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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313화 (262/1,000)

00313  37. 일본 정벌 준비  =========================================================================

37. 일본 정벌 준비

1593년 음력 11월 내내 고산국 전체가 원정 준비로 바빴다. 보급품을 가득 실은 수송선과 상선들이 보급 거점으로 지정된 거제도를 향해 수시로 출항했다. 해병과 승마보병 등 군대는 마지막으로 공성전 훈련에 집중했다.

“조선과 명나라에 은 백만 냥씩 군자금으로 빌려주시겠다고요?”

“국고가 아니라 내탕고에서 나가는 거야. 걱정 마.”

“조선이나 명나라가 그런 거액을 갚을 능력은 없을 텐데요. 나중에 알아서 이권으로 바꿔오세요. 휴우~”

“운산 금광이나 단천 은광에서 많이 뽑고 있잖아.”

혜영이 한숨을 쉬자 이민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홀몸이 아닌 혜영에게 쉬라고 해도 지금이 워낙 중요한 시기라서 혜진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 확실하게 임신이 확인된 다음부터 혜영이 직접 일 돌아가는 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집무실에 모인 참석자들은 과중한 업무에 치여 피곤에 절어 있었다. 병력을 소집하고 훈련시키는 일은 각 나라가 맡은 일이었다. 그러나 수송과 보급단계에서 고산국의 역할이 커지면서 부담이 크게 가중됐다.

마치 컴퓨터 좀 다룰 줄 안다고 아는 사람들에게 컴퓨터 조립과 프로그램 설치, 고장 수리를 무료로 해줘야 하는 것처럼, 운송 능력이 좋다는 이유로 수송 분야에서 덤터기를 쓰게 되었다. 물론 운송비용은 받았지만 고산국 소속 모든 배가 동원되는 바람에 교역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참석자들 모두 맡은 일이 있었고, 업무량이 넘쳐났다. 아라 공주는 광동과 안남에서 수입한 쌀을 이번 원정의 보급 거점인 거제도로 수송하는 일을 맡았다. 명군과 조선군, 섬라군과 유구국군은 물론 여진족 기병들이 먹을 군량과, 전마와 짐말에게 먹일 잡곡과 건초가 산더미처럼 많이 필요했다.

비올레타는 섬라에서 파병한 1만 명을 전선과 상선을 동원해 거제도로 수송하는 일을 훌륭하게 마쳤다. 열대지방에서 살던 섬라 보병들은 생전 처음 겪는 조선의 추위에 떨며 고생했다. 이들은 거제도가 조선에서 따뜻한 지방에 속한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왕명명은 고산국의 전마를 제주도로 보내 전쟁에 대비해 체력을 키우고 훈련시키는 일을 담당했다. 이 와중에 양치기 소녀 아이샤는 제주도와 아이누 섬, 개마고원과 연해주에 산양 몇 마리씩을 보내서 키우는 일을 맡았다. 이번 겨울이 지나봐야 털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기병 1만과 보병 2만, 합 3만을 동원했는데 이여송이 아닌 30대 중반의 유정이 총병관으로 승진해서 제독을 맡았다. 최근 여진족의 정세 변화가 심해 만약에 대비해 이여송을 요동에 남겼다.

유구국은 2천을 동원했고 전투보다는 상선을 많이 동원해 주로 보급과 수송을 해주기로 했다. 덕택에 유구국도 남쪽 여러 나라와 이루어지고 있는 교역 양이 많이 줄어들게 생겼다.

조선에서는 삼도수군 판옥선 150척이 동원될 예정이고 나머지 판옥선과 조운선들은 보급을 맡았다. 그리고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전라좌수사로 옮기면서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됐다. 경상우수사 오응정은 유임되고 경상좌수사 이수일은 전라우수사로 자리를 바꿔 원정에 참가했다. 권준이 통제영 조방장이 되어 남해안 전체를 지키면서 보급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조선 조정이 무리해서 동원한 육군 3만 5천 명은 도원수 이항복의 지휘를 받았다. 권율은 삼도 체찰사가 되어 경상도를 방어했다. 도체찰사와 도원수의 권한이 겹치는 문제로 인해 원정군의 지휘는 도원수로 단일화했다.

조선 육군은 예하 병력을 셋으로 나눠 경상도 우방어사 김시민이 중군장, 경상좌병사 이광악이 좌위장, 경상우병사 유숭인이 우위장을 맡았다. 실 병력 지휘관은 경상도 절도사들이 맡았으나 예하 병력은 전라도와 충청도, 경기도에서 징집돼 여러 장수들에게 배속됐다.

그리고 방어사 오응태는 2만에 달하는 여진족 기병들을 이끌고 요동에서 동래까지 이동시키고 있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기병 5천이 동원돼 여진 기병을 감독했으나 싸움이나 약탈 같은 각종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수륙군 합해서 일본에 들어가는 병력만 10만이에요. 보급이나 후방 경비에 투입된 병력과 인원까지 합하면 거의 30만에 달해요. 잘못하면 일본을 멸망시키기 전에 조선과 명나라, 고산국과 유구국이 먼저 망할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지.”

고산국과 우호적인 여러 나라에서 국력을 기울인 대규모 원정군이 편성됐다. 방어전에 동원하는 것과 달리 원정에서는 물자가 몇 배나 소비돼 그 동안 무역을 통해 부를 늘려왔던 고산국도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원정에 실패했다간 어떤 타격이 올지 몰라 이민호는 어떻게든 성공시키기로 다짐했다. 여러 나라의 운명이 걸린 한 판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에서 수시로 사신단을 파견해 고산국 왕도와 북경에 들락거렸다. 고산국과 명나라의 동향을 살피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명나라에서는 북부 연안이 해금령 중이라서 왜선이 오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일단 목을 베었으나, 고산국에서는 사신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전쟁 준비를 해나갔다.

이민호는 기관총과 다총신 연발총 개발 진행 상황을 살피기 위해 국방연구소에 들렀다. 연구를 책임진 장인이 초췌한 얼굴로 이민호를 맞이해서 안내했다. 장인들이 다들 몇 달째 집에 못 들어갔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드디어 시제품이 완성됐습니다. 탄 걸림 현상을 해결했고 냉각수가 새는 문제도 해결을 봤습니다. 약실을 확장해 탄피만 구경을 늘리는 것에도 성공했습니다.”

“수고했소. 시험 사격은 해봤소?”

“예. 200발 들이 탄통을 5개까지 바꿔서 연속 사격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우려하셨던 냉각 문제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간단히 했지만 그 동안 얼마나 고초가 심했는지 잠이 덜 깬 장인들의 얼굴을 미루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원정이 마침 겨울에 이뤄질 예정이니 총열 냉각 문제는 이번만큼은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수랭식이라 냉각 문제는 크지 않았다. 단지 큐슈보다 추운 혼슈에서 작전할 것에 대비해 부동액을 준비하느라 이민호가 직접 작업에 나서게 되었다.

“오! 수고했소. 그럼 생산은 언제까지 되겠소? 원정 갈 때 몇 정이나 가져갈 수 있겠소?”

“시제품 포함해서 2정입니다.”

“뭐요? 겨우 2정이란 말이오?”

이민호가 겨우 2정으로는 너무 적다고 혀를 차자 책임 장인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신 개발품이라 장인들이 모든 부품을 수제로 깎아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장인들이 밤을 샌다면 4정까지 생산 가능할 것 같습니다.”

“평시라면 이렇게까지 재촉하지 않겠지만 시분을 다투는 문제요. 출발 전까지 반드시 완성하시오.”

“예! 전하.”

이렇게 해서 또 장인들을 쥐어짜게 됐다. 쉬게 해주고 싶어도 당장 원정에 나서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이 흘린 땀이 앞으로 청년 병사들이 흘릴 피를 대폭 줄여줄 것이다.

7총신 다연발총도 연구개발이 많이 진행됐으나 결국 일본에 가져갈 정도는 아니었다. 책임 장인이 스스로 포박을 한 채 이민호에게 죄를 청했으나 최선을 다한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민호가 더 잘 알았다.

이왕 늦은 것 푹 쉬게 해주려다가 기관총 개발 장인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휴가도 못 주고 계속 일을 시켰다. 이민호가 장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연구직 공돌이들의 숙명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이민호는 선박 연구소에도 방문했다. 여러 가지 모양과 날개 숫자로 시험하던 스크루 프로펠러가 결국 날개 5장으로 결정됐다. 스크루는 앞으로도 계속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황동합금으로 만든 스크루를 전선에 달고 시험항해에 나서게 했다. 윤선과 비슷한 기존 추진 방식에 비해 속도가 최소 2할은 증가했다. 만족한 이민호는 국왕좌승함을 비롯한 전선에 이 스크루를 달게 했다. 그러나 일정이 촉박해 절반 정도만 개조가 가능했다.

“전선 개조를 우선하겠습니까, 전하?”

“함대의 이동 속도는 가장 느린 배에 의해 결정된다오.”

“과연 그렇군요. 전하의 혜안은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뿐이오. 전선은 수송선보다 운항 거리가 길 수밖에 없고 속도가 중요하오. 당연히 전선에 먼저 회전날개를 다시오.”

대형 스크루를 만들고 총탄을 다량 생산하느라 구리 재고량이 거의 바닥났다. 일본에서 구리 수입을 늘리고 싶었으나 고산국의 계속된 해안지방 공격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박살나고 운송 능력도 대폭 줄어들어 수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바기오에서는 금광과 은광을 젖혀놓고 동광에 광부들 전원을 투입해 최대한 채굴하고 있었다. 자체 내에서 구리를 수급하는 일이 한계에 부닥쳤다.

그래서 이민호는 명나라에서 상인들이 주조한 구리 사전(私錢)을 대량으로 들여와 녹여서 썼다. 동전이 구리 값보다는 비쌌으나 급하니 경제성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덕택에 명나라에서는 동전이 품귀현상을 빚고 일부 지역에서는 상업이 마비가 됐다.

탐사선을 이끌고 갔다가 몇 달 만에 돌아온 김몽돌 대위를 이민호가 집무실에서 만났다. 새까맣게 얼굴이 탄 김몽돌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민호가 우려했던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생기지 않았다. 임무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김몽돌에게 그 자리에서 소령으로 승진시켰다.

“해협 중간에 있는 말래카에 기항해서 포르투갈 사람들과 함께 뽀르타 데 산티아고 요새의 방어문제를 협의했습니다. 여기 포르투갈 부왕이 국왕전하께 바치는 국서입니다.”

“인도 고아의 부왕이 직접 고산국에 온다더니 아직 말이 없네.”

말래카 요새에 고산국 지상군 병력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병력이 적은 고산국 입장에서는 여력이 없었고, 포르투갈에서도 외국군을 주둔시키는 것에 거부감이 강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병참지원 문제는 확실히 해결됐다.

“국가의 동맹에 관련된 중요한 일이라 본국에 훈령을 요청했으나 우편선이 중간에 아랍 해적선에 나포됐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해적들이 언제 향료제도를 차지할지 모르는데 느긋하기는. 쯧쯧!”

탐사선은 브루나이를 지나 현대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위치한 넓은 해역에서 해도를 작성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말래카 해협에서 포르투갈이 건설한 요새에서 보급을 받고, 수마트라와 자바 섬 사이 순다 해협에 도착해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측정했다.

탐사선은 순다 해협에 접한 반탐에 고산국 배로서는 처음으로 입항했다. 동남아시아 전 지역에서 고산국의 이름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었고 탐사선이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탐사선은 반탐 동쪽에 위치한 자야카르타 또는 순다끌라빠라는 항구도시에도 입항했다. 김몽돌은 고산국에서 생산한 옥 도자기를 술탄에게 바치고 황금과 보석을 선물로 받았다.

“자바 섬이 열대지방이고 넓이에 비해 인구가 적어 먹고 사는 것은 충분해 보였습니다만, 눈에 띄는 특산품은 별로 없었습니다. 괜찮은 목재가 나지만 브루나이가 가까우니까 구태여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석유가 나더라도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럼 수마트라는 어때?”

이 시기까지 자바 섬의 인구는 적었으나 현대에는 1억이 넘는다.

“수마트라 남서쪽에 파당이라는 항구도시는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후추의 집산지이며 무역항구입니다. 인도와 포르투갈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비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곳입니다.”

“브루나이 섬 동쪽 술라웨시 섬은 어땠어?”

이민호가 해도를 살피며 김몽돌에게 물었다. 이민호가 개떡 같이 말했어도 김몽돌이 찰떡 같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예. 해도를 작성하고 돌아다니면서 슬루왕국이 새로 정착한 곳을 탐문했습니다만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 해적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해적들이 설마 마음잡고 농사나 짓고 살지는 않을 텐데.”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던 해적들이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없었다. 술루 섬에서 도망간 자들이 어디엔가 정착해 여전히 못된 짓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순다 해협만 지킨다고 될 일은 아니군. 대단히 수고했다. 김몽돌 소령 외에 탐사에 자원한 수병과 해병들도 전원 일계급 특진시켜주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김몽돌 소령은 부하들의 승진에 더 기뻐했다.

============================ 작품 후기 ============================

이제 자러 갑니다. ㅜ.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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