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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15화 (264/1,000)

00315  37. 일본 정벌 준비  =========================================================================

이민호의 후궁이 된 여자는 일을 해야 했다. 주상아 공주가 북경에서 온 환관 출신 칙사들을 휘어잡듯이 비올레타는 이민호가 에스파냐나 포르투갈 상인들과 상담을 나눌 때 참가해서 거래에 도움을 주었다.

“맙소사! 그 루비는 몇 캐럿인지 상상이 안 가는군요.”

“내 아내가 됐으니 당연히 이 정도 보석으로 장식해야지요. 판매할 물건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동 두아르테.”

하얀 드레스를 입은 비올레타가 머리에 쓴 작은 왕관에 커다란 빨간 보석이 박혀 있었다. 인조보석이라서 미안해진 이민호가 비올레타의 손등을 잡아끌어 입을 맞췄다. 비올레타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민호의 어깨에 살짝 몸을 기댔다.

보통은 중국어로 상담이 이루어지지만 갈리시아 출신인 비올레타가 오해 여지가 있을 때마다 상세한 설명을 함으로써 거래를 예전보다 원활하게 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갈리시아어는 스페인어보다 포르투갈어에 훨씬 가까웠고, 비올레타는 아예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면서 거래를 도왔다.

찬바람이 불면서 곧 남쪽 말래카로 향할 마카오 상인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예전과 달리 마카오와 고산국 왕도를 정기 연락선이 오가는 탓에 포르투갈 상인들의 고산국 방문이 훨씬 잦아졌고 이는 무역액 증가로 나타났다. 일본 땅에서 큰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가사키와 히라도 상관에 머물던 상인들도 대거 철수하고 있었다.

“모피를 더 가져가면 좋겠는데 계절이 초겨울이라 너무 아쉽습니다. 특히 해달의 모피 말입니다.”

“모피는 겨울에 많이 사서 가공까지 해놓을 테니 봄에 가져가시오. 해달 모피는 물량을 더 이상 못 늘린다는 사실만큼은 명심하시오.”

두아르테가 몹시 아쉬워했지만 이익이 나올 상품은 여러 가지였다. 이번 거래를 위해 고산국에서 준비한 상품을 확인한 두아르테가 금과 은으로 결제를 완료했다.

“동 두아르테는 이번에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거래량도 많이 늘리고 말이오.”

“전하 덕택에 무굴제국 황제에게서 큰 보상을 받았고, 이집트 상인과 거래를 트게 됐으니 당분간 사업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고객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오.”

이민호는 상대가 포르투갈인이든 영국인이든 돈만 제대로 갖고 오면 언제든 환영할 수 있었다. 다만 영국인과 네덜란드인들의 악행을 익히 들어왔으므로 두 나라에 대해서는 몹시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도 만만한 지역을 공격해 식민지로 삼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도 최소한 지역 상인들과 무역을 할 때만큼은 제대로 돈을 지불하면서 했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는 빈손으로 와서 모든 것을 동아시아 안에서 무력으로 해결하려 하니 허구한 날 전쟁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거래를 한다 해도 세금을 빙자해 시장 가격의 10분의 1 이하만 지불하는 네덜란드나, 바닷가 주민들을 노예로 잡아와 해삼을 채취하게 만드는 영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민호는 최대한 이익을 내야 하는 주식회사 제도의 단점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카이펑의 남모회회 출신 자오입니다. 흩어진 히브리인 10지파의 후예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에 정착한 것은 겨우 500여 년밖에 안 지났기 때문에 그것은 확실합니다.”

“존경하는 고산국 국왕전하! 자오칭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회족이 아니라 이스라예족(一賜樂業族)입니다.”

“이스라예? 이스라엘 말이오? 그럼 유대인이시구려.”

개봉부에 거주하며 납작한 파란색 모자를 쓴 회족 상인 자오라는 사람은 12세기에 중국 땅에 정착한 유대인의 후예였고, 아직도 유대인이었다. 자오칭의 일족은 주변 이슬람교도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거의 회족 취급을 받았지만 유대인의 종교적 전통과 관습을 아직도 지키고 있었다.

“반갑소. 유대인의 빵모자는 특이하구려. 무슨 일로 동 두아르테의 소개를 받아서 왔소?”

“국왕전하께서 널리 인재를 받아들이시고 이민 온 소수 민족들의 종교와 관습을 보호해준다고 들었습니다. 왕도에 며칠 머물러서 둘러보니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족들의 거주 지역 인근에 공동체를 일구면서 회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고산국에 와서 이슬람 모스크가 세워진 것을 본 자오칭은 큰 감명을 받았다. 다른 지역과 달리 카이펑의 유대인들은 이슬람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 이슬람이나 유대교나 명나라에서는 소수 종교에 불과하니 충돌할 이유가 없어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혹시 유대인 전체가 고산국으로 집단 이주하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전하! 대명제국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왕조의 교체야 항상 있는 일이겠지만 그럴 때마다 저희 같은 소수 민족은 모든 것을 잃기 쉽습니다. 특히 상업과 보석세공업에 종사하는 이가 많은 저희 유대인들은 왕조교체기에 큰 타격을 입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 협의해서 고산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국왕전하께 보호를 요청합니다.”

“유대인이라. 그렇게 하시오. 윽! 공동체 소속원들이 모두 국적을 옮기실 건가요?”

이민호가 조건을 묻지도 않고 허락부터 했다가 비올레타한테 허벅지를 꼬집혔다. 그래서 얼른 물어보았다. 잘못하면 화교와 맞먹는 이질적이고 폐쇄적인 인종 집단 때문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 이민호가 너무 서둘러 허락한 셈이었다.

“저희들을 받아주신다면 마땅히 고산국으로 국적과 거주지, 생활근거 모두를 옮기겠습니다.”

“왕도 남쪽에 서양식으로 새로 지은 마을이 있는데 200가구 정도 수용할 수 있소. 인원이 얼마나 되오?”

“500가구 2천여 명입니다. 혹시 너무 많습니까?”

“아니오. 많을수록 더 좋지요. 다만 마을은 더 크게 건설을 해야겠구려. 개인에게 할당되는 농지와 거주지, 상업을 할 가게와 보석가게, 보석가공 작업장, 창고건물을 원하는 만큼 내주겠소. 종교 시설물의 도안을 마련해주면 건설해주겠소. 명나라에 산재한 이슬람 모스크와 혼동될 우려가 있으니 청진사라 부르지 말고 유대 예배당이라 하시오.”

자오칭이 감격해서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너무 많이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얼마나 내야 하겠습니까? 저는 모든 재산을 다 바쳐도 좋습니다.”

“고산국에 올 때는 무료요. 개인에게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으니 실제 금액은 크지 않소. 다만 상인들은 일정 기간마다 그 동안 불어난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오. 받아들이겠소?”

“너무나 좋은 조건이라서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다른 민족의 시선을 잘 아실 거요. 유대인이 동아시아에서 워낙 수가 적으니 어느 정도 사회적 폐쇄성은 용납해주겠소. 그러나 만약 탈세하면 경을 칠 줄 아시오.”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은 앞으로 금융회사를 운영할 수 없소. 유대인에 대한 유일한 차별이오. 받아들이겠소?”

“받아들이겠습니다, 전하.”

유대인이 강한 산업 분야는 상업이 아닌 금융이었다. 상업은 차라리 중국인이 더 잘했고, 근면성은 한국인과 베트남인을 빼놓을 수 없었다. 카이펑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중국에 정착해 수백 년이 지났지만 상업 분야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과거 공부를 해서 명나라 관료로 진출하는 경향이 크게 늘었다.

역시 유대인들은 교육의 힘이 가장 강했다. 이민호는 유대인들에게 교육과 과학기술 분야를 맡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과학자가 고산국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감사의 의미로 국왕전하께 절을 하겠습니다.”

“과례요. 교육과 상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좀 마련해두겠소.”

“국왕전하께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좋겠소.”

이민호는 유대인들에게 말 그대로 정말 개와 말처럼 일을 부려먹을 속셈이었다. 유대인들이 조선말을 적당히 구사하게 될 때 고산국의 교육계와 과학계는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이민호는 금융을 유대인들에게 내줄 생각이 절대 없었다.

고산국에는 환전소도 없고 은행도 아직 없었다. 고산국에서 주조한 금화와 은화는 상품화폐에 가까웠고 그것은 금과 은의 무게를 달아서 통용하는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들이 정착한다면 금융으로 장난질 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고산국에는 고리대가 아예 없었고 농촌지역에서만 촌장이 농민에게 약간의 대부를 해주는 수준이었다. 이민호는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을 서둘러 만들 생각을 했다. 소수에 불과한 유대인이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바짝 긴장하게 되는 스스로가 웃겼다.

원정을 준비하면서 바쁜 이민호는 궁성호위대와 다른 조직으로 경찰청을 독립시켰다. 왕도와 주요 지역에 이미 설립한 포도서가 경찰서로 바뀌고 전국적 조직으로 변경됐다.

치안 서비스를 지방자치에 중점을 두는 현대 경찰제도의 흐름과 어떻게 보면 정반대 방향이었으나 중요한 원정을 앞두고 모든 무력 부문의 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여자 경찰을 1할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교육과 기존 직원들의 재교육을 위해 경찰학교를 설립했다.

경찰청을 정보부 수장인 미카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이번에 미카도 임신하면서 맡길 사람이 없었다. 눈치를 살피던 이민호는 그 일을 혜진에게 떠맡기고 호위 몇 명만 데리고 해중국으로 도망쳤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다고 징징대던 혜진이 길길이 날뛰겠지만 일단 쏟아지는 비를 피하고 볼 일이었다.

“아키! 고생이 많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미카의 시녀 도키코가 닌자들과의 싸움에서 죽으면서 다른 시녀들도 한동안 침울했으나, 네이가 임신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다. 아키는 네이 대신 해중국과 전복 양식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혜영과 민희, 미카와 네이, 유구국 출신 아야의 배가 점점 불러왔다. 브루나이 공주 두나가 임신한 것 같아서 축하를 받았는데 의사로부터 단순한 복부비만이라는 진단을 받고 얼굴을 들지 못했다. 브루나이 공주들은 다들 통통하고 복스러워서 이민호가 좋아했으나 아직 삼신할미로부터 점지를 받지 못했다.

이민호는 항구 바깥 요새부터 순시했다. 요새를 지키는 민병대원들이 국왕의 순시에 놀라 뻣뻣이 굳었다. 요새가 세워진 후 아직 아무 일도 없었지만 민병대원들이 교대로 잘 지키고 있었다.

이민호는 그 날 저녁 해중국 궁성에 입성했다. 어떻게 보면 외륜선들의 상륙지인 바로 이곳이 고산국을 건국하게 된 요람이나 같은 곳이었다.

“아키가 해중국을 관리하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봐.”

“네, 주인님! 이제 해중국을 따로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일반 도시로 전환하면 안 되나요?”

“흠. 원래는 도시국가 여러 개를 만들어서 운영하려고 했는데. 아직 기다려 봐.”

해중국은 현재 고산국의 광역직할시 정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일본과의 전쟁 중에는 고산국을 대신해 해중국이 일본과의 무역에 나섰으나, 고산국과 해중국의 관계가 알려질 만큼 알려져서 임진왜란 기간 내내 불안했다. 결국 이번에 본격적인 원정을 앞두고 해중국 상선들도 모두 철수시키고 다른 나라 상선들을 대리시켰다.

“저어. 주인님.”

“응? 편하게 말해 봐.”

아키도 다른 일본인 시녀들처럼 꾸준히 운동을 해서 근육이 살아있었다. 궁성에서 대련할 때 왜검을 든 상대에게 나기나타를 들고 돌격하는 아키의 모습은 멋졌다.

“주인님은 혹시 미카님을 일본에 보내실 생각이신가요? 미카님이 몹시 불안해하세요.”

“응?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나는 내 여자 안 버려. 아키 너도.”

이민호는 꾸준히 운동을 하는 여자의 복근을 앞니로 살짝 깨물어줄 때가 가장 좋았다. 그 날 밤에 같은 침대에 오른 아키와 민영이 진저리를 쳤다.

============================ 작품 후기 ============================

또 올리겠습니다.

일본 원정을 앞두고 대충 정리한 다음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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