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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20화 (269/1,000)

00320  38. 큐슈 점령  =========================================================================

1593년 음력 12월 1일에 고산국 원정함대가 거제도에 도착했다. 함대는 거제도 해안 곳곳에 정박한 수많은 배들을 지나 고산국 함대에 미리 배정된 조라포에 정박했다. 판옥선이나 다른 한선 종류의 배들은 개펄에 올라갈 수 있으나 첨저선인 고산국 배들은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닻을 내렸다.

연합 원정군의 보급 거점으로 지정된 거제도는 온통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섬에 명군과 섬라군의 주둔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건초와 땔감이 산처럼 쌓인 곳이 수십 군데였다. 군량미로 운송할 쌀은 비에 젖지 않도록 새로 지은 창고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이민호는 국왕좌승함과 총함장 이순신이 탄 기함만 몰고 한산도로 향했다. 삼도수군 통제영은 아직 옮기지 않고 한산도에 있었다. 전선 두 척이 한산도로 접근하자 새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억기가 판옥선 몇 척을 몰고 마중 나왔다.

“전하. 상방검을 차세요.”

“깜빡했구려.”

이민호가 집무실에서 나가려는데 주상아가 검을 바쳤다. 이민호는 호위들의 도움을 받아 조선식으로 띠돈을 메어 손잡이가 허리 뒤로 가도록 상방검을 휴대했다. 근대 서양식 제복을 입고 폭이 넓고 화려하게 치장된 상방검을 이런 방식으로 차서 조금 어색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황제에게서 받은 상방검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일본 원정전은 같은 전역이라 할 수 없었으나 명나라 황제가 반납을 요구하기 않아 이민호도 잊어먹었다. 일본 원정의 총지휘권을 이민호에게 맡긴 명나라 황제가 지난번에 하사한 상방검에 대한 언급을 해서 예전 기함의 창고까지 뒤져서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공주께서 천군을 시찰해보겠소? 고향 사람들인데 만나보면 좋지 않겠소?”

“저는 이미 전하께 시집온 몸입니다. 이제 고산국 백성입니다, 전하.”

“그렇긴 하지요.”

외척의 발호를 경계한다는 이유로 명나라 공주는 시집을 가게 되면 그때부터 거의 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나라에서는 공주의 배우자인 부마도 일부러 보통 사람들 중에서 골랐다. 부마들이 하는 유일한 일이라면 신년 조회인 정조(正朝) 때 황제 옆에 서는 정도였다. 공주에게도 특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수틀리면 황제에게 편지로 고자질할 수 있는 공주와 그 배우자인 부마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명나라에 아무도 없었다. 황제가 주애공의 관작을 내렸지만 명나라 장수나 관료들을 만날 때 이민호가 행사한 실질적인 힘의 절반 가량은 부마도위에서 나왔다. 아무리 이민호가 관할지역이 따로 없는 흠차 제독 남북 수륙 관병 어왜 총병관 이주도독부 좌도독이라지만 해남도에서 양광총독을 혼찌검 낸 것은 월권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다.

“다녀오겠소, 공주.”

이민호가 주상아 공주를 끌어안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작고도 도톰한 입술과 일단 맞대는 순간 다시 떨어지기 어려웠다. 이민호가 공주를 안고 다시 침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 민영이 헛기침을 하면서 이민호를 독촉했다.

“도착했어요, 주인님.”

국왕좌승함은 이미 한산도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이민호는 호위들과 함께 선착장에 내렸다.

낯이 익은 조선 수군 장수들 외에도 명나라 제독총병관 유정과 여진족 대표, 그리고 섬라의 왕제가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호가 지휘관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주애공 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 제독 반갑소.”

30대 중반의 명군 지휘관 유정은 그 전에 버마와 싸우고 양응룡의 반란 진압에도 참전했다. 얼마 전 사천성에서 흐지부지된 양응룡의 반란을 진압했다는 이유로 유정은 몇몇 장수들과 함께 승진까지 했다. 양응룡이 파주 선위사라는 직책을 계속 유지하도록 허락해서 나중에 언제든 다시 반란을 일으킬 수 있게 내버려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여송 총병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인께서 원정군 전체는 물론 천군도 잘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천에서 승첩을 올리셨다 들었소. 축하하오. 그런데 땔감 문제로 수송선의 운송 능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전투 병력이 줄어들 우려가 있소. 그 문제는 알고 있소?”

“땔감에 대한 규정이 엄격해서 조선에서 대인께 일러바쳤나 보군요. 하지만 대명의 군법이 그렇게 엄격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대인. 만약 전투지역에서 채취한 덜 마른 땔감을 써서 취사를 하면 병사들이 설익은 음식을 먹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자칫 설사병이라도 퍼지면 전투력이 급감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함입니다.”

“어이구! 알았소.”

중국 음식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대부분 음식 종류가 강한 화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민호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싶었지만 수송능력에 부담을 줄 정도라면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군은 이 문제에서만큼은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절강과 복건, 광동에서 징발해 보낸 배가 1000여 척이었다. 그 중에서 군선으로 분류되는 배 200척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명나라의 보급 유지를 위해 투입되고도 모자랐다. 전쟁이 나면 군량 외에도 각종 보급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한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지만 명군은 특히 심했다.

“이 노야! 저는 수군 지휘를 맡은 부총병 도독첨사 진 모입니다. 주애공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사선 200척이 운하를 통해서 왔다면서요?”

이민호가 처음 명나라 황궁에 입조할 때 양자강에서 운하를 타고 북경 인근까지 간 적이 있었다. 운하 폭이 좁아 운행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일부 구간에서는 백성들이 부역에 동원돼 쇠줄을 잡아끄는 식으로 배를 예인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사고도 많고 민폐가 말도 못하게 컸다.

그런데 진린이 명나라 수군 군선인 사선 200척이 그 운하를 통해 조선에 왔다고 해서 이민호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양자강 하류에서 제주도까지 300km밖에 안 되는데도 명나라 수군은 뱃길이 위험하다고 고집해서 빙빙 돌아왔다. 북경 근처에서 운하를 빠져나온 명 수군 함대는 발해만을 거치고 요동반도를 지나, 의주에서부터 조선 서해안과 남해안을 타고 2000km 넘게 이동했다.

결국 명나라 수군이 여름에 절강에서 출발해 거제도까지 오는데 장장 4개월이나 걸렸다.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활동한 명나라 수군도 이런 식으로 왔다. 물론 정유재란 때 참전한 명 수군은 배가 작아서 해전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명나라 군선도 크게 만들 수 있고, 실제 1574년에 광동과 필리핀 근해에서 해적을 잡은 명 수군에는 큰 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배들은 운하를 통과하기에는 폭이 너무 넓어서 조선에 오지 못했다. 마치 현대 미 해군 함선들이 파나마 운하 폭에 맞춰 건조하는 파나마 사이즈를 연상시켰다.

“예. 그래서 4개월 동안 수군이 다들 고생해서 간신히 며칠 전에야 거제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군은 휴식 시간을 따로 가지지 않고도 왜적과 싸울 수 있습니다!”

“어이쿠! 잘 나셨소.”

운하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치면서 4개월이나 걸려서 온 주제에 진린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절강에서 제주까지 며칠 뱃길이면 충분할 것을 일부러 운하를 통해 조선에 온 것을 이민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허허! 제가 비록 70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잘 생기긴 했지요.”

“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노야! 허나 나라마다 사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내 사정이라 부끄러워 차마 밝히지 못하겠습니다만, 조정 신료들이 원했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수군이 편하자고 운하를 탄 게 아니라는 말이오?”

“저희들이라고 그렇게 시간 들여 빙 돌아오고 싶었겠습니까? 수군들이 장장 4개월 동안 배에 갇혀 있었단 말입니다. 그 좁고 냄새 나는 더러운 배에 지긋지긋하게 갇혀 있었지요. 물론 저는 북경까지 말을 타고 갔습니다만.”

“운하 운영과 관련돼서 조정에서 전략적인 판단을 했던 모양이구려. 알겠소. 다른 분들과도 인사를 나눠야 하니 더 이상 묻지 않겠소.”

지독하게 비효율적인데도 운하를 통해 수군 함대를 보낸 명나라 조정 신료들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조정이 부패하면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아랫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아무리 왕조 말 현상이 심각하다지만 황제 핑계를 댈 것도 없이 전적으로 조정 대신들의 잘못이었다.

진린 다음으로 이민호는 섬라군을 이끌고 온 섬라 국왕의 동생을 만났다. 전체적으로 명나라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각 부위 갑옷은 영락없이 포르투갈 판갑을 닮은 갑옷을 입고 나선 자가 왕의 동생이었다. 왕제가 유창한 중국어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섬라의 에까토싸롯이 고산국 국왕전하를 뵙습니다.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섬라의 에까토싸롯 왕제, 멀리서 오느라 수고하셨소. 나레쑤언 국왕의 농싸라이 승리를 축하드리오.”

발음이 어려워 이민호는 하마터면 혀를 이빨로 씹을 뻔했다.

“알고 계신다니 영광입니다. 나레쑤언 형님이 버마 왕세자 민치스라와 싸울 때 저는 자르 마 요의 영주와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코끼리가 없어서 싸우기 불편하시겠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타고 싸우기로 했습니다. 일본에서의 전쟁은 총기가 우선일 것 같으니 코끼리보다 말이 낫겠습니다.”

이민호는 섬라군 지휘관이 합리적인 사람이라서 다행이라 여겼다. 이번에는 화려한 황금색 두정갑을 입은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여진 기병 2만 명을 이끄는 여진족 전사였다.

“전하! 저는 명나라 황실로부터 지휘사 직첩을 받은 테무르입니다. 이름 때문에 흔히 오해하시는데 저는 몽골족이 아니라 대대로 여진족 맞습니다.”

“반갑소. 보급은 고산국이 책임질 테니 여진 기병을 이끌고 신나게 일본 땅을 짓밟아주시오.”

“자신 있습니다, 전하! 하온데 전쟁이 끝나고 저희들을 받아들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명나라 황제가 여진족에게 무역 허가를 내려준 칙서가 수천 장이고 지휘사 직첩은 수백 명에게 내려줬다. 지휘사라 해도 여진족 내부에서 큰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명나라와 무역을 해서 힘을 모을 기반이 되는 중요한 직함이었다.

이들 기병 집단은 소수 부족이 망해서 흩어졌다가 모이거나 기존 거대 부족에 속했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이번 6월에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이 전쟁을 벌이면서 여진 부족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 유랑집단이 자그마치 2만으로 불어났다. 한때 명나라 국경에서 큰 골칫거리가 된 여진족 집단이었다.

“북방의 땅은 넓으니 어디든 나라를 세울 수 있지 않소?”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이 나라를 세우면 뭐하겠습니까? 아마 서로 패륵을 하겠다고 싸우다가 일 년도 못 가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기병 2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조직력이 없었소?”

“없습니다, 전하. 흩어질 뻔한 순간에 명나라와 고산국에서 고용한다기에 뭉쳐 있는 것뿐입니다. 저희들이 가족을 동해국에 맡기고 오는데 그 전에 비해 달리진 것도 있지만 특히 사람들이 안심하고 사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들도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고 안심하고 살고 싶습니다. 저희들을 받아주십시오.”

“송화강 강변에 땅이 많이 남으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정착할 자리를 정합시다.”

“감사하옵니다, 전하.”

이민호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백성 10만에 기병 2만을 공짜로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진 기병 2만이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나머지 조선과 명나라의 장수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일일이 인사를 나누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간단히 단체로 인사하고 나머지 절차는 생략했다.

지휘관들과 함께 운주당으로 가는 길에 일본 관복을 입은 자들이 이민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로 앞에 나서서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자는 이민호가 아는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또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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