각명령이 있었다지만 다들 공황상태에 빠져 무분별하게 도주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비슷한 상황에서도 전 함대에 대기 명령을 내려 진정시켰다. 위기상황에서 사람의 이성이 충동적인 감정을 이기기 힘들다. 이민호도 함대를 먼 바다로 출동시키고 싶었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고, 이순신을 믿었기에 대기 신호를 보면서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이민호는 다시 침전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옥포 방향의 하늘은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명군은 밤새도록 불을 끄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자게 되었다.

이민호는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전투복을 침대 옆 탁자 위에 개어놓았다. 다시 비올레타와 함께 침대에 들었는데 흥도 깨지고 벌써 자정이 넘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전하. 이만 주무시도록 해요.”

“음. 미안하오.”

이민호는 비올레타를 꼭 껴안고 달콤한 체향을 맡으며 편안하게 누웠다. 서양 여자에게 누린내가 난다고 들었는데 같은 식사를 하면서 그럴 일은 없었다. 파티마나 다른 백인 시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비올레타 같은 미녀를 껴안고 있는데 쉽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비올레타가 그윽한 미소를 지은 채 이민호의 얼굴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오직 이민호의 얼굴만을 담고 있었다.

이민호가 참을 수 없어 비올레타를 꼭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손이 비올레타의 잠옷 속을 더듬고 속바지 안쪽을 더듬었다. 여성용 속옷도 꽤나 보수적인 물건이라 마치 장례양식처럼 쉽게 바뀌기 어려운 문화였다.

“흑.”

이민호가 만지는 곳마다 비올레타가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비올레타의 허벅지 사이를 만져도 여전히 뽀송뽀송했다. 이민호의 몸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나 이민호는 상관하지 않고 까슬까슬한 그곳 감촉을 즐겼다.

비올레타의 얇은 옷을 다 벗기고 속이 비치는 짧은 속치마도 벗겼다. 이민호도 가운을 벗어 알몸이 된 다음 뒤엉켰다.

가느다란 비올레타의 허리 위에는 지난 시간 이민호가 눈여겨보던 것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예상처럼 탄력 있는 신체 부위였다. 이민호가 기억하고 있는 대중매체 속의 서양 여자들 가슴은 특별히 큰 것들이었다. 물론 파티마도 가슴이 큰 편에 속했으나 흔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이민호는 비올레타의 가슴을 애무하면서도 하체를 끊임없이 접촉했다. 비올레타가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하고 긴장을 풀었다. 이민호는 그녀와 키스하면서 서서히 결합시켰다. 비올레타가 퍼뜩 놀랐으나 고통 없이 순조롭게 결합됐다.

“아!”

“아프오?”

“아니요. 놀랐어요. 한 몸이 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정신적으로 충만해질지 몰랐어요.”

“나도 그렇소. 당신을 향한 애정이 샘솟는 듯하오.”

이민호가 하체를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 끊임없이 비올레타의 입술과 뺨, 그리고 목에 입을 맞췄다.

비올레타는 쉴 새 없이 이민호의 입술을 찾았다. 이민호의 입술이 잠시라도 다른 곳으로 향하면 두 손으로 이민호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내밀었다. 이민호가 잠시 쉬면서 비올레타에게 물었다.

“궁금한데, 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소? 당신 좋다고 따라다니는 에스파냐 귀족 청년들이 많다고 들었소.”

“당신께는 인간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어요. 당신은 요즘 인간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인간적인 분이에요.”

“나도 전쟁터에서나 법 집행할 때는 꽤나 잔인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오만.”

“중국의 사상서를 읽었는데 맹자는 어질 인(仁) 자를 측은지심으로 정의했어요.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특성이라지만 이 야만스런 시대에 꾸준하기란 어려워요. 하지만 당신은 해내고 있어요. 그래서 정말 강한 분이세요.”

이민호는 비올레타의 말에서 마닐라 고아원에 후원해준 것하고 총독 살해범을 잡은 일을 떠올렸다.

“일 년에 황금 몇 백 냥은 내게 그리 큰 금액이 아니오. 당신의 가치가 훨씬 크다오.”

“고마워요. 하지만 백성들은 당신이 외국의 고아들에게 돈을 쓰는 자체에 불만을 품었겠죠.”

고산국에도 고아원이 몇 군데 있었고 국가 아니면 종교단체에서 운영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 일부를 마닐라 고아원에 사용함으로써 에스파냐와 우호적인 분위기까지 조성한다면 손해 볼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황금이 자기 것이 아닌데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

“그리고 고산국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도 먹고 사는 문제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층민들까지 배고픔에서 해방된 곳은 역사를 뒤져봐도 아주 작은 지중해 도시국가들 외에는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고산국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항상 백성들이 여유 있게 살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